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간 데 힘입어 두 번째 시리즈를 써보려고 한다.


시간이 남아돈다면 앞의 글을 읽어주길 바래.


http://www.ilbe.com/844467110 - 마켓가든 작전에 대해서 알아보자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47hdk

(헬마치는 바그라티온 작전에 쓸걸 그랬나.... 참고로 맨 처음 나오는 의문의 대사는 독일어로 '소총수, 위치로!')

1. 서론

1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무리한 진격을 강요했고, 이게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패망할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2차대전에서는 고속 기동전을 중심으로 빵국을 개발살 냈다는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지. 그럼 그 '고속 기동전', 그러니까 '전격전'이라 불리는 그 전략을 실제로 사용했다고 알려진 '낫질작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2. 만본좌의 파격적 제안

원래 독일군의 프랑스+베네룩스 3국 침공 계획인 [황색작전]은 1차대전때의 슐리펜 계획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어. 아르덴느 숲~북해 해안까지 장장 250km에 달하는 전선면을 향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적군을 밀어붙이는 계획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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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쪽 좌측의 지도가 원래 황색작전의 개요야. 당시 독일군 사령부는 기갑부대를 '특정 목표에 대해 강력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예비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갑사단이 전부 후방에 배치되어 있는것을 알 수 있어. 따라서 원래 계획대로라면


1. 최북단의 B집단군이 주공, A집단군은 조공을 맡는다. C집단군은 국경수비대로서, 마지노선 앞의 정예병력을 붙들어 놓는 기만전술을 펼친다.

2. 상대적으로 이동이 불편한 지형인데다 A집단군 자체의 타격력도 크지 않으므로 B집단군이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북부 해안을 따라서 진격한다.

3. A집단군이 적의 반격부대를 붙들고 있는 사이 B집단군이 적의 반격부대가 노출시킨 옆구리를 후려친다!


이렇게 돼야 했어.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지.


연합군 사령부 : 우리 그거 다 알고 있는데?ㅋ


독-불 국경선에는 이미 강력한 요새선인 '마지노선'이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독일군이 쳐들어올 곳은 베네룩스 3국과 맞닿은 국경지대고, 그 중 벨기에-룩셈부르크 지역은 아르덴느 숲이 떡하고 버티고 있으니 부대의 이동에 굉장한 차질을 빚게 될 거라는 판단 하에, 당연히 주공은 네덜란드로 올 것이라고 생각한거야. 애초에 마지노선을 설치한 이유도 독일군의 전략적 행동을 상당부분 제약시키기 위한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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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선이 마지노선의 위치. 라인강과 도나우강, 그리고 쥐라산맥을 이용한 천혜의 방어거점이었어.

'적의 기동을 제한한다'라는 취지에는 잘 맞았지만,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된다'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프랑스군은 이곳을 난공불락의 요새선으로 만들길 바랬고 덕분에 프랑스군의 현대화에는 그다지 많은 힘을 쏟질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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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노선의 '극히 일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콘크리트제 토치카가 하나둘이 아니었는데다가, 심지어 산맥 전체를 요새로 만들어버린 곳도 있었으니....



하지만 우리의 고지식한 프로이센 출신 독일군 장교들은 황색작전을 그대로 밀어붙이려고 했어. 최초 계획 수립 10일 뒤에 기갑부대를 예비대로 돌리는 대신 B집단군에 배속시켜서 B집단군의 돌파력을 높이는 개선사항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조치가 취해지질 않았지.


참, 여기서 가끔 착각하는 게 있는데, 2:0의 '알X 쉬X 2X대X사'에도 나오는 '총통지령 2호(황색작전 계획서)'를 가지고 Bf108에 탑승해서 벨기에 정찰을 하던 장교가 벨기에 공군에 의해 강제창륙 당하고, 해당 문서를 소각하려 했으나 압수당해 독일군은 급히 전략을 바꾸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일어난건 10일로, 만본좌가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전의 일이고 위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9일자에도 별반 다를 것 없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지. 따라서, '메헬렌 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은 독일군의 전략 변경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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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헬렌 사건 당시 탑승했던 기체, Bf 108. 정찰 및 근접지원기로 활약했어.


