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마디(삼매) 1 


1.1. 사마디의 정의, 표상, 필수품

-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 ; 맛지맛니까야 2권(대림스님, 2012년) p.322

(……12. “스님, 무엇이 사마디[定]이고, 어떤 법들이 사마디의 표상이고, 어떤 법들이 사마디의 필수품이고, 어떤 것이 사마디를 닦는 것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심일경성)]이 사마디입니다. 
네 가지 싸띠의 확립[四念處(사념처)]이 사마디의 표상입니다.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사정근)]이 사마디의 필수품입니다. 
여기서 이런 법을 받들어 행하고 닦고 많이 짓는 것이 사마디를 닦는 것입니다.”……)

- 사마디 경(S45:28) ; 상윳따니까야 5권(각묵스님, 2009년) p.215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기반을 가졌고 필수품을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사마디를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성스러운 바른 사마디는 어떤 기반을 가졌고 어떤 필수품을 가졌는가?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싸띠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심일경성)]이 이런 일곱 가지 구성요소들을 장비로 갖출 때 이를 일러 성스러운 바른 사마디가 기반을 가졌다고 하고 필수품을 가졌다고 한다.”)



1.2. 사마디에 드는 순서 

- 불순물을 제거하는 자 경(A3:100) ; 앙굿따라니까야 1권(대림스님, 2006년) p.576~583

(1. “비구들이여, 금에는 흙이나 모래나 자갈이나 조약돌과 같은 거친 불순물들이 있다. 그러면 불순물을 제거하는 자나 그의 도제가 홈통에 넣어 이리 씻고 저리 씻어서 깨끗이 한다. [거친 불순물을] 버리고 없애고 나면 금에 미세한 자갈이나 거친 모래와 같은 중간 정도의 불순물들이 남게 된다. 그러면 불순물 제거하는 자나 그의 도제가 이것을 이리 씻고 저리 씻어서 깨끗이 한다. 그것을 버리고 없애고 나면 금에 미세한 모래나 검은 때와 같은 미세한 불순물들이 남게 된다. 그러면 불순물 제거하는 자나 그의 도제가 이것을 이리 씻고 저리 씻어서 깨끗이 한다. 그것을 버리고 없애고 나면 그 다음에는 사금이 남게 될 것이다.”

2. “그러면 금세공인이나 그의 도제가 그 금을 도가니에 넣고 [녹을 때까지 불을 지피면서] 이리 불고 저리 불고 계속해서 분다. 하지만 그 금은 아직 녹지도 않고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금은 부드럽지도 않고 다루기에 적합하지도 않고 빛나지도 않고 부서지며 세공하기에 적절하지도 않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금세공인이나 그의 도제가 그 금을 [녹을 때까지 불을 지피면서] 이리 불고 저리 불고 계속해서 분다. 그러면 그 금은 녹고 불순물도 완전히 제거된다. 그래서 그 금은 부드럽고 다루기에 적합하고, 빛나고 부서지지 않으며 세공하기에 적절하게 된다. 금세공인은 허리띠든 반지든 목걸이든 금 머리띠든 그가 원하는 모든 종류의 장식품을 [만들어] 자기의 목적을 성취한다.”

3.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높은 마음을 닦는 비구에게는 몸으로 지은 해로운 업, 말로 지은 해로운 업, 마음으로 지은 해로운 업이라는 거친 오염원들이 있다. 마음을 닦는 현명한 비구는 이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가 [거친 오염원들을] 버리고 제거하고 나면 높은 마음을 닦는 비구에게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과, 악의에 대한 생각,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라는 중간 정도의 오염원들이 남게 된다. 마음을 닦는 현명한 비구는 이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이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나면 높은 마음을 닦는 비구에게는 친지들에 대한 생각, 지역에 대한 생각, 멸시받지 않음에 대한 생각이라는 섬세한 오염원들이 남게 된다. 마음을 닦는 현명한 비구는 이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이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나면 이제 법에 대한 생각이 남게 될 것이다.”

