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력논쟁 … 이문열이 종족장. 敵의 종족장을 (문학적) 살해(?)하라.

-탄핵정국의 원조. 문학권력논쟁을 성찰한다-

 

 

 

윤병로 선생의 문학사나, 김우종 선생의 문학사나, 조연현 선생의 문학사나 모두 한국근대문학사 특유의 근대적 주체관. 즉,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식의 근대관이 있다. 서구 데칼트의 코기토 에르고 줌의 ‘생각’과 ‘존재’를 이어주는 것의 자명성이 가톨릭 神인 하느님이었던 데 반해. 개량 양반식 유교적 표상체계의 자명성을 논하는 차원에 현대문학사를 설명한 것이다. 각 문학사가 말하는 문학사표상은 그 분 제자들이나 분명히 안다.(나는 어느 문학사가가 소속된 학교가 아니다. 미안하다. ‘잡대’라서)

 

60년대는 곡학아세가 민형사 소송감이었다. 지금은 그런 논쟁 자체가 없다. 그러나, 일단 대한민국을 2년 여 뜨겁게 달궜던 논쟁이 ‘성과’가 아니라 ‘범죄’인 이유를 따져보기로 하자.

 

큰 시나리오 설계는 그랬다. 조선일보가 거대한 언론이며 거대한 언론을 이용하는 ‘동인문학상’ 등과 ‘문학사상’등의 조선일보 보수문화를 척결하자는 주장이었다. 반공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척결하자면서 최순실 꼬투리 잡기 했던 것과 비슷하게, 그때는 꼬투리로 ‘홍보효과’로 인한 문학성의 에둘러 피해가기를 내세웠다.

 

푸코는 권력이 어디에든 분산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중을 끌어모으는 지식 체계가 있는 곳에 권력도 함께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볼 때, 문학권력논쟁자들이 명백히 ‘권력’이다. (최순실 무당론을 내세우는 그 놈들이 엽기적 무당 마니아인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면 권력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김동리 서정주 등 문단 좌장이 나의 문하생이 되도록. 문화생 되면 대박 뜸. 그래서, 커진게 보수문단이다. 작가론이라 하여 작가 우상을 내세우고, 그 작가와 닮게 쓰도록 하는 신화적 가치와 그에 복속된 문학청년들의 메카니즘안에 권력이 있다.

 

진보는 문단 없는가? 백낙청은 ‘창작과 비평’을 이끌며 그 산하에 방대한 좌익 마피아를 거느렸다. 조직보스처럼 방대한 마피아를 거느리니 일종의 ‘행님’ 효과가 났다.


(문학권력논쟁자들 주장처럼 조선일보만 권력이고 자기들은 선량한 개인이란 소리는, 엘씨티 사건으로 다 해먹는 구캐가 착하고 최순실이 전부 나쁘다는 지금 프레임의 원조다/)

 

사실은 대중들에 기억 속에서 ‘보수문화’의 자리를 지워 버리고, 진보문화의 몫을 채우려는 낯간지로운 권력 투쟁이면서도, 성스러운 문학성 보호를 위해서 대중 홍보효과의 부정적 효과를 차단하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 창작과 비평 홍보는 뭘로 하는데? 누가 보더라도 낯간지롭다. 누가하면 로맨스 누가 하면 스캔들. 이런 식의 잣대다.

 

한국문학사는 여러 문단 그룹으로 나뉘었다.

 

지금 좌좀 진영은 민족문단이다. 백조파로부터 시작돼 카프 구성원이 중심이 되고 30년대 문단 구성원을 아우르는 형식이다.

 

반면에, 해외문학파는 해외문학파끼리, 순수문학파는 순수문학파끼리 각각 놀았다. 그리고 해방공간 좌익 문학건설본부에 포획된 구인회 세력도 암만 봐도, 그냥 색깔 안 맞는 곳에 낑겨사는 더부살이 급에 다름 아니었다.

 

해방이후 각각 문단 좌장 중심으로 활약을 펼치는 일본 문단 카피 해서 나름 문화가 퍼졌다.

 

나는 정인보, 박은식, 신채호 등의 양명학을 기초로 항일 노선을 긋는 거대 서사 세계도 존중하지만,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이장희), ‘나의 침실로’(이상화) 같은 즉흥적 키취의 세계나, 일간 베스트저장소 <보지년 탐구 생활> 같은 문학도 충분한 자리가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 교육은 4.19 공간에 ‘신동엽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정서로 척결된 보수문화가 너무 많다.

 

야들의 종교적 신념이 있다.

 

종족 짱을 살해하면 끝이다. 전두환을 정치적 살해하고 한동안 반공진영이 흔들렸듯이, 박근혜를 탄핵하고 새누리당을 해체급으로 흔들어대면, 적화연방제를 해도 아무런 방해 없다. 수틀리면 한반도 뜬다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 아닌가?

 

이태경이란 어떤 경제논객이 문학 모습에 아는 체 했다.

 

사실, 그렇다.

 

김지하 사상 전집도 중요하고, 이상화 <나의 침실로>도 중요하다. 빡촌녀 기생 더부살이 이상의 <날개>같은 정서도 중요하다. 언제부터인가, 민족문단 씨족 연고 핏줄주의가 아니면 전부 인종주의적 낙인 받는 시대가 왔다.

 

제일 아이러니하고 진보진영 낯짝 뜨거운 파시즘 증세를 보여준게, 아닌 땐 굴뚝에 홍두깨같은 박인환에 덕담 드립이다. 박인환이 한 때 남로당에 줄 섰고, 그것을 흠잡아서 반공진영에서 박인환시인에 식겁하게 하는 겁주기가 있다고 일베에 적었다.(뻘갱이 놈들은 일베의 내 글을 너무 잘 읽어. 씨발) 바로, 그 다음날인가? 박인환 빨기 좌익 글 몇 개가 이어졌다.

 

솔직히, 박인환이 뭐 있냐?

 

빡촌녀 더부살이 “1인의 죄인이 무섭다고 그러요, 2인의 죄인이 무섭다고 그러오.” 그런 가치보다 더 아래 아닌가? (박인환 시 팬분들에 미안. 솔직한 내 평가.)

 

이 평가는 좌좀 니 평가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직 이데올로기 투쟁 전선에서 이쪽이냐 저쪽이냐에서 우덜편이라고 빠는 수준이 민낯이다.

 

이러니, 문학이 아주 노골적으로 정치투쟁의 도구로 보는 것이다.

 

문학 볼 마음 있겠는가?

 

정치투쟁의 도구 함부로 못하는 육중한 학술서가 눈에 들어오겠지. 대하소설 읽던 팬들이 다 그렇게 함부로 정치빨 못하는 곳으로 바꾸겠지.

 

문학 망했어!!

대한민국 안 망할려고 탄핵안 조기 기각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