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육사 22기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지만원은 베트남에서 44개월간 전투임무(포병부대)를 수행하였다. 이때 지만원은 북베트남군(월맹군), 베트콩과의 숱한 전투경험들을 통해 좌빨세력들의 전시후방공작과 교란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지만원 박사의 소위시절 일화이다.
무전병 1명, 당번병 1명이 내 모든 부하였다. 두 병사가 완전군장을 꾸려서 왔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묵직한 짐이었다. 군장에는 물이 담긴 수통 4개가 달려 있었다. “소대장님, 여기에서는 물을 달라고 해서도 안 되고 주어서도 안 됩니다. 물이 생명입니다. 땀이 많이 나서 어지러우면 이 소금 알을 두 알씩 드십시오. 많이 드시면 물이 막힙니다.”
새벽 4시, 야지로 이동해가니 병력 수송용 헬기(WH-1H)들이 벌떼처럼 날아와 한 대당 5명씩 실어 갔다. 나는 동안 대지에서는 강물, 냇물 등 물빛만 이따금 반짝였다. 헬기는 가끔 완전히 옆으로 누워서 날았다. 문이 닫혀 있지 않아,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 의자 봉을 움켜쥐었다. 후에 알고 보니 원심력 때문에 사람이 쏟아질 염려가 없었다. 끝도 없이 전개된 밀림의 바다, 한 고지 정상에 헬기가 정지했다. 고지 정상은 뾰족한 봉우리가 아니라 고산지대의 평야였다. 헬기가 풀 때문에 내려앉지 못하고 2미터 높이에 떠 있었고 떠 있는 동안 장병들이 한 사람씩 뛰어내렸다.

갑자기 칠흑으로 변한 바위산, 중대는 바위 위에서, 베트콩은 바위 동굴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목이 탔다. 병사들은 소리가 들릴까 봐 통조림을 감싸고 절개하여 커피를 꺼냈다. 그리고 그 커피에 오줌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목이 타는 갈증,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 하나였다. 중대장 당번병이 마지막 오렌지 한 개를 중대장에 전했다. 그게 마지막 수분이었다. 중대장이 껍질을 벗기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칠흑에도 하얀 이빨은 빛을 냈다. 반을 나누어 내게 내밀었다. 그것도 그 순간뿐이었다. 하룻밤 전체를 갈증과의 싸움으로 지샜다.
밤새 고통을 겪은 중대장은 용기를 내서 연대 상황실에 무전을 했다. 연대장이 곧장 받았다.
“연대장님, 목이 몹시 마릅니다. 긴급히 물을 공수해 주십시오.”
“오 그래, 알았다.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평지로 이동하라.”

또 다른 정글, 바위틈에서 팔뚝 굵기의 대형 지네가 빠르게 다가왔다. 검고, 붉고, 노랗고…. 기가 질려 나는 끙끙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경력병, 이 병장이 다가오더니 곧바로 철모 띠에서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모기약을 꺼내 눌렀다. 모기약이 한 줄로 분출되어 지네를 덮었다. 순간 지네는 괴롭다는 듯 꿈틀거렸다. 뒤따라온 상병에게 병장은 고갯짓했다. “야, 그어대,” 상병이 재빠르게 성냥불을 그어댔다. 지네는 삽시간에 화염에 싸여 오그라들더니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그것이 고참병들의 순발력이었다. 산거북이도 보았다. 어떤 병사는 초록색 뱀도 보았다고 했다. 어떤 병사의 목덜미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거머리도 박혀 있었다고 했다.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얼굴들은 털북숭이로 변했다. 기지에 왔다. 기지라 해야 24인용 군대 천막이 쳐지고, 벽과 천정이 베니아 판으로 내장되어있는 숙소였다. 군대용 야전 침대에 베니아 판을 깔고 자는 곳이었다. 부중대장, 일명 중대 부관은 중위였다. 중대 부관은 작전에는 나가지 않고, 작전지역에 보급품을 헬기에 실어 보내는 일을 했다.
부관이 얼음통에 맥주를 얼 정도로 차게 담가놓고 기다렸다. 당시는 크라운과 OB 캔맥주가 술의 전부였다. 소주는 없었다.

중대장은 소대장들을 모두 불러 마음껏 마시라며, 턴테이블로 유행가를 틀게 했다. 현미, 문주란, 정훈희 등 당시의 유행가 곡들이 흘렀다. 고국에서는 외면했던 곡들이 그날은 가슴을 파고들었다. 살의 여기저기를 꼬집어 보았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대로 살아서 고국에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