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똥개새끼 우상화를 위한 사진조작질의 보충설명




 작성일 : 17-01-20 00:01
 
김성주똥개새끼 우상화를 위한 사진조작질의 보충설명
 글쓴이 : 수학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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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똥개새끼 우상화를 위한 사진조작질의 보충설명

전체공산신정체체 김씨혈족조선왕조는 수령의 신격화에 기초해서 움직이고 있는 사회다. 

그래서 우상화 신격화를 깨부숴야 한다.



김일성 우상화 날조극을 고발한다김일성은 무명의 졸개, 항일투사 반열 항일투쟁 중심인물로 날조
백승목 대기자  |  hugepine@hanmail.net

승인 2015.04.15  03:06:06

북한에서는 1994년 7월 8일 사망한 김일성을 '영생하는 공화국 주석'으로 떠받들면서 김일성 시신이 안치 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성역화 했는가하면, 김일성을 백두혈통과 태양민족, '조선인민공화국'의 시조로 노동당의 창시자로 삼아 당규약과 헌법에 김일성주의를 지도적 사상이념으로 명시해 놓고 김일성 탄생일은 4월 15일을 태양절이라는 최대의 명절로 경축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으로 본 우상화 작업의 진화 과정은 한낱 만주지역 공비(共匪) 하급졸개출신 김일성이 소련 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위장계급 대위' 초급간부에서 일약 북한의 유일적지도자 겸 영생하는 국가 주석으로 날조 된 소련 공산당 스탈린의 꼭두각시에 불과 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김일성 조작사진 1 ⓒ뉴스타운

대외선전용잡지 등대에 게재 된 김일성 혁명투쟁 동지(?) 합성사진으로 왼쪽부터 김일성, 김일(?), 최현, 안길, 합성사진이라고는 하지만 중앙에 나무를 중심으로 최현과 김일의 모습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맨 왼쪽에 쓰러질 듯 기댄 김일성과 맨 오른쪽에 어정쩡하게 떨어져 있는 안길의 모습은 조잡하게 합성한 것임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물설명> 

◎ 안길(安吉 :1907~1947, 함북경원) 

1932 중국공산당입당, 1939년 동만의 훈춘(琿春) 지역 동북항일연군 하급졸개 였던 김일성의 상관, 해방 후 인민군 전신인 보안간부훈련대 참모장으로 인민군창설 산파역

◎ 최현(崔賢 :1907~1982, 함남혜산) 

최룡해 부친, 1924년부터 항일투쟁에 투신,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제1단장으로 보천보전투, 1941년 소련군관학교 졸업, 1950년 6.25남침 시 제2사단장, 제2군단장, 1955년 12월 민족보위성(현 인민무력성) 부상(副相), 1972~1976 인민무력부장역임,1982년 4월 사망(김정일이 독살설)

◎ 김일(金一 :1910~1984 함북경성) 

김일성과 어깨동무를 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선배 겸 동료, 1931년 동만주에서 항일유격대에 참가, 1938년 11월, 항일연군 제2방면군 제8단 정치위원,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문화부사령관(文化副司令官)에 취임, 6.25전쟁 중 민족보위성 부상·내무성 정치국장 1950년 12월 군의 정치공작사업 실패를 이유로 철직, 1959년 1월~1972년 12월 내각 제1부수상으로 김일성을 보좌, 1972년 정무원총리,1976년 국가부주석, 1984년 병사 

<사진평가> 

시기 : 사진의 인물들이 함께 있던 시기는 1940년대 초 하바로프스크 일대 소련 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시절에서 해방 후 안길이 보안간부훈련대 참모장 재직 중 사망한 1947년 12월 이전으로 추정된다.

장소 : 배경에 나무가 있는 것 외에는 장소를 추정 할 근거가 없음

복장 : 군 장화와 바지는 소련군 및 일군복장과 유사하나 모자는 일본 군모와 유사하여 한인정찰대 시절 관동군지역 침투를 위해 일본군 장교로 위장한 정찰대 간부복장으로 추정

구도 : 최현(崔賢)과 김일(金一)이 나무에 기대어 찍은 사진에 안길(安吉)과 김성주(金聖柱/金日成)을 좌우에 편집 조잡하게 합성한 것으로 보임 

해석 : 평안도 출신 김일성(김성주)외 함경도 출신 최현, 안길, 김일 등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김일성보다 2~5세 연장자로서 외자 이름을 쓴 만주 공비(共匪) 상관 및 선배세대이다. 확실한 후배세대로 두자 이름을 사용한 김일성과 말년까지 친분을 유지 했던 김일(金一)이 어깨동무를 한 것은 항일빨치산 선배세대와 친밀감과시로 해석 되는 장면으로 김일성은 최현과 안길의 항일투쟁의 후광(後光)과 김일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항일투사 반열에 '꼽사리'를 낀 사실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으로서 그 모순점과 오류를 수차례 수정을 거쳐서 1972년 혁명박물관 소장본으로 진화 했을 것으로 보인다.