4. “이러한 사마디는 평화롭지도 않고 수승하지도 않고 [오염원들을] 가라앉혀서 얻은 것도 아니고 단일한 상태를 증득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극과 노력으로 [오염원들을] 억누르거나 차단하여 얻은 마음의 상태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마음을 안으로 확립하고 
안정하고 
하나에 고정하여 
사마디에 들 때
 

그 사마디는 평화롭고 수승하고 [오염원들을] 가라앉혀서 얻은 것이고 단일한 상태를 증득한 것이다.
이것은 자극과 노력으로 [오염원들을] 억누르거나 차단하여 얻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초월지로 실현시킬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초월지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가 마음을 기울이면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는다.”





5. …(신족통)…
6. …(천이통)…
7. …(타심통)…
8. …(숙명통)…
9. …(천안통)…
10. …(누진통)…
……
[여섯 가지 신통은 ‘반야’의 '신통의 구족'을 참조] )



1.3. 사마디 1 : 색계(色界) 사마디 [초선, 이선, 삼선, 사선]

- 초선(初禪) 경(S40:1)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3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2. 거기서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응답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선, 초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초선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 관찰[伺(사)]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희)]과 행복[樂(락)]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초선이라 한다.’ 
……

- 제2선 경(S40:2)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35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2선, 제2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제2선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제2선이라 한다.’
……

- 제3선 경(S40:3)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36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3선, 제3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제3선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를 확립하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선) 때문에] ‘평정하고 싸띠를 확립하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성자들이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제3선이라 한다.’ 
……

- 제4선 경(S40:4)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38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4선, 제4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제4선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소멸되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싸띠가 청정한[捨念淸淨(사념청정)]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제4선이라 한다.’
……)


1.4.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의 비유들

- 사문과 경(D2) ; 디가니까야 1권(각묵스님, 2007년) p.242 

(……75.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깁니다. 환희로운 자에게 희열이 생깁니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輕安)합니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사마디에 듭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 관찰[伺(사)]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희)]과 행복[樂(락)]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무릅니다. 그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76. “대왕이여, 예를 들면 솜씨 좋은 때밀이나 그의 조수가 금속 대야에 목욕가루를 가득 담아 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가며 계속 이기면 그 목욕가루덩이 [반죽]에 물기가 젖어들고 스며들어 물기가 안팎으로 흠뻑 스며들 뿐, 그 덩이가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것 역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이니 앞에서 설명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한 것입니다.”

77. “대왕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인 관찰[伺(사)]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무릅니다. 그는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78. “대왕이여, 예를 들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가 있다 합시다. 그런데 그 호수에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또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마저도 내리지 않는다면 그 호수의 밑바닥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흠뻑 적시고 충만케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온 호수의 어느 곳도 이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것 역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이니 앞에서 설명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한 것입니다.”

79. “대왕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sati)를 확립하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정념정지)] 몸으로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 禪(선)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정하고 싸띠(sati)를 확립하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무릅니다. 그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80. “대왕이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피어 있는 호수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차가운 물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든다면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어떤 부분도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것 역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이니 앞에서 설명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한 것입니다.”

81. “대왕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싸띠(sati)가 청정한[捨念淸淨(사념청정)]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무릅니다. 그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습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82.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머리까지 온몸에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습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것 역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이니 앞에서 설명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한 것입니다.”……)



1.5. 사마디 2 : 비색계(非色界) 사마디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 공무변처 경(S40:5)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39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무변처, 공무변처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공무변처(Ākāsānañcāyatana)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공무변처라 한다.’
……

- 식무변처 경(S40:6)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40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무변처, 식무변처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식무변처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식무변처라 한다.’
……

- 무소유처 경(S40:7)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41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소유처, 무소유처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무소유처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무소유처라 한다.’
……

- 비상비비상처 경(S40:8)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42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상비비상처, 비상비비상처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비상비비상처인가?’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비상비비상처라 한다.’
……)


1.6. 사마디 3 : 여섯 가지 사마디 ;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관찰이 있는... 
                                          / 공한 사마디 / 원한없는 사마디 / 
표상없는 사마디

