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도 알아 


그런지는 순수 펑크라 보기는 힘들고 얼터너티브락의 전성기를 연 장르인만큼


얼터너티브 락에 속해있어야해 나도 동의해


하지만 너바나는 얘기가 다르지, 너바나의 음악은 그런지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펑크의 뿌리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 그런지 4대장중


가장 펑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이기도 하니까, 너바나를 펑크밴드로 치는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럼 밴드 소개부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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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기준으로 데이브 그롤 (드럼), 커트 코베인 (보컬/기타), 크리스 노보셀릭 (베이스)


드럼이 1집이후 계속 바뀌다가 데이브 그롤로 고정된것 외에는 별 다른 멤버변동이 없었어


뭐 사실 너바나의 활동기간이 너무 짧은 탓도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인물은 데이브 그롤과 커트 코베인이야


데이브 그롤은 너바나에선 커트에 비해 비중이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후 자신이 만든 푸 파이터즈나 퀸즈 오브 스톤에이지에서의 활동을 보면 엄청난 뮤지션이란걸 알수 있고


커트 코베인은 밴드의 리더이자 너바나의 영혼이라 할수 있는데


뭐.. 그 전설이 존나 장황하니까 이 글을 진행하면서 풀어나가기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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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는 1987년 미국 워싱턴에서 결성되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뿌리부터 펑크 밴드였어


언더그라운드씬을 배회하며 소닉유스와 픽시즈를 우상삼았고 실제로 그런 음악을 들려줬어



특히 커트 코베인은 "나는 픽시즈의 음악을 베꼈다"라고 선언했을 정도로 


완벽한 언더그라운드 펑크의 자손이였어 강한 디스토션과 내지르기, 중간 중간의 노이즈, 분노폭팔은


하드코어 펑크로 봐도 무리가 없었으나 하드코어 펑크와는 다른 그들만의 루저 감성과


당시 빛을보기 시작하던 그런지, 그리고 패션, 완전한 순수 펑크라 보기엔 힘든 하드락/메탈쪽에


"빚진" 사운드 등은 초기 그런지 스타일과 일치했고


이들이 얼터너티브 락의 전성기를 연 새로운 음악인 그런지를 하고 있다는걸 보여주었지


1989년에 나온 1집 Bleach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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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1집은 그들의 이런 음악적 특징과 잠재력을 함께보여주고 있어


저예산으로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박을 터트린 이들은 언더에서 그들의 이름을 알려


그런 이들의 진가를 알아본 소닉 유스는 너바나가 메이저 레코드로 이적하길 원했고


소닉유스 빠돌이였던 이들은 게펜 레코드로 이적하게돼


그렇게 이들은 메이저로 올라가게 되고 당연히 이전에 그들이 선보였던 "더러운" 사운드는 손보아질수밖에 없었지


커트 코베인은 이걸 존나 싫어했고, 본래의 펑크성이 거세되지 않기를 바랬지만 뭐 어쩌겠어? 돈되는 장사를 해야하는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너바나는 조금더 팝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되고 2집을 내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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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그 앨범이 바로 Nevermind (1991)이야 


모두 알다시피 이 앨범은 개씹띵작이야, 음알못이라도 "아 이거 어디서 봤어"라고 얘기할정도로 말이야


이 앨범이 띵작인 이유는 메탈의 전성기를 끝냄과 동시에 얼터너티브 락을 수면으로 부상시켰고


이로 인해 락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며


펑크의 공격성과 그 기본사운드에 팝적인 멜로디, 그리고 90년대 특유의 루저 감성이 합쳐져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이였다는것도 그 이유중 하나야


롤링틀딱지에서도 이 앨범만은 커버가 헐도록 빨아주는 이유를 알겠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커트는 이 앨범이 성공하기를 원했으나 펑크의 공격성이 거세되는것은


원하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꼴도 보기 싫다고 하게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누구도 부정할수없는 90년대 최고의 앨범이자 기념비적 걸작이야


이렇게 너바나는 앨범을 수천만장 팔게되고 완벽한 메이저 밴드로 우뚝서게돼


하지만 여기서부터 밴드의 비극이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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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가 메이저로 올라가 우뚝 서게 되면서 언더를 기반으로 했던 그의 음악관은 사람들에게서 부정되기 시작했고


