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조직 운영

2016년 시즌, 새 감독으로 카네모토 토모아키(김지헌)를 맞아들이고 기세등등하던 한신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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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신은 뜻밖의 부진에 허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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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한신빠 방송인들이 아니키('형님'이라는 의미. 카네모토의 별명)가 감독이 되었으니 우승은 문제없다고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결국 B클래스로 막을 내렸다. 투수진이 씹창난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콩가루 집안이었던 주니치 드래곤즈가 친절하게도 더 열심히 삽질을 해주어 한신은 다행히 꼴찌만은 면했으나 결국 4위로 시즌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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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에 취임했을 때, 카네모토는 단기 성적과 장기적인 육성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고 선언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참 선수들이 활약해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참들이 중심을 지키면서 신참들이 실력을 키워가야 한다. 따라서 이 점은 카네모토 감독이 정확히 짚었다 할 수 있다.

사실 감독은 물론이고 코치 경력도 없던 카네모토로서는 실적이 있는 선수들이 어느 정도 팀을 하드캐리해주기를 바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팀의 중심선수들이 2016년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부진했다. 감독 경력도 없고 정신론에 의존하는 등 전술에 밝지 못한 카네모토로서는 구멍이 뻥뻥 뚫린 전력을 메꾸는 일에 속수무책이었다.



우선 카네모토가 가장 신뢰하던 '연봉 4억엔 플레이어' 유격수 토리타니 타카시가 급격히 노화하여 타격과 수비 모두 말아드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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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모토가 클린업의 중심으로 큰 기대를 걸던 마우로 고메스도 선풍기로 전락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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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께서 친히 '오오타니 쇼헤이에게 지지 마라!'고 기합을 넣어주신 것도 보람없이 부진했던 에이스 후보 후지나미 신타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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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팀 타격과 수비 모두 부진했다. 게다가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정신론만을 강조하는 감독 밑에서 선수들은 주눅이 들었다. 2016년 시즌을 되돌아보면 수비와 타격에서 모두 안정된 플레이를 펼친 노호(老虎) 후쿠도메 코스케만이 돋보였다. 


사실 한신 타이거즈는 선수들에 가해지는 정신적 압박이 다른 구단보다 강하다. 오사카 지역의 열광적인 대중적 인기는 그만큼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양날의 검이다. 특히 유난히 극성스러운 팬들과 언론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는 선수들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쇠퇴해간다. 예를 들어, 순둥이 아라이 타카히로는 한신에서 부진에 시달리다가 훨씬 관대한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가면서 다시 부활했다. 후지나미 신타로도 성격이 여리다 보니 에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경기력이 흔들리는 것이다. 한신에서 성공하는 선수들은 엄청난 독종이거나 아니면 미련할 정도로 둔감한 선수들이다.



후쿠도메는 본래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인데다가 미국 생활을 겪으면서 강한 정신력을 갖추었다. 이 사진에서 후쿠도메는 태만한 플레이를 한 후지나미를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 후쿠도메는 가고시마현 출신이고 FA로 들어온 외부인이지만 후지나미는 오사카 출신에 한신 타이거즈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오사카의 아들'이다. 오사카 언론에게 욕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하는 후쿠도메의 리더쉽을 높이 산 카네모토는 2017년부터 그를 새 주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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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90년대 팀 성적이 바닥을 기어도 자기 플레이를 해나가던 사람은 괴짜 신죠 츠요시 정도... 뒤집어 말하면 이 정도로 대담한 성격이 아니면 스타 선수는 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타입은 극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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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는 감독이 방패막이가 되어 선수가 느끼는 부담을 줄여주는 법이고 실제로 카네모토의 전임자 와다 유타카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자유방임형 야구를 추구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네모토는 그 누구보다도 선수들에게 큰 압박을 가하는 엄격한 감독이다. 당연히 카네모토 스타일에 따라가지 못하고 슬럼프를 맞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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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신의 감독을 맡았던 와다 유타카. 점잖은 인상처럼 현역 시절 모범생 타입이었다. 감독으로서 리그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3년 연속 2위를 달성하는 등, 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인내해주는 타입으로 외국인 용병들에게 특히 큰 신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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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한신을 찾아 와다 감독과 담소하는 카네모토. 이 당시에는 카네모토도 설마 자신이 감독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클러치히터로서의 재능을 보인 하라구치 후미히토, 2016년 신인왕을 수상한 안타제조기 타카야마 슌, 카네모토에 의해 주전 유격수로 발탁된 '아니키의 직계 선수' 호죠 후미야 등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한 점에서는 2016년 시즌이 아주 의미가 없었다 할 수 없지만 고참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현실 속에서 당장 2017년 눈앞의 성적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가 걱정이었다.