  
▲ 김일성 조작사진2 ⓒ뉴스타운

1964년 4월 [등대] 잡지에 게재 분 초기 합성사진에서 인물과 배치는 그대로 두고 남루하고 구겨진 복장과 어색한 표정을 대폭 수정 보완하여 1965년 10월 [등대]잡지에 게재 했다. 1965년 당시는 김일성 우상화 초기로서 최현 안길과 동격(?)으로 항일투쟁에 참여 했다는 역사 날조에 주안을 두느라 김일성이 하급졸개로 비치는 것은 간과 하였다. 

  
▲ 김일성 조작사진3 ⓒ뉴스타운

1967년 10월 사진에서는 무엄하게도(?) 김일성 어깨에 팔을 걸친 김일(金一)을 삭제하고 빨치산 선배이자 상관이었던 최현을 중심으로 좌에 김일성 우에 안길로 1차 수정을 했다가 김일성 우상화가 본궤도로 진입하면서 1972년 4월 김일성 60회 생일을 기하여 확장 개축한 혁명역사박물관 전시 사진에서는 김일성을 중앙에 안길을 좌로 보내고 최현을 우에 배치한 사진으로 대체 하였다.

총평 : 김일성이란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공의 이력과 업적에 가려진 '가짜 태양'에 불과 하며, 소위 김일성 항일투쟁역사가 얼마나 철저하게 왜곡날조 된 허구적 위선 인가를 대외에 유포한 사진을 통해서 추적해 보았다. 

확실한 것은 끊임없이 '진리'를 창조해 내야 하는 북괴 노동당 습성에 비춰 볼 때, 혁명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이전의 자료는 남김없이 폐기 되어 북한에는 단 한 장도 안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체적인 증거나 증언은 없지만, 우상화 초기에 조잡하게 사진을 합성한 자는 김일성 유일체제에 반하는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 처형을 못 면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김일성 혁명역사도 백두혈통도 허물어 버려야 할 가공과 허위 날조의 산물임이 또 한 번 입증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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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사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더럽히는 작태인 김씨혈족조선왕조의 초대 수령인 김일성똥개새끼의 김일성을 사용하지 않고 본명인 김성주를 사용하여 김성주똥개새끼로 표현한다.

그 근거는 “100년을 살아보니” 저자 김형석 교수의 증언이다.

김형석교수의 인터뷰에서 부분 인용:

1920년생 평안남도 대동 출생인데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응답 :“대동강 서남쪽 만경대 가까운 곳입니다. 오래전부터 노송이 많이 있고 그 아래 예배당이 있고 그래서 마을 이름이 송산리라 했어요. 소나무산이 있는 마을. 교회에서 신망학교를 세웠는데 거기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시골이었지만 자그마한 문화촌이었습니다.”

질의 :만경대는 김일성 생가로 알려져 있는데….

응답 :“내가 초등학교 5~6학년을 다닌 학교가 김일성도 다녔던 창덕소학교였습니다.그런데 사실 만경대가 김일성 생가는 아니에요. 김일성 어머니가 거기서 3∼4㎞ 떨어진 칠골이라는 마을 분인데 만경대에 시집을 와서 김일성을 첫 아들로 낳게 되요.옛날엔 애를 낳을 땐 처가에 가서 낳았잖아요. 그래서 만경대는 김일성 아버지 집이지 김일성이 거기서 낳지는 않았어요. 김일성 외가는 완전히 기독교 집안입니다. 김일성 외삼촌이 강랑욱 목사라고 유명했던 분입니다. 김일성도 15살 때까지는 교회도 다니고 기독교 분위기에서 자랐죠.”

질의 :김일성 일가와 얽힌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응답 :“큰외삼촌이 김일성과 같은 해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김일성 어머니가 우리 외가와 같은 강씨였어요. 김일성 어머니가 젖이 적어 우리 외할머니가 대신 먹여주기도 했답니다.”

