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내용은 ‘이승만 깨기’ 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미리 밝힌다.



이승만이 6.25 발발하자 제일 먼저 도망친 인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야.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을 알고나니 너무 부끄러울 따름이야.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해.


■ 과연 이승만은 비겁한 인간이었나?

역사에서 군사를 이끌던 장수가 전장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지?
그 군은 십중팔구 중심을 잃고 혼란을 격다 궤멸당하고 말지.

이순신 장군도

‘전투가 바야흐로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戰方急, 愼勿言我死)'

라고 하셨지


전투 중에 지휘관의 중요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생각 해.



IMG_8189(683x1024).jpg

어느 병신이 자기편 장군이 죽었다고 적에게 알리노?




그러면 1950년 6월 25일 새벽부터 6월 28일까지 4일간의 행적을 살펴보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괴는 인민군과 중공군(국공내전으로 실전경험이 많은 베테랑)과

240여대 탱크를 앞세워 남침을 하지.


동시에 특수부대원 600여명을 부산 등 후방기지로 침투시켜.

다행하게도 특수부대원은 부산 앞바다에서 우리 군함 ‘백두산 함’에 의해 발각되어 교전 끝에 격침됐다.

(이건 배진영 기자의 6 25전쟁, 대한민국을 구한 백두산함 https://youtu.be/QECyGmjjZ44 참고)



6월 25일 아침까지도 우암 이승만(이하 우암)은 북한의 침략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아침을 먹고 9시 30분 경 경회루에 낚시를 하러갔고,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갔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지.

북한의 침략을 처음 보고 받은건 오전 10시경.
보고를 받은 우암은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돌아와.



6월 26일 새벽 3시
전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우암은 일본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들 미국의 책임이 막중하니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

라고 강력하게 항의해.


1355090348.jpg

'여우같은 늙은이가 미국을 기어코 끌어들이는 구만...'




또 트루먼 대통령에게도 압박을 가하지.


1054593987.jpg

의회에서 승인한 1천말 달러 무기지원을 트루먼이 결재하고도 안하고 뭐하냐 이기야?

트루먼 떡사먹었노?



6월 26일 14시 40분경 의정부가 함락당했고, 그날 저녁 처음으로 대통령의 피난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해.



6월 27일 새벽 02시.

국방장관, 서울시장이 우암을 찾아와 피난 할 것을 간곡하게 건의 해.


하지만 우암은
“안 돼! 서울을 사수해야 돼! 나는 떠날 수 없어!” 라고 말하고 문을 쾅 닫으며 방으로 들어가버려.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까지 나서 설득에 나서지만 오히려 고함만 칠뿐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어.

이때 경찰간부 한명이 청량리까지 함락되었다는 메모를 전달해.


screenshot-map naver com 2016-06-26 12-09-38.png

10km 남짓. 쏘오오련 탱크로 밀고가기 딱 좋다 이기야.



그러자 할 수 없이 우암은 남하하기로 결정하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청량리까지 함락되었다는 보고는 거짓이었어.
완강하게 버티는 우암을 피신시키기 위한 꾀였지.

그리해서 6월 27일 새벽 3시 30분.
창문이 깨지고 의자 스프링이 튀어나온 객차로 편성된 열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와.

오전 11시 40분 대구에 온 우암은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 본뒤
“자기 평생 처음으로 판단을 잘못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며
서울로 돌아갈 것을 명령해.



당시 서울은 점령당하지 않았지만,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은 우암은
“수원까지만 가면 서울에는 자동차로 갈 수 있겠지...” 라며 조바심을 내.


95854738.jpg

기차로 못가면 차를 타고서 라도 서울로 간다. 왜 못가게 하노 이기야?



열차가 대전에 도착하자 달려온 참모들은 이제 서울이 함락되었으니, 더 이상 북상하지 말 것을 권했다.
사실 그때 서울은 함락되기 전이었지만, 대통령의 안위를 생각한 참모들의 꾀였지.

하지만 우암은 수원까지라도 가야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 미 드럼라이트 참사관이 유엔 대북 군사제재 결의와 미 트루먼 대통령의 해·공군 출동과 대한(對韓) 무기 원조 명령을 내렸다고 전한다.

우암은 그제야 북상을 담념하고 대전으로 정부를 옮긴다.

6월 27일 저녁.
무초 미국 대사가 우암을 찾아와
‘하늘이 한국을 버리지 않았다’며
“전쟁은 이제부터 당신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이 되었다”면서 미국의 적극 참전 방침을 설명해.

051211_0723_4.jpg

이제 이 전쟁은 우리가 맡는다.



이 말에 힘을 얻은 우암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군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방송을 하겠다고 결심해.

공보처장과 상의한 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전화를 해 6월 27일 밤 10시에 방송을 하기로 하지.

내용은 “유엔과 미국이 우리를 도와 싸우기로 했다. 지금 공중과 해상으로 무기, 군수품을 날라와

우리를 돕기 시작했으니 국민들은 고생이 되더라도 굳게 참고 있으면 적을 물리칠 수 있으니 안심 하라”는 취지 였다.

2015111100121926.jpg


요약
우암 이승만은 도망간게 아니라 안가려고 똥고집 부리다가 결국 대구까지 내려갔다 대전으로 다시 올라옴.

좌익은 교묘하게 우암이 먼저 도망간다음 거짓 방송한것 처럼 주작 전국민 교육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