2016년 시즌이 끝나고 마우로 고메스는 방출되었다. 그나마 장타력이 있던 거포를 내보낸 카네모토 감독은 팀의 재건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와다와 카네모토의 차이는 현역 시절의 플레이에서 이미 드러난다 할 수 있다. 현역 시절 안정된 수비를 가진 2루수였고 돋보이지 않으나 팀의 살림꾼 역할을 해오던 와다는 선수들에게 화려한 플레이를 주문하지 않지만 현역 시절 호타준족에 4번타자로 명성을 떨쳤던 '아니키'는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야구를 선호한다. 와다가 명장이고 카네모토가 실패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스타일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것.



카네모토는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타고난 독종이었다. 그 점에서는 천재형 선수라 할 수 있다. 천재가 지도자가 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왜 저놈들은 나처럼 못하지?'하고 의문을 갖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 카네모토도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선수들을 질타하면 팀은 오히려 더 부진에 빠질 뿐이다. 팀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해 일부러 2군의 수많은 후보선수들을 1군에 불러올렸지만 카네모토의 정신론에 부응한 선수는 하라구치 후미히토나 호죠 후미야 정도였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조직 운영임을 깨달은 카네모토는 전면에 나서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배운 용인술의 묘를 발휘하기로 했다. FA보강을 통해 우주인을 영입한 것이다.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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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에서부터 벌써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이토이 요시오는 1981년 쿄토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둘다 운동선수 출신이라서 어릴 때부터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였다. 고교 시절 이토이는 투수였고 대단한 파이어볼러였다. 그리고 큰 어려움없이 2004년 니혼햄 파이터즈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입단 직후였다.


막강한 어깨빨 덕분에 강속구를 뿌려대지만 제구력이 엉망이라는 점과 포수가 보내는 싸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발견된 것이다. 이토이 말로는 견제구를 던지라는 싸인을 읽지 못하고 그냥 던졌다가 엄청 혼난 일을 계기로 투수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고. 성적을 보아도 2년간 2군에서 통산 8승9패였으니 1군에 올라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견을 살리기 위해 2006년부터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그때부터 이토이의 재능은 개화하기 시작했다. 컨택 능력, 장타력, 주루, 넓은 수비범위, 그리고 강견을 모두 갖춘 파이브툴 플레이어로 거듭난 것이다. 2007년부터 1군이 된 그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3할 타율에 20도루 이상을 해내는 니혼햄의 중심 선수가 되었다.


이토이의 수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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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니혼햄은 2013년 1월, 재계약까지 다 마친 상태였던 이토이를 오릭스 버팔로즈에 트레이드하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토이의 팀메이트였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는 "이토이상을 내보낸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트윗을 날렸을 정도였다. 이토이 정도로 활약하는 선수를 왜 내보냈는지 그 점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이다. 말귀를 좀 못 알아듣는다 뿐이지 이토이는 성격도 매우 성실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토이를 보내고 받은 선수들이 이토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퇴물 3명이라는 점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이토이는 호모 의혹이 있는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55세인데 아직도 독신)의 취향이 아니라서"가 가장 유력한 설일 정도로 이토이 트레이드는 불가사의한 일로 꼽힌다. 