덧붙이자면 벨기에군을 통해 문서를 입수한 프랑스군은 '에헤라디야, 우리 예상대로 기어들어오는구나'라며 원래 작전을 고수하지.


여기서 우리의 만본좌가 활약하기 시작해.

당시 A집단군 참모장이었던 만본좌는, 프랑스군의 방어에 진격이 가로막힐것이라 판단, 보고서를 제작해서 OKH(독일 국방군 참모본부)에 제출해. 그 보고서의 골자가 바로 지도 C야. 화살표의 길이만 봐도 전략적 목표가 바뀌었다는 걸 잘 알 수 있겠지? 맞아. 황색작전에 따르면 B집단군이 주공이고 A집단군이 조공이지만, 여기선 B집단군은 조공이고 A집단군이 주공이지. 즉, 프랑스군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튀어나와 뒤통수를 쳐버리자는 내용이지. 기갑부대 진격로가 북부에서 벨기에 인근으로 이동한게 보이지? 여기서 '낫질작전'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손(B집단군)이 밀(연합군)을 붙들고 있는 사이 둥근 낫(A집단군)이 빙 돌아서 단숨에 베어버린다는 계획인거야.(지못미 C집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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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의 천재, 에리히 폰 만슈타인. 우습게도, 그의 양아버지는 유대인이었고, 친아버지조차 폴란드 슬라브계였어. 실제로 독일 수뇌부 중에서 유대계 장성들이 극히 소수지만 종전시까지 잔존해 있었어.


거기다가 만본좌는 더 대담한 제안을 해.


바로 기갑군의 창설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그 존재 자체도 상당히 의문시되었던 기갑사단 중심의 군단을 한 부대에 몰아넣어서 하나의 '군'으로 만들어버린거야.

군-군단-사단-(이하생략) 이렇게 있는건데 얼마나 큰 조직인지 알겠지?

보수적인 장군들은 '그거 그딴식으로 몰려다니게 하며는 다 말아먹지 않겠盧?'라며 반대했고, 참모총장이었던 프란츠 할더에 의해 묵살당한 뒤 후방의 한직으로 좌천(...)당하고 말아.  기각 이유의 두 가지 골자는 이것이었지.


  1. A집단군의 원래 임무는 마지노선 방향에서 독일군의 측면을 찔러 들어오는 프랑스군의 역습을 저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공이 출발할 경우, 자칫하면 주공의 출발점에서부터 주공부대가 측면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기동부대의 기동이 빠르면 빠를수록 보호해야 할 측면이 점점 넓어지는데, 과연 이 넓어지는 측면을 제때 보호 가능하도록 병력을 전개할 기동력이 있는가? 아니, 아예 병력이 있기나 한가?
  2. 더구나 작전술적 차원, 즉 연속적인 군단급 전투를 기획할 수 있는 야전군 사령부급의 기갑부대 운용은 아직까지 경험이 없거니와 심지어 이론적 토대조차 다져져 있지 않은 말 그대로 미지의 영역이다. 그와 같은 완전 미지수의 작전술 제대를 별안간 편성하고, 더구나 그들에게 국가의 명운이 달린 주공을 맡긴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도박이다.

솔직히 역사나 밀리터리를 좀 안다는 게이라면 독일군=전격전이라는 인식이 강할텐데, 사실 독일은 1941년 10월까지 독립된 '기갑군'을 창설하지 않았어. 대부분 후술할 '기갑집단'으로 땜빵처리했었지. 그건 바로 보병-기병이 한 덩어리가 되서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주는 프로이센식 기동전에 익숙한 장성들, 특히나 보병 출신 장성들의 반대 때문이었어.

