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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읽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반박한다
아근데 글이길어서 지루할까봐 브금넣엇다 싫으면 꺼라
대공황을 말하기전에 1차 세계대전을 말하고가야한다
세계경제는 1920년대 초중반에 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해를 다 복구하고
성장국면으로 진입했지만 노동자세력의저항,배상과 전쟁 채무 문제,국제통화 및 금융시스템의 불균형등
잠재적불안요소가 많았다
1920년대 세계경제의 불안요인을 크게4가지로 나누자면
1. 임금의 경직성과 고실업
- 임금 인하에 대한 노조의 완강한 반대
- 경제 시스템의 비대칭성
경기상승시에는 물가와 임금 상승
반면 경기후퇴시에는 물가와 임금 하방 경직적
고실업 초래
2.전쟁 배상 및 채무 문제
- 영국과 프랑스 등은 미국에 전쟁 채무 상환 의무
-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배상 지급 의무
- 독일은 배상금 지급 위해 미국에서 공채 발행
미국의 해외대출 증가 계기
3. 국제 통화 시스템 불균형
- 1925년 영국 금본위제로 복귀
파운드화의 과대평가 초래
- 물가와 임금의 하방경직성으로 파운드화 과대평가 상태 지속
- 프랑스는 금융정책의 혼란으로 자본유출 사태 발생
지속적 평가절하로 프랑화 과소평가
4. 미국의 해외 대출
- 1차 대전 중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대출
- 전후에도 유럽과 중남미에 대규모 대출
- 독일에는 전쟁 배상금 마련 위한 차관 제공
- 1929년 미국의 해외대출 급감으로 국제금융 불안초래
이러한 잠재적 불안요소를 배제하고 그냥 전세계경제가 최고로 호황기였다고?
그냥 고전자본주의만세 라고 선동질하는거랑 뭐가다르냐?
그래 1920년대 후반에 확실히 세계경제 대호황기가 찾아오긴했다
하지만 국제금융 시스템의 불안과 정치적 긴장은 점점더 가중되고있엇다
그당시의 세계경제를 몇가지로나눠 설명해보자면
1.각국별 경제상황
- 미국은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대중화로, 독일은 미국 자본의 유입에 따른 투자 증대로 호황
- 프랑스는 프랑화의 가소평가에 의거해 공업생산 증가, 국제수지 흑자 시현
- 그러나 영국과 일본만은 20년대 내내 침체상태
2.금환본위제
- 미국은 계속 금본위제 유지, 영국은 전쟁 후 1925년에 금본위제로 복귀
- 미국과 영국 이외의 국가들은 금과 태환가능한 외화(달러, 파운드)를 준비금으로 적립하는 금환본위제 채택
3.프랑스의 파운드화 축적
- 프랑화의 과소평가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를 시현함과 동시에 국내로 자본 유입 조장
- 자금이 런던에서 파리로 이동함에 따라 프랑스의 외환보유고 증가, 영국은 금 상실 초래
4.미국의 주식시장과 해외대출
- 미 연준은 1927년에 경기 진작과 영국으로의 자본 유입 촉진을 위해 금리 인하
- 1924년 이래 상승세를 타고 있던 주식시장은 금리 인하 후 28~29년에 과열 양상
- 28년 하반기부터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으로 몰리면서 해외 대출 급감
5.배상문제
- 1924년의 도우스안을 대체하는 영안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 갈등
1920년대말 농산물 등 주요 1차 상품의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면서 심각한 농업 불황이 야기되었다
이로인해 1차 상품 생산국들 사이에서 경쟁적 평가절하와 구조적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
참고로 미국은 1차 상품 생산국으로분류됨
1920년대말의 농업불황과 디플레이션을 순서대로 설명하자면
1.1차 대전 중 유럽의 농산물 생산 감소
2. 미국과 신흥 농업국들의 농업 투자 및 농업 생산력 증대
- 미국, 호주, 캐나다, 아르헨티나, 동유럽 등 경작면적 확대
- 기게화, 수리시설 투자 등에 의한 농업 생산력의 급속한 증대
3.전쟁후 유럽의 농산물 생산 회복과 각국의 농업 보호 정책
- 미국 연방농업위원히, 캐나다 소백 연합 운영
- 29년 호주의 "소맥증산 운동"과 영국의 경작 면적 확대 조치
4.세계적 과잉생산과 경쟁적 수출에 따른 1차 상품 가격 폭락
- 1925년에서 30년대초까지 대부분 농산물의 국제가격 지속적 폭락
5.1차 상품 수출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금본위제 이탈
- 대부분의 1차 상품 생산국은 미국에 대한 채무국
- 농산물 수출가격 폭락과 채무 상환 부담으로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농업의 기술적 특성상 가격시스템에 의한 생산 조정 곤란 -> 디플레션의 국제적 파급
이렇게 결과가 나온거다
니새끼는그냥 어느때나 일어날수있는 시장위축? 그리고 뭐? 살짝 투자시장 과열?
