한국교회는 ‘조갑제닷컴’이 영적 독극물인지 모르는 죄악에 쌓였다.
-전광훈 목사→ 조갑제기자→ 문익환 목사→김대중만 있고,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없는 교회의 대참사-
 
 

한국교회가 ‘이석기 판례’와 동급 취급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교회 지도부가 전광훈 목사에 아무런 권고를 하지 못했으니, 서부법원 폭력사태에 대해서 세속법으로는 전광훈씨와 추종자 책임이지만, 교회 공동체로서는 한국교회 전부가 수치스러움을 이미 당했다. 유교붕당 정치가 게임의 룰로 보는 사람들은, “서운하노!”해도 어쩔 수가 없다. 기독교내부의 논리로는 부끄러움이다.
 
전광훈 목사가 강조한 ‘국민저항권’은 노무현 시절의 조갑제기자에게서 나온 논리라고 여겨지고, 필자가 추적하건데 조갑제 기자 생각은 80년대 후반의 조갑제기자에게서 나타난 일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논문과 학술자료를 통해서, 조갑제기자는 문익환 목사에서 영향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문익환 목사의 생각은 김대중 어록집에서 발원했다고 보인다. 즉, 김대중 어록에서 <저항권=맹자 역성혁명론(폭군방벌론)>과 동의어 부분이며, 민주당의 메인 정치캠페인에도 등장했으니 그들이 부정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중국 부족국가에서 임금이 쓰레기면 수십년 동안 고통을 겪는다. 아, 저 개새끼 임금 끌어내리자. 그래서, 뭉쳐서 왕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무교적 감정>이 중심이다.
 
1965년에 4.19 이후 데모 연속에서 민족복음화운동 깃발 올리고, 캘빈주의 회개를 강조하는 신앙 관행에서는 ‘엽기적 일탈’이다. 필자는 “이츠학 아카데미 유튜브”의 성혈 감리교회 김요환 목사처럼 신학적 보수-신학적 진보를 구분하지 않는다. 민족복음화운동 때에도 경건한 복음주의 중심에서, 신학적 구분이 본질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4.3 항쟁 사건, 여순사건, 대구폭동을 모두 기독교 목사가 이끌었는데 그 남로당 기독교로 복귀(이런 식이면 개정은이 예수님도 가능)하거나, 김일성에 탄압받고 김일성 수류탄 맞고 뒈져라 하던 천도교와 기독교신앙 종교혼합단계로 복귀했다고 보인다.
 
필자는 70년생이다. 청소년기에 그토록 경건했던 한국교회는 김대중 김영삼 시대 이후에, 지난 30년 내내 무속신앙 감정이 그리웠다는 기성세대(현재의 노인세대)에 쌓였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 노동계급은 지금 동학노인과 <다른 복음 선호>의 노인과 똑같았다. 히틀러 파시즘때와 다른 점은 한국은 결코 노동계급신분보다는 많이 가진 쪽이 ‘이 지경’이라는 차이가 있다. 감정에 치우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씨족적, 부족적 감정의 논리는 반드시 이분법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히틀러 파시즘 시대에 독일 노동계급은 ‘유대인 개새끼’하고 싶어했다. 그 수준의 ‘감정의 논리’가 압도했다. 서부법원이 명목상 서양법 외형인데, 조선시대 노론독재 종족법을 구현함이 맞아 보인다. 그렇다고, 딱, 조선시대 동학노비들의 분노를 행사한다면 그 결과는 뭔가?
 
기독교인은 결코 중국 농민봉기처럼 무장투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들은 기독교인 자체가 아니다.
 
더불어 민주당은 감정의 논리로 <박근혜 개새끼>로 몰아가면서, 지도자 축출하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때 ‘짜르 축출’같은 행위의 이미 한번 성공했따. 두 번째에 시도중이다.
 
감정의 원리로 모택동 문화혁명의 홍위병 줄세워서, 정적 몰이하는 그 방법으로, 박근혜 개새끼 하면서 원불교 촛불마왕 백낙청은 그런 정적 몰이를 구현했다. 김근식처럼 보수유권자가 80년대 김대중 김영삼 쫓아다니던 중졸이하 기성세대(현재의 노인들)이 중심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히틀러 파시즘 혹은 레닌 볼셰비즘처럼 ‘민주화유공자’들이 관직을 싹쓸이 독점하고, 한미동맹파를 히틀러 시대 유대인처럼 노예화하려는 의지다. 그들은 ‘원불교’(사탄교)에 대한 국민과 국제사회의 인식 결여를 악용한다.
 
히틀러 시대에 칼 바르트의 저항을 생각해볼 때다.
 
모든 형태의 감정의 논리로 가는 자아 원리를 배제하고자 하는 의미로서 ‘오직 성경’으로 성경에서 나오는 특별 계시만 인정했다.
 
감정의 원리로 인한 신앙 일탈에 대해서
 
<예수님 잘 믿으라 이기야!>
 
신앙 일탈에 대해서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그랬다.
 
히틀러 시대의 본회퍼 목사님의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히틀러시대는 한마디로 말하면 “히틀러 = 시진핑”으로서 아시아 군주제다. 이는 성경 계명 다 깨먹어버리는 것이다. 독일 사회의 기독교공동체에서 멀어짐에 안타까운 차원에서 신앙적 행동을 했다.
 
