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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임을 밝힙니다.





 계획 8





 장례식은 연이어 열렸다가 끝났다. 지효, 나연, 다현, 그 다음 사나를 마지막으로 장례식이 끝났고 나는 모든 장례식에 다 참석했다.


장례식엔 기자들도 왔고, 그들은 나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써 대했다. 티비에서 비춘 나의 모습은 음울하고, 비통하고, 슬픔에 흐느적거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사람들이 그 사건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비극, 충격적, 끔찍 등의 얘기였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나에겐 동기조차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인터뷰에선 지효의 직장 동료는 나연과 지효가 바람을 피운지 꽤 오래 됐다는 주장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는 없었고, 기자 역시 묻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날 밤 술집에서 다현이 무척이나 난폭했다고 주장했다.


무고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도박빚에 관한 기사로 인해 인생이 산산조각난 시한폭탄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나와 정연은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서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더디게 2월이 흘러갔다.





 사나의 집주인으로부터 아파트를 치우라는 재촉을 받았다.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다가 2월 마지막 날에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상자와 테이프 등을 구매해서 집을 정리하러 갔다.


 옷과 세면도구, 주방용품, 식료품등을 모두 상자에 그대로 던져넣었다. 다음엔 쓰레기들을 치우고, 침대의 시트 등을 정리하고 이불, 배게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사나가 쓰던 수납가구를 정리해야 했다. 나는 내용물을 살펴보지 않고 곧바로 가져갈 생각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을 바꾸고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수납 가구의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여분의 침구와 수건들이 단정하게 접혀서 쌓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부모님의 것이었다.


그 외에 사냥용 라이플의 총알과, 그리고 커다란 벌목도가 들어있었다. 사나가 등산을 좋아했었나 생각하며 벌목도 밑을 살펴보니 낡은 커다란 책이 있었다.


책의 제목은 [농장 경영 A부터 Z].


 표지를 넘기자 연필로 쓴 아버지의 이름이 첫번째로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사나가 자신의 이름을 예쁘게 써놓았다. 그저 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시시한 물건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저 약속한 농장을 대신하는 슬픈 물건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으나, 책을 넘기면서 나는 사나가 이 유산을 소중히 여겼음을 알게됐다.


책에는 밑줄이 빽뺵히 그어져 있었고 여백에는 여러가지의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내가 예전에 사나에게 농장 경영에 대해 알아야 할것이라며 모른다고 쏘아붙였던 것들이었다.


그녀는 열심히 농장을 갖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책을 앞으로 넘겨서 출간일을 보니 50년도 넘은 책이었다. 농약, 제초제 등의 법들은 언급조차도 없었다. 책에 아주 길게 쓰여있는 정부 법령은 이미 몇 차례나 바뀐 뒤였다.


그녀는 그렇게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책을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 뒤쪽에는 농장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헛간, 농기구 등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표시해두었고 적당히 수치를 표시해둔, 설계도같은 느낌이었다.


그 커다란 종이의 모서리에는 클립으로 옛날 우리 집 사진이 있었다. 아마 집이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둔 사진이었을 것이다.


 그 사진을 내려다 보며 내가 받은 느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긴 어려웠으나, 처음 생각된 감정은 아마 후회가 아니였을까 싶다. 이 서랍장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빠르게 차로 옮겼어야 했다. 나는 사나의 아파트를 최대한 빠르고 능률적으로 치우려고 했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라도 슬픔과 후회라는 작은 시한폭탄이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결국 나의 호기심에 그 계획은 무너졌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꺽꺽거리며 흐느꼈다.



 비탄. 아마 이 말이 가장 내 느낌을 설명하기에 적당할 것이다. 크게 소리내어 헐떡거렸다. 숨을 쉬기 위해서 크게 소리를 내서 숨을쉬며 울었다.


나는 내가 한 일들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총을 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붙잡혀서 감옥에 갔을 것이다.


이 말은 그 사건이 끝난 후, 정연과 얘기를 나누며 정연이 나에게 위로하며 해준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꼭 믿었다.


그와 동시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진정으로 바라기도 했다. 그녀가 총에 맞으며 겪었을 고통, 그녀가 세운 농장을 다시 세울 계획, 메모, 필기, 지도 등을 생각했다.


