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착취’란 말이 성립 가능 했던 영역은 외국엘리트 기준의 국제정치경제학

 

 

서구 엘리트가 쓴 책자를 보면 군사정권 때 민중들이 상상을 초월하게 낮은 임금으로, 서구 사회의 생산품을 값싸게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죄책 고백을 하는 글을 본다.

 

그러나, 한국인의 맥락에서는 그런 정치경제학적 구도는 착취적 구조가 아니다. 존나게 못난 후진국가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서구 엘리트는 국제정치경제학 구조에서 한국 민중을 착취적 관계로 서 있다고 죄책고백하는 사례가, 자료를 보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당시 사고도 그것은 배운 놈들의 배부른 소리일 뿐이며, 일단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팔 수 있는 것만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본다.

 

70년대 후반부터 저임금 문제의 민중항쟁이 적지 않았는데, 그것은 서구 기독교 계열의 사회주의자들이 후원해서 빚어진 것인데, 한국 기업가에겐 유일하게 해외에서 살아남는 그 방법을 아니라고 하면 우얄까? 하는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왔다.

 

(촛불 민심을 노벨평화상으로 .. 운운하는 한국문화와 서구 문화 차이를 가지고 해먹는 정치테크를 보면서, 그때도 한국 맥락과 전혀 다른 서구인의 맥락을 이용하는 일이 있다고 본다)

 

사실, 최저임금 1만원 드립처럼 원색적으로 많이 받으면 그게 장땡인 심리(한국)와, 국제정치경제학에서의 서구 사회주의 기독교인의 죄책고백(유럽)의 맞물림이 과거도 분명히 존재했다고 본다.

 

그때 저임금을 이용했던 한국은 중국에서 그렇게 하다가 거의 팽당하고, 북한을 그럴 수 있다며 바라보지만 탈북자는 그런 통일이 싫다고 한다. 다른 사회의 저임금을 이용하는 경제를 사용한다고 죄책고백을 하던 서구 유럽의 엘리트 감정은, 오늘의 한국인에겐 거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운놈들의 사치로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