선동질좀 작작해라 시발새끼야
20년대말 세계경제가 얼마나심각한지 총정리해서 말해주마
20년대말의 신용경색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1.1927~29년 유럽 증시 하향세
2.뉴욕 증시의 투기 열풍
3.배상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이러한 원인으로인해서
뉴욕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영국준비금은 급감했고 각국은 연달아 금리 인상 뉴욕 FRB도 29년 재할인율 인상
저새끼가 그냥 시장위축이라고 별것아닌것처럼 말한 1929년의 경기하강추세를 말하자면
1.독일과 미국은 29년 4월 영국은 7월을 절정으로 경기가 하강추세로 반전
2.벨기에는 29년 3월부터 캐나다도 29년 봄부터 남아프리카는 2/4분기부터 하강 추세
3.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융 및 소비 위축, 재고 누적
이러한 원인들로인해서 29년 10월에 뉴욕증시가 붕괴되었다
그로인해 공업생산은 더욱 빠른속도로 하락하고 상품 가격 하락과 수입 감소에 의한 디플레의 국제적 파급이라는 결과를 낳앗지
1930년대초 세계경제는 다소회복세를 보였으나 더블딥에 빠져버렷다
그원인중하나는 니새끼가말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맞다
근데 니는 순서를까먹은거냐? 아니면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아니였으면 더블딥에 안빠졋다고말하는거냐
이해를못하겟지만 어쨋든 더블딥의 원인을 말하자면
1.해외 대출의 위축
- 1930년초 해외 대출 회복세
- 그러나 곧 새로운 전쟁배상안(영안)에 따른 공채 발행으로 자금 흡수
- 차입국들의 신용도 하락으로 해외 대출 기피 현상
2.경쟁적 관세 인상
- 미국, 1930년 6월 스무트-홀리 관세법 재정으로 관세 인상
-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관세 인상
3.미국 통화정책의 문제점
- 뉴욕 FRB는 29년 11월에서 30년 6월까지 재할인율 6%에서 2.5%로 인하
- 그러나 공개시장 조작을 통한 통화량 공급 조치는 취하지 않음
- 신용도가 크게 하락해 금리 인하나 통화량 공급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
4.독일의 정치적 곤경
- 독일 정부는 외채 부담과 인플레를 우려해 디플레 정책 시행 - > 불황 심화
-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독일 은행들로부터 자금 유출 사태
5.상품가격의 지속적 하락
- 수년간 누적된 재고로 공급 과잉 상태 지속
- 해외 차입이 어려워진 1차 상품 생산국들은 수출 확대 노력
이러한 원인들로인해서 범세계적 차ㅜ언에서 디플레이션의 확대 재생산이 됬다
1931년 물가와 주가 하락 및 이윤 감소로 많은 은행 대출이 부실화됨에 따라 1931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심각한 통화금융위기가 발생했으며
영국은 파운드화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에 굴복해 금본위제에서 이탈했다
30년대 초 디플레이션의 격화가 됬엇는데 그원인은 세계무역의 위축이다
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 이후 31년 32년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관세인상 조치를 취함에 따라 세계 무역이 크게 위축되고
특히 수요의 소득탄력성이 높은 제품을 주로 수출하는 국가들의 수출이 크게 하락한게 원인이지
이것만보자면 니새끼가말한게 맞다
근데 내말은 왜그것만 쳐말하냐는거지 다른원인들도 있는데?
