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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정보글] 라면의역사 ~농심vs삼양 두 거인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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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일게이들아, 저번편에서 농심 vs 삼양  두 거인들의 대결에 포커스를 맞춰서 얘기했다면,

 

이번에는  삼양 vs 오뚜기 라는  삼양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싸운 다윗 오뚜기찡의 혈투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볼까한다!!

 

 

 

삼양로고.jpg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절대왕권 , 삼양

 

삼양은 60~70년대에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라면시장계의 甲중 甲이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계속해서 라면시장에 참전하는 후발주자들의 공세에 무너지기시작하는데,

 

 

 

 

농심올스타.png

 

저번편에서 나왔듯이, 70년대 내내 삼양에게 깨지고있었던 농심이 공격적인 신제품개발에 독기를 품고 달려들은 결과

 

80년대에 미친 신제품들이 연타석으로 등장하면서 위짤과같은 오늘날까지도 시장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하는 사기적인 라인업을 완성하게되.

 

저 라인업에 속해있는 제품 하나하나가 모두 오늘날 타사의 '간판,기함급' 수익을 올리는 미친 괴물들이라는것..!

 

 

이러한 80년대 농심의 올스타급 라인업은 삼양의 점유율을 어마어마하게 깎아내렸고,

 

 

 

팔도라인.png

 

이 시기에 3번째 후발주자였던 한국야쿠르트 [현 팔도의 당시 모기업]까지

 

1984년도에 팔도의 레전드급 간판제품인 '팔도비빔면' 을 출시하면서 마찬가지로 삼양의 시장점유율을 크게 감소시키고,

 

1986년에 도시락면까지 출시하면서  80년대에 새로내놓은 신제품중에 걸출한 유효타를 2개나 시장에 작렬시키며

 

팔도 또한 자신만의 강력한 한방이있는 라인업을 구축하는것에 성공해.

 

이 시기에 출시했던 팔도비빔면은 29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빔라면장르에서 압도적인 1위자리를

 

굳건히 수성하며 팔도의 최고 효자상품으로 자리잡고있는녀석이지.

 

 

물론 80년대에 삼양이라고 신제품출시를 아예 안하고있었던것은 아니었어.

 

삼양 또한 80년대에 타사들에 맞서 반격에 나서는데,

 

삼양라인업.png

 

 

 

 

..... 굉장히 초라하지 ㅇㅇ

 

실제론 더있는데,  짜짜로니말곤 삼양의경우엔 타사들과 달리 

 

 80년대에 발매했던것중에 오늘날까지 살아있는게 단 하나도없고,

 

저 삼양라면 골드도 크게 재미를 못봐. 삼양라면 골드는 오늘날의 신라면 블랙 과같은 느낌이랄까..

[블랙은 그나마 광고빨로 재미라도봤지만]

 

저번편에서 말했었지만

 

 

이 시기의 삼양은 적은제품군 + 라면의고급화  로 질적우위를 점하겠다는 소수정예노선이었다.

 

 

이것은 시장을 독점중이던 60~70년대에는 유효한 정책이었지만

 

후발주자들이 계속해서 참전해 난전이 되가고있던 80년대엔 치명적인 미스였다고보면된다!

 

 

 

1984년에 농심이 최초로 인스턴트 짜장라면 출시에 성공하면서 농심의 핵펀치를 얻어맞은 삼양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똑같이 제품군다양화의 중요성을느끼고 카피작품인 짜짜로니를 다음해인 1985년도에 늦게 내놓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전국민을 짜파게티에 열광케하기에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삼양의 짜짜로니는 결국 짜파게티의 짝퉁, 2류 , B급  그 이상 그 이하도 못해내는 졸작이되버렸다.

 

 

결국 삼양은 타사들과 달리 이 시기에 자신만의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하는데에 실패했고,

 

이는 계속해서 삼양의 라면시장 점유율 하락을 불러온다.