아무튼 저 문제를 만본좌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고,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과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지. 그래서 2번에 대한 대안책이란게 어찌 보면 상당히 어이없으면서도 무모해 보이는 작전이야.

"주공인 기갑부대 중 일부를 떼낸 다음 떼어낸 일부를 주력이라고 믿도록 한 뒤, 진짜 주력부대는 1차 낫질작전을 끝낸 다음, 다시 재빠르게 남하해서 마지노선 방면에서 올라올 적군을 향해 다시 '낫질작전'을 반복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것처럼 이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모가지를 당하지.

'입닥치고 있으라'는 의미로 후방에 주둔하고 있던 38군단 군단장으로 전출가게 됐지. 여담으로 휘하 참모가 38군단으로 전출가자 "지금같은 때에 후방으로 가면 공은 언제 세우겠나?"라고 했는데 며칠 뒤에 자신이 38군단 군단장으로 전출가게 돼서 서로 뻘쭘했다는 일화가 있어...


3. 의외의 결정, 그리고 혼란.
그런데 여기서 만본좌를 모가지시켜버린 할더가 의외의 구원자로 떠오르게 돼. 아니, 참모본부가 구원자로 떠올랐다고 할까.
사실 할더와 그 휘하의 참모본부는 압축 프레스기 사이로 머리를 들이미는 짓인 프랑스 침공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었고, 특히 할더는 자신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계속해서 프랑스를 공격한다! 라고 외치는 히틀러에게 진심으로 빡쳐서,(사실 38년부터 히틀러에게 반대하던 인물이야. 쿠데타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지.) 여차하면 히틀러를 쏴 죽일 생각으로 몇주동안 권총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니, 기분이 이해가 가지?

그래서 '적당한 대안이 없으니'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의외로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려.
그런데 그 와중에 떠오른 문제점이 또 있는데....


  • 주공을 맡아야 할 A집단군 사령관 룬트슈테트 상급대장은 알아주는 신중파다. 그런 경우 과감한 참모장을 달아주면 적극성을 보강할 수 있었을 텐데, 일단 A집단군이 조공이라는 기존 계획에 따라 인사이동을 하는 바람에 하필이면 신임 참모장으로 임명된 조텐슈테른은 신중한 사람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즉 집단군 전체가 위에서 내린 임무를 이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 게다가 여전히 기갑부대의 작전술 제대 편성은 이론상으로도 제대로 정립된 게 없고, 할더가 아무리 이 계획의 가치를 인지했다 해도 다른 모든 지휘관들까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상태에서 웬 기갑병과라는 듣보잡 병과가 전쟁을 혼자 다 치르도록 내버려두기엔 작전술 제대 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임무형 지휘체계에 따라 자율사고 및 행동에 익숙해진 독일군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게다가 기갑부대의 작전적 가치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나, 야전군 사령부 입장에서는 적어도 군단급 기갑부대는 야전군 작전행동의 한 국면에서 강력한 전술예비대로서 운용 가능한 세력임이 이미 입증돼 있었다. 원래대로라며 자기에게 주어져야 할 강력한 기갑부대가 웬 듣보잡 작전술 제대를 만드느라 어디론가 끌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그 지휘관은 날개를 잘린 꼴이 된다.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해 죽겠는 전장에서 그나마 강력한 부대까지 뺏긴 지휘관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할더는 만슈타인의 계획보다는 좀더 보수적인 작전계획을 세울 수 밖에 없었어. 그게 아래의(위에도 있지만) 지도 D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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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C의 점선은 만슈타인이 후에 제시한 프랑스군의 반격에 대한 대책)
    A집단군을 주공으로 바꾸는 대신, B집단군에도 강력한 지원을 해줌으로써, 조공 아닌 조공이 되버리고 말지. 즉, 일반적인 조공보다 훨씬 더 강한 공격력을 지니게 됐다 이거야. 대신 기갑부대가 전에 비해서 상당히 분산됐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또, 앞서 말했듯이 기갑부대를 확실히 하나로 통제할 수 있는 기갑군의 창설 대신 보병지휘관들의 반대를 적당히 무마시키기 위해서 '기갑집단'을 만드는데, 사실상 기갑군과 동일한 편제지만 임시편제인 편법을 쓸 수 밖에 없었어. 또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기갑부대의 운용 경험이 전무한 기병 출신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기병대장을 앉히고, 드디어 독일군 최초의 기갑집단인 '제 1 기갑집단(독일군에서는 임시편제에 지휘관의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라고 불렸어)'이 탄생하게 돼.