일단 다른원인중하나인 독일배상금 문제를 말하자면
독일정부는 전쟁 배상금 지급을 면제받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디플레 정책을 시행했다
1932년 로잔회의에서 독일의 전쟁 배상 종식을 결정했지
독일은 그 직후부터 신용창출 및 지출확대 정책을 시행했엇지
1932년 영국은 금리 인하와 교역 조건의 개선에 힘입어 다소 회복세를 보였는데
미국에서는 정권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결국 1933년초에 은행위기가 발생하게 됬다
(텍스트만으로는 설명하기어려워서 PPT로만들어서 스샷찍고 글쓰는거니까 양해바란다)
영국과 스웨덴은 경제가 다소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영국
스웨덴
근데 미국은 은행이 위기를 겪게되지
미국
1993년에 런던에서 세계경제회의를 개최하는데
주요국의 통화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협정이 논의되었으나 미국이 거부했다
결국 영연방 국가들의 파운드 블록, 미국 중심의 달러 블록, 금본위제를 유지한 프랑스 등의
금블록 등으로 국제통화 시스템이 다극화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루즈벨트는 상품 가격 상승을 촉진하기 위해 금을 매입해 달러화 평가절하 조치를 취했다
미국이 국제수지 흑자국임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를 평가절화한 데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졌으나
상품 가격 및 주가 상승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지
1933년 이후 세계경제는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불황 대책에 따라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회복의 양상은 지극히 불균등하고 단편적이며 제한적이였다
마지막까지 금본위제를 고수하던 금블록의 국가들(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도 자국통화의
과대평가로 심각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처하게 됬고 결국 35~36년 사이에 금본위제를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1933년 이후 대체로 상승세를 보이던 미국경제는 37년에 다시 경기침체에 빠졌으며 루스벨트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38년초부터 케인즈주의적 정책을 실시했다
이쯤글을쓰다보니 너무너무너무귀찮아져서 대충 요약해서 순서대로나열하자면
1936~37년의 붐 -> 퇴장금(退藏金)의 통화로의 전환 -> 1937년의 경기후퇴 -> 케인즈주의 정책의 시행
30년대 후반 세계경제는 자본이동의 위축과 무역의 블록화로 분절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주요 강대국들은 군비지출을 크게 늘림
자그럼 여기서 이상한게 있는데 30년대 대공황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장기적이였던 이유는 뭘까?
그건바로 국제무역 및 국제금융의 양측면에서 세계경제 시스템의 안정화가 이뤄지지 못한데 있다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은 크게 3가지다
1.보호무역주의
-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그 이후 각국의 경쟁적 관세인상과 수입규제
- 급본위제의 붕괴와 각국의 경쟁적인 평가절하
세계무역이 급격하게 위축됨으로써 불황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화되는 결과를 초래
2.자본이동 급감
- 1차 대전 이전 영국의 해외대출은 세계경제 시스템에 대해 경기조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영국은 불황기에 해외대출 증가 -> 영국의 수입감소로 인한 세계경제의 경기하강 효과 상쇄
- 반면 1차 대전 이후의 최대 채권국인 미국은 불황기에 수입과 해외대출을 동시에 삭감
특히 1928년 미국의 증시 붐에 따라 미국의 해외대출이 급감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 정부가 세계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시장을 대신해 해외 대출을 지속하기 위한 정책기구 및 수단 부재
3.국제금융 불안
- 1차 대전 이후 전쟁채무와 배상 문제로 국제금융 시스템 왜곡
- 영국경제와 파운드화의 중심적 지위가 상실되면서 금본위제가 흔들려 균형환율의 체계 파괴
-> 금본위제의 붕괴와 각국의 경쟁적 평가절하 사태 초래
이글은 30년대 세계 대공황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킨들버거의 연구서를 참조했다
병신새끼야 세부적인 원인중 하나를가지고 그게끝인마냥 선동질하냐?
어디서 어줍잖게 주워들어서 끼워맞추기 좆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뉴딜정책의 효과까지 말하려니 너무너무 귀찮아서 세계대공황의 원인만 말하는걸로 끝낸다
니새끼 고전자본주의빨려고 선동질하는거 꼴사나워서 니글하나하나 다저격한다
정치일베에있는 니글 싹다 반박해줄테니까 기달려라
하루에 하나씩 싸주마
3줄 요약
1.니새끼가말한건 수많은 원인들중 한가지에 불과
2.근데 나머지원인들은 종범화
3.선동질하지마라 씨발새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