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펠릭스 트리니다드 vs 버나드 홉킨스: http://www.ilbe.com/10692855893
세르히오 마르티네스는 1975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7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불쌍한 일이었다.
후안 페론 정권 이후의 아르헨티나는 경제실패의 교과서였다. 다른나라 군사정권들이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와중에도 아르헨티나는 군사정권이 경제를 말아먹은 몇 안되는 나라들 중 하나다. 민정 이양 이후에도 경제를 말아먹었다.
정책과 경제의 연관성에 대해 속성으로 배우고 싶은 게이들은 아르헨티나 역사를 공부하면 된다. 아르헨티나는 정책을 시행하는 족족 실패를 거둔 폭망의 자료실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경제난을 지금까지 총 번 겪었다. 로드리가소로 알려진 소득주도 경제성장이 폭망을 거둔 1975년대(내가 과거에 쓴 글 참조해라 http://www.ilbe.com/10559798818), 그럼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최저임금을 계속 올리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한 1983년의 아우스트랄(페소를 대신할 새 화폐) 시대.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지니까 결국 아우스트랄을 폐지했고 90년대부터는 아예 페소와 미국 달러를 1대1로 바꿔주는 고정환율을 도입했는데 이때에도 경제가 폭망했다. 그러다가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싸대구를 후리는 대공황을 겪었고 그 영향으로 다시 반미주의가 고개를 쳐들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좌파정권이 들어서자 2007년 이번에는 경기 침체 현상을 겪었고 페르난데스 정부는 2011년에는 외화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법을 도입했다. 그러다가 지금 겨우 시장주의자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취임하면서 자유주의 경제로 회귀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특징은 최저임금을 마구 올리는 실험을 계속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40년 이상이나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금수저는 플래티넘 수저가 되고 똥수저는 그냥 뒈지는 경제구조였던 것이다. 베네수엘라와의 차이라면 아르헨티나는 적어도 수입은 자유롭게 했고 기업 내부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빈부격차는 심해도 식량난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별명은 마라비야(Maravilla = 기적)
암튼 마르티네스가 태어났을 때, 아르헨티나는 로드리가소라는 희대의 좆망정책 때문에 지독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빈민가에서 성장한 마르티네스는 10대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노가다로 일하는 틈틈히 자전거 사이클링 선수를 지망했는데 결국 사이클링 선수에의 꿈이 무너지자 복싱 한 우물을 파기로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의 인플레이션이 너무나 살인적이었고 가혹한 물가상승률은 아무리 일해도 극빈층의 소득을 말려버리기 때문에 마르티네스는 결국 스페인으로 이민 갈 것을 결심했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물가가 치솟으면 결국 저소득층들만 뒈지는 거다)
스페인에서의 삶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프로복서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이클링을 통해 가져진 풋워크로 상대를 농락하는 스타일을 확립한 마르티네스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그의 별명은 마라비야. 영어로 번역하면 (마빈 헤글러의 별명인) 마벨러스와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멕시코의 복싱영웅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의 아들 차베스 주니어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그는 세계적인 복싱 스타로 발돋움했다.
마르티네스는 스페인에서 살다가 복서로 성공한 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랜 타향살이에 그는 지쳐있었다. 그는 고국에 금의환향하고 싶었다.
그의 미국인 매니저들은 아르헨티나 금의환향을 만류했다. 현지 언론이 계속 따라다니는 환경에서는 훈련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활고 때문에 데뷔를 늦게 했던 마르티네스는 차베스 주니어에게 이기고 비로소 상품가치가 치솟았을 때 이미 30대 후반이었다. 그래서 마르티네스의 매니저들은 되도록 거액의 파이트머니가 걸린 시합을 골라서 마르티네스가 연간 치르는 시합 수를 제한하고 싶어했다. 그러자면 미국에 남아서 이름이 있는 선수와 대결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마르티네스의 뜻은 굳었다. 그는 자신이 스페인으로 이민갈 때 스타가 되어 고국에 돌아오는 것만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뜻을 따라 마르티네스의 팀은 아르헨티나에서의 매치를 준비하게 된다.
마르티네스는 약한 상대를 고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영국 선수로 해달라."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는 1976년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군사정권도 경제 정책에 실패하여 계속 물가가 치솟자 인기가 운지하게 되었다. 불안을 느낀 군사정권의 지도자 레오폴도 갈티에리(사진) 장군은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민족주의에 호소하기로 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인근에는 영국령 포클랜드 섬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것을 말비나스 섬이라 불렀다. 상황은 독도/타케시마 논쟁과 비슷했다. 아르헨티나는 영국에게 제국주의 시절에 강탈해간 영토이니 그만 돌려달라고 1973년부터 요구했고 UN도 중재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영국은 '실질적 지배'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모른척으로 대응해왔다.
1982년 갈티에리 정권은 말비나스 섬을 수복하겠다고 선언하며 군대를 보내어 포클랜드를 점령한다. 
갈티에리가 이렇게 성급하게 군사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영국이 보복에 나서기 힘들다는 환경을 지나치게 낙관했기 때문이다.
