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를 좌좀들에게 점령당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정보게이로서 일베를 다시 살리는데 힘을 보태고자 츠츠고 요시토모, 아니 츠츠 고무통 토모로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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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야구 1편: http://www.ilbe.com/9573945188
도미니카 야구 2편: http://www.ilbe.com/9574043437



그리고 이번엔 진짜 천재였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부모 말만 들으면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천재 아닌 아이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천재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단어의 정의를 자기 맘대로 해석해서 말장난 하는 놈들이 너무 흔해지다 보니 이번에도 단어의 정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천재를 논하기 전에 '천재'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내가 생각하는 천재의 조건은 '노력하지 않아도 일반인이 노력한 것 이상의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진짜 천재는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아닌 일을 해서 그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능가하는' 그런 괴물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위대한 야구선수들, 특히 마츠이 히데키나 스즈키 이치로 등은 결코 천재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재능 이상의 노력을 해온 사람들이다. 내가 진정으로 꼽는 야구천재는 야마사키 타케시이다. (일부 일알못들이 야마자키라고 부르는데 야마사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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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타자 야마사키 타케시의 업적부터 이야기해보자. 그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양쪽 모두에서 홈런왕에 등극한 바 있으며 커리어 통산 403홈런을 때려냈다. 커리어 초반에는 징벌성 좌천을 자주 당해 2군에서 처박힌 적이 많았기 때문에 (만일 마츠이 히데키처럼 성격이 수더분했더라면) 커리어 통산 홈런수는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커리어 초반의 방황을 상쇄하듯, 대부분의 천재들이 굵고 짧게 간 것과 달리, 야마사키의 커리어는 27년이나 된다. 이는 일본 야수(내야수+외야수)들 중에서는 최장기록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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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록 보소 ㄷㄷㄷ


야마사키가 천재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운동선수의 육체적 전성기인 10대말부터 30대초반까지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무슨 운동을 해도 잘했다. 게다가 힘도 천하장사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스모를 5일 연습해서 아이치현 우승을 이룩했고, 그래서 스모 스카우터가 5명이나 찾아왔다는 야마사키 전설이 있다. 그러나 야마사키의 집안이 야구를 워낙 좋아해서 스모 입문의 유혹은 거절했다.

장승수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을 남겼지만 천재타자 야마사키는 '야구가 제일 어려웠어요'라고 말했다. 야구의 세세한 테크닉이 너무 복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은 야마사키에게 엄청난 파워와 공을 때리는 재능 두가지를 주었다. 야마사키는 '야구는 어렵긴 해도 그래도 홈런은 쉬우니까'고 말해 천재가 보는 세상은 일반인이 보는 세상과 다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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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의 야마사키. 이 시절의 포지션은 포수였다.


야마사키가 프로야구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프로야구는 고교야구계 굴지의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그에게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었으니까. 그가 있던 아이치대학 부속 메이덴고교는 약소팀이었으나 야마사키만은 강타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야마사키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드래프트 2위 지명을 받아 프로선수가 되었다. 



천재 쟈이안
외국인 야구선수들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크고(182cm/100kg), 힘도 세고, 윗사람 말 잘 안 듣고, 외모도 어딘가 비슷해서 별명은 쟈이안(도라에몬 시리즈에 등장하는 유명한 불량소년. 한국판 이름은 퉁퉁이)이었다. 공교롭게도 쟈이안의 이름은 야마사키와 똑같은 '타케시.'
야구팬들은 엄청난 장타력과 퉁퉁이처럼 천진난만한 애교를 둘다 가진 야마사키를 사랑했다. 그러나 코치들에게 쟈이안은 눈엣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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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가 오리지널 쟈이안보다 더 험악하게 생겼다...


쟈이안은 센트럴리그 소속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그 구단에서 16년의 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당시 주니치의 감독은 선동열의 은사로도 알려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었다. 호시노는 언론으로부터 투장(鬪將)으로 불릴 정도로 선수단을 휘어잡고 공격적인 야구를 주문하는 독재자형 감독이었다.

야마사키는 아무래도 신인선수이고 또 호시노가 워낙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보니 자기 성질을 죽이고 호시노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물론 그 욱하는 성질은 딴데 가지 않아서 피가 치솟으면 호시노에게 대고 "이 영감쟁이!"하고 말하고 그 다음 날 벌벌 떨기도 했다.