    하지만 처음으로 만들어진 기갑집단이다 보니 상당한 차별을 받았는데, 가장 극단적으로 두드러지는 대목은 진격로 배정에 있지.

    "총 死만여대의 차량을 170km 진격시키는데 배정받은 길이 死개 뿐이盧!"

    덤으로 작전 개시 死일 전 진격로가 2개로 줄어버리는 악재가 겹치게 되지. 어째 독일군 기갑집단은 전생의 호성성님이 따라다니는 것 같노?

    덕분에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휘하 41군단과 19군단은 원래 나란히 진격해야 하는데 줄줄이 소시지마냥 늘어서서 달려가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줬지. 게다가 B집단군이 맡은 지역이 벨기에 유역인데, 그곳은 아르덴느 숲이 있기 때문에 전차의 진격을 심각하게 방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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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 간 글이 어떻게 수정돼버린건진 모르겠지만 1편 맨 앞에 2개를 실어버린 사진. 아르덴느 숲을 빠져나오고 있는 2호전차(선두)와 1호전차(후미)야. 아르덴느 숲의 빽빽한 삼림을 독일이 자랑하는 강력한 전투공병을 동원해서 벌목+지뢰제거라는 역사(力事)를 해내게 돼. 사족으로, 이곳은 4년 뒤에 서부전선 최후의 격전장이 돼지. 이건 나중에 따로 발지전투에 대해 쓰면서 설명할게.

    그런데 기갑사단만 교통정체에 시달린건 아니고, 독일군이 산개한 전 전선면에서 사상 최대의 교통혼잡이 일어나게 돼. 솔직히 여기에 프랑스 공군이 제대로 폭격을 해주고 반격작전만 잘 세웠더라면 독일은 순식간에 털렸을거고 유럽의 평화는 5년이나 앞당겨졌을거야. 하지만 프랑스는 '전쟁만큼은 피하고 싶다'라는 일념때문에 정작 전쟁이 일어나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 원래대로라면 프랑스군의 반격작전에 대해서도 써야겠지만 괜시리 길어지기만 할테니 여기서는 줄일게. 어차피 난 프랑스군쪽은 잘 모르니까.

    아무튼 독일군이 아르덴느 숲을 돌파해서 올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한 프랑스군은 당연히 B집단군이 주공이라고 판단했고, 아르덴느 숲에서 야간정찰중이던 정찰기에 전차대의 행렬이 탐지됐음에도 '날이 밝으면 확인해보자'라며 묵살시켰지. 뭐, 그 부대는 날이 밝고 나서 독일군 전차를 '온몸으로' 확인했지만.

    아르덴느 지구는 적군이 올 리가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군 사령부는 부대 휴양지로 사용, 재배치를 위해 대기중인 부대를 배치시켜 놓고 있었어. 44년 12월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지. 다만 그 주둔병들이 프랑스군에서 영/미 연합군으로 바뀌었다는 거고, 프랑스군은 순식간에 괴멸당한 반면 영/미 연합군은 취사병들까지 닥닥 긁어모은 결과 간신히 버텨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야.

    아르덴느 숲과 그 주변을 돌파한 클라이스트 전차집단은 방향을 북쪽으로 꺾어서, 벨기에에 모여 있는 영-프-네덜란드-벨기에 연합군의 숨통을 죄이기 시작하지. B집단군이라는 손에 붙들려 있는 밀들이 A집단군의 날카로운 낫에 썰려나갈 차례인 거지.