커트 코베인은 언더씬으로부터 그렇게 자본과 언론을 싫어하던 새끼가 돈맛보니 말랑하게만 논다고 비난을 받게돼


이에 갈등하던 커트는 점점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1992년 코트니 러브와 결혼을 한후 너무 젊은 나이에 아이까지 가지는데


언론이 이걸 가만 냅뒀겠어? 당연히 언론은 이들을 죽도록 물어뜯은거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너바나 멤버들은 언론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커트 코베인은 힘든 나날을 보내


그렇게 1993년 세번째 앨범이 나오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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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3집 In Utreo (1993)이야


이 앨범은 당시 힘든 나날을 겪고있던 커트와 멤버들의 미디어에 대한 혐오 


자본에 대한 혐오를 쏟아낸 앨범이라 할수 있어


자궁속으로 라는 앨범명과 같이 사운드는 초심의 그 "더러운" 사운드로 되돌아가려했고


마이크를 녹음하는곳에 존나 박아두는 방식으로 녹음을 해서 라이브할때의 느낌을 살렸어


기타는 더럽고 신경질나는 연주를 해댔고 보컬은 꽥꽥 질러댔지 물론 그러면서도 팝 사운드는 중간중간 박아두었고


물론 레코드는 이 앨범이 존나 안팔릴것 같았기에 2집과 마찬가지로 손을 한번 봐줬고


여기서 커트는 다시한번 딥빡을 하게돼,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했고 음악적으로도 성공했어


하지만 완벽주의자 였던 커트는 이 앨범의 "손질된" 사운드 역시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한 사건으로 인해 밴드는 해체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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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리더였던 커트가 27살의 나이로 자살한거야


약물중독이 심각해져 결국 요양소로 가게된 커트는 요양소에서 탈출한후 집에서 


버드 드와이어라는 정치인의 권총 자살 장면을 여러번 돌려본후 엽총으로 두부를 쏴서 자살하게돼


자살을 하게된 원인으론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커트가 가지고 있는 만성적인 우울증때문이야


커트는 매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너무 어린나이에 커트를 난 두 부모는 불륜과 이혼등 뻘짓으로 커트에게 흙수저를 물리게 되고


가족중에서도 친척 여러명이 자살하고 삼촌 두명이 자살하고 외증조부가 자해하는걸 목격하고 친구 형제 자살한거 목격하고..


자살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인생을 살아왔어 


또한 그의 완벽주의자석 성향은 그의 음악이 사람들의 기대를 보답하지 못하는걸 참지 못했고


너무 이른나이의 결혼과 출산은 그에게 더욱 큰 부담감을 안겨주었어 이런 여러 이유가 겹쳐 결국 커트는 자살하게되고


너바나의 해체와 함께 사실상 그런지의 해체 또한 시작하게 돼


이야기를 몇개 더 해보자면 너바나가 과대평가 받았다고 많이들 이야기 하는데


비록 그 끝이 보여가던 시절이였지만 메탈 시대의 종말에 결정적인 한방을 먹인게 바로 이 너바나였고


얼터너티브 락과 언더그라운드의 실험을 계속하던 펑크를 결국 수면위로 올려보낸것 또한 너바나였기에


나는 이들이 지금 받는 평가들이 옳다고 봐


또한 너바나 후로는 한 시대를 "풍미/대표"했다 라고 불릴 뮤지션이 없다는것도 한몫한다고 해


너바나의 그 루저 감성과 시대성은 잘 맞물렸고 너바나=90년대 미국의 사회상이라고 해도 무방할정도로 


너바나는 당시 미국사회를 대표했고, 뿐만 아니라 90년대 대중음악 전체를 대표했어


너바나 이후로는 .. 그런 뮤지션은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 (후대 뮤지션의 역량이 낮은게 아니고 너무 빨리 변하고 상업화되는 음악시장의 몫이 크다고 봐)


특유의 무겁고 더러운 사운드에 팝적인 감성과 시대성을 살려 커트라는 프론트맨으로 승화시킨


자살로 인해 안타깝게 밴드가 증발했으나, 오히려 그 자살로 인해 밴드가 전설로 남을수 있었던


그런 밴드가 아니였을까 생각된다


노래 나간다








P.S 개인적으로 MTV 언플러그드앨범도 2,3집 만큼이나 띵반 대우를 받으니까 함 꼴리면 들어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