-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음 경(S43:3) ; 상윳따니까야 5권(각묵스님, 2009년) p.10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無爲)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無爲)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는 사마디,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관찰만 있는 사마디,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인 관찰도 아닌 사마디
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 공한 사마디 경(S:43:4) ; 상윳따니까야 5권(각묵스님, 2009년) p.10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無爲)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無爲)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공한 사마디[空三昧], 
표상 없는 사마디[無相三昧], 
원함 없는 사마디[無願三昧]
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 표상 없음 경(S40:9) ; 상윳따니까야 4권(각묵스님, 2009년) p.543

(3. “도반들이여, 여기 내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인가?’ 라고.”

4. “도반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들어 머문다. 이를 일러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라 한다.’
 도반들이여, 그래서 나는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들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머물고 있었을 때 표상을 기억하는 알음알이가 생겼습니다.”

5. “도반들이여, 그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대해서 방일하지 말라. 바라문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마음을 안주시켜라.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라.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마음이 사마디에 들게 하라.’
 도반들이여, 그래서 그 뒤에 다시 나는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사마디에 들어 머물렀습니다.”

6.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그는 스승의 보호를 받아서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이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 [경전독송 질문과 답변 게시판 NO.34] -----------

질문 :  원함 없는 사마디

큰스님께 여쭙니다. _()_
 1.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는 사마디
 2.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관찰만 있는 사마디
 3.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인 관찰도 아닌 사마디
 4. 공한 사마디
 5. 표상 없는 사마디
 6. 원함 없는 사마디
위 6가지 각각의 의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_()_ 
특히 원함 없는 사마디가 궁금합니다.
 

< 순일스님 답변 >

나무석가모니불

오늘도 이렇게 좋은 질문으로 시작하니 참 상쾌합니다.

1.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또는 관찰)이 있는 사마디
'일으킨 생각'은 '수행 대상'에만 집중하려는 노력입니다.
마음은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하나의 수행 대상'에만 집중 하게 되면 그것이 '한 마음(또는 통일된 마음)'입니다.
그런데 '산란한 마음'은 '하나의 수행대상에 집중'이 잘 안됩니다.
그러므로 산란한 마음이 오면 다시 '수행 대상에 몰입'하려고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으킨 생각이 지속적인 고찰이 되면' 그것이 첫번째 사마디입니다.
 
2. 일으킨 생각은 없고(아니고, 직역은 '아니다'입니다.), 지속적인 고찰만 있는 사마디
1번에서 '산란한 마음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수행대상에 몰입하려고 '일으킨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수행대상만을 '지속적으로 고찰 하고 있는 상태'의 사마디에 듭니다.
 
3. 일으킨 생각도 없고(아니고), 지속적인 고찰도 없는(아닌) 사마디
4번째의 '공한 사마디'와 먼저 비교 해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습니다.
'공한 사마디'는 '모든 물질의 세계를 초월'해서 '공'한 것입니다.
그것과 다른 것이 3번입니다.
그러므로 3번은 아직 '모든 물질의 세계를 초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3번은 무얼까요?
노력없이 '지속적인 고찰이 되어지는(수동태) 사마디'입니다.
즉 물질세계의 수행 대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에 집중하려는 노력 없이(지속적인 고찰이 없이) 
지속적인 고찰이 저절로 되어지는 사마디'입니다.
예를 듭니다.
초보 운전자, 중급 운전자, 베테랑 운전자가 있습니다.
초보 운전자가 이것 저것 보거나 또는 생각하면서 운전하면 사고 납니다.(산란한 마음)
사이드미러, 백미러 등을 안 보면서 전방(수행대상)만 보려고 노력합니다.(일으킨 생각)
드디어 전방만 보면서 운전을 합니다.(지속적인 고찰)
중급 운전자는 '일으킨 생각 없이' 지속적인 전방(수행대상)을 고찰'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베테랑 운전자는 '지속적인 고찰 없이' 즉 전방(수행대상)을 보려는 노력도 없이, 
그러나 전방이 넓게 시야에 들어오면서 이완되어서 운전을 합니다.
 