질의 :그래요?

응답 :“그런데 그 큰외삼촌과 둘째 외삼촌 두 명이 공산당에 피살됐어요. 그리고 내 친사촌 동생이 반공운동 하다가 잡혀 들어간 일이 있는데 그때 우리 외할머니가 찾아가서 ‘내가 김일성을 석 달이나 젖 먹여 키웠는데 이래도 되는가’ 라고 말해서 풀려나기도 했답니다. 해방 직후 혼란스러울 때 얘깁니다.”

질의 :그런 비화도 다 있었군요.

응답 :“해방되고 9월쯤 김성주가, 김일성 본명이 김성주에요, 돌아왔다고 환영한다고 만경대에 간 일이 있어요. 내가 25살. 김일성은 32세였죠. 사람들이 김일성보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나 물었더니, 친일파 숙청, 사유지 국유화 등 대여섯 가지를 얘기하더라고요. 그때 저건 자기 생각은 아니고 조직에서 나오는 얘기를 교과서 외우듯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얼마 있다가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바뀌어서 집권하게 되죠.”

[출처: 중앙일보]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100년을 살아보니』 쓴 김형석 교수] 97세 교수님의 장수 키워드, 조심조심·미리미리/인용끝.


김성주똥개새끼 우상화를 위한 사진조작질의 보충설명


위 뉴스타운에 보이는 정체성이 불분명하여 ‘김일?’로 표기된 인물은 중국인 항일투사 계정 이다.


원래 원판사진은 정면에서 보면 왼쪽부터 김성주똥개새끼, 계정, 최현, 안길 순서로 4명의 인물이 사진의 피사체로 노출되어 찍혀있다.

그런데 중국인 계정이, 스파이 혐의로 1955년까지 구쏘련에 억류되어 생활하다가 풀려나 고향 만주에 가서 살았으나 이번에는 문화대혁명이 발생하여 그 때 쏘련스파이혐의로 고생하다가 등소평에 의한, 자칭 모택동의 후예라는 강청 을 포함한 4인방을 숙청하고 그 뒤를 이은 화국봉을 축출한 후, 문화대혁명 재평가에 기반하여, 1980년대에 명예회복을 하였다.


김성주똥개새끼가 1차로 사진을 조작하였을 때는 문화대혁명에 당했던 중국인 계정의 공산주의의 최고지도자 우상화에 대한 반발로 인한 우상화에 대한 의의제기를 염려하여, 사진에서 중국인 계정을 지우고 남아있는 3명은 원래 순서대로인 왼편부터 김성주똥개새끼, 최현, 안길 순으로 그대로 하였는데...

김성주똥개새끼가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 회고록에서 등장인물의 위치 까지 2차로 조작하여 드디어 김일성을 가운데 세웠다.

이렇게 하여, 어떠한 사진이든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상급자라는 것을 표현하기에,김성주똥개새끼가 옛날부터 남의 윗자리에 있었다고 조작질하여 우상화한 것이다.


중국인 계정 유가족이 보관하고 있던 계정 소유분의 실제의 원본 사진을 공개하면서 김성주똥개새끼의 우상화를 위한 1차 변조조작질 2차 위조조작질이 뽀록나버렸던것이다.

계정 유가족의 해명에 의하면 사진을 찍었던 장소도 중국이 아니라 구쏘련으로 도망친 상황에서 찍은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중국인 계정과 조선인 안길은 모두 김성주똥개새끼와 동급 또는 그 이상의 직책을 가진 항일투사들이었다.

 


김성주똥개새끼 우상화를 위한 사진조작질의 보충설명

전체공산신정체체 김씨혈족조선왕조는 수령의 신격화에 기초해서 움직이고 있는 사회다. 

그래서 우상화 신격화를 깨부숴야 한다.



아름다운 조국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을 물려주시고...

은하수의 끝자락에서 긴잠에 드신...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의 기반설계구축자인 위대한 전사 리승만대통령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의 성장발전구축자인 위대한 전사 박정희대통령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의 성장발전계승자인 위대한 전사 전두환대통령

 

에게 영광있으라.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 만세

 

황교안-지만원-홍준표-남재준-김진태-박승춘 문창극-손상대-최대집-이춘근-윤창중-도태우-양동안-전희경-정규재-신혜식-류여해 만세


자유민주주의 우파 만세

자유민주주의 우파의 심장 시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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