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배변’이 난무하고 ‘회개’가 사라진 시대
-지배이데올로기인 민중신학 내에 巫敎 요소를 해체해야 한다-
아직도 광주민중항쟁 청문회 때 시청자 반응이 생생하다. 노무현이 전두환에 명패날리는 것은 배변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고 치자. 그러나, 그뒤로도 광주민중항쟁 청문회는 계속 이어졌다. 왜 저래 호통치나? 기억하기로 제도권에 ‘감정 배변’이 꽂히기로는 그때가 처음인 거 같다. 그 이전까지는 모두 재야 상태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들은 보수정권이지만 누가 뭐라해도 명백한 지배세력이 됐다. 국가주의 시대에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국가는 많은 개념을 포섭했다. 지금 민주팔이 시대에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영웅주의의 ‘영웅’은 많은 개념을 하위로 포섭한다.
국가는 安全과 안정의 상징체로서 존재했다. 또, 재화 배분의 책임자이자 국민의 구심점이었다.
영웅은 국민의 현실에 대한 위로의 상징이 됐다. 현실의 불만을 고스란히 퍼부어서 만들고, 현실에다는 모두 책임전가한다. 그리고, 집권 전에 그랬다가 집권이 되면 그런 ‘감정배변’을 끌어모아서 만든 권력으로, 길게 감투 관직 장사를 하는 게 반복됐다.
이젠, 정권 말기가 되면 고의로 ‘감정배변’장사를 위해서, 고의로 잘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비하하는 언론일이 많았다. 그래야, 현실 위로로 자신들이 배팅하는 사람들을 대안으로 꽂을 수 있을테니까.
포퓰리즘이 안된다는 말, 경제민주화가 안된다는 말은, 이렇게 영웅코드로 감정 배변장사하는 정치인 앞에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조선일보는 겉으로는 포퓰리즘과 경제민주화를 반대해도, 그 이면에서는 그런 정치를 하는 세력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게 너무 노골적이다.
정청래의 막말. 그것은 고의로 계산된 것이다. 감정 배변효과를 극대화하여 자기들의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회개라는 것을 한다면 그런 막말은 못한다. 감정 배변 좋아하는 정치는 곧 책임전가를 당연히 하는 정치다. 자신들은 언제나 무오류가 된다.
결국, 하층 수준에서 원자화시킨 개인으로 절망적 포기 상태로 만들게 하고, 상층에서는 허수아비 최고 통수권자를 만들어서 쪽쪽 세금을 뽑아먹는 정치귀족들의 감정장사를 할 모양이다. 이 기제를 영속화하기 위한 정략개헌까지도 논의중에 있다.
국민은 깨달아야 한다.
국민들은 국민을 외면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민생이 견뎌내기 어려운 세금 부담, 혹은 민생에 안준다고 대기업에 몰아서 대기업을 폭망하는 세금부담도 반대일 것이다. 위해주는 척 하면서, 감정조작하는 프레임이다.
당신의 희노애락은 당신이 느끼는 게 아니다.
정권은 보수지만 도대체가 정면 도전으로 비판할 생각을 못한다. 조선일보가 머중차며경제학(김머중버전)에 ‘받들어 총’ 수준이다. 이런 속에서 ‘전라도 비하’는 의미 없다. 아니, 전라도비하를 하는 사람 자체가 조선일보 계열의 비박측밖에 없다. 즉, 진정하게 전라도주민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전라도주민들을 염장질러서 좌좀정치로 결집하게 하고 우파로 오지 못하게 하는 은밀한 감정 테크닉이다.
한국 정치가 호통 쑈, 막말 쑈 하는 동안, 한국인이 믿는 종교는 대부분 ‘회개’기능이 망가졌다.
사실, 회개를 하면 자기꺼를 내려놓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안하려고 한다.
공공의식 소멸이 명백한데, 국가가 나서지 못하게 하고 국가 탓한다. 나라가 아니다!! 라고 하는 보수기성세대 논객이 ‘보수 기성세대 논객’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대학생 철부지 만큼 근심덩이가 보수장년층 기성세대 논객이다.)
사소한 말 하나, 표현하나, 대부분 세밀히 계산돼 있는데, 그 정답은 조선후기에 있다.
공공의식 중심으로 뭉쳐진 일반인들의 연합 밖에 이 시스템을 깨는 길이 없다.
(1줄 요약)
좌로나 우로나 (좆문가형) 먹물들은 다 필요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