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박사의 소대장 시절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일화이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베트남의 6월 오후, 갑자기 헬기들이 줄을 지어 날아오더니 내가 속한 중대를 낯선 마을로 데려갔다.

 



김제 평야 같이 광활하게 펼쳐진 논에는 짙푸르게 자란 벼가 정강이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논물도 풍부하게 채워져 있었다. 넓은 평야에 띄엄띄엄 마을이 보였다.




숲 속에 묻혀있는 마을들이 송곳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이어 건너편 마을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전투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 대의 미군 전투기가 마치 독수리처럼 수직선으로 내려 꽂혔다 야자수 높이에서 다시 날아오르면서 사정없이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나뭇조각이 야자수 숲 위로 날아오르고, 연기가 온 마을을 자욱하게 덮었다.

“따다다다닥. . . 쾅 . . .”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 전쟁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구나 싶었다. 전투기 공격이 끝나자 포병사격이 뒤를 이었다. 전투기가 뿜어내는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둔탁하지만, 야포 포탄이 작렬할 때 내는 소리는 날카롭게 째졌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날아다니듯 마을과 마을 사이를 쏜살같이 뛰어 다녔다. 한국군 4개 소대가 마을을 하나씩 배정 받았다. 소위 전략촌 마을들이었다. 억센 가시나무들이 빽빽하게 마을을 둘러쌌고, 그 가시나무 울타리에는 동그란 총구멍들이 촘촘히 뚫려 있었다.





베트콩들이 마을에서 밖을 향해 총을 쏘기 위한 것이었다. 중대본부 역시 제4소대와 함께 장갑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앞으로 전진 하면서도 온 신경은 뒷마을로 곤두서 있었다. 장갑차가 논물을 가르면서 마을을 향해 달리는 동안 차 위에 설치된 기관총이 뒷마을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불을 뿜어 댔다.




사수가 공포감을 느낄수록 그만큼 내뿜는 기관총 소리도 요란했다. 이에 질세라 뒷마을에서도 우리를 향해 엄청난 사격을 가해왔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꺾을 때 내는 “딱” 소리만 내고 여운을 내지 않는 총알들이었다. 이런 소리는 총알이 나를 향해 날아올 때 내는 소리다. “따쿵-” 하고 여운을 남기는 총알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총알이다.

M-16 소총의 초속은 마하 2.8이다. 소리보다 2.8배 빠른 것이다. 바늘에 실 따라 가듯, 총알이 먼저 나가면 그 뒤를 이어 총소리가 따라가는 것이다. 총알을 맞은 사람은 총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채 의식을 잃게 된다. 내가 속해 있던 중대본부와 제4소대는 아무런 피해 없이 마을에 도착했다.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제2소대 무전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수화기에 울려 퍼졌다. 소대장이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들어간 마을과 불과 10m 떨어진 이웃마을에 도착하여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 뒷마을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 붓는 베트콩의 총알에 머리를 맞은 것이다. 소대장의 전사 소식에 모두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한 부하의 죽음에 오래 애도할 여유가 없었다.

 



중대장은 기지에 남아있던 부중대장을 불러 제2소대장의 자리를 메우도록 조치했다. 부중대장은 부대에 남아 작전지역에 보급품을 보내주는 등 내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먹 거리도 포장하고, 고국에서 온 편지도 포장해서 헬리콥터 장으로 가져가 작전지역으로 보내주는 일들이었다. 이처럼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부중대장에게 청천병력(?) 같은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를 작전지역으로 데려오기 위해 특별 헬기가 마련됐다. 헬기는 그를 공동묘지가 있는 벌판에 내려놓았고, 그 역시 벌판으로부터 장갑차를 타고 넓은 논에 채워진 흙탕물을 가르며 마을로 들어왔다.

장갑차가 속력을 다해 달리는 동안 건너편 마을에서 또 다시 총알이 쏟아져 날아왔다. 차에서 내린 그의 얼굴이 사색이었다.

온통 숲으로 뒤덮인 마을에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손으로 아무 곳이나 문지르면 수십 마리씩 뭉개졌다. 톡톡하기로 이름난 정글용 작업복이었지만 월남 모기의 침은 당해내지 못했다. 독한 모기약으로 얼굴과 손 그리고 작업복 위에 범벅을 해도 떼거지로 달려드는 모기떼를 막지 못했다. 모기를 막기 위해 모든 병사들은 정글용 가죽 장갑을 끼고 판초우의를 뒤집어썼다.

 


야간에는 방어 초소들을 잘 선정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사한 소대장과 친분이 있던 제4소대장은 슬퍼하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대신하여 울타리를 돌면서 병사들에게 초소를 잡아주고 대응 요령을 꼼꼼히 지시해 주었다. 임무가 끝나자 잠이 쏟아졌다. 베트콩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 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