결국 사나가 나를 구하려고 온 것을, 가족인 나를 구하려고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하고, 총을 쏜 것을 생각했다. 그 모두가 비탄으로 겹쳐져왔다.


 그녀는 그저 순수했던 어린아이었다. 그저 아무리 나나 정연이 우연한 사고였고, 정당방위였고, 선택지가 없었다고 얘기한다 하더라도 사나를 쏜건 나였다.


나는 살인자였고, 이 사실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의 범죄며 나의 죄였고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그렇게 십 오분정도를 그대로 앉아서 흐느끼며 울었다.









 사나의 집을 치운 상자들은 차에 그대로 두었다. 차에서 내리면 버릴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차에서 내리기 싫었다.


그렇게 나의 감정에 비가 충분히 내린 후,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식탁에 종이 몇 장이 놓여있었다. 잡지의 기사를 복사한 것이었다.


 첫번째 것의 내용은 이인조의 악당들이 여섯명을 살해하고 백만장자의 상속녀를 납치하여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몸값으로 표시가 되지 않은 지폐 480만달러를 요구했다.


 두번째 것의 내용은 FBI가 상속녀의 사체를 확인했으며, 백만장자가 딸과 몸값을 모두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상속녀의 사망 추정시각은 부검 결과 납치된지 24시간 이내일 것으로 추정됐으며 백만장자는 납치범으로부터 딸을 찾고자 몸값을 이미 지불했던 것이다.


 마지막 것의 내용은 FBI가 납치범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FBI는 두 용의자를 전국에 수배했으며 둘의 화려한 전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첫 기사로 돌아가서 읽은 뒤, 두번째, 세번째의 기사도 마저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둘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정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찾은거야?"


 정연은 답하지 않고 씩 웃으며 얘기했다.


 "이제 우리 돈이겠지?"


 나도 정연을 향해 얕게 미소지었다. 정연이 물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발견했다는 그 조종사 있잖아. 두 사람 중 한 명이었어?"


 나는 마지막 기사의 사진을 한 번 내려다 보았다.


 "이걸론 모르겠어. 얼굴이 좀 훼손돼 있는 상태였거든. 눈도 없었고...'


 "확실히 우리 돈 맞아."


 정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비행기가 발견됐을 때 부터 옛날 신문들을 찾아봤어. 혹시나 표시가 됐다거나, 못 쓰는 쓸모없는 돈이면 어떡하나 하고말야."


 그 말을 들으니 순간 속이 쓰라렸다. 만약 그렇다면 종이 조각이 가득한 그 가방 하나때문에 그 모든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려 했다.


그 모든 노력과 끔찍한 선택이 이렇게 물거품이 되는구나. 하지만 범인은 표시가 되지 않은 돈을 요구했다.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정연에게 선물이 하고 싶었다. 그 동안 정연이 없었다면 아마 몇 번이고 흔들렸고, 진작에 감옥에 가있을 나에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나에게 도움을 정연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가지의 큰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사실 이 두 개는 내가 돈을 발견하기 전에는 살 수 없던 것들이었다.


 하나는 하와이에 있는 별장이었다. 2월 말쯤에 정부에서 마약 단속으로 압류한 재산을 공매한다는 신문 광고가 있었다. 온갖 물건이 매물로 나왔다.


시가의 10%도 안 되는 값에 살 수 있었고, 돌아오는 토요일에 경매가 열릴 예정이었다. 시가는 33만 5천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경매 시작가는 1만 5천이었고, 나의 통장에는 3만 5천 조금 넘게 있었다. 사실 이 돈은 우리가 새 출발을 하기위해 모아놓은 자금이었다.


꽤나 충동적으로 3만정도는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악에 상황이 되어서 돈을 태워야 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이 별장을 팔면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똑똑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경매는 난생 처음 해봤는데 별장 입찰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가격이 점점 올라가서 2만대를 지나고, 3만이 가까워지자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신경이 곤두서서 3만 1천까지 내가 가격을 올렸을 때, 모두들 갑자기 물러섰고 나는 3만 1천에 별장을 낙찰받았다.


 서류철을 든 여자가 와서 다음주까지 명함에 있는 주소로 낙찰가 전액을 수표송금하고 그 영수증은 열흘 뒤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송금한 주소지로 직접 방문해서 별장 권리증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마음을 정리하려 애썼다. 나는 저축의 거의 대부분을 방금 썼다. 엄청나게 어리석은 일 같았으나, 침대 밑에 숨겨놓은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싯가에 1/10에 달하는 가격으로 별장을 하나 얻지 않았는가. 