호랑이 감독의 눈치를 보며 야구를 하다 보니 야마사키는 야구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 야구는 그냥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홈런을 때려낸 것은 오로지 천재성 때문이었다. 마츠이 히데키가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애정을 받았고 이치로가 오우기 아키라 감독의 애정을 받으며 성장한 것에 비교하면 야마사키는 늘 코치진과 사이가 나빴다. 그런데도 강타자로 군림했으니 진짜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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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센이치. 한국선수들을 남달리 중용한 감독으로 유명함. 튀는 선수를 용납하지 않는 독재자이지만 선수들보다 더 시합에 몰입하며 열정으로 사로잡는 타입. 통도 커서 자기 마음에 드는 활약을 한 선수에게는 자기 주머니에서 만엔 지폐 다발을 한웅큼 용돈으로 주었을 정도로 호탕한 면도 있었다. 하도 혈압이 자주 치솟아서 그런지 몰라도 결국 고혈압으로 감독 일선에서 물러났음.



다시 말하면 야마사키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사회생활용 자아를 만드는 일을 싫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성격에만 충실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타격도 이론보다는 그의 천재성이 시키는대로 배트를 휘두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천재성을 증명하는 일화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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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의 센트럴리그에서의 전성기는 1996년에서 2000년까지이다. 이 기간동안 쟈이안은 131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마츠이 히데키를 누르고) 홈런왕 타이틀도 차지했다. 이 당시의 야마사키는 나무로 된 길쭉한 물체면 그냥 들고 나가 휘둘렀다고 할 정도로 장비에 대해 무관심했다. 마츠이나 이치로 같은 위대한 선수들이 장비 하나하나를 소중히 챙기는 것과는 딴판이다.

1996년 시즌 전, 봄 캠프에서 배팅 연습을 하던 쟈이안은 어쩐지 스윙 타이밍이 미묘하게 느려졌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미즈노에서 보내온 자신의 시그니쳐 배트가 평소 쓰던 것보다 약간 길다는 점을 깨달았다. 왠만한 선수라면 그것을 반품하고 다시 자기가 원하는 길이로 만들어 보내달라고 했겠지만 쟈이안은 그게 귀찮아서 그냥 긴 배트를 가지고 연습했다. 시즌이 개막하고 쟈이안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도 긴 배트로 때려 홈런을 만들었다. 이유는 "긴 배트는 (바깥쪽 공에) 닿던데?" 그리고 1996년 쟈이안은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다. 천재라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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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는 레그킥이 큰 편이지만 천재에게는 상관없다. 그냥 홈런 친다.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였지만 적극적으로 휘두르다 보면 헛스윙이 늘어나는 건 홈런타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1997년에서 1999년까지 야마사키의 타율은 2할5푼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3할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그 내막을 보면...

2000년 시즌을 준비하는 춘계 캠프 중, 야마사키는 타자 전용 스파이크(스윙 때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를 집에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호시노가 이 일을 알면 노발대발할 게 뻔하다. 야마사키는 끙끙 앓다가 감독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캠프 첫날, 야마사키가 스파이크를 신지 않고 일반 야구화를 신고 있음을 발견한 호시노는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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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 너 스파이크 왜 안 신어?"

야마사키는 준비해온 핑계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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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는 타격폼을 개량하기 위해 스파이크를 안 신고 해볼 작정입니다."


그 말을 듣고 호시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스파이크를 신고 쳤을 때보다 더 잘 쳐야 한다는 압박을 가진 야마사키는 적극적인 스윙을 줄이고 공을 유심히 보기로 했다. 그러자 선구안이 갑자기 좋아졌고, 스파이크를 신지 않아 스텝이 미끄러지면 미끄러지는대로 힘을 주지 않고 갖다대는 스윙을 했더니 안타가 급증했다. 그 시즌에 야마사키는 3할1푼1리라는 엄청난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스파이크를 신지 않아 홈런을 치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왠만한 선수에게는 커리어 하이에 해당할) 18개 홈런을 때려냈다. 본능과 감성에 충실한 스윙만으로도 이 정도 기록을 세울 정도이니 그야말로 천재 타자였다.