    그런데 여기서 한직으로 밀려 있던 만본좌의 계획을 듣고 '올 그거 좋네 ㅋ'라며 전선으로 복귀시켜 줬던 바로 그 힛쨩이 제동을 건 거야. 이유는

    "측면이 너무 늘어졌어. 잘못하면 우리 금쪽같은 전차대가 당한다고."

    이런 생각이 든 힛쨩은 A집단군에서 일부를 빼내서 '남부에서 가해질지도 모르는 프랑스군의 반격'을 막기 위해 A집단군의 아랫배 부분에 산개시키지. 어찌 보면 괜찮은 생각이지만, 여기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전차대의 진격 자체를 금지시켜 버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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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기동중인 7기갑사단 소속 3호전차. 37mm포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전차를 파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
    그런데,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휘하 기갑사단 중 제 7기갑사단이 있었어. 그 사단의 사단장은 그 이름도 유명한 에르빈 롬멜.
    하루 진격속도 70km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유령사단'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었지. 그런데 이 사단이 진격금지명령을 잘 따르겠어? 여기서 롬멜은 꼼수를 내. 당시 독일군에는 다른 군에는 없는 특이한 지휘체계가 있었는데, 바로 임무형 지휘체계라는거야. 즉, 전방 지휘관에게 어느정도 재량권을 줘서 예측불허의 전장상황에 맞춰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허락한거지. 이걸 살짝 악용한 롬멜은 '이쪽 방향에서는 적의 반격이 없을 것임이 확실함'이라고 주장하면서 프랑스 북부해안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해. 하지만 꼼수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결국 멈추어 서게 되지.

    또, 독일군의 진격을 멈추게 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아라스 전차전이 있어. 1940년 서유럽에서 벌어진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전차전인데, 솔직히 전차전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것이 독일군은 전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대였다는 거지. 아무튼 아라스라는 시골마을에서 양측은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히는 혈전을 벌였고, 근처에 있다가 지원을 간 롬멜조차도 '적 전차 수백대가 공격중!'이라는 무전을 날릴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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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녀석 때문이야. 영국군 보병전차 마틸다 Mk.2
    보병전차의 특성상 저속 중장갑을 중시하다 보니 전면장갑이 75mm에 달하는데, 당시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37mm 대전차포로는 이빨자국도 못내는 괴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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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군의 37mm포. 포수 두 명만 있어도 끌고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지만, 구경이 작다 보니 위력은 그닥....

    그래서 앞으로 연합군에게 악명을 떨칠 이녀석이 등장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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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횽아 왔다"

    후에는 전차포로까지 쓰이는 88mm 대공포를 끌어와서 마틸다를 아작내기 시작했고, 아라스에서 연합군은 큰 타격을 입어.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힛쨩은 겁에 질려서 기갑부대의 진격을 막았지.

    얼마 뒤 남쪽의 점령지 방어선이 구축되자 진격제한이 해재됐고, 영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연합군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영불해협에 쓸어넣어 버리기 위해' 다시 진격을 개시했지. 클라이스트 장갑집단 휘하에 있던 구데리안(구대리....)이 휘하 군단을 이끌고 덩케르크 15km 앞까지 진출을 하게 돼. 사실, 덩케르크만이 남은 이유는 연합군 수중의 잔존 항구 3개에 대해 공격명령을 내렸는데 하필 덩케르크를 공격목표로 잡은 10기갑사단이 서부전선군 예비군으로 돌려지면서 그렇게 된 거야. 5월 24일, 사령부에서 '후미의 보병대와 거리가 너무 머니 대기해서 합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27일 히틀러가 전선시찰을 나오면서 결정타를 먹여. 이번에는 일부 부대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전군 정지" 명령을 내린거지. 너무나도 쉽게 얻어지는 승리에 불안감을 느낀거야. 하지만 현실은.... 연합군은 도망치기 바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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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대리님. 위엄보소 오오