 두번째 선물은 그랜드피아노였다. 정연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딱히 피아노를 잘 치는건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왠지 그랜드피아노는 부와 지위의 굳건한 상징같아보였다. 피아노값은 2천 4백이었다. 마치 예금잔액에 딱 맞춘듯 했다.


 정연이 선물을 받고 너무나 크게 감동받아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크게 기뻐했다.




 그로부터 이주일이 조금 지나기 전 어느 날, 신문에서 기사를 하나 읽게 됐다.


아무의 의심 없이 수백만 달러를 갈취하는 엄청난 사기극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읽게됐다.


 지방 신문에 가짜광고가 실리고, 정부의 마약단속으로 압류한 물건을 공매한다는 광고다. 정부가 실시하는 공매이니 의심하지 않은 채, 실물도 공개되지 않은 물건에 입찰을 한다.


일부러 사람들 속에 공범을 섞어놓고 경매가격을 높이고, 피해자들은 싯가에 10% 가격에 물건을 샀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그 돈을 수표로 지불한 후 그 물건은 그저 카탈로그에 실린 사진일 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나는 너무나도 침착하게 그 기사를 읽었다. 내 수표는 전날, 지불이 완료되었다. 은행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잔액은 1,787 달러가 남아있었다.


나는 저축의 전부를 날렸다.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조용히 지나가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겪은 재앙 중에서 가장 큰 재앙같았다. 그런데 이 커다란 재앙이 그저 이 작은 신문에 기사로 조그마한 크기로 실리고 그저 지나간다는 사실이 더욱 더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 있는 돈이 있는 한, 그저 3만달러쯤은 사소한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냥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가 훔쳐갔다고 생각했다. 밖에는 나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가 저지른 일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두려움도 찾아왔다. 범죄의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내가 쳐놓은 안전망, 문제가 일어날듯 하면 돈을 태우겠다는 그 멍청한 생각은 이미 저 멀리 휩쓸려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제 우리는 절대로 이 돈을 포기할 수 없다. 이 돈 없이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함정에 빠졌고 이 돈의 절대적인 필요성이 요구하는대로 행동할 것이다. 욕구에 따른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찢어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우리가 안전하게 멀리 사라지기 전에 정연에게 들키기 싫었다.









 시간이 흘러 3월 중순이 되었다. 보안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을 FBI 요원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내가 한 일과는 아무 상관 없을거라고, 만약 FBI가 나를 체포하려면 날 바로 잡으러 왔겠지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분이 잭이라고, FBI 요원이셔."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자, 보안관이 얘기했다.


 "작년 말쯤이었지. 그 때 그 산 근처에서 사나가 그랬었지? 비행기 엔진소리를 들었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기좀 잭 요원에게 들은대로 말좀 해줄 수 있겠어?"


 피할 방법은 없었고, 거짓말을 하거나 질문을 빠져나갈 방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부탁한대로 했다.


 "눈이 오고있었어요. 그런데 확실하진 않아요. 그냥 쿨럭쿨럭 엔진소리가 들렸는데 충돌소리도, 엔진소리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들은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냥 스노모빌이었는지도 몰라요."


 잭 요원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받아적은 뒤 나를 쳐다봤다. 내 심장소리는 미친듯이 쿵쾅거렸고, 관자놀이에서도 맥박이 뛰는게 느껴졌다.


 "그 곳까지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 둘은 누가 먼저 얘기할지, 어디까지 얘기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잠시 후 잭이 보안관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FBI에서 비행기를 찾고있어."


 "물론 이건 다 기밀입니다."


 잭이 말했다.


 "에이. 모모도 그런건 충분히 알고 있을거요."


 "작년 7월쯤에 은행의 현금수송차량이 도난당했습니다. 우리는 내부 공범을 의심했으나, 수사에 진전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 12월에 자동차 운전사가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25년을 받았는데 우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 수송차량건에 대해 증언을 할테니 감형을 부탁하더군요."


 "공범을 팔은건가요?"


 "네 뭐 그렇게 됐죠. 알고보니 공범들이 제 몫을 주지도 않고 다 도망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공범들 신원을 확인했고 형량을 줄여줬습니다."


