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글: 고대 바빌론의 여자다루는 법 https://www.ilbe.com/9752176928


고대 서양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 니들이 재밌어할만한 글을 올려줄까 한다.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은 기원전 2-3세기에 걸쳐서 일어났던 로마공화국과 카르타고간의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첫번째 대결이었던 1차 포에니 전쟁이야. 포에니(Poeni)란 말은 라틴어로 페니키아(Phoenicia)를 뜻하는 단어야. 현재 시리아지역에서 기원한 페니키아인의 일부가 카르타고지역으로 진출해 세운 도시국가 카르타고가 발전해서 카르타고제국이 되었거든. 그래서 로마인들은 이를 페니키아인과의 전쟁이라 칭한거지.


포에니 전쟁이 벌어진 기원전 264년경, 지중해는 이탈리아 반도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리스 세력을 복속시킨 로마공화국(Roman Republic)과 현재 튀니지의 해안가에 위치한 카르타고(Carthage)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시칠리섬 서부, 사디니아, 코르시카 스페인 남부를 장악한 해양대국 카르타고제국(Carthaginian Empire)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어.



264년경 지중해 세력도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를 장악한 육지전에 강한 신흥강국이었고, 카르타고는 이탈리아 반도 서쪽의 지중해를 장악한 해양강국이었지. 그래서 지금까지는 딱히 서로 전쟁을 할 일이 없었는데, 서로간의 확장세로 보았을 때 어찌보면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은 불가피한 전쟁이기도 했지.


 이 시점까지도 평화롭게 공존하던 두 국가가 왜 싸우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모든 사건의 첫번째 시발점은 어찌보면 엉뚱해. 시칠리 섬의 동부에 시라쿠사(Syracuse)라는 그리스도시국가가 있었는데 (지도의 초록색) 보통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인구가 많지 않아서 전쟁을 하거나 방어를 할때 용병을 고용하곤 했는데, 이탈리아반도의 7시, 캠파니아지방출신의 머머리타인(Mamertines)들을 고용했던게 결과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두 나라가 싸운 이유가 되었지.


시라쿠사왕은 이 머머리타인들을 고용했다 나중 쓸일이 없어져 어느날 갑자기 전부 해고해버리게돼. 그러자 갑자기 직업도 잃고 시라쿠사에서 쫒겨나 시칠리섬에서 방황하게된 머머리타인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난데없이 저 위에 잘 살고 있던 또다른 시칠리섬 동북부의 그리스도시국가였던 메사나(Messana)를 공격한거야. 무방비상태의 메사나는 갑작스러운 반도의 7시, 머머리타인들의 뒷통수 가격에 함락되고 머머리타인들은 메사나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은 성노예/아내로 만들어.

 

그러자 같은 그리스계통의 도시국가이기도 하고 자신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었던 시라쿠사의 왕 히에로 2세는 빡쳐서 머머리타인들의 메사나를 공격하기 시작하지. 애시당초 시라쿠사의 상대가 안되는 머머리타인들은 시칠리 섬 서부에 있었던 카르타고의 도시에 SOS를 보내게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카르타고는 군대를 보내서 시라쿠사의 공격을 막게돼. 그러자 시라쿠사는 공격을 포기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게 되어 머머리타인들은 목적을 달성하게 되지. 하지만... 군권을 장악한 카르타고인들은 메사나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고 그대로 자신들의 영향권 하에 두게 되지.


지중해의 7시지방에 통수를 맞은 반도의 7시 머머리타인들은 또다른 SOS를 이번엔 로마에 보내게 되지. 머머리타인들의 구조요구를 받은 로마공화정의 의원들(senates)은 이 사안에 대해서 격력한 토론을 하게 돼. 로마는 당시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중대사는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의원들의 토론끝에 나온 결론으로 결정하게 되어있었거든. 그래서 원조 통수인 머머리타인들의 메사나공격은 정당하지 않으므로 도와주면 안된다는 파와 그래도 카르타고의 세력확장을 이대로만 볼 수 없다는 파가 나뉘어 치열한 토론을 벌이게돼. 오랜 시간 끝, 결국 머머리타인을도 못됐지만 카르타고도 그냥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참전을 결정하게 되지.



