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만 바라보는 남자
뭔가 걱정하고있는 남자를 찍은 이 사진은 1870년대 콩고에서 찍힌 사진이다. 당시 콩고는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의 풍부한 자원인 고무에 대하여 눈독을 들였다.
원주민을 시켜서 플렌테이션 산업을 시키고 결과물을 값싸게 착취하는 것은 그나마 폭정 선에서 머무르는 것이었지만
레오폴드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고무는 응고된 수액으로 '눈물 흘리는 나무'라고 불리는 고무나무에서 채취되는데 이 채취과정에서 콩고 원주민들은 열대우림의
넓은 지역으로 나가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일을 해야만 했다.
원주민들에게는 보호장비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나무에서 떨어져 등이나 다리, 팔등이 부러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부상자가 생기면 자연히 수익에 차질이 생겼으므로 레오폴드 2세는 원주민들이 실수 하지 않도록 한가지 '계책'을 마련했다.
바로 원주민들에게 개인별로 생산 할당량을 지정하고는 이를 맞추지 못한 자들이 생길 시
첫번째는 손만 자르고 살려주었고 두번째는 아예 한쪽 팔을 잘라버렸으며 거기에 세번째까지 채우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했다.
그리고 이러한 할당량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가족이나 주변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이양되었다.
자신의 할당량도 채우지 못할 판에 다른 가족의 할당량까지 뒤집어쓴 사람들은 결국 처형당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사진의 남자가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던 것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자신의 딸의 잘려나간 발과 손이다.
이 남자는 이순간에 자신의 딸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할당량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을까?
어딘가를 주시하는 남자
무릎을 꿇은채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남자를 찍은 이 사진은 1941년 우크라이나 빈니차에서 찍혔다.
그러나 당시 빈니차가 속한 유럽은 2차대전 중이었고 나치 독일의 침공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악명을 떨치던 나치 군대 소속중에서도 최악의 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 부대는 인종 청소만을 목적으로 삼은 나치독일의
대량 살상 조직이였다.
당시 빈니차는 유태인 자치구의 하나로 28000여 명의 유태인들이 살고있었지만 이들이 다녀간 뒤로는 한명의 유태인도 남지 않았다.
위에 사진은 아인자츠그루펜의 대원이 시신들이 채워지고 있는 집단학살 무덤 앞에 꿇어 앉아 있는 유태인을 향해 쏘기 바로전에
찍은 사진이다.
1943년 미확인된 독일군의 앨범에 채워져 있었고 사진의 뒤에는 '빈니차의 마지막 유태인'이라는 글귀만이 남아있었다.
일그러진 여성의 얼굴
그 당시 흔하게 있던 빈민을 찍은 사진 같기도 한 이 사진은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찍힌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에 얽힌 이야기는 조금 특이하다.
블랑셰 모니라는 이 여성은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고 성장한 영애였다.
그러나 그녀가 25살이 되던 1876년에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을 상상도 못한 채 그녀는 파산한 변호사와 사랑에 빠지게 됬다.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는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을 해야하는 관습이 있었던 터라 사랑을 선택한 대가는 끔찍한 비극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왔다.
무려 25년간 가족에 의해 빛도 들어오지 않는 다락방에 감금 되어버렸다. 그녀의 동생은 그녀를 이해하였고 동정했지만 어머니의 완고함에 애써 외면해야만 했다.
이러한 범죄행위에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태연했다. 딸을 다락방에 가둬둔 채 도시에 관대한 기부와 예술작품을 출품하여 '작품위원회'로 부터 상을 받으며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바빳다.
딸에게 내린 가혹한 벌은 변호사가 죽은 1885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한 여성이 25년간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다락방에 갇혀 있다는 익명의 편지가 1901년 당시 파리의 법무장관인 뮤슈 앞으로 날아온 뒤
편지에 충격을 받은 법무장관은 모니패밀리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보내 주택을 조사하여 다락방에서 피폐해진 블랑셰를 발견했다.
발견될 당시 음식물과 배설물로 덮인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엇던 그녀는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야윈 25kg에 몸무게에 불과하였고
빛을 바라 볼 수 없었던 그녀는 간신히 실눈을 뜬 채로 사람들을 바라봤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가난한 변화사와 사랑에 빠져 다락에 가뒀다고 자백한 후 15일이 지나 감옥에서 사망했고 언니의 감금사실을 알고도 외면한 동생은 1년 3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블랑쉬는 62세의 나이로 1913년에 요양원에서 사망했는데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묶여있는 여인
공포에 질려있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1950년대 중반 미국의 '하비 글래트먼'이 찍은 사진이다.
일명 '결박 살해자' 라고 불린 연쇄 살인범인 하비 글래트먼은 어릴때부터 황홀감을 느끼려고 다락방에 조명을 설치한채로 자위행위에 깊이 빠졌었다.
130수준의 뛰어난 아이큐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외모에 대해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글래트먼은 오직 쾌락에 심취하여 열등감을 지우려고 했었다.
이러한 이상행동을 본 가족들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고 의사가 내린 조언은 글래트먼에게 활동적인 일에 심취할 수 있게끔 도와주라는 말이었다.
의사의 권유대로 가족은 글래트먼에게 사진촬영을 권했고, 글래트먼은 점점 정상으로 돌아가는듯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직 쾌락만을 갈구했던 글래트먼에게 사진은 부가적인 요소였고. 그의 머리에는 사진속의 여자들을 몽환적으로 느끼게 된 글래트먼에겐 이들을 파괴하고 싶은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게 됬다.
이후 마땅한 직업이 없이 떠돌던 글래트먼은 가족의 재산으로 사진관을 만들어 어린 연예인 지망생에게 자신을 사진기사로 소개한 후
영화배우를 위한 사진을 찍어준다고 피해자들에게 접근해서 노끈에 묶여 공포에 질린 포즈를 취해주면 시간당 20달러를 주겠다며 유혹했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피해자들은 하비의 말만 듣고 아무런 의심없이 하비를 따라갔지만 그가 말했던것들이 모두 끔찍한 사실로 바뀌게 되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두명의 여성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해 당한 뒤 1958년 여성을 총으로 위협하는 하비 글래트먼을 경찰 순찰대가 극적으로 찾아
검거했다.
글래트먼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그의 집에서 공포의 질려있는 여성의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글래트먼은 1급살인의 죄목으로 1959년에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ㅁㅈㅎ는 달게 받을테니 그냥 재밌게 읽어줫으면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