    정확히는, 덩케르크 시내와 시외를 구분하는 운하를 건넌 독일군이 교두보까지 철수시킨게 화근이었어. 왜냐하면 독일군은 개전 이래 단 한 번도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고, 특히나 기갑사단의 경우 전차의 정비 및 소모품의 재보급 속도가 진격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전차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라 24시간 정도는 쉬어야 한다는 것이 OKH와 히틀러의 결론이었지. 하지만 상술했듯이 운하 너머의 교두보를 철수시키는 바람에, 연합군이 운하를 따라 방어선을 구축할 기회를 주고 만거야. 만약 교두보를 남겨뒀더라면 연합군은 교두보를 격퇴하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왔을 것이고, 그러면 독일군이 재정비를 마치는 순간 되려 역습을 당해 금방 무너졌을테니까. 

    하지만 역사에 IF는 없는 법이니, 덕분에 수많은 연합군 장병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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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케르크에서 철수하는 연합군. 총합 38만여명이 이곳을 통해 탈출했어. 그중 프랑스군 10만여명은 다시 수송선을 타고 독일군의 6월공세를 막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갔지. 최대한 수송인원을 늘이기 위해 민간선박까지 동원했고, 그중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타이타닉 호' 항해사 출신의 민간인이 자기 소유의 요트를 아들과 함께 끌고와 장병들을 수송할 때 흘수선(배에 물이 차오르는 높이)이 갑판까지 육박했다고 해. 그 외에도 보이스카우트 소속 배라던가, 19세기에나 쓸법한 외륜선을 몰고 와서 장병들을 실어나르는 등, 영국 남부 해안에 있던 배란 배는 모조리 이곳에 투입됐어.

    또, 연합군의 철수가 이정도로 가능했던 건 괴링괴링한 체중병기 괴링이 '우리 공군이 저놈들을 다 바다속에 처박아보이겠다!'라고 하면서 육군과 해군은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했다는 거지. 그러면서 구축함 9척과 대형 선박 9척, 그리고 소형 선박 200여 척을 격침 및 파괴시키는 '비교적' 가벼운 피해만 입힌건, 괴링의 허세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역할밖에 하지를 못했어.

    뭐 그렇지만, 선박을 공격하는 Ju87 '슈투카' 폭격기들을 격추시키기 위해 발진한 영국 전투기를 향해 독일 전투기들이 쇄도했고, 1940년 서부전선에서 영국군이 상실한 전투기의 40%를 이곳에서 잃게 돼. 폭격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장난 아니어서,

    "그래... 대단하다, 독일놈들아! 너희들 앞에서는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라고 외친 사람도 있었어.

    아무튼, 낫질작전은 덩케르크에서 연합군을 말소시키는데 실패하면서 다소 어정쩡한 상태로 끝나고 말았고(낫질작전의 목적 자체가 낫질하듯이 연합군 부대를 붕괴시키는거였으니) 영국은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돼. 물론 신나게 털리고 있는 프랑스는 뭐....


    이후의 전투는 거의 독일군의 일방적인 진격으로 끝이 났으니 낫질작전에 대한 글은 이정도로 끝을 내도록 할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섯 줄 요약
    1. 프랑스랑 싸우기 싫은 참모본부는 힛쨩이 닥달하자 대충 슐리펜 계획을 손본 황색작전을 입안함
    2. 만본좌가 참모본부의 계획에 태클을 걸고, 작전 계획서를 본 참모본부는 '이새끼 미쳤구먼'이라며 한직으로 쫓아내버림
    3. 힛쨩이 만본좌 부대를 시찰하러 왔다가 만본좌에게 설득당해서 채택됨
    4. 진격! 이라고 했는데 전무후무한 교통체증이 발생함
    5. 그래도 프랑스군의 병신짓 덕분에 꾸역꾸역 진격해서 아르덴느 숲을 돌파, 안심하고 있던 프랑스군 뒤통수를 후려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