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오래전에 내가 썼던 불교에 대한 글을 다시 갈무리해서 올리는 거야 ㅋㅋㅋ
근데 어차피 검색해도 안나오니깐 재업은 아닐듯?
당시 하나만 올리고 연재는 안했는데 시간나면 연재까지 해보려고 한당
불교는 우리에겐 아주 친근한 종교이지만, 그 장황함에 일반인들은 불교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개념외엔 잘 알지를 못해
물론 좋은 책들이 많기 때문에 불교에 관심이 있다면 서적을 통해 불교의 기원이나 종파, 교학등을 배울수 있지만 존나 어렵다 이기야~
그래서 불교를 알기 쉽고 간단하게 풀어보고자 글을 써본당
처음이니 일단 불교가 어떻게 성립이 되고 발전해왔는지 알아보도록 할거야.
교학을 중심으로 설명해볼께
히말라야 근처의 작은 나라의 왕자였던 싯다르타는 외출중에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
그리고 29세때 큰 뜻을 품고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하게 되지
그 당시 인도에도 당연히 힌두교를 비롯한 수없이 많은 종교와 수행법이 유행했지
고대의 문명인 이집트의 신비학, 아랍의 연금술과 마술들, 메소포타미아의 숨겨진 태양의 전승, 입으로만 전해지던 조로아스터교 그외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수없는 종교들이 있었겠지
싯다르타는 유명한 스승들을 찾아가 당대 존재한 모든 수행법을 성취하고, 모든 무술을 단련하고, 모든 학문을 연구했어
그렇게 불굴의 노력으로 수없이 깨달고 성취했지. 하지만 거기엔 자신이 찾는 답이 없었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에 설산에서 다년간의 고행에 들어가
매일 말린 과일 한 조각만 먹는 끔찍한 고행속에서도 무상정을 수행한지 3년이 지나 그 마저도 성취하였지만 여기서도 답을 찾지못해..
그래서 수행을 포기하고 오랜 고행으로 약해진 몸을 이끌며 길을 가다가 한 여인이 봉양한 음식을 먹고 겨우 기력을 회복하지
그렇게 길을 걷다 보리수 나무를 발견하고 거기에 휴식을 취하며 정좌를 하지
당시 그 심정이 어땠을까.. 엄청나게 비참했을꺼야 왕자라는 다이아몬드수저를 버리고 괜히 출가를 해서 수없이 배우고 익혔는데 결국 답도 찾지 못하고 남은 건 말라비틀어진 몸뚱아리 하나야..
게다가 이젠 더 배울 학문도 수행법도 존재 하지 않았어.
그래서 부처님은 선언을 하지
바로 여기서 답을 찾지 못하면 죽겠다는 거야
그런 후 문득 고개를 들어 새벽별을 보시곤 멸수상정에 드신 후 홀연히 깨달으셨지.
이렇게 깨달은 후 부처님이 이렇게 생각하셨어
"이 깨달음은 너무나 오묘해서 중생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대로 열반에 들자"
이 생각에 깜놀한 온 세계의 천인들이 몰려와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설법을 하시라고 굽신굽신 거려
그중 범천(힌두교 최고의 신인 브라마)의 진솔하고 간절한 청원때문에 겨우 부처님이 마음을 돌려 설법을 하시기로 결심해
그리곤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을 행하셨고, 이것이 바로 불교의 기원이야
자 당연히 종교의 교조에 대해선 사실과 환상이 뒤섞여있으니 적당히 걸러서 읽으면 되
하지만 다른 종교와 다르게 석가여래의 일대기는 참으로 지난한 고행의 여정과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열망이 느껴져서 가슴이 울컥하기도 해
그럼 이제 불교에 대해 알아볼까?
어떤 종교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불교는 한번에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실로 난해한 종교야
수천년의 시간을 거쳐가며 온갖 천재들의 지적 노력과 몸을 바쳐가며 얻어낸 수행의 증험을 토대로 발전을 해 왔기 때문이지
지금이야 최첨단의 지식이라고 하면 과학과 금융이겠지만 당시에는 종교였거든..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호킹같은 천재들 수천 수만명이 일생을 바쳐 매진해 발전 시켜 온 것인데 한번에 이해를 하겠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
그렇기에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차근히 시대순으로 감을 잡아가며 어떻게 불교의 이론이 발전했는지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어.
