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에게 바치는 글: https://www.ilbe.com/8788806915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차이는 언제 죽느냐 하는 타이밍 뿐이고 죽기는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 이다.
일본야구에 모리타 코우키라는 투수가 있었다. 아마 이 투수에 대해서는 너희들 젊은 게이들은 모를거다. 어지간한 매니아들도 잘 모르는 투수니까. 중간계투로 ㅆㅅㅌㅊ 활약을 펼친 투수인데 하필 모리타가 활약하던 시절은 중간계투의 위상이 요즘처럼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1969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모리타는 고교 시절 뛰어난 투수로 이름을 날렸고 1988년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전신인 요코하마 타이요우 호엘즈에 드래프트 지명을 받고 프로 선수가 되었다. 그 당시의 요코하마에는 훗날 메이저리그에서도 활약한 위대한 투수 사사키 카즈히로도 있었다. 모리타는 사사키가 등판하기 전에 투입되는 릴리프로 뛰면서 요코하마 전성기를 이끌었다. 모리타-사사키로 이어지는 강력한 마무리 콤비는 '이중의 벽'으로 알려졌고 다른 팀들을 고민하게 만들었지. 요미우리 감독 나가시마는 "(모리타와 사사키가 등판하면 점수를 내기 힘드니까) 7회까지 점수를 최대한 많이 내라!"고 지시했을 정도고.
그렇게 ㅆㅅㅌㅊ 활약을 펼치며 야구인생을 구가하던 모리타는 1998년 킨테츠 버팔로즈(지금의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했다. 아직 29세. 한창 원숙해진 피칭으로 모리타의 전성기는 이제부터일 거 같았는데... 그는 갑자기 다리에 심한 경련이 계속 되는 증세에 시달렸어.
증세가 하도 오래 가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모리타는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지. 그랬더니 충격적이게도 두개골 안에 뇌종양이 있다는 거야. 뇌종양이 뇌를 압박해서 다리에 계속 경련이 온다는 거지.
다리에 경련이 와가지고서는 투수를 할 수 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수술을 결심했어. 하지만 뇌를 압박하던 종양을 제거하면 그만큼 뇌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수술 후에 완전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워. 아니나 다를까, 의사의 경고대로 모리타는 오른팔이 마비되는 증세를 겪게 되었어.
우완투수의 오른팔이 마비되자 모리타는 스트레스로 발작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렸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지. 그러나 재활훈련을 해서 투수로 복귀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약해지는 거냐고 강하게 질책한 부인 덕분에 모리타는 마음을 다잡고 재활훈련에 매달렸어.
오른팔 재활 성공을 어필하는 모리타. 많이 수척하다
그리고 수술로부터 약 1년 정도 지나 모리타는 오른팔을 다시 뜻대로 쓸 수 있게 되었고 1999년 시즌 후반부에는 1군에 복귀하는데 성공했어. 기적 같은 복귀에 킨테츠 팬들은 물론 다른 야구팬들도 모두 열광했지.
2000년에도 계속 운동을 계속하며 전성기의 몸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했고 2001년에는 가장 영광스러운 해를 보내게 돼. 아무리 왕년에 뛰어난 투수라 해도 수술의 후유증은 남아있을 것이고 아무리 잘 던져도 원포인트 릴리프가 한계라고 생각되었는데 2001년 시즌에 무려 2승을 올린거야. 그 어떤 투수의 승리보다도값진 승리였지. 그 쾌거를 인정받아 올스타전에도 출전하고... 게다가 Comeback of the Year 상도 수상했어.
당시 모리타가 1082일만에 다시 승리투수가 된 것을 보도하던 신문. 헤드라인은 "아내가 준 1승"
올스타전에서 팬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쑥스러워하는 모리타
하지만 모리타는 이미 자신의 몸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지. 그는 야구인생의 최고의 절정에서 은퇴를 결심해. 그리고 '기적의 릴리프'로 불리웠던 투수 모리타 코우키는 문자 그대로 박수 받을 때 떠났지.
하지만 모리타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 요코하마 구단의 프론트, 야구해설자 등으로 제2의 인생을 살던 모리타는 2005년의 건강검진 때 의사로부터 뇌종양이 재발했다는 말을 듣고 종양 제거 수술을 또다시 받아. 그러나 2010년에는 종양이 골수로 전이되어 골수암이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고 2013년에는 뇌종양의 3번째 재발까지 겪어. 그럼에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기적의 릴리프'는 끝까지 암과 싸워 나갔지.
저것은 베츙이 인형!? ...은 아니고 암튼 항암치료 중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까지 당했음.
모리타가 암에 맞서 그토록 집요하게 싸웠던 이유는 바로 동생 때문이야. 모리타의 동생(이름은 모리타 코우지)은 6세 때 임파선암으로 세상을 떠났거든. 동생과 같이 캐치볼을 하던 모리타는 그 일 이후로 동생을 위해 반드시 프로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세웠고 위기 순간에 등판하면 '나 혼자 던지는 게 아니라 동생과 같이 던진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을 잊지 못했어. 모리타가 결혼을 결심한 계기도 당시 교제 중이던 그의 여친이 자기 동생의 사진 앞에서 같이 묵념을 올려주었다는 게 이유일 정도로 그는 동생을 사랑했지.
동생이 암으로 죽었기 때문에 모리타는 난치병과 싸우는 어린이들을 몹시 사랑하여 일본 어디든 난치병 어린이들이 있는 병동이라면 수시로 위문했다. 또한 후배들에게도 남달리 따뜻한 선배로도 인망이 있었다. 그가 기적의 릴리프로 사랑받는 이유는 뇌종양을 극복하고 컴백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 매력 덕분이기도 하다.
2015년의 모리타
모리타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동생과 같이 싸운다'는 의식 때문이었을 거야. 그러나 2015년, 결국 육신의 힘이 다한 모리타는 눈을 감았고 20대 때부터 항암치료를 받아오던 그의 몸은 그제서야 싸움을 멈추고 쉴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그의 끈질긴 생명력과 복귀에 대한 의지는 역사에 기록되었어.
세줄요약
1. 인생은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2. 길지 않은 인생, 내가 빛날 수 있는 순간을 찾겠다고 마음 먹어라
3. 저렇게 암으로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