방황
야마사키의 야구 커리어가 흔들린 것은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호시노 센이치는 2000년 시즌을 끝으로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때까지 야마사키를 통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호시노가 사라지자 야마사키의 제멋대로인 성격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2001년 야마사키는 25홈런을 때렸지만 타율은 2할3푼, 51타점 수준으로 전성기에 비하면 여러모로 미흡했다. 한편 야마사키는 자신의 활약이 4번타자로서 부족하다는 의견을 기자들에게 흘린 감독에게 반발했다. 2002년에는 다시 2군으로 징벌성 좌천을 당했다. 신인 시절이면 몰라도 이미 커리어 16년째의 야마사키는 이러한 대우를 참지 않았다. 결국 그는 FA 선언을 하고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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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릭스에서의 암흑시대...


오릭스로 이적한 첫 시즌 2003년, 야마사키는 22홈런을 때려냈는데 여전한 저타율, 고삼진 문제 때문에 오릭스의 감독은 야마사키를 4번으로 쓰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2004년 시즌 개막으로부터 2일째, 자신이 주전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알자 야마사키는 폭발했다. 그는 자신을 총애하던 구단주를 만나 '감독을 해임하는 게 좋겠습니다'고 건의했다. 쿠데타에 가까운 행위였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감독이 야마사키를 야단치자 그는 시합 도중에 집에 돌아가버렸다. 집에 가기 전에 배트를 감독실 문에 내던지는 폭거를 벌이고.

팀에서는 야마사키를 2군으로 보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야마사키는 2군 시합에서 첫 타석에만 나간 다음에는 곧바로 가방을 챙겨 구장 옆의 공사장에 놀러가서, 건축업자들과 커피와 밥을 먹으며 집 짓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시합이 끝날 즈음에 집에 귀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시즌 1군에서 고작 4개 홈런만 쳤고 오릭스로부터 (당연히) 방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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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때문에 두번째 구단도 그만둔 꼴이 된 야마사키는 야구에서 완전히 은퇴할 생각을 했다. 젊었을 때야 언짢은 기분은 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참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자존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야마사키를 다시 야구로 끌어들인 원동력은 역시 가족이었다. 특히 그의 아들은 당시 초등학생으로 한창 야구를 좋아할 나이였다. 자기 아버지가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다니던 아들의 은퇴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 야마사키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기왕 손뗄 거, 이제는 기록 욕심 내지 말고 1년만 야구를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당시 막 창단한 구단인 라쿠텐 골든이글즈에서 야마사키를 영입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천하의 쟈이안도 이 무렵에는 개인의 영광을 챙기겠다는 욕심을 버린 후였기 때문에 듣보잡 신생구단이 지목해와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커리어 19년째의 베테랑은 신생팀에서 주로 지명타자나 1루수로 뛰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라쿠텐의 연고지는 센다이. 그리고 (2011년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도호쿠 지방이다. 도호쿠는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 지역이기 때문에 일본을 대표하는 강타자 야마사키는 그 지역의 수퍼스타였다. 야마사키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센다이 사람들은 몹시 기뻐했다. 이때부터 야마사키는 '타인을 위해 플레이하는 야구'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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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시절과는 표정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자, 여기서부터는 이 브금을 들으며 가자.




중년의 별
2006년. 야마사키의 커리어 20년째. 라쿠텐의 새 감독으로 명장 노무라 카츠야가 부임해왔다. 야마사키는 센트럴리그에서 자신의 악명을 익히 들어왔을 노무라와 또 싸우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그러나 노무라는 (새 감독과 선수들이 처음 만나는) 겨울 캠프에서부터 야마사키에 대해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노무라의 계산된 '공평한 무시'였다. 노무라는 새 감독이 특정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면 파벌이 형성될 것을 염려해 처음에는 무조건 무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게 2달 정도 지나자, 노무라는 갑자기 야마사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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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는 긴장했다. 노무라는 이렇게 말했다.
"너 성격 나쁘지?"
올 것이 왔구나, 야마사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노무라는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나하고 성격이 비슷하군."
야마사키는 그 순간부터 노무라 감독에게 친밀감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단 두마디의 말로 고집센 베테랑 선수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는 명장의 뛰어난 화술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주일이 지났는데, 노무라가 한창 배트를 휘두르는 야마사키를 불렀다.
"넌 천재 타자야."
"아, 감사합니다."
하고 야마사키가 말하자마자 노무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생각을 안해."
이게 칭찬인가 욕인가... 야마사키의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데 노무라가 이렇게 말했다.
"넌 타석에 들어설 때 무슨 생각을 하냐?"
거짓말을 안하는 것이 쟈이안의 장점이기도 하다. 야마사키는 솔직하게 답했다.
"특별히 생각 안하는데요."
노무라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니가 천재인거야. 공이 보이면 그냥 치려고 하니까."
칭찬이 아니라 욕이었구나... 야마사키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노무라가 또 말했다.
"투수들은 너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너를 상대하는 투수들은 일단 몸쪽 직구는 안 던진다고 생각해라."