 

 

삼양이 짜짜로니를 발매했던해인

 

 1985년도에는 삼양42% VS 농심42% VS 야쿠르트10% VS 청보6%로

 

2인자였던 농심에게 동률1위로 따라잡히게되고,

 

 

 

빙그레라면.jpg

 

1986년에 식품업계의 걸출한 기둥중하나였던 빙그레까지 라면시장에 참전하면서

 

라면시장은 무려 5파전으로 진입! 하지만 빙그레의 진출뿐만아니라

 

 

 

청보식품.jpg

 

다음해인 1987년도에 청보식품이 여러사정과 경영부실등으로 파산하게되면서,

 

청보가 가지고있던 라면공장을 인수해줄 식품회사를 찾아나서는데

 

 

 

 

 

오뚜기.jpg

 

 

그때 청보식품앞에 나타난것이 식품업계의 강자, 이번편의 주인공중하나인 오뚜기였다.

 

오뚜기는 마침 엄청난 붐을 일으키고있었던 라면시장으로의 진출에 입맛을 다시고있던 참이었고,

 

이때 청보식품이 파산하면서 라면공장이 싼값에 매물로나오자 바로 인수하게된다! 인생은 타이밍이지

 

가끔씩 청보랑 오뚜기를 같은 회사로 잘못아는경우도있는데, 이 경우는 공장만 주고받은사이일뿐 법인자체가 다른회사야 ㅇㅋ

 

이렇게 80년대말에 라면시장에 참전하게된 오뚜기는 기존의 삼양,농심,야쿠르트등의 쟁쟁한 라인업을 뚫기위해

 

농심이 했던것처럼 공격적인 신제품개발에 나서게된다. 

 

 

진라면1.jpg 진라면2.jpg

 

 

그렇게해서 바로 다음해인 1988년에 오뚜기는 오늘날의 간판급제품인 '진라면'을 시장에 내놓는 기염을 토했고,

 

과거 청보식품이 공격적인 마케팅과 많은양으로 어느정도 재미는봤지만, 

 

결정적으로 맛이없어서 고전했던것과 달리 초전부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보유한

 

진라면을 내놓으면서 똑같이 부담없이먹는 빨간국물라면 '삼양라면'의 점유율을 뺏기시작한다!

 

마침 이 시기에는 농심이 1986년도에 발매했던 '신라면' 때문에 기존 삼양라면팬들이 대거 이탈하고있던 상황이었고,

 

그러한 절호의 타이밍에 새로 진입한 오뚜기의 '진라면'까지 같이 협공하면서 삼양의 '삼양라면'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된다.

 

뿐만아니라 이 시기에는 빙그레,팔도의 제품들 또한 상당히 선전하고있던 시기였다.

 

 

사실 업계의 그 누구도 오뚜기가 초전부터 이렇게 선전할것이라곤 예상을 못했었다.

 

과거 청보의 경우에도 싸구려라면과 야구구단[청보 핀토스]을 통한 마케팅전략으로 적은 점유율을 유지했을뿐,

 

이렇다할만한 한방을 보여주지못했었기때문에 청보의 생산라인을 인수한

 

오뚜기라고해봐야 별거아닐거라고 낙관,무시하고있었던것이었다.

 

물론 출시 초기의 진라면의 매출은 대단한흥행이라고 할정도까진 아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진라면은 국민들사이에 침투하기 시작했었다.

 

 

 

 

삼양로고.jpg

 

 

삼양은 80년대 중반부터는 더이상 점유율을 늘리지못하고 오히려 가지고 있던 점유율을 계속해서

 

농심,야구르트,빙그레,오뚜기와같은 후발주자들에게 뺏기기만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농심올스타.png

팔도라인.png

 

 

 

 

진라면1.jpg 진라면2.jpg

 

오늘날 라면시장의 상위권을 차지하고있는 마스터피스라 할수있는 제품들이 80년대에 위와같이

 

타사에서 무더기로 쏟아나왔는데 삼양이 버틸수있을리가 만무했다.