우선 인도의 불교에 대해서 알아볼께
먼저 인도 불교는 아래 세가지로 나뉘어져
1. 원시불교 - 바로 부처님이 창시하신 모습 그대로의 불교야 하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엉
2. 부파불교 - 부처님이 입적하신 후 100년이 지나서 불교내에서 계율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대립이 일어나는데 이때 상좌부불교와 대중부불교가 나뉘어져.
이중 상좌부불교가 또 내부에서 이런저런 대립으로 20개파로 나뉘어져 이걸 하나로 퉁쳐서 부르는게 부파불교야
그냥 상좌부불교 혹은 소승불교라고도 해
하지만 소승불교라고 하면 아주 싫어하지. 대중부불교에서 상좌부불교를 낮추어 칭하는 말이거든.
미얀마등의 동남아에 퍼져있는 불교가 이 상좌부 불교야
보통 생각하는 출가해서 머리깍고 속세를 여의고 계율을 중시하고 금욕을 하며 수행삼매의 생을 보내는 스님을 떠올리면 되지
가장 큰 특징은 보살이라는 개념이 대중부에서 나왔기때문에 보살이나 부처를 목표를 하지 않고 아라한을 목표로 해
어떤 차이이냐면 그냥 나만 깨달고 나만 해탈하면 끝. 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이건 크게 비약해서 비유한거라 그냥 비슷하게 이해하면 됨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중 하나인 유마경에서 이 아라한을 대놓고 디스하지 ㅋㅋㅋㅋㅋㅋ
3. 대중부불교 - 위의 불교들은 오직 출가자를 위주로 한 교단이야 여기에 반해서 일반인들도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불교를 신봉할 수 있다! 하고 총기를 들고 일어난.....이 아니고 ㅋㅋ 걍 들고 일어난 게 대중부야
그래서 머리를 깍지 않고 본래의 삶속에서 불교를 지향하는 재가불자를 포함하고 있어. 이 대중부불교에서 보살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
보살과 아라한과의 차이는 지장보살님의 발심을 보면 되
지옥에 있는 중생들까지 모두 열반에 들지 못하면 자신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하셨지
바로 알겠지? 나 혼자 깨달아 열반에 들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대중부에서 연기법이 나오게 되는거지
여기서 부파불교와 대중부는 각각 두가지로 또 나눠져
부파는 설일체유부와 경량부로
대중부는 유식학파와 중관학파로 나뉘어져
자세히 파고 들어가는 것은 방대하니깐 간단하게 중요한 부분만 짚고 넘어갈께 사소한 오류는 이해해줘
1. 부파불교는 설일체유부와 경량부로 나눠져
a. 설일체유부 (줄여서 유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래가 와서 현재가 되고 과거로 사라져가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 인지하는 것은 육경 육근 육식 이 세가지 개념이 어울려져 이루어지지
바로 눈이나 혀같은 기관(육근)과 색과 맛등과 같은 외부세계(육경)와 그 둘이 만나 인지하는 과정(육식)이야
정보 -> 접촉 -> 인지
예를 들어 설탕을 맛 본다고 하면 육근인 "혀"와 육경인 "설탕"과 혀과 설탕이 만나서 맛을 느끼는 과정인 육식으로 이루어져
하지만 이렇게 해버리면 꿈이라던가 상상으로 무언가를 본다던가 과거를 떠올린다던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가 없어
그래서 유부 학파는 그러한 것들이 "실제로" 외부에 존재한다고 가정하게 되
상상 꿈 환각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야
육근이란 것은 단지 외부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뿐이지 이 자체가 주체가 되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순 없다는 거지
그러다보니 수도 없는 많은 존재들을 인정해야 되어 상당히 난잡해져가
게다가 잘못된 행동등을 하는 것도 이런저런 업이 실제로 존재해서 작용되는 거라 여겨버리기에 업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돼
이렇게 업과 번뇌가 사라진 모든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무위의 세계를 바라게 되므로 (즉 천국) 힌두교랑 별반 다를바가 없어지지
게다가 모래 한톨같은 번뇌조차 벗어나야 하니 실천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출가자아니면 엄두도 못냈지 그러다보니 전반적으로 친 출가자 불교가 되버려
