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자 출신 마이클 브린의 저서 ((한국, 한국인(The new Koreans))에서 발췌.
한국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과 특히 자국 정부에 이 현기증 나는 사태를 보고해야 하는 외교관들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박근혜가 실제로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지극히 간단한 질문이지만 그 답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리송하다.
문제의 TV보도에 이어서 반 박근혜 시위가 시작되자 외국언론은 즉시 한국 대통령의 몰락이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보도했다.
이는 특히 박근혜가 친구로 하여금 삼성을 비롯한 재벌에 압력을 가하고 기밀사항인 대통령 연설원고를 편집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보안규정을
위반했다는 검찰의 발표와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가 미국처럼 법에 기초했었다면 조사과정에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며
예를 들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조사하는데 2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까지 임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급속한 몰락은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법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당사자들(국회,검찰,법원)로 하여금 그녀의 제거를 승인하도록 부추긴
무언가가 몰락을 촉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민이 분노헀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쟁점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특정한 임계질량에 이르면 앞으로 뛰쳐 나와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수로 변모한다. 한국인은 이 야수를 민심이라고 부른다. 이 야수는 집단적 영혼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국회 탄핵 추진, 검찰수사 또는 세무조사같은 의사 결정은 일정한 규모에 이른 거리시위, 온라인 댔글, 신문기사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표현되는
국민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박근혜에게 무언가 잘못이 없다는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탄핵됐을 때 아무 것도 확실하게 입증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1백일의 특검수사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한술 더 떠 검찰은 박근혜의 유죄 가능성을 높히기 위해서 그녀와 친구인 최순실을 일종의 부부와 같은
경제공동체로 간주할 수 있다는 새로운 법적 개념을 제시했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이 이익보면 나머지 사람도 이익을 보고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러면
다른 사람도 유죄라는 것이다.
박근혜 재판이 시작된 뒤에 검찰의 한 가지 실패는 법원이 모든 일의 발단이었던 태블릿 PC 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태블릿 PC의 주인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태블릿PC의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인은 구속됐고 정작 대중의 공공의 정서는
박대통령이 감옥에 가든 어떻게 되든 아무런 관심도 없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 정서는 이미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한민국 국민은 흥분하면 법이고 나발이고 없이 일부터 저질러 놓고 결과의 옳고 그름에는 관심 1도 없는야수( 개돼지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