 

80년대는 그야말로 한국라면의 황금시대였다.

 

난전으로 치고받고있었던 80년대 라면시장이었던만큼, 서로가 라이벌을 꺾기위해 걸작들을 속속들이 내놓고있을때

 

삼양은 제대로 손도못쓰고 얻어맞기만했다.

 

농심88년.jpg

 

위의 당시 보도자료와같이 농심은 88년도에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는 라면공룡으로 약진한다.

 

 

 

 

그리고 80년대에 타사들과 달리 유효 라인업을 확보하지못한체

 

농심에 밀려 2위로 추락하고, 후발주자들한테 속수무책으로 밀릴정도로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로

 

1989년, 삼양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게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우지파동1.jpg

 

그 유명한 우지파동이었다. 라면에 '공업용 우지'가 들어간다 라는것을 중점적으로 유해물질을 식품에 넣었다는

 

검찰의 주장으로 인해 라면업계에 핵탄두가 떨어진 사건이었다.  이때 삼양뿐만아니라 농심,야쿠르트,빙그레,오뚜기 등 총5개사의 대표와

 

실무자들이 구속되어 조사를 받았었고, 그 근거는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과 『식품위생법』 위반혐의였었다.

 

 

사건초기에 검찰이 『공업용우지』라고 발표한 용어가 검증을 거치지않은체 매스컴의 자극적인 보도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국민들이 대혼란에 빠지게되는 어마어마한사건으로 발전했었고, 이때 삼양뿐만아니라 농심,야쿠르트,빙그레,오뚜기 등

 

5개 라면제조사 전체가 심각한 이미지손상을 입고, 일정기간동안 라면의 생산,판매까지 중지조치가 이뤄지면서 라면업계전체가

 

타격을 입게되었다. 만두파동때 특정회사뿐만아니라 업계가 전체적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던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지를 쓰고있었던것은 '삼양' 뿐만이아니었다. '오뚜기' 또한 우지를 사용하고있었기때문에

 

삼양과 오뚜기 2개사가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었고, 특히나 후발주자였기때문에 규모가 작았던 오뚜기와 달리

 

라면시장의 선구자이자 2위업체였던 삼양이 입었던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했었다. 

 

수십년간을 쌓아왔던 전통적인 브랜드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사기꾼기업,쓰레기기업 으로 전락했고,

 

국민들은 더이상 삼양라면을 사먹으려하지않았다. 우지파동이전에도 뺏기고있던 점유율이 타사제품으로 완전히 돌아선것이었다.

 

삼양뿐만아니라 진라면을 출시하면서 상쾌한 출발을 하고있었던 신생 오뚜기라면또한 폐업직전까지 몰리는등 엄청난 고초를 치뤘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우지에 관해서 설명하자면, 우지는 총 16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 사건에 등장한 우지인

 

2등급 『톱화이트탤로우』나 3등급 『엑스트라펜시텔로우』는 식용을 목적으로 도살한 소에서 채취한 신선한 지방부분으로,

 

그 채취 당일에 청결한 위생 상태하에서 용출과정을 거쳐 제조되었던 정상적인 우지였으며,  '탈취' '탈산' '탈색' 등 정제에 의하여

 

식용우지로 사용함에 어떠한 장애 요소나 위생에 문제가 있을 수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원료였던것이다.

 

 

라면업계는, 특히나 삼양은 무고했었다. 이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실제로 나중에 90년대말에는 대법원에서 삼양의 결백을 증명해준다.

 

 

 

그렇게 우지파동을 거치면서 80년대에 다양한 라인업을 확보하지못한데다가 심각한 이미지손상까지 입은

 

삼양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유율이 15%대로 추락하게되고, 

 

라면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얻어맞았던 오뚜기 또한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기엔 무리가있었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삼양이 희생양이 되었기때문에  오뚜기는 사업을 접지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이기로 결심한다.