쿠리야마가 1군에서 도무지 활약하지 못하는 먹튀의 대명사 사이토 유키를 아직까지고 옹호하며 "금년의 니혼햄은 유키의 활약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도 사이토가 쿠리야마의 마음에 드는 타입이라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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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헤링턴 때문에 똥꼬충들이 근육질 남성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근육도 어디까지나 동성애의 취향의 하나일 뿐이고 오히려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숨은 게이, 즉 클로짓게이(Closet Gay)들은 근육질 남성을 싫어한다고 한다. 여성스러운 호모들은 근육광들이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것을 고깝게 여긴다는 점. 확실히 이토이는 행동거지나 말투가 여성스러운 쿠리야마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마초 중의 마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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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단련된 육체는 최강의 수트빨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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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이는 근육을 붙여놓고 여자들에게 잘 보이는 일만 생각하는 한국식 보빨러들과 다른, '뇌까지 근육'이라 할 정도의 마초이다. 188cm에 85kg의 육체를 가진 이토이는 체지방이 매우 낮으며 트레이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대화 내용도 대부분 근육에 대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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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똑같은 머슬애호가 다르빗슈 유, 야나기타 유키(소프트뱅크)와 아주 친한 사이라는 점이 그것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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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타도 자기 할 말(근육과 장타력에 대한 말)만 하는 사람이라서 보빨에 익숙한 여자들이 싫어할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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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릭스에서 이토이는 역시나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년 연속으로 3할 타율 + 30도루를 기록하였으나 2015년에는 부상으로 부진했다. 그러나 2016년에는 다시 3할 타율 + 53개 도루를 기록하며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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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실이지만 오오타니 쇼헤이의 시속 164km를 쳐낸 사람이 바로 이토이다.



이토이가 우주인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물론 지구인의 굴레를 벗어난 듯한 운동신경과 활약 덕분이기도 하지만 역시 사오정처럼 동문서답을 잘하기 때문이다. 이토이 우주인설을 뒷받침하는 일화들을 살펴보자.


1. 외야수로 전향한 다음, 이토이는 아무리 타격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말로 설명하기를 단념한 코치는 다른 타자들의 폼을 보여주면서 저렇게 흉내내면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토이는 갑자기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다. 다른 타자들이 한달 걸려서 배울 것을 이토이는 하루만에 깨우쳤다고 한다.


2.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토이에게 격노한 어떤 코치기 그를 때리려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더니 이토이는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줄 알고 하이파이브를 한 적도 있었다. (이 일화는 이토이 본인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의 코치들은 이토이가 왜 그런 엉뚱한 대답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개 훈련법에 관한 책을 사서 돌려 읽었다고 한다. 


3, 다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점은 상당한 콤플렉스인 모양으로 상대가 하는 말이 정말로 이해가 안 가면 갑자기 으아아아! 하고 외치고 다른 곳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다르빗슈를 웃겼다.


4. 2009년 새해 소원으로 '말을 좀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이라고 썼다


5.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자신이 공을 놓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느낀 이토이는 라섹 수술을 받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그랬더니 시력이 1.5였다. 그런데도 라섹을 하겠다고 고집해서 시력이 2.0이 되었다. 시력이 좋아지자 외야에서 이토이는 할 일이 없을 때에는 구장에 걸린 간판들의 글씨를 읽고 다녔다.


6. 외야수로 변경한 직후 출전한 시합에서 처음으로 포볼을 얻어내자 이토이는 1루에 가지 않고 그대로 덕아웃에 돌아갔다.


7.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쳐라'는 코치의 지시를 받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경지일까?'하고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안하고 결국 삼진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어떻게 해야 합니까?"


8. 홈런을 쳤는데 상대팀 3루수가 발을 구르자 당황해서 3루에서 헤드슬라이딩.


9. 사진 촬영을 할 때, 다들 홈팀 유니폼을 입고 오는데 이토이 혼자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왔다. 사진 촬영하는 곳이 홈구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10. 별명이 우주인인데 공교롭게도 우주를 좋아해서 방의 천정 벽지를 우주 공간으로 깔고 야광 별들을 박았다


11. 한번 머리에서 떠오른 건 곧바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으로 해외 전지훈련 갔을 때 길가에 늘어선 야자나무들을 보자 갑자기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후배들이 말려서 그만두었다.


12. 연봉 재계약서에 찍기 위해 인감도장을 가지고 와서 주머니에서 꺼냈는데 입술 보습크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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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월드베이스볼클래스 토너멘트에 참가한 이토이에게) 시차는 괜찮으십니까?

A: 괜찮습니다. 스마트폰이 저절로 맞춰줍니다.

 

Q: (선수단 조찬 모임은) 어떠하셨습니까?

A: (식사를 하고 나온 직후라서) 새우튀김이었습니다.

 

Q: (오프시즌 때의 토크쇼에서) 다른팀 선수들 중에 같이 플레이하고 싶은 선수는 있습니까?

A: 아, 그럼 전 내년에 트레이드 되는 겁니까?

