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라서 5천원주고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와서 예전에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에서 받은 ‘6.25전쟁과 한국해군작전’이라는 책을 참고해서 영화의 배경이 된 해군첩보작전(x-ray)작전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
일베에 글을 쓰는건 굉장히 오랜만인지라 가독성 종범, 필력 종범이니 앙망한다.
틀린거 있으면 댓글로 알려줘.
미 극동군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미군 첩보부대의 투입을 고려하지만 언어소통 문제와 지형에 밝지 못한 점을 감안해서 1950년 8월 12일 손원일 해군총참모장에게 작전을 위한 정보수집 명령을 하달.
손원일 제독은 이 사실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라고 하면서 정보를 잘 수집해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
손원일 제독은 8월 13일 정보국장이던 함명수 소령(제7대 해군참모총장)을 당시 부산항에 있던 해군본부로 은밀히 불러서 정보수집작전을 지시.
(함명수 예비역 제독, 당시 해군 정보국장 X-Ray 작전 지휘관, 해군 제7대 참모총장 역임)
이 작전이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모티브가 된 ‘엑스레이 작전(X-Ray Operation)이야
엑스레이 작전은 인천 앞바다의 영흥도를 거점으로 해서 인천, 수원, 서울 등지에 잡임해서 필요한 정보(북괴군의 병력 및 배치, 무기, 장비, 방어시설, 보급시설, 기뢰부설 여부, 상륙해안 지형 등)를 수집해
함명수 소령은 비밀을 유지하면서 해군정보국에서 특수공작 임무를 수행하던 해양공사팀 김순기 중위와 임병래 소위, 장정택 소위를 불러 대원 5-6명을 모집할 것을 지시하게 되고
조직된 첩보대의 인원은 첩보대장 함명수 소령을 비롯해 정보장교 김순기 중위, 장정택 소위, 임병래 소위, 해군정보국 소속 김남규, 정성원, 박원풍, 차성환, 한유만, 홍시욱 대원 그리고 군무원 7명등 총 17명이었어
첩보대 조직과 출동 준비가 끝난 8월 16일 함명수 소령은 손원일 제독에게 보고하고 8월 18일 오전 1시 철제 어선을 타고 부산을 떠났어
극비의 임무인 만큼 대원들은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한채 떠났는데 당시 장정택 소위는 약혼녀에게 연락도 못하고 떠나는 바람에 파혼을 당했다고 하네...
출항한 지 6일째 되던 날 영흥도 근해에 와서야 함명수 소령은 대원들에게 출동 목적과 임무를 알려주었어
8월 24일 오전 1시 30분에 대원들은 영흥도 북쪽해안 십리포에 상륙을 해
(손원일 제독은 덕적도를 기반으로 작전을 수행하라고 지시했지만, 함명수 소령은 손원일 제독에게 인천에서 가까운 영흥도를 근거지로 삼게 해달라고 건의해서 영흥도에 상륙하게 됨)
첩보대가 영흥도에 도착하기 3일전인 8월 21일 이희정 중령이 지휘하던 상륙중대에 의해 영흥도를 탈환된 상태였기에, 첩보대는 영흥국민학교를 거점으로 정보수집 임무를 시작하게되고 대원들은 3개의 팀으로 편성(장정택 소위 : 통신정보 등에 관한 정보수집 및 분석, 김순기 중위, 임병래 소위 : 인천 등지에 잠입해서 정보 수집)
김순기, 임병래 팀은 인민군으로 위장하고 인천에 남아있던 해군정보국 지하조직원과 접선해서 인천, 서울, 수원 등지를 왕래하면서 북괴군의 군사기밀을 알아내
8월 26일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수집을 부여받은 클라크 대위는 혼 육군소령, 포스터 육군 중위, 한국인 계인주 전 육군대령, 연정 전 해군중령을 비롯한 켈로대원 20명은 9월 1일 영흥도에 상륙해(참고로 클라크 대위는 수병에서 시작해 대위까지 승진함)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9월 1일 영흥도에 상류한 미 극동군사령부 정보국 클라크 해군대위를 통해 사령부로 송신했어 (이전까지는 한국 해군본부를 통해 미 극동군사령부에 송신을 함)
(팔미도 등대 내에 있는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 설명문)
클라크 대위를 비롯한 후발대는 미 극동군사령부로부터 9월 15일 자정에 인천 팔미도 등대를 밝히고 성조기를 게양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게돼
팔미도 등대에 도착한 대원들은 있어야 할 부품이 없어 등대를 밝히게 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전지가 소진되어 전등이 없는 상황에서 어둠 속에서 주위를 더듬어 부품을 찾아내 등대에 붉을 밝히게 되는데 그 시각이 오전 0시 12분이였어
9월 14일, 인천상륙작전의 모든 준비를 끝낸 극동군사령부는 영흥도에 있던 첩보대에 철수 명령을 내렸고, 새벽 2시 첩보대가 철수준비를 하고 있을 부렵 바로 옆 대부도와 선재도를 통해 북괴군 1개 대대가 기습을 해왔어

(영흥도전투 전적비)
당시 영흥도에는 임병래 소위를 비롯한 첩도대원 7명과 영흥도 청년으로 구성된 의용대원 30명이 남아있었는데 이들은 상륙하는 북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데 첩보댄 대대규모의 적 병력에 대항하기에 역부족이였기에 첩보대는 퇴로가 차단된 채 포위될 위기에 처했는데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가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영흥도를 탈출 할 수 있었고,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는 적에게 포위되어 끝까지 싸우다 포로가 될 경우 고문을 당하여 작전 정보가 누설될 것을 우려해 자결했어
첩보대는 인천상륙작전이 끝난 후 영흥도 십리포에서 화장과 영결식을 갖고 인천항이 잘 보이는 곳에 두 분의 유해를 매장했고, 이 후 두분의 유해는 1960년 초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었고 두 분의 이름은 우리 해군의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PKG)에 함명으로 사용되어 길이 빛나고 있어.
3줄 요약
1.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모티브 ‘X-Ray 작전’은 한국전쟁사에 있어 중요하다.
2. 첩보대장 함명수 해군소령을 비롯한 17명이 X-Ray 작전을 수행함.
3. X-Ray 작전 중 전사하신 故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의 이름은 한국해군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PKG)에 함명으로 사용됨.
필력 종범, 가독성 종범, 내용 종범인데도 읽어줘서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