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순신장군의 거북선 제작비화
일찌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거북선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의 얘기다. 율곡선생의 소개로 충무공께서 구봉선생을 찾아갔다. 마침 구봉선생은 외출 중이었으나 하인의 안내로 사랑에서 구봉선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랑방의 아랫목에는 훌륭한 병풍이 한 폭 펼쳐져 있었는데 그 속의 그림이 한 마리 큰 학(鶴)이었는지라 그 앉아 있는 모습이 평소에 상상하던 거북선의 모습과 흡사하여 그만 자신도 모르게 병풍인 줄도 잊고 몇 개의 구멍을 뚫고 말았다. 그러자 이내 구봉선생이 귀가하였다. 하인들에게「손님은 오셨느냐?」하시니, 하인이 「큰일 났습니다. 그 아끼시는 병풍에 구멍을 내셨습니다. 」한다. 그런데 구봉선생께서는 뜻밖에 「쓸곳에 쓰인 것이다. 걱정할 것 없느니라」하고 사랑문을 열며 충무공과는 수인사도 없이 「어디 몇 구멍이나 뚫었는가 보자」하신다. 처음대하는 이충무공은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 겸 인사를 드리니 그제야 정색을 하고 바로 앉아 하는 말이 「 이 네 구멍만 갖고는 전후 좌우로 밖에 더 가겠소? 잠수를 하고 부상을 하자면 적어도 다섯 구멍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나머지 하나는 내가 뚫어줄 수밖에 없겠군」라고 하셨다 한다.
이에 충무공이 크게 놀라 조심히 묻기를「당나라의 이적(李勣)장군이라면 몇 구멍이나 뚫겠습니까?」물으니 <8 구멍은 낼 것일세> 하고, 또다시 「제갈공명(諸葛孔明)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하니 <24 구멍은 내겠지> 하신다. 그래 또다시 묻기를 「원래 완전하게 만들려면 몇 구멍이 되겠습니까?」하고 정중하게 물으니 웃으며 조용히 하는 말이 <48 구멍이 전부일세>하셨다 한다.
이것으로도 구봉선생의 계제(계제)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공명 하면 중국의 삼국시대 때 유비를 도와 천하를 횡행할 때 신출귀몰한 용병과 작전으로 조조의 간을 서늘케 한 대도인(大道人)인데 그도 크게 미치니 못한 것이 아닌가? 충무공은 생각하기에 당나라의 이적 장군이나 제갈공명마저도 아득히 미치지 못할 분이라면 도대체 이 어른은 어떠한 분일까? 하기는 율곡선생(충무공과는 친척간)의 소개에서도 가이 짐작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하셨지 않은가? 이제야 진정 훌륭한 스승을 뵙게 되었구나 싶었으리라.
그는 그날 밤늦도록 정치, 경제, 군사 등에 관해서 광범한 가르침을 받고 돌아왔으며, 그후 구봉선생의 제자로 입문하여 훗날의 국난에 대비하는 많은 수련을 쌓았다. 그날밤 구봉선생은 충무공에게 두수의 글을 주셨는데, 장군은 임진난 당시 왜적의 섬멸전을 펼때 신묘한 전략을 세우는데 아주 적절한 글이었으니 다음과 같다.
달밝은 밤에 기러기 높이 나니
선우는 밤에 도망치리라
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독룡이 숨어 있는 곳의 물은 편벽되게 맑고
산에서 나무 찍는 소리가 ‘정 정’ 울리니 산은 다시 그윽하다
毒龍潛處水偏淸
伐木丁丁山更幽
일찌기 고청 서기(徐起)는 그의 문하생들에게 항상 말하기를 「너희들이 제갈공명을 알고자 한다면 구봉 송익필 선생을 보면 될 것이다. 나는 제갈공명이 구봉선생과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기록이 있다. 구봉선생은 서얼로 태어나 한평생 방랑 생활을 하시면서 많은 시를 지어 남겼으며 김시습, 남효온과 더불어 산림삼걸(山林三傑)로 불리운다. 그의 시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낙화가 펄펄 날리어 시냇물이 붉은데
백조는 쌍쌍이 비단강산을 날으네
취객이 무심코 도사를 찾아갔더니
작은 배 바람에 떠있을 뿐이구나
천리를 헤메는 육척의 이내몸
십년동안 서울의 봄구경 잊었구나
어제 취한 그 꿈속같은 내고향
창밖의 청산이 내 벗인가 하노라
선생은 65세때에 면천의 김진려의 집에서 8월8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제자로는 김장생(金長生), 박엽(朴燁), 정엽(鄭曄), 서성(徐 ), 정홍명(鄭弘溟), 서기(徐起), 김반 등 많은 문인들이 있으며 우계 성혼(牛溪 成渾)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도 송구봉선생을 외우(畏友)로 하였다 한다. 선생의 구봉집은 뒷날 제자들이 흩어진 시문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무튼 이순신 장군이 나한 텐 사백(師伯: 사부의 사형을 일컫는 말)이 셨다니, 현생에선 사형 이란 단어를 개인적으로 쓴다만.ᆢㄷㄷ 임란때는 당시 내가 나이가 어려 피난 가던 기록이 있네.
그 임진왜란 의 원흉 에도막부 를 물리치도록 일본에 환생 되더라도! 네 조국을 위해 바꿔라 할수 있겠습니까? 친일파 소리 들어가며?ㅋㅋ
이렇게 다가스기 신사쿠 로 태어나서 잠재 기억은 왜놈? 에도막부 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았는지ᆢ 아리따운 게이샤 오이란 들을 무참히 임진왜란 왜놈들 처럼 괴롭힌 ᆢ ㅠ.ㅠ 악을 악으로 씻으려 하지 마라! 지금 와서 설명 을 하고 싶지만 기준이 어디 까지 일진 개인적으로 알아서 깨닫게 되길 바란다.
전생들 中 박엽 이었던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인간들로서 남기는 기록은 사실 모두 부정확한 소산 이지만, 이렇게 뭘 알릴 수도 있다는 게, 환생의 도에 힌트를 얻길ᆢ 인간은 전생들의 기억을 대부분 하늘의 뜻 이 없으면, 대부분 지우고 태어나서 하던데로 업보데로 호기심을 가지고 사고도 치고 깨닫게도 된다.
인생의 목표는 욕망의 소산 만으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정도ᆢ
어릴적 임진왜란 을 힘들게 겪은 트라우마가 다가스기 신사쿠 가 되서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게 된 기어를 하고, 왜군들처럼 겁탈급으로 게이샤<예능인>나 오이란<고급 유녀> 들 괴롭힌 것이라는 걸 눈치체고 있다만.ᆢ아무튼 이런 나를 아직도 드라마 속 또는 내 얼굴을 두고, 스ㄱ이 하며 좋아하는 여성들도 많고, 일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날 좋아요버튼 만 최소 십만개 라는ᆢ
사실 나는 내 전생만 말해도 일본여성 수십명이 나하고 살겠다고 할 팔자지 만, 참고 있다.
ㅋㄷㅋㄷ 수십ㅇ대 버는 돈버는 법 알면서도 절제하고 있다. 어떨때는 회피하고 있다.
내가 어느정도 변강쇠 라서 환생할수 밖에 없던 이유도 추후 공개를 할 수도 안할수도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