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씨는 잘 나가다가 왜 삼천포로 빠졌을까?
오씨팔 당시의 조갑제가 아래 사진의 인물인지 조갑제는 사실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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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는 잘 나가다가 왜 삼천포로 빠졌을까?
 작성일 : 16-03-23 17:55 글쓴이 : 만토스 조회 : 94 추천 : 18 | 조갑제씨 잘 나가다 왜 삼천포로 빠지셨나 조갑제씨는 2013년에 펴낸 그의 저서 “조갑제의 광주사태”라는 책에서 참으로 단호하게도 5.18광주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주장을 부정하였습니다. 조갑제 기자가 한 말 중에 뚜렷이 기억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5.18북한군 광주 침투 주장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도청 앞 애국가 부르는 시민들에게 계엄군이 집단 발포했다는 주장보다 더욱 황당하다” 이런 내용의 언급을 했었지요. 대체 왜 그렇게 5.18광주 북한군개입에 거부반응을 보였을까요? 조갑제 기자, 우스개 소리 중에 재미있는 말이 있지요. “저 사람 잘 나가다가 그만 삼천포로 빠지네”라는 말입니다. 조갑제 기자의 5.18에 대한 발언을 음미하다가 생각나서 한 비유입니다. 조 기자는 5.18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계엄군이5월21일 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조준사격 한 내용을 두고 터무니 없는 왜곡이라고 설명했습니다.거기까지는 조갑제의 광주사태 관전평은 잘 나갔었지요. 그런데, 2013년 5월에 있었던 북한군 개입 언론논쟁에서 그만 삼천포로 빠졌었지요. “조갑제의 광주사태”라는 책은 TV조선과 동아TV에서 2013년에 벌어진 5.18북한군가입 논쟁 이후로 과거 2007년 자신의 “공수부대의 광주사태”라는 책 내용 등을 총 망라하여 편집 발간한 저서입니다. 그 책에서 조 기자는 유독 앞 머리부터 “5.18북한군개입”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조갑제닷컴의 회원이 게시판에 올렸던 내용까지 인용하며 강력하게 5.18북한군개입을 부정하였지요. 그 중 압권은 바로 “전국계엄하에서 육해공 국경이 차단되고 삼엄한 경계 하에서 어떻게 대대급 병력이 발각되지 않고 침투 퇴각할 수 있겠는가?”라는 대목입니다. 조갑제 기자가 설마 군대조직 중에서 유독 특수부대의 역할과 기능만을 잘 모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당신을 모욕하는 것 같아 언급하기 싫지만,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요 70년을 한결같이 대남적화통일에 전력하는 미치광이 집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조갑제 기자의 북한특수부대에 대한 인식 부족은 참으로 심각한 수준인 듯합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적진에 침투시켜 수행하는 아군의 후방교란작전을 상상할 수만 있어도, 조갑제 기자의 계엄하에서 5.18북한군 광주 침투와 퇴각 불가 주장은 참으로 한심한 것입니다. 조갑제 기자는 남에게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핀잔을 주면서 정작 자신은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의 저자 전 북한특수부대 출신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의 말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모순의 극치이지요. 혹시 조갑제씨는5.18광주에 북한군 대대급 병력이 인민군복장으로 인민군가를 부르며 무장한 채 광주에 집단으로 침투하고 퇴각하는 전제 하에서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세상 어디에 그런 멍청한 특수부대 군대조직이 있답니까?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고 퇴각한 내용은 이미 임천용씨가 증언했는데도 말입니다. 조갑제씨, 당신은 대기자라는 존칭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2013년 언론에서의 북한군개입 논쟁에서 당신은 마치 수 많은 5.18북한군개입 주창자들의 주장을 잠 재우고 승리한 것처럼 이야기 했지요. 그러면서도 지만원 박사의 5.18북한군개입 주제를 두고 공개토론을 하자는 요청에는 일체 침묵했습니다. 그런 자세가 대 기자라는 호칭에 걸 맞는다고 생각합니까? 조갑제씨, 이제 당신이 주장한대로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지 말고 5.18광주 북한군개입 증언과 과학적 사진 증거에 제대로 된 답을 해 보시지요. 첫째, 연고대생 600명이라고 불렸던 정체불명의 시민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1)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 조사 92-93, 5월21일 0800경: 광주에 도착한 20사단 지휘차량 인솔대가 광주공단입구에서 진로를 차단한 시위대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받고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한 지프차 14대를 탈취 당했고 그 차량들이 정체불명의 시위대 300명을 태우고 아시아 자동차공장에 도착하였으며, 이들과 또 다른 300명은 고속버스를 타고 그곳에 합류한다. 도합 600여 명이 무기탈취의 현장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 집결했다. 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6:84, 5월21일 9시45분경: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300여명이 잽싸게 승차하였으며, 이들은 아세아자동차 공장으로 다시 가서 대형버스 22대, 장갑차 3대, 군용트럭 33대, 민간트럭 20대 등 모두 80여대를 징발, 차량에 가득 탄 중.고생과 젊은이들은 몽둥이로 차체를 두들기고 각종구호를 외치며 오전 중에는 외곽지역의 시민들을 동원하여 수송하였다. ( 3) 전교사 작전일지, 5월22일 07시50분경: 폭도 300명 탑승한 군용차 45대 송정리역 집결, 공포발사. 4) 김대령 저, 역사로서의 5.18에서, 5월22일 0750분경: 광주시민들을 길거리로 이끌어 냈다는 전옥주의 선무방송은 연고생 300명이 송정이 쪽에서 오고 있다고 방송한다. 후에 전옥주는 모든 선무방송 내용은 누군가가 전해준 쪽지에 의해 읽혀졌다고 한다. 