아무튼 이러한 업과 번뇌에서 벗어난 존재를 아라한으로 칭해
아라한도 두가지가 있는데 육체를 지닌 아라한과 죽어서 육체가 없는 아라한이야
전자를 불안정한 열반이라고 해서 유여의열반, 후자를 완전한 열반이라고 해서 무여의열반이라고 불러
b.경량부
경량부는 현재 그다지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그 모습이 다 밝혀져 있지 않아
경량부는 설일체유부에 속한 경전을 좋아하고 연구하던 사람의 모임이었어
그니깐 한마디로 동호회임 ㅋ
하지만 유부에게 ㄴㄴ 니들 틀렸음! 하고
외부대상을 인지하는 것이 거울처럼 그대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대상을 심상으로 그려내고 그 심상을 육근이 인지한다고 반박해버림으로 갈라지게 돼
왜냐면 유부의 설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다원적 실재론이라던가 영원한 변하지 않는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불교가 아니게 되거든
불교는 기본적인 참나나 참된 본성같은 영원성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아. 인정하는 순간 힌두교라고 보면 됨
경량부는 꿈이랑 상상등도 지금 존재하는 것을 본다는 것을 부정하고 과거에 인지했던 육경(외부세계)이 마음에 새겨져 그 심상을 보는 것이라고 여긴거지
설일체유부의 말대로라면 과거를 보는 것은 실제로 눈앞에 무표업이라는 존재가 있어 그것을 보고 과거로 인지한다면
경량부는 과거가 내 마음에 새겨져 지금 그것을 떠올리는 것 바로 흔적 즉 심상을 본다고 설한거지
바로 심상의 존재를 인정한거야 정보-> 접촉-> 재구성-> 인지 라는 과정으로 이해한 거지
현재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도 우리의 인지과정은 기관이 받아들인 후 일차적으로 뇌에서 처리 된 후 보거나 느낀다는거야
경량부는 이미 2400년전에 이 개념을 확립해버림 ㅎㄷㄷ
하지만! 이 이론도 결함이 있었어
그것은 바로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은 어떻게 떠올릴 수 있냐는 거지
예를 들면 삼각형을 보면 우리는 뇌의 창의력으로 다양한 형태의 삼각형과 다각형들 그리고 그것으로 구성된 어떤 존재들을 보지 않고도 연상 할수가 있잖아? 수없는 패러디물처럼 말야 ㅋㅋ
이 부분을 유식학파에게 비판을 받고 입이 쏙 들어가게 돼
2. 대중부불교는 중관학파, 유식학파로 나눠짐
a. 유식학파
유식학파까지 왔다 ㅎㄷㄷ
글은 짧지만 참 쓰기가 어렵다 ㅅㅂ 역시 문외한에 가까워서 술술 쓰여지지가 않네
암튼 계속 진행해본당 ㅋ
유식학파가 경량부를 비판했지?
만일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심상을 떠올린다면 한번도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떠올리수 있냐고 말야
그래서 야! 늬들 틀렸심 내가 진짜 답을 갈켜줄께 하고 자신의 썰을 풀어
바로 외부대상이 존재 하지 않고! 오직 심상만 있다고 말야
경량부까진 현재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었지? 외부 존재가 있고, 그것이 이미지로 남고 그 이미지를 인지하는 건 말야
아니! 우리가 보고 느끼는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다구?!
자 유식학파는 뭘 근거로 저런 소리를 한걸까?
유식학파는 요가 수행을 하는 불교인을 의미해 그래서 요가학파라고도 불러
다시 말하지만 불교가 창시되기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종교와 수행법이 있었어
그중에서는 당연히 부처님만큼의 수행력과 공덕이 깊은 사람들도 있었을거야
그러한 수행법도 많이 불교에 유입이 되었고 이 수행을 하며 얻은 많은 것들이 불교의 이론을 정립하는데에 크게 영향을 주었어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게 힌두교이며 유식을 제대로 이해할려면 육파철학(힌두사상)의 이해가 필요해
불교에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란게 존재하는 것은 다들 알거야
그리고 사선팔정이라는 방편으로 열반에 들지
색계는 육근이 아직 작동하는 단계이구 (즉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등이 가능한) 무색계는 그러한 육근의 작동이 멈추는 단계야
봐봐 우리의 육근 즉 감각기관과 사고작용이 모두 정지 한다고 생각해봐 그럼 우리는 죽은것과 다를바가 없잖아?