포클랜드는 남미대륙 남쪽에 짱박혀 있어서 영국군이 굳이 그 먼 바다를 건너 포클랜드까지 찾아오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포클랜드를 지키던 병력은 수십명에 불과했다. 문재인이었다면 언론 통제하고 그런 섬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척 했겠지.
하지만 갈티에리의 오판은... 당시 영국의 지도자는 마거렛 대처 수상이었다는 점이다.
빡친 대처는 우선 영국의 동맹세력을 규합했다. 이 중에는 대처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으나 대처에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카우보이'로 밖에 보이지 않던 레이건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포클랜드 사태 때에는 레이건이 대처를 잘 도왔다.
레이건은 대처 이상으로 ㅂㄷㅂㄷ하면서 "아르헨티나는 국가가 아니라 테러집단이다!"고 발표하기까지 한다.
그 다음에는 뭐 게이들이 아는 그대로이다. 영국해군이 출동해서 약 2달만에 아르헨티나를 개발살내고 포클랜드 섬을 수복한다.
정부 예산을 삭감하느라 일시적으로 실업률 상승이라는 악재에 고생하던 대처 내각은 이 승리를 통해 정치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고 1983년 대처의 보수당은 선거에서도 승리한다.
반면 갈티에리 정권은 몰락했다.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서 지지층이 이탈한 갈티에리는 결국 민정이양을 약속하게 된다.
포클랜드에는 이렇게 대처의 흉상이 있다.
아무리 갈티에리가 븅신이라 해도 영국에게 쳐발리고 나니 아르헨티나인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개돼지 짓으로는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 못지않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때부터 영국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게 된 것이다.
남미는 원래 럭비 안하는 동네인데 아르헨티나만은 럭비 강국이다. 그리고 잉글랜드만 만나면 거칠어진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마르티네스는 영국 선수와 대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금의환향
마르티네스의 상대는 영국의 마틴 머리로 정해졌다.
아주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으나 피지컬이 강하고 무패의 전적을 자랑했다.
무패의 유망주를 꺾음으로서 아르헨티나 관중들의 열광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르헨티나에 가니까 미국인 매니저들이 염려하던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선 훈련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현지 언론은 계속 마르티네스를 쫓아다니며 취재를 요청했고 마르티네스는 거절하지 않았다.
마틴 머리가 조용히 아르헨티나에 입국하여 훈련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또 하나 문제는 마르티네스의 무릎이었다.
차베스 주니어와의 시합에서 무릎 인대를 다친 그는 인대의 완전회복을 위해 1년이나 허비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풋워크를 과신하던 그는 몇개월만에 마틴 머리와의 시합을 추진한 것이었다.
마르티네스의 시합을 보려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4만명이나 되는 관중들이 운집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인프라가 미국보다 훨씬 부실했다.
4만명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서 축구장에서 시합을 개최했는데 야외경기장이면서도 링은 방수 시설이 부실했다.
하필 그날 비가 내리는 바람에 링 안에 비가 들어치는 난감한 사태가 벌어진다.
게다가 마틴 머리는 만만치 않았다. 마르티네스에게서 다운까지 빼앗았다.
마르티네스는 승부를 서두르다가 마틴 머리의 머리를 쳤다가 손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고국에서 패배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던 마르티네스는 초인적인 의지로 펀치를 날렸다. 마르티네스는 후반부에 맹공을 펼친 덕분에 판정승을 거두엇다. 다만 놀라운 투지였으나 그 대가는 컸다. 마르티네스의 밥줄이라 할 수 있는 왼주먹 손뼈는 복합골절로 판명났고 완치에 1년 이상이 걸리게 되었다. 게다가 빗물로 미끄러운 링에서 다운될 때 무릎 인대까지 다쳤다. 최악의 결과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커리어를 잘 관리하면 훨씬 오랜 시간동안 챔피언으로 군림하며 게나디 골로프킨과의 시합도 바라볼 수 있었는데 너무 금의환향에 서두른 나머지 자신의 선수생명을 크게 갉아먹고 말았다.
하지만 적어도 마틴 머리와의 대결은 아르헨티나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건 명승부였다. 특히 부러진 손을 가지고 열심히 펀치를 날리는 모습은 마르티네스의 투지를 웅변했다. 그 시합 풀버전 동영상 무료로 볼 수 잇다.
<뒷이야기>
마르티네스의 선수생명은 심각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는 미겔 코토(푸에르토리코)와의 빅매치에 나섰으나 무릎 인대는 완치되지 않았다. 코토에게 참패를 당하고 그는 결국 은퇴를 선택하게 된다. 은퇴 후, 아르헨티나와 캘리포니아를 오가면서 영화배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릎 부상은 아직까지도 그를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마틴 머리는 미들급의 다크호스로 이름을 올렸으나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게나디 골로프킨에게 KO당했다.
오바마는 2012년 포클랜드 섬을 말비나스도 아니고 '맬다이브즈(몰디브 제도)' 섬이라 부르는 엄청난 외교 결례를 범했다.
그는 나중에 "말비나스인지 맬다이브즈인지 어쩌라고(whatever)"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는 영국의 포클랜드 영유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며 오바마의 대통령직 중에서 최악의 외교 참사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