 "그래서 다 검거를 완료했나요?"


 "아뇨. 그러고 추적을 하던 도중에 용의자 한 명이 경비행기로 이륙한다고 제보가 들어와서 서둘러서 쫒았는데 이미 늦었죠,"


 요원은 그 후에 비행기가 원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일. 그래서 중간에 추락을 했을거라는 가능성을 두고 모든 항로를 따라서 마을을 수색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비행기에 수백만달러가 있다고 얘기했고, 나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비행기가 내려앉는걸 보지는 않았어요. 그냥 엔진 소리만 들었어요."


 두 사람은 날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까 제 말은, 거기서는 진짜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게 없을 가능성이 커서 말씀드리는거예요. 헛걸음 하실까봐."


 "확실하지 않다는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사하는거라... 부탁드리는겁니다."


 "사실 제가 보여드릴건 없어요.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었고 그냥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시면 똑같은걸 보실 수 있을거예요."


 "그래도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막상 도착하면 생각나는게 더 날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이 정 불편하면 내일도 괜찮아."


 보안관이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보안관은 나를 보면서 씩 웃었다.


 "내가 오는길에 커피 한 잔 살게요 모모양."


 내가 일어서서 나가려 할 때, 잭이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일은 기밀입니다. 혹시 언론에서 어떻게든 이 사건을 알게된다면 곤란하니까요."


 내가 답하기 전에 보안관이 끼어들었다.


 "언론은 무슨. 저 숲에 4백만 달러가 있다는 얘기가 새면 아주 난리가 날거요."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정연에게 잭과 보안관과 나눈 이야기를 했다. 정연은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연아 이건 추측이 아니고, FBI요원에게 직접 들은거라니까."


 "현금수송차량이라면 다른 지폐도 있어야 돼. 모두 100달러라는건 말이 안 돼."


 "아니 정연아 FBI요원이 직접 얘기해준거라니까?"


 "지금 이 돈들은 낡은 돈이야. 은행 돈이면 다 새돈이어야해."


 "그러면 FBI요원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거야?"


 정연이 갑자기 흥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배지같은거 보여줬어?"


 "그걸 왜 보여줘?"


 갑자기 정연은 일어서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조금 뒤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종이를 건냈다.


 "이 사람이지?"


 사진을 보니 그 때 읽었던 세 번째 기사의 사진이었다. 이인조 납치범. 정연은 그들 중 한명이 나머지를 찾으려고 하는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잭이라는 사람이 여기 이인조 중에 덩치 큰 사람이란 얘기지?"


 정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만난 잭은 조금 더 날씬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 수염을 그려보고, 살을 붙이니 왠지 닮았다.


 "맞는 것 같아."


 사진을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정연은 거봐 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되지?"


 "가면 안 돼."


 "왜?"


 "그 사람은 살인자야. 아마 비행기에 도착하자마자 너랑 보안관을 둘 다 쏠거야. 그래서 같이 가자고 하는거지. 목격자를 없애려고."


 "그럼 내가 안 가면 보안관은 죽는거네?"


 정연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입을 열었을 때 살짝 부끄러운듯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한테 나쁠거 없잖아. 돈과 연관된, 비행기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사라지는거야. 오히려 우리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주 못되고 미안한 생각이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떤 핑계로 내일 안 가지?"


 "내일 몇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아침 9시에 만나기로 했어."


 "그럼 잠깐 시간을 끌어. 내가 전화를 할게. 내가 아프다고 하면서 집으로 급하게 와야한다고 그래."


 










 다음 날, 잠시 아침에 도착했다가 핑계를 대고 일에서 빠져나온 후 그대로 출근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조금의 죄책감이 남아있었는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에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모모씨 되시죠?"


 "네 맞는데요."


 "아, 여기는 경찰서인데요 보안관님 일 때문에 연락을 드렸는데."


 "무슨일이죠?"


 "보안관님이 총에 맞았어요."


 "네?"


 내 목소리의 공포와 안타까움은 진짜였다. 놀란 것만 거짓이었다.


 "네 그래가지고 사망하셨거든요."


