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NLPDR)은
대한민국 사회를 미국 제국주의의 '반(半)식민지 반(半)자본주의' 사회로 평가하는 견해이며 줄여서 민족 해방파(NL)라고 불린다.
민족 해방파는 제국주의 대 민중을 대립관계로 보고 모든 투쟁에서 항상 반미 자주화를 기본적 투쟁으로 설정하였다.
조선로동당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수용하여
형성된 주체사상파(약칭 '주사파') 정파가 있으며, 다른 정파인 '비주사 NL' 또는 'NL-left'는 이와 달리 본래 제헌의회파(CA) 계열이었다.
제헌의회파(制憲議會派, Constituent Assembly)는
대한민국 학생운동권의 한 부류로 한국 자본주의가 비록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단계에 있다고 할지라도 제국주의의 국제 분업질서에 예속되어서 규제를 받기 때문에 생산적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를 인식하고 있었다.
사회 변혁의 노선으로는 '민족민주혁명'을 따른다.
(개요 )
1986년의 5·3 인천사태 직후 첫선을 보였다.
김문수 현 경기도 도지사를 비롯해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 유시민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박노해 시인 등이 참여하고 있던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CA그룹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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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金文洙, 1951년 8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32·33대 경기도지사이다.
김문수는 1951년 8월 27일에 경상북도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대학 입학 후 1970년 초 그는 대학 내 모임인 후진국 사회연구원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서울대생에서 김근태와 함께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노동자로 위장취업하여 위장 취업노동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구로공단 위장취업 시절 그는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당시 노동계몽운동을 하던 고대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나 그로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 영등포공장 이야기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던 비화 등을 접하며 한국노동계의 현실을 체험하였다
그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구로공단 위장취업 당시 그는 오전에는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고, 저녁에는 사람들과 만나 담론 토론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한다
1971년 10월 15일에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 관련해 제적됐다. 1971년부터 72년까지 고향 경북 영천에서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을 했으며, 1974년에는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하여 제적됐다. 이후 1994년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입학 후 25년 만에 뒤늦게 졸업했다.
병역과 관련해서는 1971년에 중이염을 이유로 군 면제를 받아서 군대에 가지 않았다
1984년 방용석 등과 함께 '한국노동자복지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서 만난 안선모 등을 출판사 등에 소개를 주선해주기도 하였다
그해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에 피선되고,1985년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이후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과도 교류하였다.
85년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 (서노련)이 출범하자
그는 심상정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서노련 지도위원 등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의 결성을 주도한 사람은
김문수, 심상정, 박노해 등이었으며, 이 밖에도 여러 노동운동가들과 유시민, 백태웅 등 학생운동 출신들도 합류하였다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중당
창당 : 1990년 11월 10일
선행조직
한겨레민주당
후계정당
건설국민승리21, 민주자유당
이념/정치노선
사회주의
진보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좌익
상징색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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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沈相奵, 1959년 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80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서울대학교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되었다
그 해에, 위장취업으로 구로공단으로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등 노동운동을 펼쳤다
대우어패럴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1985년 6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 최초의 정치적 연대파업투쟁인 구로동맹파업에 나섰다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 노동하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1980년대 초에도 이러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었다
심상정은 구로동맹파업으로 1993년까지 10년간 수배되었으며, 1993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2001년 2월 대한민국 정부는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하였다
구로동맹파업 이후 심상정은 조직적인 민주노조운동에 나섰다.
구로동맹파업에 대한 정권의 탄압으로 개별 기업 단위 노동조합만으로는 노동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1985년 8월 심상정은 기업 단위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대중 정치 조직으로서 '서울노동운동연합(이하 서노련)' 창립에 함께 하였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은 노동조합의 교육과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86년 5월 1일 구로공단에서 노동절 기념집회를 주도하였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와해 이후에도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민주화와 노동권의 확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단.
심상정은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자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대한민국에서 1990년에 결성하여 1995년에 해산한 노동조합의 상위단체이다.
민주노총의 설립과 함께 해산되었으며 약칭은 전노협이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함께 전국적인 민주노조 운동이 발생하였으며, 특히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일어났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열기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설립이 급증하였으며 소위 어용노조에 대항하는 민주노조를 설립하는 움직임이 활발하였다.
노동조합의 설립은
1989년 최대에 이르렀고 많은 노동조합에서 기존의 한국노총을 대신하는 새로운 상급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어
1989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준비를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1990년 1월 22일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수원 소재)에서 창립대의원대회를 열고 단병호를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이날의 창립대회는 원래 서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성균관대 수원캠퍼스로 옮겨 치러졌으며 창립대회 직후 130여명의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연행되었다
이날 전노협은 창립선언문에서 노동기본권의 쟁취, 비민주시대의 청산 등을 자신들의 과제로 선언하였다
당시 정부는 복수노조를 금지하고 노동쟁의의 제3자 개입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등 노동자에 대해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 등 국제기구가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으나 전노협의 해산과 민주노총 결성에 이를때 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노협은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수배와 체포를 반복하였다
민주노총준비위가 활동하던 1995년에도 전노협은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양규헌 전노협 위원장은 현상수배되었고,
단병호 전위원장은 3자개입 구속,
문성현 사무총장의 구속,
대구노련 정우달,
박용선 의장의 구속,
마창노련 이승필 의장의 수배,
부양노련 문영만 의장의 구속,
광노협 김상진 의장의 구속,
부노협 박양희의장의 구속 등 어느 해보다 많은 지도부의 구속과 수배가 있었다.
이에 맞서 전노협은 한편으로 조직을 사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1995년 11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결성된 후, 전노협은 12월 3일 발전적 해소를 선언하였다
주요인물 ▼
권영길▶일본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권우현은 빨치산 출신으로, 권영길을 낳기 5년 전인 1936년에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1941년에 권영길의 어머니인 하영애가 일본으로 건너왔으며, 권영길은 이때 태어났다
. 이후 권우현과 하영애는 도쿄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다가, 권영길이 다섯 살이 되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져서 잿더미가 되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
2008년 권영길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1960년대 말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를 암살하려는 비밀 조직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인물들 찾아 보앗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