노무라는 투수들이 주로 던지는 구종들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다음에 어떤 공을 던질지 예측하는 볼배합을 전술로 쓰는 "ID야구(Important Data)"를 제창한 감독이다. 노무라는 야마사키에게 이렇게 말했다.
"투수들은 생각을 하고 던지는데 네가 생각을 안하고 치면 맞겠느냐? 앞으로 넌 내 곁만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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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는 자신이 팀의 기둥으로 키우려는 선수는 자기 곁에 두고 수시로 상대팀의 작전에 대해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혜를 전수하는 일로 유명한 지도자이다. 그것은 야마사키를 팀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야마사키는 2006년 시즌 내내 노무라 곁에서 그의 지혜를 흡수했다. 주자가 있을 때 상대팀의 에이스가 무슨 구종을 선호하는지, 어떤 경우에 실책이 나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무라가 젊은 선수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곁에서 전부 지켜보았다. 그 경험은 자기 중심적이던 야마사키를 진정한 팀의 기둥으로 바꿔나갔다.


노무라는 야마사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3가지 타입이 있다.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부류, 포상에 의해 움직이는 부류, 그리고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부류. 야마사키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타입이다. 야마사키의 재생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팀의 중심이며 4번타자라는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이었다."

야마사키는 68년생으로 이 당시 이미 38세였다. 장타력을 무기로 삼는 타자에게는 이미 환갑이 지났다고 해도 좋을 나이인데 노무라는 왜 굳이 그런 노장을 챙긴 것일까? 그것은 노무라의 용인술에 대한 철학 때문이었다. "신인을 육성해서 주전으로 활용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미 검증된 선수를 나이가 많다고 버리는 것은 너무 아깝다. 그들도 기회에 따라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 그리고 야마사키의 검증된 장타력은 가뜩이나 인재난에 시달리는 신생팀에게는 매력적인 자원이었다. "파이어볼러와 홈런타자는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천성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노쇠한 선수라 해도 한가지 재주라도 있으면 그것을 살려내는 노무라의 수완은 그에게 '노무라 재생공장'이라는 별명을 안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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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야마사키의 진정한 포텐셜은 2007년 터졌다. 재능만 가지고 플레이하던 20대 시절과 전혀 다른 야구관과 노무라에게 배운 노회함을 가지고 새롭게 퍼시픽리그의 괴물로 재탄생했다.

야마사키는 이렇게 회상한다. "난 20년간 생각을 하고 타석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노무라 감독께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신기하게 공이 배트에 맞기 시작했다. 야구가 재미있어졌다."

야구에 대한 재미를 20년만에야 다시 되찾은 노장은 트레이닝에도 열정을 내기 시작했다. 스윙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해 체중관리를 하며 무려 10kg를 감량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모형 자동차 가격들(야마사키의 취미는 모형 자동차 수집) 이상의 계산을 해본 적이 없는 중년 아저씨가 통계학(투수들의 볼배합)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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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가 20년간 야구보다 더 열심히 하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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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 열심히 하게 된 거. (역시 노안왕 다나카 마사히로, 야마사키와 같은 또래로 보일 정도.)


물론 투수들 중에는 평소와 다른 공을 던지는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감안해도 결국 데이터들이 모이다 보면 결국 결정적일 때 투수가 던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구종을 예측해낼 수 있다. 통계에 근거하여 다음에 날아올 공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과 그냥 날아오는 공을 치려는 것은 성공률부터가 다르다. 더구나 타자는 30%의 성공률만 확보해도 3할타자, 즉 대성공이다. 타고난 재능에만 의존해서 플레이해도 어느 정도 수준의 성적을 꾸준히 내던 선수라면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있을까 귀찮아 하겠지만 야마사키는 달라졌다. 그는 야구의 어려운 부분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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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관록... ㄷㄷㄷ