 "아니 어떻게... 말도 안 돼요. 오늘 아침에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네 그거때문에 연락드린건데요. 모모씨에게 여쭤볼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차량을 그쪽으로 보내드릴테니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단히 진술을 했다. 그들은 잭이라는 사람을 만났는지, 그 사람이 신분을 제대로 밝혔는지, 그리고 인상착의 등을 물어봤다.


잭이 타고있던 차량에 대해서도 간단히 물었다. 대충 파란색 세단이었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12월 말의 일부터 진술을 하게 됐다. 고장난 비행기 엔진소리를 들었고, 그 사실을 보안관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아마 잘못 들었을거라고도.


나는 진술하면서 전혀 의심받지도 않았고, 고문이나 심문도 없었다. 솔직히 그들은 나의 얘기에 별 관심도 없어보였다. 


 "혹시 무슨 일인지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나의 질문에 그들은 비행기를 찾고있던 그 잭이라는 남자가 보안관을 쏴 죽인 일, 그리고 보안관의 시체를 11시쯤 발견한 일.


그리고 그들이 확인한 바로는 7월달에 그러한 은행 현금 수송 차량 강도사건따위는 전혀 기록이 없다는 것들을 이야기해줬다.




 나는 진술을 끝난 뒤, 한 시간 가량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딱히 집에 가도 되냐고 물어본건 아니었지만,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쉬고있었다.


 "모모씨 계십니까? 집에 가셨나?"


 "네 저 여기있어요..."


 "시체 신원확인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시체요?"


 "괜찮으시다면 큰 도움이 될겁니다. 모모씨가 진술해주신 인상착의에 딱 들어맞는 시체가 나타났어요. 하지만 확인을 해야만합니다."


 "저 혹시 가기 전에 저 집에 전화좀 해도 될까요? 저 어디있는지만 얘기하려구요."


 "네 그러시죠."


 나는 집에 있던 정연에게 전화했다.


 "나 지금 경찰서에 있어."


 "무슨 일로?"


 "보안관님 일 때문에. 그 FBI 요원이 총으로 쐈어."


 "응 지금 티비에 나오고있어."


 "근데 그 FBI요원 시체가 발견됐대. 아마 경찰이 잡은것같아."


 "어머. 그거 진짜 완벽하다."


 "여기 지금 경찰서야."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


 "언제 집에 와?"


 "좀 걸릴 것 같은데."


 "모모야 나 너무 행복하고 안심 돼."


 "쉿."


 "오늘 밤 축하파티를 하는거야."


 세상을 다 가진듯 정연은 기뻐했다.


 "이제 끊어야 돼. 일단 집에 가서 다시 얘기하자."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목적지는 톨게이트였다. 아마 도망가려다가 잡힌듯 하다.


 노란 테이프를 통과해서 여러 경관들을 통과해 시체 옆으로 갔다. 시체는 틀림없이 잭이었다.


 "이 사람 맞나요?"


 "맞습니다."


 확인이 끝난 후, 경찰은 팔꿈치를 잡고 시체에서 몸을 돌리게 했다.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웃음을 멈추기 위해 집중을 해야만했다. 원인은 안도감에 있었다.


보안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잠식시켰고, 그 죽음이 가치있고 적절한 것이었고 나의 돈이 가득찬 보물을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댓가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돈가방을 가진 이후로 안전하다고 마음속까지 느꼈다. 완벽했다. 정연의 말대로 모든게 완벽했다. 돈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죽었다.


 돈은 우리의 것이었다.


 나는 몇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경찰이 돈 가방을 찾았는지 궁금했고, 왠지 돈에 대한 얘기를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수상해 보이지 않으려 그 근처에 적당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짙은 갈색 자동차가 도착했고, 여자 두 명이 나왔다. 왠지 모르게 보자마자 FBI요원인 것 같았다.


그 둘이 잭의 시체로 다가가서 웅크려 앉아있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내가 놓친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남겨놓은 단서가, 나의 유죄를 드러내는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밀려왔다.


 일분쯤 뒤 두 요원은 나를 인솔해 온 경찰과 짧게 얘기를 나눈 뒤, 나에게 다가왔다.


 "모모씨?"


 "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며 얘기했다.


 "제가 모몬데요."


 요원들은 재킷 안으로 손을 넣어 배지를 보였다. 마치 내가 체포될듯 불안해졌다.


 "저는 FBI에서 온 미나 요원입니다."


 "저는 쯔위라고 합니다."


 나는 배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