 

Q: (니혼햄이 2009년 퍼시픽리그 우승) 리그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A: 이야- 다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아직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남아있습니다만...

A: 아...


Q: (리그 우승 후) 지금 팬들에게 한마디

A: (독감주의보를 읽고 있다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양치질을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Q: 다음 시즌에서 받고 싶은 상(償)은 있습니까?

A: (이토이는 축구 팬이기도 하다) 발롱도르를 받고 싶네요.

Q: (기자의 화제 돌리기) 다음 시즌에서 주목하는 선수는 누구입니까?

A: 호날두입니다.


Q: 무인도에 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일본에서 수시로 묻는 무인도 드립)

A: 일본에 가고 싶습니다.


Q: (2016년 오프 때) 내년 시즌에는 어떤 각오로 임하실 것입니까?

A: 어제 먹은 참치회가 아주 싱싱했습니다.

Q: 예?

A: 제 근육도 참치회처럼 될 겁니다.









호시노에게 배운 것

카네모토 감독이 우주인 이토이를 영입하려고 한 것은 다름 아니라 한신 시절 그의 은사였던 호시노 감독에게 배운 용인술이었다. 본래 카네모토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히로시마 카프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워낙 마른 체형이었고 파워가 없어서 도무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반드시 1군에서 뛰겠다고 이를 악물은 카네모토는 엄청난 훈련량으로 히로시마에서 1군 자리를 손에 넣었고 스타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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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모토가 2003년 FA자격을 손에 넣자 그를 획득하려고 제일 먼저 달려든 구단이 있었다. 바로 한신 타이거즈였다.

그리고 당시의 감독이 바로 2002년 새로 한신 감독으로 부임한 호시노 센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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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널리 알려졌던 호시노가 한신 감독이 된 것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한신 타이거즈는 1990년대에 극도로 부진했다. B클래스는 물론이고 최하위를 밥먹듯이 하자 결국 한신에서는 1999년 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모셔왔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수완을 발휘했던 노무상은 한신의 재건에 착수했으나 야쿠르트와 한신은 환경이 전혀 다름을 깨달았다.


둘다 약팀이었지만 야쿠르트는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구단 치고 너무나 인기가 없었다. 노무상은 비인기구단일수록 선수들의 의식 개혁이 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신은 약팀이었으나 인기 구단이었고 선수단은 한신빠들로 구성된 언론과 강하게 결탁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야구'를 주문하는 노무상의 노력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생각하는 야구는 '오사카에 맞지 않다'고 되먹잖은 향토색을 들이대던 게 당시의 현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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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노무상은 묵묵히 선수들을 육성해왔다. 특히 2000년대의 한신을 지탱해온 명포수 야노 아키히로의 육성은 노무상 덕분이었다. 그러나 3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기록하자 노무상이 (아직 계약이 1년 더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신 구단측에서는 선수들이 육성되고 있으니 계속 팀을 돌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노무상이 "나의 지도법은 한신하고는 맞지 않는다. 지는 일에 너무나 익숙한 한신에게 필요한 감독은 열혈 감독이다"는 말과 함께 호시노 감독을 추천했다.


그렇게 하여 한신에서는 호시노 센이치를 모셔온 것이다. 호시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상의 야구는 약자가 강자에게 이기는 야구. 그러나 내가 한신에서 펼치고자 하는 야구는 약자를 강자로 만드는 야구이다. 약한 선수들이 생각을 해봐야 소용없다. 몸으로 뛰면서 강함을 손에 넣는 야구를 실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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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니들 졸라 약한데 시발 주제를 알아야지'하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호시노는 선수들을 혹독하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언론이 뭐라고 떠들든 말든 감독에게 복종하지 않는 선수는 빼버렸고 외부에서 대거 보강을 해왔다. 개좃같은 '오사카를 위한 오사카인의 야구'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1년만으로는 한신에 뿌리내린 패배주의는 뽑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가용할 수 있는 선수 자원도 넉넉하지 않았다. 시즌 후반부에 전력 부족이 큰 영향을 미쳐 2002년 한신은 4위에 머물렀다.