 

 

팔도왕뚜껑.jpg

 

1년뒤인 1990년도에는 팔도가 왕뚜껑을 출시하면서 상당히 재미를 본다.

 

이러한 농심,삼양을 향한 타사들의 도전은 계속되고있었다.

 

 

 

 

스낵면.jpg

 

그리고 닉값하는 오뚜기는 우지파동의 상처를 딛고 포기하지않고 다시 일어나

 

2년뒤인 1991년에 오뚜기 '스낵면'을 출시한다.

 

저렴한 가격과 가볍게 먹기 편한 스낵면은 히트작까지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팔리는 상품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았고, 

 

 

열무비빔면.jpg

 

같은해인 1991년에 삼양또한 더이상 80년대때처럼  손을 놓지않고

 

팔도비빔면의 시장점유율을 뺏어오기위한 자객으로 '열무비빔면'을 출시한다.

 

하지만 팔도와 비교했을때 압도적으로 맛이없었기때문에

 

팔도비빔면의 점유율을 하나도 뺏어오지못한 실패작이었다.

 

아직까지도 시판되고있는 제품이지만 삼양입장에선 전혀 재미를 못본 제품이었다.

 

 

대관령김치라면.jpg

 

 

삼양은 농심에게 빼앗긴 왕좌를 탈환하기위해 전시체제에 돌입했고,

 

이어지는 1993년도에 삼양 '대관령 김치라면'을 출시한다.

 

오늘날에는 그다지 팔리지가않는 제품인 대관령 김치라면이지만

 

의외로 출시당시엔 대관령 김치라면은 상당히 판매성적이 괜찮은 편이었으며

 

이러한 신규제품군의 추가투입으로 점유율의 추가하락을 막고 포지션을 지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같은해 1993년도에 빙그레에 사건이 발생하는데,

 

한화.png

 

한화그룹 창업주인 김종회씨가 유언장없이 사망하면서, 한화의 계열사였던 빙그레또한

 

김승연,김호연 2명의 재산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동생 김호연이 빙그레 식품을 얻고 한화그룹에서 독립하게되지만, 

 

 빙그레의 주요 마케팅수단이었던 야구구단 '빙그레 이글스'는 김승연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한화 이글스'로 이름이 변경되고, 

 

 이 시기부터 빙그레는 자금력부족과 주요 마케팅수단의 갑작스런 공백으로 인해 경영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다.

 

 

오뚜기의 입장에선 당면해있던 라이벌 '빙그레'가 이렇게 흔들리는것은 절호의 찬스였었다.

 

 

 

 

참깨라면.jpg스파게티1.jpg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있는 90년대에 승기를 잡아야했던 오뚜기는 끈질기게 신제품을 내놓기로 작정한다. 

 

그렇게해서 스낵면으로부터 3년뒤인 1994년에 '참깨라면'과 '스파게티' 을 출시한다!

 

타사들과달리 80년대말에 시장에 가장 늦게 진입했던 오뚜기는

 

 90년대에 목숨걸고 승부에 나서지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입장이었다.

 

 

 

90년대.png

 

 

농심,삼양,팔도와같은 기존3사들과 경쟁하기도 벅찬와중에 

 

비슷한 포지션의 후발주자였던  '빙그레'가 팔도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선전하면서,

 

하위권하고도 치열한 점유율 싸움을 해야했던것이 90년대의 오뚜기였고,

 

 

아직까지도 오뚜기는 힘없는 다윗에서 크게 변한것이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않고 진라면,스낵면,참깨라면,스파게티 등의 신제품을 계속해서 내놓았던것이

 

시간이점차 흐르면서 시장에서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오뚜기는 지치지않고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내놓는다.

 

마치 과거의 2인자시절 농심이 그랬던것처럼.