 
39세의 노장은 2007년에 43홈런, 108타점을 쳐내며 퍼시픽리그의 홈런왕과 타점왕에 등극했다. 야마사키의 활약은 일본 열도의 중년들을 감격시켰고 일본에 '중년의 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만 야마사키는 적극적인 배팅 때문에 삼진도 많았다. 주니치 드래곤즈에서는 한 시즌에 100삼진 이상 당한 적이 없었는데 2007년에는 142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 투수를 연구하는 과정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 또한 노무라의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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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가 범타로 물러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니 노무라가 이렇게 말했다.
"너 삼진 당하는 걸 두려워하지?"
"예."
"많이 휘두르다 보면 삼진은 어쩔 수 없는거야. 그보다도 어떤 상황에서 네가 헛스윙을 했고 어떤 상황에서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졌는지 그걸 파악하란 말이야. 그러면 다음 타석에서는 쳐낼 수 있어."
그때까지는 헛스윙은 쪽팔리고 삼진은 기록에 남으니 재능만으로 플레이하던 시절의 야마사키는 슬럼프일 때에는 배트를 휘두르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악순환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노장이 된 야마사키는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며 상대 투수의 수를 읽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당장의 삼진도 어디까지나 다음을 위한 포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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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의 회춘은 경이적이다.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16년) 야마사키가 쳐낸 홈런은 185개이다. 그런데 라쿠텐 시절 (7년) 야마사키는 총 19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체력적으로 노쇠해졌을 때 오히려 더 많은 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노무라 재생공장을 거론할 때 야마사키의 부활은 반드시 거론된다.




생각하는 힘
야마사키는 노무라의 가르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수가 설령 실수를 했다 해도 그 실수에 근거가 있으면 (판단 미스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행동했다가 실수하면 가장 크게 야단치십니다."

생각을 한 끝에 실수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점이다, 이 사상은 노무라가 오랫동안 선수들에게 심어주려 했던 야구학, 인생철학이었다.

개인 성적의 향상과 더불어 왕년의 반항아는 팀의 리더로 거듭났다. 노무라는 반항아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아예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진정한 인재는 내공을 쌓아온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까 결코 권위에 고분고분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인재와 불평불만 밖에 늘어놓지 못하는 잉여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드러난다. 팀의 주장이 된 야마사키는 약소팀 라쿠텐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2006년 6위로 꼴찌를 했던 팀이 2009년에는 리그 2위를 하게 되었다. 노무라식 리더쉽의 특징은 감독이 선수들에 일일히 간섭하는 것을 꺼리고 선수단 내부에서 베테랑 선수들을 통해 젊은선수들을 각성시키자는 스타일인데 그 점에서는 야마사키는 '노무라 정신'의 충실한 신봉자로 라쿠텐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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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에 커리어 전성기를 맞은 야마사키.
그 원동력은 천재성이 아니라 책임감과 생각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노무라와 야마사키의 라쿠텐에서의 인연은 2009년을 끝으로 끝나게 된다. 라쿠텐이 노무라의 지도 스타일을 단기 성적을 내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해임시켰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외국인 감독 마티 브라운(Marty Brown)을 영입했지만 (2009년에 리그 2위를 기록했던 팀이) 2010년 시즌에 최하위 6위로 막을 내렸다. 당황한 라쿠텐에서는 다시 노무라를 모셔오려고 했지만 이는 당시 이미 고령이었던 노무라가 거절했다. 우왕좌왕한 끝에 라쿠텐은 신임 감독을 새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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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가 바로 호시노 센이치였다.
야마사키와 호시노는 인연도 쌓인 앙금도 많은 관계였지만 2011년까지는 팀웍을 중시하며 비교적 화목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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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그러나 호시노는 팀을 젊은 선수들로 재편성하고 싶어했고 결국 40대의 야마사키는 방출되었다. 물갈이를 통해 중앙집권체제의 팀웍을 다져야 한다고 믿는 호시노와 이미 주어진 인재들을 활용하여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리자는 노무라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아직 자신이 더 활약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야마사키는 은퇴를 거부하고 현역을 이어나갔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옛 친정팀 주니치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3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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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다시는 안 간다더니 왜 도로 갔냐?"고 야마사키를 놀리는 노무라.