이 상태에서 뭔가를 생각한다던가 느낀다던가 하는게 불가능하겠지? 마치 꿈을 꾸지 않고 자는 것 처럼
근데 유식학파의 승려들은 무색계에 들어서고도 무언가 미세한 의식작용이 있음을 발견해
그리고 이것을 아뢰야식이라고 명명해
이 아뢰야식중 극히 일부분을 묶은것이 말나식이고 이게 바로 나를 나라고 여기는 자아가 돼
유식학파는 모든 심상이 이 아뢰야식에 담겨있고 그저 말나식이 육근으로 아뢰야식의 심상을 인지하는게 전부라고 해버린거지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교류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야
융학파의 집단 무의식과도 비슷한데
이 세계엔 나 말고는 오직 심상만이 존재하는거지
유식학파는 이것을 실제로 체험한 후, 유가사지론등으로 이 학설을 발전시켜 나가
하지만 이것도 오류가 있었어
아뢰야식의 일부분을 묶은것이 말나식 즉 자아라구 했지?
그렇다면 아뢰야식은 좋고 나쁘던 모든 가능한 심상이 다 같이 들어있어야 해
그래야 병이라던지 살인이라던지 등등 좋지 않은 현상이 설명가능해져
말나식이 이 아뢰야식의 일부분을 묶은 것이라면 하필 안좋은 심상만 묶어버린다면?
그럼 이 말나식이 어떻게 묶이느냐에 따라 내가 부처가 될지 거지가 될지 결정된다는 결론으로 치닫게 돼
어떻게 보면 이것은 새로운 카스트제도가 되어버리는거야
자 이것은 인도가 아닌 동방불교에 의해 해결되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동방불교으로 넘어가면 그때 썰을 풀고 중관학파로 가도록 하쟝
아 유식학파는 그 유명한 서유기의 현장법사에 의해 중국에 유입됨
그리고 위의 유식학파는 정확히는 유형상유식파이고 무형상유식파라고 있는데
이 유식파는 아뢰야식에 모든 심상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생겼나다가 사라진다고 보고 있어..
그래서 새로운 가설인 무구식을 말했는데, 현장측에 의해 비판을 받아 거의 묻히다시피해..지못미;;
b.중관학파
휴 드디어 마지막이다..
중관학파은 사구부정과 공(空) 사상으로 유명해
불교에서 공이나 공성이 나오면 중관학파임 ㅋ
유식과 중관이 대중부불교의 두 기둥으로 대중부의 정점에 있는 거야
지금 우리가 접하는 한국의 불교도 많은 관련이 있어.
여기까지 온다면 이제 글로만은 이해가 쉽지도 않고 전달하기도 쉽지않아
다음 설명들도 오류가 많기에 걸려들어야 할 거야
더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도 좋구..
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은 그만의 이유가 있다고들 생각해왔어.
하지만 중관학파는 이 것을 돌직구로 반박을 하지
우리가 존재하는 데에 뭔가 심오한 이유 따윈 없다.
존재의 뿌리를 파헤쳐보니 그냥 비어있다 이기야!
이 것을 무자성이라고 말해
자 이건 존나 오해하기 쉬운거야
실제로 중국인들은 이것을 오해해서 공을 정말로 현실자체가 비어있다고 생각해버려
하지만 그렇지 않아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이름이 없다고 그 사람이 사라질까?
나무가 이름이 없다고 그것이 나무의 본질에서 벗어날까?
그건 아닐꺼야
그래서 가장 먼저 이러한 저러한 개념은 실제로 비어있음을 말하는 게 개념의 공성이야.