호시노 감독은 전력 보강이 더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2002년 오프 때 착수한 것이 바로 카네모토 토모아키 영입이었다. 단 한명의 선수가 팀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지적한 호시노는 "한신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네모토가 있어야 한다"를 천명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카네모토를 영입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호시노는 오사카와 히로시마를 오가며 카네모토를 만나 열심히 꾀었다. 사실 카네모토는 히로시마에 남고 싶었고 한신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호시노가 카네모토를 꼬실 때 했던 드립들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카네(아니키 이전의 카네모토의 애칭). 프로는 돈 아닌가. 히로시마는 자네에게 얼마를 주는가? (당시 카네모토의 연봉은 2억엔.) 한신은 3억을 약속하겠네. 내가 구단을 설득하겠네."

그런데 막상 카네모토가 FA 계약에 사인하려고 할 때 한신에서는 2억엔만을 제시했다. 카네모토가 놀라서 호시노 감독을 쳐다보자 호시노는 이렇게 말했다.

"카네. 나는 자네가 돈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내가 아님을 알고 있네. 나는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자네와 함께 하고 싶을 뿐이야. 자네라면 이 마음을 알겠지?"


카네모토는 한신의 홈구장인 고시엔 구장에 바닷바람이 불기 때문에 좌타자에게 불리한 구장임을 지적했다. 그러자 호시노는...

"아,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일세. 요즘은 엘니뇨 때문에 거꾸로 좌타자에게 유리한 바람이 분다네."


물론 말도 안되는 억지였지만 반대로 카네모토는 이 정도로 뻔한 구라를 해가면서까지 자신을 영입하려는 호시노의 정성에 감동했다. 그리고 한신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3년 한신은 정말로 우승을 달성했다. 이 위업 덕분에 카네모토는 히로시마 출신이지만 한신의 아니키로 '영구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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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가 카네모토를 영입하려고 했던 것은 카네모토의 악바리 근성이 팀 컬러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호시노도 주니치 시절에는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선수들의 나약한 정신과 씨름하던 감독이었으나 사실 효율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한신에서 노무상의 실패를 지켜본 호시노는 감독이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 실천할 수 있는 중심선수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우치고 있었다. 중심 선수를 육성하는 일은 너무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단시간에 조직을 바꾸는 제일 좋은 방법은 외부에서 자기와 생각이 같은 인물을 영입해오는 것이다. 제갈공명을 삼고초려 해온 유비처럼 호시노는 카네모토를 삼고초려 해왔다. 카네모토의 영향으로 팀 타선은 연습량이 자연히 늘어났고 컨택트와 주루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1번부터 8번타자까지 투수를 제외한 모든 타자들이 안타를 친다는 맹호(猛虎)타선이 만들어진 것도 2003년이었다.


다만 앞으로의 야구인생을 카네모토와 함꼐 하고 싶다던 호시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건강 문제로 2003년을 끝으로 한신 감독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용인술

루스벨트 대통령 때 참모총장을, 트루먼 대통령 때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조지 마샬의 별명은 '승리의 조직자(Organizer of Victory)'이다. 2차세계대전 미국의 승리는 조지 마샬 덕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는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루스벨트 대통령 이전의 미군은 군수 비리가 심했다. 멕시코의 게릴라도 제대로 토벌하지 못할 정도로 당시 미군의 전투력은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군을 개혁하고 싶었지만 일베정회원으로 거동이 불편한 그는 군을 잘 모른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편 루스벨트는 유럽에서 나날히 커져가는 전쟁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의 때 영국에 항공기를 지원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내비쳤다. 장성들은 대중적 인기가 높던 루스벨트의 생각에 다들 별 생각없이 동의했다. 그런데 한명의 준장만이 수송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들을 조목조목 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가 바로 조지 마샬이었다.


조지 마샬은 필리핀에서 근무했고 1차세계대전 때에는 신병들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마샬의 수완을 눈여겨보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존 조셉 퍼싱 장군이었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마샬을 추천했었다. 루스벨트는 마샬의 반대에 불쾌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식견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를 참모총장 자리에 앉히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국방 자문관으로 기용했다.


