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좌익의 ‘평등의식’의 심층심리의 이해

 

 

한국 공산주의는 중국 공산주의와 더불어 ‘농민공산주의’로 정리된다.

 

즉, 유럽 및 영미 공산주의의 시민사회 지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왜, 한국이 ‘유럽’과 ‘영미’와 다르냐? 혹은 유럽과 영미 이론을 덧 씌우는 논리는 전부 ‘하수’ 아니면 쓰레기

 

한국 공산주의와 중국 공산주의는 농민의 멘탈리티 위에 있고, 농민 멘탈리티는 종족 보존 욕망 위에 있다.

 

즉, 외디푸스 콤플렉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프로이트나 라깡 휘날리면서,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더불어 상징계에 진입한다며 한국인에 덧 씌우는 논리는 다 개 구라.

 

(아울러, 거세 콤플렉스? 가 아니라, 소작신분에서 축출되도 걱정, 혹은 미친 소작료 나와도 걱정. 이런 생존 공간에서 축출 노이로제가 맞음)

 

한국 공산주의와 중국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적 지위가 욕망의 대상이 된 편집증심리의 산물이다.

 

즉,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더불어 드러나는 분열증 심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과타리 운운하면서 反외디푸스 어쩌고. 다 쓰레기.

 

한국 & 중국 = 씨족 신분사회 = 생존조건의 불평등 = 더 나은 생존 조건에 대한 환상 & 선망 & 시기 & 질시

 

신분 사회를 自然이라 본 논리와 더불어 한편에서는 왕조 폭망 종교로서 신분 역전을 추구하는 종교가 존재.

 

중국 = 태평천국의 난의 ‘태평교’

한국 = 동학운동에 있어서의 ‘정감록’

 

그러고 보면, 문익환이 ‘자유’는 우익, ‘평등’은 좌익 나누고, 그 합일이 최고인양(즉, 문익환 말듣는 사람들은 종국적으로 한통속된다)는 논리를 우익이 따라쓰는게 얼마나 진짜 우익에 자충수가 되는지 모를 것이다.

 

 

늘, 대기업의 대차대조표 상의 생존을 주장할 때, 좌좀 선전선동에 열광하는 군중은 ‘같이 살자’는 농민의식으로 후퇴해 있었다.

 

조갑제기자 징기스칸 타령, 김성욱기자 환단고기 스타일, 뱅모 박성현씨의 상당한 논거의 천도교 교리에 덧 씌우기, 자유경제원 김정호교수, 민경국 교수의 하이에크 논리의 도교적 해석. 조선일보의 천도교 코드 우위의 편집. 등등. 좌좀은 물론이고 보수 우익 사회에서도 국민대중을 농민 멘탈리티로 되돌리는 일이 적지 않다.

 

어렸을 때 어린 무식한 내가 보는 지식인은 국민 마음을 하나 하나 다 보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보수논객들은 ‘팀플레이’만 잘하지 정말 모른다.

 

종편 좆문가들도 ‘팀플레이’만 잘하지 정말 모른다.

 

여당 금뱃지들도 ‘팀플레이’만 잘하지 정말 모른다.

 

결국, 평등이란 말의 두 개의 뜻.

 

즉, 권리의 철학을 가능하게 할 (자지털= 보지털 =똥꼬충 등 인간의 등권리) 평등의 의미를 부정함은, 인권담론을 자의화.

 

그리고 좌파적 평등담론을 값싸게 폄하하는 것은, 민중 사회에 잠재된 아시아적 신분사회를 전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값싸게 무시하고 싶다는 신분제적 욕망 아니겠는가?

 

[정감록]이란 왕조 붕괴 신앙은 임진왜란 직후에 나왔으나, 선비들은 꾸준히 자기 반성과 질책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려 300년 이상을 조선왕조의 수명을 늘리게 됐다.

 

중국 농민을 지향한 종교에 왜 이리 평등이 많은지?

 

임시정부 공산주의자들이 맹자 정전제에 존나게 꽂힌 이유가, 바로 일제 시대에 생존 조건의 극심한 불평등(수탈에 가까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 모든 사회는 그런 전복 욕망이 있다. 서구라도 그런 욕망 없는 게 아니다. 그런 욕망은 파시즘 아니면 공산주의만 유발하는 병리적 증상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차원으로서 도덕심이 필요하고, 도덕심의 확산은 모범이 필요하다.

 

아따, 나에게 모범 보이라고 하들 말어.

 

이게, 도덕이란 말자체를 싫어하는 민주화 이후 지배세력의 속내 아닌가?

 

 

유신헌법의 약점을 의제화하지 않고 선거 붙여서 찬성 과반수 땄다고 뭐라하는 민주팔이 색희들은, 민주화 이후 산더미 보다 더 산더미로 쏟아지는 문제는 하나도 의제화 안하네.

 

교육을 좌익에 넘겨준 교육기본법의 박세일교수는 왜 그랬을까?

자유경제원의 운동권 철학을 덧 씌운 하이에크 해석. 왜 그랬을까?

 

좌익은커녕 우익만 해도 의제화하면 내부 총질 운운하며 입막음하기 쉽다. 확실히 강한 목소리의 추진력 없으면, 귀족이 다 이긴다. 그때는 왜 허락했을까? 한국 귀족이 이토록 사람처럼 안할지 몰랐으니까.

 

(3줄 요약)

 

1) 자유와 평등은 함께 간다. 함께 갈 수 없는 평등(좌익적 용공) 담론도 간단히 배척 안된다.

2) 함께 갈 수 없는 평등 담론은 신분제 불평등에서 기인한 농민공산주의(한국 & 중국)의 사회전복 욕망 (맑스주의와 무관하다 해도 중국사에서 왕조 폭망 종교와 밀접. 그런 믿음가지고 남로당 지휘에 휘둘린 경우는 실질적 무관은 아님.)

3) 사회전복을 막는 것은 일정 수준의 규제 뿐만 아니라, 도덕운동이 필요하고, 도덕운동은 지배층의 모범이 전제되는데, 모범을 안하고 싶어하니, 일반국민은 미치겠다 이거다.

 

 

 

 

  **. 장문 에세이 

 

국가주의가 도적이냐, 영웅주의가 도적이냐

-反싸드파의 무정부 공산주의 민족 신학 비판-

 

이거..... 주말 중에 올린다. 토요일 저녁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