요약하면 3번째인 '지속적인 고찰도 없이'는 수행대상이 안 보인다 또는 초월했다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노력이 없이도' 수행대상 하나만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은 '보여지는 면적이 넓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부터 '광대한 사마디'로 이어집니다.
베테랑 운전자의 시야가 넓어지듯이, 수행대상도 들어오면서 시야가 넓게 들어옵니다.
 
4. 공한 사마디
여기서의 '공'은 5선의 '공무변처'의 그 '공'이랑 단어가 다릅니다.
아마도 '수냐'로 되어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공'입니다.
3번째를 넘어서면 이제 '공한 사마디들'에 들게 됩니다.
모든 공한 사마디들의 통론적인 단어가 '공'입니다.
 
5. 아니미타(animitta) 사마디
표상이 아닌 사마디입니다.
예를 듭니다.
네 그루 나무아래의 땅에 대한 사마디가 있습니다.
더 공부 지으면 열 그루 나무아래의 땅에 대한 사마디가 되고
더 지으면 마을 만큼의 땅에 대한 사마디
더 가면 한국, 지구, 이렇게 땅에 대한 사마디가 있습니다.
 
편의상 위의 것을 '네 평 땅' '열 평 땅' '백 평 땅' 이렇게 바꿔봅니다.
'네 평 땅'에 대해서 사마디에 들게 되면 '네 평 땅'이 표상(전체)이 됩니다.
이것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animtta' 입니다.
그렇게 '아니다'라고 해서 '열 평 땅'에 대해서 사마디에 듭니다.
다시 이 '열 평 땅'이 전체가 '아니다'라고 해서 '백 평 땅을 표상'으로 사마디에 듭니다.
그리고는 이 '백 평 땅의 표상(전체)'을 또 다시 '이것은 전체(표상)가 아니다', 라고 해서 
또 다시 'animitta' 합니다.
 
그런데 여기 5번은 4번의 '공한 사마디' 다음에 '아니미타 사마디'가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아니미타'는 '공'이 '아니다'라고 해서 더 공한 '공'이 되는 것입니다.
대승기신론을 보면 '공 사마디' 다음에 '공공 사마디' 그리고 '소공 사마디'등의 단어가 나옵니다.
'공공 사마디'는 '공마저 또 다시 공하다'로서 '공보다 더 공한 사마디'라는 뜻이고
'소공 사마디'는 '공의 바탕이 또 다시 공하다'로서 공보다 더 바탕이 공한 사마디라는 뜻입니다. 즉 '공'도 더 '공한 공'이 있고 '그 공한 공'마저도 더 '공공공' 
이렇게 계속 공한 경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공에 대한 작은 경'으로 기억합니다.
거기 보면 '비상비비상처' 보다 높은 경지로 '아니미타 사마디'가 나오며, 
그 다음이 궁극의 상수멸입니다.
비상비비상처를 뽀따빠따경에서 본다면 '반야가 구경까지 편재해 가는 과정의 사마디 경지' 입니다.
이 편재해가는 과정이 바로 '아니미타 사마디'입니다. 
즉 이러하게 전체인것도 여전히 '아니다'해서 더 편재해 가는 과정입니다.
 
상수멸 전까지의 모든 사마디는 '아니미타 사마디'입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일으킨 생각은 아니고(아니미타) 지속적인 고찰만 있고' 
'일으킨 생각도 아니고(아니미타) 지속적인 고찰도 아닌(아니미타)'
광대한 사마디에서 아니미타 해서 더 광대한 사마디에 듭니다.
'공한 사마디'에서 '아니미타' 함으로써 '더욱 공한 사마디'에 듭니다.
비상비비상처에서 '아니미타' 함으로써 반야가 구경까지 편재합니다.
 
6. 원함 아닌(없는) 사마디
이 세상에 대해서 '원하는 게 있는 마음'에서 
'아니다 아니다'해서 '원하는게 아닌 마음'으로 향하는 사마디입니다.
 