로마의 시실리섬 정복도 


그래서 참전을 결정 후 메사나를 향해서 로마의 해군이 출전했어. 하지만 로마는 아무런 해전경험이 없던 나라야. 따라서 배를 만드는 기술도 카르타고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정도였지. 그래서 초반 해전에서 개박살이 나게 돼. 카르타고의 배는 기동력을 기본으로 유선형의 날카로운 선두를 가지고 있던 ㅆㅅㅌㅊ 기술력의 배였지. 이 배는 빠르게 회전해서 상대방 배의 옆구리를 날카로운찍어서 침몰시키는 전술로 많은 로마군인들을 하늘로 보내 노짱을 먼저 기다리게 만들었어.


보통 나라같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로마의 사전에 포기는 없었지. 비록 배를 카르타고의 배만큼 만들 수는 없었지만 로마 특유의 뛰어난 기술력과 응용력으로 Corvus라 불리는 다리를 장착한 배를 만들어내.



 

그래서 카르타고의 배가 근처로 오기만 하면 다리를 내려 지상전 최강 로마의 병사들이 카르타고의 배로 올라타서 해전을 지상전으로 바꾸어 버린거야. 그래서 단숨에 전세를 역전하게 되지. 어짜피 지상전에선 당시 지중해에 로마를 따라올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2차 포에니전쟁의 ㅆㅆㅆㅆㅆㅅㅌㅊ 카르타고장군 한니발이 나오기 전까지..) 로마인들이 Corvus를 구상해낸 순간 이미 결과는 결정난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지. 그래서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대로 시칠리섬을 휩쓸고 덤으로 코르시카와 사디니아까지 먹으며 카르타고의 무조건 항복으로 1차 포에니전쟁은 마무리가 돼. 


근데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전쟁때 근본 원인을 제공했던 시라쿠사도 로마에 먹힌걸로 나오지? 이때가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뛰쳐나오며 유레카를 외쳤던 일화로 유명한 고대그리스의 위대한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로마군인에게 살해당한 그 전쟁이기도 해. 사실 로마장군은 시라쿠사 정복 전 아르키메데스만은 꼭 살려주라고 부하군인들에게 당부했는데 결국 군인에게 살해당하고 말아. 그 이유는 이후 로마제국시대 역사가 플루타크(Plutarch)에 따르면 군인이 아르키메데스한테 로마의 승전장군인 마르켈루스(Marcellus)를 만나러 가라는 명령을 수학공식을 증명하는 중이라 거절했다고 죽였다는 설과 중요한 수학도구를 들고 항복하려고 하다가 그 수학도구가 무기인줄 착각한 군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다고 밝히고 있어. (널리 알려진 그림자 이야기는 아마 사실이 아닌듯.) 

이후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은 200여년이란 긴 시간이 흐르며 완전히 잊혀졌는데 그 당시 시실리에 관리로 파견되었던 로마의 유명한 달변가/의원/변호사인 시세로(Cicero)가 아르키메데스의 잊혀졌던 무덤을 찾아내며 다시 발견됐어. 아르키메데스의 무덤비석엔 수학자였던 업적을 기리는 원통과 구의 모양이 새겨져있었다고 해. 물론.. 그 이후로 완전히 잊혀져서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은 지금은 찾을 수 없지. 시세로가 찾아낸 것도 지금부터 2000년 전이거든.



이 전쟁에서 살해당한 시라쿠사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



잊혀졌던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을 찾아내는 시세로 - 1796 by Benjamin West


사실 가만히만 있었어도 괜찮았을텐데 시라쿠사는 이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편을 드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러서 멸망당하고 말지. 줄을 잘못선 자의 운명이랄까... 아마도 시라쿠사 입장에선 이탈리아 남부의 수많은 그리스도시가 로마에 함락되는 것을 보며 로마에 대해 나쁜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이 전쟁의 결과로 로마는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고, ㅆㅅㅌㅊ의 해군세력으로 거듭나게 되지. 이때 패배한 카르타고의 하밀카 바르카 장군은 스페인의 카르타고 식민지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나며 신전에 들려서 피의 제물을 올리며 로마는 우리 카르타고의 숙적이고 반드시 무찔러야 할 대상이라고 선언해. 이 어린 아들의 가슴엔 로마에 대한 무한한 복수심이 자라게 되지. 이 아이가 커서 로마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넣었던 한니발이야. 


네줄요약

1. 시라쿠사왕이 이탈리아반도 7시지방 용병을 구함

2. 용병이 통수로 메사나를 먹고 스스로 지중해의 7시 카르타고에 통수를 당함

3. 로마의 참전으로 카르타고와 전쟁시작

4. ㅆㅅㅌㅊ 기술력으로 제해권을 장악, 로마의 승리로 전쟁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