루스벨트는 마샬에게 군을 개혁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마샬은 개혁을 하려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1차세계대전 때 실력을 증명한 젊은 장교들의 승진을 건의했다. 그가 추천한 인재들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조지 패튼, 오마르 브래들리 등 뛰어난 군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실무를 맡기면 늙고 무능한 장군들은 저절로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인재들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가장 믿는 인재를 발탁할 것이다. 용인술의 달인 마샬의 지적은 옳았다. 믿는 인물을 뽑아 맡기고 세부적인 실무에 참견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킴으로서 루스벨트는 군을 효과적으로 개혁했고 유럽전쟁, 태평양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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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인

호시노 감독과 성격도 비슷한 카네모토는 감독이 직접 뛰면 선수들이 주눅들 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호시노가 자신을 영입해온 것처럼 팀을 바꿀 수 있는 선수를 찾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이토이였다. 잘 치고, 잘 달리고, 훈련에 성실한 선수. 그리고 주변의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선수. 그런 역할을 해줄 선수라면 우주인 이외에 누가 있겠는가? 카네모토는 2016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토이는 나의 연인. 감독으로서 이렇게 끌리는 선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혹시라도 이토이가 쿠리야마에게 영 좋지 않은 짓이라도 당했더라면 연인이라는 표현에 트라우마를 느꼈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토이도 "저도 칸사이(관서) 출신입니다"는 말과 함께 한신 이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나타냈다.


연인을 만난 아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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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모토도 아무리 그래도 "엘니뇨 덕분에 좌타자에게 유리한 바람이 분다" 같은 억지까지는 쓰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이토이에게 팀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설명했고 이토이도 의외로 빨리 한신으로의 이적을 수락했다. 


그리고 호시노가 카네모토를 영입한 것처럼, 카네모토는 이제 이토이를 영입했다. 카네모토를 영입하고 나서 곧바로 우승했던 것처럼 한신빠들은 2017년에는 우승할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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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에서의 새 커리어에 흥분한 이토이는 35세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강훈련을 했다가 부상을 입어 2월 캠프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그러나 카네모토는 "이토이의 몸상태를 보면 걱정할 일 없다"며 매우 너그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부상이 완치되자 다시 변함없이 훈련에 매진한 이토이는 개막 직후부터 미친듯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타율 3할2푼4리, 3홈런, 12타점. 특히 득점권 타율 6할에 이르는 활약으로 작년 득점원 부족으로 고생했던 한신에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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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팀의 주장이 된 후쿠도메, 역시나 호시노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영입한 선수였고 지금은 1군 코치가 된 카타오카 아츠시, 팀 컬러를 바꿔줄 이토이 세 사람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토이 어깨넓이 봐라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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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이 효과 덕분일까. 현재 한신은 리그 2위로 상당히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우주인과 개념없음의 차이

한국은 허세왕 신해철, 빽바지 유시민, 병신집단 DJ DOC 등의 영향으로 그저 똥오줌을 못 가리는 걸 무슨 천재성이니 저항정신이니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진정한 우주인 이토이는 결코 개념없는 사람이 아니다. 남들보다 자신의 할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체면보다 자신의 일을 더 사랑하는 것 뿐이다. 그 점은 선수 시절의 카네모토도 마찬가지였다.


이토이의 인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한신으로 이적하는 것이 결정된 다음, 이토이는 오릭스의 팬 감사제에 태연히 출전했다. 오릭스 팬들은 이토이가 한신으로 떠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고 자칫하면 (아라이 타카히로가 한신으로 떠나고 나서 히로시마에서 악역 취급을 받은 것처럼) 야유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토이는 "옷장에는 아직 오릭스 유니폼 밖에 없는데요"는 말과 함께 변함없이 팬서비스에 정성을 다했다. 오릭스 팬인 어떤 개그맨이 방송에서 이토이에게 왜 한신으로 떠난 거냐고 따져묻자 이토이는 웃으면서 "한신에서도 열심히 할테니 응원오세요"고 답했다. 순수한 야구인의 모습이다.


평소 항상 자신의 책임보다는 체면만을 생각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지구인의 특성이니까 이토이가 우주인이 된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곱상한 지구인보다 좀 괴짜라 해도 책임감 강한 우주인을 필요로 하는 조직은 매우 많다.


세련된 이미지와 실제 실력으로 그래프를 만들어보자. 자신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렉스 틸러슨처럼 될 자신이 없다면, 혹은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다면 이토이 같은 우주인을 노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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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1. 직접 나서서 고쳐나가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2. 책임감이 체면보다 더 중요한 아주 특이한 사람들이 있는데 조직은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3. 개념없는 게 천재성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