뽀따빠따경에서 '반야(고유의 산냐라고 표현 되어 있습니다. 원문에서의 이 단어의 뜻은, 열반 전의 반야를 뜻합니다.)'가 
구경에 이르러서도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하지 않으리라'가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의도가 소멸하면 해탈입니다.
여기서 '의도'는 '몸과 말과 마음의 의도'입니다. 
의도의 소멸이란 '원하는 것의 소멸'입니다.
'원하는게 없으면' 의도가 없습니다.
'신구의(몸, 말, 마음)로 원하는 게 없다는 것'은 '신구의'의 의도가 없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상수멸 전까지의 사마디가 바로 '원함 아닌(없는) 사마디'가 됩니다.
 
위의 6 가지 사마디는 8사마디(초선, 이선, 삼선, 사선,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보다도 
더욱 통론적인 사마디입니다. 
8사마디는 각각의 사마디의 '성격'에 포커스가 좀더 맞추어져서 설명 되어졌고
6사마디는 사마디에 드는 방법적인 절차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추어져서 설명이 
되어졌습니다.

평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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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들숨날숨 싸띠를 통한 사마디

- 마하깝삐나 경(S54:7) ; 상윳따니까야 6권(각묵스님, 2009년) p.210
 
2. 그 무렵 마하깝삐나 존자가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는 마하깝삐나 존자가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아있는 것을 보셨다. 보고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비구의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는 것을 보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저 존자가 승가 가운데 앉아있거나 혼자 한적한 곳에 앉아있을 때에도 저 존자의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구들이여, 사마디를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 그런 비구는 사마디를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은 자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마디를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오로지 싸띠를 확립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오로지 싸띠를 확립하면서 숨을 내쉰다.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반야로 보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반야로 본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반야로 보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반야로 본다. 
③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 각주 > ------------------------------------------------------------------------------
- 성스러운 삶 경2(A10:20) ; 앙굿따라니까야 6권(대림스님, 2007년) p.107
(……
11.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신행)]가 고요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싸띠가 청정한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의 의도적 행위가 고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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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⑦ ‘마음의 작용[心行(심행)]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⑨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몸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 등불 비유 경(S54:8) : 상윳따니까야 6권(각묵스님, 2009년) p.212

(4.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오로지 싸띠를 확립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오로지 싸띠를 확립하면서 숨을 내쉰다.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반야로 보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반야로 본다. 
…(중략)…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5. “비구들이여, 나도 깨닫기 전,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러한 머묾으로 많이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러한 머묾으로 많이 머물 때 몸도 피로하지 않았고 눈도 피로하지 않았고 나의 마음도 번뇌들로부터 해탈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비구가 ‘몸도 피로하지 않고 눈도 피로하지 않고 나의 마음도 번뇌들로부터 해탈하게 되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비구가 ‘세속에 대한 나의 기억과 사유를 모두 제거하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비구가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비구가 ‘혐오하는 것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혐오스럽지 않은 것과 혐오스러운 것 이 둘을 다 버린 뒤 싸띠를 확립하고 알아차리면서 평정하게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나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없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를 확립하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선[禪 때문에] ‘평정하고 싸띠를 확립하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성자들이 묘사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소멸되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싸띠가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 

8.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나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나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나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나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가 ‘나는 일체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 인식과 느낌의 그침)에 들어 머무르리라.’라고 원한다면 이러한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잘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9. “비구들이여, 이과 같이 들숨날숨에 대한 싸띠를 통한 사마디를 닦고 많이 [공부]지을 때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반야로 본다. 그것이 연연할 것이 못되는 줄 반야로 본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야로 본다. 만일 그가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반야로 본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야로 본다. 만일 그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이 무상한 줄 반야로 본다. 그것이 연연할 것이 못되는 줄 반야로 본다.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야로 본다.”

10.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만일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만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11. “그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지금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반야로 본다.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끼면서는 ‘나는 지금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반야로 본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곧 이 몸 무너져 목숨이 끊어지면,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도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반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