군사정권 기독교는 유교와 기독교를 헷갈리는 이들이 빈발했다면, 김대중체제 지난 30년 기독교는 동학신앙과 기독교의 종교혼합을 베이스로, 무속신앙(무교)와 기독교 헷갈리는 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지금 이러한 추세에 타협한 90년대의 40-50대가 기억하는 민족복음화운동과 북한선교론은, 다른 복음에 미쳐버린 이 주도층의 의지대로 왜곡됐다. 독일 노동계급과 또다른 측면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유교서원 잔재와 단절하지 않고 교회신자들을 자기들을 응원하는 물개박수 인구로 생각하는 일이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뭘 해도 죄를 물을 수 없는 이들의 자의성이 무한폭주하는 상황이 됐다.
 
군사정권 때 군사정권 기독교의 잘못은 유교의 충군애국과 겹쳐지는 부분에서 신앙의 훼손이다.
 
지금 김대중 체제 기독교의 잘못은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의 ‘동귀일체’나 ‘일원상진리’ 여기에 속하는 신앙원리의 바탕논리인 춘추대일통 세계관에 빠지고, 정작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를 도외시하는 신앙 범지를 저질렀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세계관 밖에 벗어나는 것이 금지된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 피조세계인 타종교 세계를 철학적 지성으로 분석하는게 금지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군사정권 충군애국은 왕에 줄 선 귀족의 감투놀이였고, 김대중 체제의 자유통일과 민주통일은 동학신앙 붕당에 줄 선 귀족의 감투놀이에 다름 아니었다. 모두가 하나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하나된다는 프로젝트를 짜는 사람에 씨족적 노예화를 꿈꾸는게 논리적으로 무한반복된 일이다.
 
필자는 신앙의 선배들이란 말을 부정한다.
 
아마도 조갑제씨가 복원한 그 유형의 기독교양식은 1965년 이전의 한국교회에 분명히 많았던 유형일 것이다. 씨족에 잘했냐 아니냐가 아니라, 기독교인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앞에 죄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기독교인이다.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에 빠진 다른 복음유형의 노인들은, 특별계시로서 성경계시에 숨막힐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 중심의 공간이요, 그 숨막히는 본인은 교회공동체 안에서 ‘가라지’일 것이다. 교회 지도부인데 그러면 쫓아낼 사람인데, 교회 지도부의 태만으로 남아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민족복음화운동으로 특정 목사님 띄우는게 문제가 아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 남고 다 사라지는 것으로 논한다. “기독교적 건국론”의 원조인 이승만에 동상을 세울 필요가 없다. 무속적 감정원리로 발광하는 이 자세를 안 고치는 한, 예수님과 연합해 천국 세상 갔을 이승만 대통령과 다시 만날 사람들은 죄스러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국민의 힘의 나라도 아니고 민주당의 나라도 아니다. 예수님이 중심인 나라다. 말씀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중심인 나라다.
 
신앙의 선배님 운운하면서, 다른 복음에 쩔어있는 똥물경전과 종교혼합에 들어선 노인들이 신앙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너무 많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신앙의 선배님 아니라(물론 그런 식이면 여순사건과 대구폭동 지휘한 목사님도 신앙의 선배님 운운 반열), 예수그리스도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하다. 그 안에서 성경을 일탈한 기독교 영역에 발담근 이들은 성경 예수님 중심으로 배제함이 타당하다.
 
기독교정치유튜브가 너무 유교붕당 진영론에 몰두한다.
 
차라리, 이런게 어떨까?
 
자유진영은 군사정권 기독교가 생각하듯 기독교갑질 사회는 아니다. 그렇다 하여 바탕문화가 기독교가 분명히 맞다.
 
기독교신앙
서양법학
자유시장경제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등 기독교신앙 중심의 학제적 가치가 가능할 것이다.
 
영미 경험론 사상에 익숙한 사람이 미국 복음주의 신학서를 남들보다 더 잘읽을 것이다. 독일철학에 익숙한 사람이 독일 신학을 남들보다 잘 읽을 것이다. 미래세대에게도 기독교인문지식 확장이 중요하다. 물론, 필자가 대단히 잘난 사람은 아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성경공부하면서 신앙이 깊지 않았을 때 배웠던 인문사회학, 경제학, 법학에서 이면에 깔린 성경원리를 본다.
 
원불교(사탄교)에 종교혼합 투항을 요구하는 정치권력에 대하여,
 
k-복음주의 고백교회는 어떨까?
 
예수를 잘 믿으라 이기야!
 
오직 예수다 이기야! 외치며,
 
나는 잘못된 종교혼합 및 다른 복음을 거부한다. 그런 투쟁은 어떨까?
 
자주 기독교인이 인용하는 영적 전쟁으로 인용되는 에베소서 6장의 사도바울 포지션은 뭔가?
 
영적으로 싸우기 앞서서, 적을 타도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주님에 매달리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인문학과 신앙지식의 콜라보를 굉장히 두려워한다. 그러나, 적어도 본인의 신앙체험에서는 가치가 높았다. 필자 생각에 조갑제 닷컴류의 아스팔트를 강단에 올리는 것보다, 기독교문화권에서 기독교신앙은 아닌데, 기독교신앙이 바탕에 깔린 경제학이라든가 이런 것을 전공한 사람들과 콜라보가 훨씬 긍정적이라고 본다.
 
주님의 공동체는 주님만을 섬겨야 한다.
 
신앙 지식에서 신학차이는 인정해야 하지만, 아예 이런 지경은
 
“아니오!”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