 

 

 

청보열라면.jpg

 

그렇게 신제품을 계속개발하던 오뚜기는 재미있는 발상을 하나 하는데, 과거 청보식품이 만들었던

 

열라면을 개량해서 다시 내놓는것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였다.

 

 

열라면.jpg

 

그 아이디어는 실현화되었고,  오뚜기는 참깨라면과 스파게티를 발매한지 2년뒤인

 

1996년에 오뚜기 '열라면'을 출시하게된다!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신제품을 내놓기위해서라면 이러한 리메이크까지 시도하는등

 

오뚜기는 필사적으로 덤비고있었다.  하지만 오뚜기의 적은 너무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하위권 라이벌이었던 빙그레는 오뚜기와 비슷한 점유율을 유지하며 발목을 잡는데,

 

뉴면.jpg

 

다음해인 1997년도에 최초의 MSG 無첨가 라면인 '뉴면'을 빙그레가 출시한다.

 

꽤 화제가 되었었고, 큰 히트를 치지는 못하였으나 매니아층이 형성되는등,

 

빙그레또한 계속해서 라인업을 다양화시키려고 애쓰고있었다.

 

 

매운콩라면.jpg

 

또 다음해인 1998년에는 빙그레는 트렌드를 읽고 '건강마케팅'을 내세운 

 

매운콩라면을 출시하면서 승부수를 띄운다.

 

당시에 시장에서 매운콩라면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나쁘지않은 흥행성적을 내지만

 

 

 

문제는 빙그레의 그룹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있었다.

 

한화로부터 독립하면서 재벌계열사의 풍부한 자금력이라는 이점이 사라져버렸고,

 

주요 마케팅수단중하나였던 빙그레 이글스까지 한화에 뺏겨버린 빙그레는 점점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었다.

 

 

오뚜기 입장에서는 최대의 라이벌인 빙그레가 눈엣가시였지만,

 

그것은 빙그레도 마찬가지였던것이다.

 

진라면을 필두로 몰려오는 오뚜기의 라인업들은 빙그레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기 시작하였고,

 

갈수록 포화되어가는 라면시장에서 제일 늦게 진입했던 오뚜기가 끝끝내 쓰러지지않고 계속해서 버티면서

 

빙그레의 점유율까지 갉아먹기 시작하자 빙그레 그룹내에서는 이런 얘기가 돌기 시작한다.

 

 

 

"라면사업 그거 꼭 해야하나? 연구비랑 설비짓는비용은 많이 잡아먹는데 계속해서 손해만 보고있지않나."

 

 

 

당시 빙그레는 한화로부터 독립하여 자금력이 고갈되어가는 상태였고,

 

더이상 예전처럼 모든 식품사업부에 예산을 투입할정도로 여유가 없는상황이었다.

 

 

바나나우유.jpg

 

갈수록 미래가안보이는 혈투가 계속되고있던 라면사업과 달리 빙그레의 유제품사업부는 상당히 이득을 보고있었고,

 

그룹내에서는 더이상 소모전양상이 되고있는 라면사업을 유지하는것보다는 거기에 쓰이는 자금력을 유제품사업부로

 

집중시켜서 확실하게 경쟁력을 갖추는것을 선택해야한다는 의견이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실제로 90년대말,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빙그레라면사업부는 계속되는 타사와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적자를 보고있었기때문에 애물단지가 된것이다. 매출액은 많았지만 수익이 안나오는 구조였던셈.

 

 

빙그레1.png

 

결국 타사들과의 끝이보이지않는 경쟁에서 지친 빙그레는

 

2003년도에 '라면사업 철수' 를 발표하면서 라면시장은  4개회사 경쟁구도로 급변하게된다.

 

 

빙그레라인.png

 

 

 

 

빙그레의 라인업이 시장에서 순식간에 증발하게되면서

 

 

하위권에서 꿋꿋하게 버텨가며 싸워오던 오뚜기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것이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