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변증법적 통합이라 쓰고, 고려연방제 風樂이라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변증법이라고 하면 서양철학전통만 생각한다. 아시아 사상에 풍성한 변증법전통이 있다. 서로 모순되는 가치가 종족 짱을 겨냥하고 있다는 그런 모순체계다. 해와 달, 어둠과 밝음 등등. 기우제 지내는 종족짱으로 수렴되는 모순이다.
이제 고려연방제 주권이 거대하게, 남북이 단일한 종족이란 이름으로 ‘개성공단’ 2천만평이라는 風樂을 올리기 일보직전이다.
예악사상으로서 樂은 지배계급인 종족장 중심으로, 우덜은 그들에 쫄따구 노비입니다. 하는 취지다. (유교를 非종교적, 세속적으로 읽을 때)
그리고, 남북의 변증법적 통합이라고 하는 중심축은 ‘정도령’ 신앙이고, 중국고대사상 제왕학의 변종이다.
간단하다. 민주화 이후 통일담론은 어떤 지배씨족이 갑질하냐의 문제였고, 국민의 소통과 통합은 처음부터 관심없었고, 그것이 있는 척 포장하는 것만 관심있었다 이기야.
대한민국 주권을 점진적으로 인정하면서, 낮은 단계 연방과정에서 우파를 다 찜쪄 운지시킨다는 발상.
원래, 조선왕조에서 지배씨족이 장악하면 나머지 씨족 운지시키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결코 '산업화'란 말 한적 없다.
이게 조갑제 주장처럼 관념론으로 빚어져서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다. 임금이 매수정치로 버티다가, 매수할 게 없어지니 귀족 중심으로 폭망한 게 조선왕조다. 그리고, 귀족은 결코 자기이익을 위해서 공공을 신경쓰지 않았다. 도덕이 오히려 없어서 폭망한 거다.
유가의 예악사상은 공자(孔子)로부터 말할 수 있는데 그가 예악을 중시한 배경은 시대적 요인과 사상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공자가 생존하던 춘추시대는 봉건 사회체제가 붕괴되고 그에 따른 민심 동요와 혼란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 공자는 춘추 말의 이러한 시대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예(禮)와 그의 보완적 기능을 가진 악(樂)을 중시하는 예악사상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바람직한 이상사회(주(周)왕조시대)로 돌아갈 것을 주장 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예악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공자는 어지러운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먼저 ‘예’를 강조하여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며, 백성은 백성다워야 한다는 사회 질서를 굳건히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칫 형식만 강조하는 예는 건조하고 딱딱한 사회를 구현할 위험이 있었다. 여기서 악의 필요성이 대두되는데, 악의 조화로운 속성을 통해 개인의 수양을 이루고 사회계층과의 화합을 도모했던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 예악은 정치적인 의미와 윤리적인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 의미란 예악이 사회질서 정립과 화합을 통해 사회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고, 윤리적 의미란 예악을 통해서 개인의 수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김율희, 1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