야마사키는 자신의 야구 커리어를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말로 은사 노무라 카츠야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나의 27년 야구인생 중에서 야구가 즐거웠던 적은 노무라 감독을 모셨던 4년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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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야마사키는 가장 인기있는 야구 해설가들 중 한명이다. 해설가로서 새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노무라 감독 덕분에 야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천재에서 리더로
맨 앞머리에서 썼듯이 누구나 천재이다. 누구나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편피노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잉여+페미 남혐인순도 한때는 천재 소리를 듣던 인재들이었다.

사람들이 천재성을 잃어가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제도권 교육이 그들의 천재성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재능을 발견해도 자신을 과시하려는 허세에 사로접혀 노력을 안하기 때문이다.

야마사키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한 야구에서 최고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리고 정말 운좋게도 인간관계가 엉망일 때에도 오로지 그 타격 재능이 인생을 하드캐리했을 정도로 재능의 질도 달랐다. 그러나 어느 재능이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계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야마사키의 전성기는 30대 후반이다. 활약상으로도 기록상으로도 그는 30대 후반에 최고의 성적을 내었다. 이것은 야마사키가 천재가 아니라 리더가 되었기 때문이다.

야마사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강연(갑자기 제멋대로의 헌법 해석이나 하고 다니는 좆제동 강연을 들을바에는 중년의 별의 강연을 듣는 게 훨씬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의 제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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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홈런왕을 리더로 키워낸 스승의 존재"


요즘 한국을 보면서 느끼는 게 진짜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은 싫어하는데 깨어있다는 대접은 또 받으려고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았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다.
조선시대에는 양반 계층만이 씹선비질을 했지만 요즘은 배울만큼 배웠다는 사법부 재판관에서부터 노조 양아치들까지 모조리 자기 생각이 옳다고 씹선비질을 한다.

지난 몇달간 일베에서 틀딱이니 틀무새니 분열이 좀 있었지만 앞으로는 좌파에 맞서 단결하리라 믿는다. 물론 진짜 분탕홍어들은 지 개버릇 버리지 못하겠지만.
지금 한국인들은 야마사키와 같은 신세이다. 야마사키가 홈런을 치는 재능만으로 (한심한 타율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선수 밥을 먹은 것처럼, 현재의 한국인들도 윗세대의 한강의 기적이 남겨준 재력과 인프라 덕분에 아직까지는 다른 개발도상국들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엠창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제 대한민국은 박정희 리더쉽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너희들, 호시노 감독 같은 사람 밑에서 벌벌 떨면서 야구하고 싶으냐? 호시노 감독 스타일로 ㅆㅅㅌㅊ 성적을 기록한다 해도?
지금은 호시노 감독도 많이 순해졌다. 고혈압 탓도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 독재야구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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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리더쉽으로 능력이 딸리는 애들까지 하드캐리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야마사키가 늦은 나이에 각성하여 리더가 되었듯이 이제 일게이들은 리더가 되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리더 아니면 엠창이다. 중간은 없다. 묻어가는 것도 없다.
리더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각자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삼진을 당해도 그것을 다음 타석을 위한 포석으로 삼은 야마사키처럼, 오늘의 작은 실패는 내일의 거름이 된다. 그렇게 되야 한다.
안 그러면 엠창 확정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파가 집권하든 좌파가 집권하든 빈부격차는 상당히 벌어질 것이다.
트럼프 같은 친기업 성향에 좌파에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땅크가 집권하지 않으면 몰라도 지금의 정치판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훨씬 좌경화된 정권이 나올 것이다.
진짜 문제는 정치권과 상관없이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게이들이 살아남으려면 엠창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는 수 밖에 없다. 노장인데도 젊은선수들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한 야마사키처럼. 


야마사키처럼 인생 막판에서 전성기를 누리려면
1. 주변 환경에 대한 원망은 무의미함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2. 변명은 다 필요없고 앞으로는 무조건 자신의 단점을 고쳐야 함. (장점이나 재능, 가능성만으로 먹어주는 것은 20대 초반 뿐.)
3. 이기적이고 통수 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야 함. 통수 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천재가 아니라 리더가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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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 현역 시절, 당시 야쿠르트 스왈로즈 용병이었던 알렉스 라미레스와 함께. (1루 수비는 잘했지만 골든글러브 수상까지는 못했다)
라미레스도 노력을 계속하여 천재타자에서 리더가 되었다. 그는 지금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