우리가 규정짓는 모든 개념의 실체는 없다는 거지
다음으로 실체의 공성으로 넘어가
어떤 물질이 존재하라면 조건이 필요하고 이 조건이 사라지면 그 물질을 사라져가
이렇게 나타나고 사라지는지는 현상이 있을뿐 그것이 이루어지는 원인과 결과는 알수 없기에 이 역시 공이라는 거야
즉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이유 따윈없다는 거야
우리의 인생도 이벤트이며
우주가 생성되고 사라지는 것도 이벤트일뿐이야
중요한 건 바로 이러한 현상들은 스스로 일어나 스스로 사라지기에 규정짓지 말고 그대로 풀어놓아야만 한다는 거지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서기에 중관학파라고 칭해지게 되
바로 모든것에 아니오! 라고 외치는거지
절대적 부정인 중관학파는 곧 절대적인 긍정인 화엄사상으로 이어지게 되
설명이 장황해지는데 이것은 나도 잘 이해를 못해서 그래
여기까지 오면 모든 학설과 이론을 날라가버리고 오직 바른 행동(바라밀)만이 남게 되
왜냐하면 거센 태풍에 모든 것이 날려 사라지는 것 처럼 우리의 뇌속에 깊게 박힌 본능적인 잣대와 모든 개념들까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지
대오각성한 대중부 고승들이 그 후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나? 아니면 서방극락세계를 왔다갔다하면서 금은보화를 뿌렸냐? 아니지 그냥 조용히 삼매정진을 하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며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입적했을뿐이야
여기까지 오면 이미 상좌부든 대중부는 의미가 없어
모든 것이 바른 불법이 되는거지.
이렇게 마음외엔 존재하지 않기에 두려움조차 뒤로하고 적극적으로 중생을 구제하게 되는거야
오직 바른 삶(바라밀)만이 남게 되는 것이 불교의 극치라는 거야
아무튼 인도 불교는 이정도로 마무리 지을께
보면 알겠지만, 불교는 서양의 철학에 뒤지지 않는 치열한 논리의 전개가 담겨있어
하지만 이러한 인도 불교도 기원후 1000년쯤에 사라지게 돼 ㅋㅋ
왜냐구? 로마가 멸망했거든 ㅋ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ㅋㅋ
인도 불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카스트제도를 반대하는 상인계급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로마등지의 서방과 무역을 했지
로마가 멸망하면서 불교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이 상인층이 무너지고 결국 민속신앙인 힌두교에게 자리를 빼았겨버리고
이슬람교도까지 쳐들어오는 상황이 되어 거의 사라지다시피해 하지만 가까스로 파드마삼바바와 카밀라쉴라에 의해 인도불교가
티벳에 전해져서 명맥을 이어가게 되는데..
당시 티벳엔 토착신앙인 본교와 중국의 선종이 퍼져있었는데 본교는 파드마삼바바께서 민주화해버렸고, 선종 역시 당대 불교의 끝판왕이었던 카밀라쉴라의 유식행중관학파가 점령해버렸지 ㅎㅎ 그래서 지금은 티벳불교가 대중부불교의 정통이라고 할 수 있어
현재 인도에서는 불교보단 힌두교, 미얀마등지의 동남아는 상좌부불교가 중심이 되었고, 동방불교는 대중부불교가 중심이야
우리나라는 임제종과 도선국사의 자생선이 중심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유명한 틱낫한 스님도 임제종에서 갈라져 나온 접현종이라는 종파를 세우셨고..
대중부불교는 어찌 보면 상좌부불교의 설들을 논파하며 컸다고 볼 수도 있는데 현재도 상좌부불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고 할수도 있겠네..
설일체유부부터 유식학파까지 순차적으로 설명하면서 마치 유식학파는 앞서의 학파에 비해 우월하다고 비춰질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진 않아
마치 미적분을 배우기전에 일단 더하기 뺴기를 알아야하는 것 처럼 궁극적 목표인 세존의 육성인 원시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선 모든 학파를 이해하고 넘어서야 해 그래서 대중부불교를 따른다고 상좌부불교를 무시하거나 하면 안돼
거기에 힌두교까지 이해해야만 해.
이유는 불교는 힌두교에 반해 일어난 종교이기때문이야.
하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게 힌두교인지 불교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다음편은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말해보려고 해.
그리곤 윤회와 기타 불교에서 흔히 듣는 용어들을 설명해볼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은 티벳불교와 티벳밀교에 대해서 다룰거야
지루한 이야기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고 많은 오류들은 이해하고 넘어가죵
3줄요약
1. 불교는 상좌부불교(소승) , 대중부불교(대승)로 나뉘어진다
2. 상좌부불교는 설일체유부, 경량부로 나뉘어지고 대중부불교는 유식학파와 중관학파로 나뉘어진다
3. 상좌부는 미얀마등지의 동남아에서 발전하고 대중부불교는 티벳과 동방에서 발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