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김사복 힌츠페터 계훈제 사진은 75년 10월 3일 포천약사봉이라고
적어도 http://ssialsori.net/bbs/board.php?bo_table=0104
이곳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있어고 난 그걸 전달한거임.
그런데 이상한점이 몇가지있다.
장준하가 추락사한 그장소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것도 80여명이서
위 사진에 보면 계훈제, 백기완, 김형국(동교동비서) 가 보인다.
동교동 비서였던 김형국은 장준하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김대중 선생님이 저더러 장례를 다 치를 때까지 지키라 해서 사흘 동안 장준하 선생님 댁에 있었어요. 함석헌·계훈제·백기완 선생님이 함께 계셨지요. 장례를 치르고 나서 실족사했다는 약사봉 계곡에 가봤어요. 거기는 산토끼도 다닐 수 없는 험한 곳인데 뭐하러 거기를 가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삼웅
1975년 장준하 선생이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 당했을 때 여러 차례 진상규명을 위해 그 곳에 갔다. 그해 11월호 '씨알의 소리'에 '약사봉 계곡의 진혼곡'이라는 의문사 내용의 글을 썼다가 수사기관에 불려간 적도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05217
계훈제는 9월17일 추모비 세우러 약사봉에 올랐다가
10월 3일 다시 함석헌과 약사봉에 올랐을까?
만일 9월17일 함석헌이 계훈제와 같이 등반했다면
왜 저사진속엔 없는걸까?
그리고 약사봉에 간사람들은 갔다온티를 철철냄.
위 사진속 사람들의 매우 엄숙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그리고 1975년 10월 4일쯤에 장준하 49제가 있었고 함석헌 김대중이 참석했다고 한다.
10월3일 포천 약사봉에 올랐다가 다음날 49제에 참석하기엔
스케쥴이 너무 빡빡한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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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사후 1주일 뒤에 호림산악회 회원 및 지인들이 사고 현장에서 추모등반 행사를 가졌다.
사후 1개월 뒤인 9월 17일에는 후학 및 민주화운동 동지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고현장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A4%80%ED%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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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사진은 추모등반행사였을까?
날짜가 대략 8월 23일인데 등반하기엔 너무덥고 옷차림이 8월 날씨와는 차이가 있어보인다.
함석헌 계훈제 75년 8월 모습
함석헌 모발에 윤기가 흐르고 숱도 풍성한게특징이다.
아래사진은 1976년 3월 함석헌사진인데
역시 모발도 굵고 윤기가 있다 수염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아래 83년 사진을 보면
모발이 약해지고 숱도 적어졌으며 윤기도 사라졌고
수염도 푸석해 졌다는걸 알수있다.
굳은표정 카메라를 피하는 시선 왜?
함석헌과 김사복이 함께찍은 사진을 위 사진들과 비교해보면
함석헌,힌츠페터,김사복외 20여명의 사진은
적어도 74년~75년 정도에 찍은 사진임을
짐작해 볼수가 있음
결론
함석헌과 계훈제의 모발상태로 보면 대략 75년도가 맞음.
함석헌이 9월17일 이후에 약사봉에 갔다면 추모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거임 그러나 그런사진은 없음.
따라서 위사진의 장소가 약사봉이 맞다면 장준하 사망 이전일 가능성이 높음.
난 1974년 5월~1975년 6월경 사이의 사진이라고 생각함.
조선호텔 직원들과 야유회를 가장한 접선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