당시에 광주의 증심사라는 절에는 간첩 손성모가 승려로 위장하고 북한군의 광주 침투를 안내했었다고 한다. 5) 조선로동당 출판사 1985, 광주의 분노 34-35에서: 북한도서 “광주의 분노”는 시민 군 600명이 21일 오전 9시부터 무기탈취를 시작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 때부터 봉기 군들은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놈들의 무기고를 본격적으로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폭동군중들은 괴뢰들의 군용차량 공장 인 ‘아시아 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314대의 군용차량을 로획하였으며 그 밖에도 414대의 각종차량들을 탈취하였다. 봉기 군들은 이 로획한 차량들을 타고 다니며 놈들의 무기고들을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 괴뢰군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의 무기고를 기습하여 숱한 무기를 탈취하였고, 지원동 석산의 독립가옥에 보관되어 있는 많은 폭약과 뢰관들을 빼앗아 내었다.” 둘째, 임천용씨의 5.18북한특수군 광주침투와 퇴각에 대한 증언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일성은 광주사태로 인한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여 5월말까지 예정 되었던 루마니아 방문일정을 단축하고5월 13일 귀국하였다. 광주에 투입된 북한 특수부대들의 실무 작전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5월10일 북한군 정찰국 소속의 황해북도 신천군 주둔 제1321부대(일명 신천복수대대)의 인원 300명이 폭풍명령을 받고 남포시 와우도 인근 지역에 집결하였다. (서해루트를 통해 침투시킨 300명)
신천보구여단 300명을 포함하여 남파된 특수부대인원 총600명이 남포에서 출발하였다고 부분적으로 기록이 있으나 광주에 침투되었던 증인들의 자료에 따르면 신천복수여단 외 타 여단들에서 차출된300명의 인원은 동해안의 루트를 이용했으며 함경남도 신포시 마양도 잠수함기지에서 출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동해루트를 통해 침투시킨 300명)
남포에 집결한 전투인원들을 환송하는 연회장에 김정일을 배동하여 김중린.이하일이 참가했으며 김정일은 당시 전투원들과 기년사진을 찍고 그들을 고무하였다. 이날 환송에서 김정일은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그 자료는 현재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2동 대남 사적관 지하전시실 2관에 보관되어있다. 환송회를 마친 남파 인원들은 1천 톤의 대형 뜨랄선에 승선하여 남포항을 출발하였다.
당시부터 남파된 부대의 전체 지휘는 정찰국 5부장 이하일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남포루트를 통해 침투되었던 당사자들은 공해상에서 탄광복같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남한 서해안의 백암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들어갔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총책 이하일은 공해상에서 광주현장에 침투된 무장인원들을 지휘하였다.
현장을 총괄 지휘하던 이하일은 계엄군에 의해서 광주정세가 역전되자 인원들의 철수를 지시했으며 1980년5월25일.부상인원을 포함한 약 400명 정도의 남파되었던 인원들이 1차로 남포항으로 도착했고 나머지 인원70여명은 광주에서 죽은40여명의 시신에서 일부 부위만을 채취하여 중부전선인강원도 철원군 상요리 일대의 전선을 넘어 귀대하였다.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의 증언) 셋째, 지만원의 500만야전군이 찾아낸 5.18광주침투북한군 사진입증은 어떻게 부정할 것인가요? 아래 사진은 그 유명한 북한군 대장 리을설이 5.18당시에 노파로 위장하고 연출한 희생자 시신을 이용한 선전선동용 사진으로써, 5월23일 힌츠페터가 광주에 다시 잠입하여 북한특수부대 이른바 광수들을 찍어 놓은 뚜렷한 과학적 증거 사진입니다. 물론 사진 원본에서 하부에 첨부한 인물 사진들은 지만원의 500만야전군이 찾아낸 북한특수부대 요원들로 판명한 대조용입니다. 조갑제 기자처럼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은 우선 콧방귀를 뀌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대답을 못하고 벙어리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있지요. “저 인물들이 북한군이 아니라면, 당연히 광주 시민군 이어야 하는데, 아무도 내가 그 사람이라는 자가 없다”라는 사실 말입니다. 조갑제류의 사람들이 설마 21세기 오늘날 유령을 믿고 있지는 않겠지요?
조갑제씨, 이제 억지 그만 부리시고 제 정신으로 돌아 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갑제 기자는 자신의 눈과 귀로 확인한 사실들만 글로 말로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똑 부러지는 기자라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러데 왜 유독 5.18북한군개입 사건에서만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과 글로 사람들을 실망시킬까요?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에서 북한특수군의 침투는 믿으면서 박정희 사망 후에 김대중 세력의 정국혼란을 틈타 5.18이전에 미리 소부대 단위로 침투시킨 민간인 위장 북한특수부대의 광주침투는 왜 믿으려 하지 않나요? 전두환의 신군부가 완벽한 대공방위 상태였기를 바랬나요? 일당백 살인기계 북한 특수부대를 믿고 싶지 않나요? 당신도 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한낱 인간입니다. 당신의 책과 주장에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識者들의 오만과 아집에 혹시 사로잡히지 않았는지 이제 좀 더 과학적이고 허심탄회한 자세로 대기자의 참 모습을 보이십시오. 조갑제씨, 삼천포 구경 잘 했으면 이제 그만 당신의 똑 부러진 대기자의 길로 다시 접어 드시지요.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던 조갑제씨! 이상. 2016. 3. 23. 만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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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대기자 낚인건가 김씨조선의 고급세작인가 밝혀주기 바란다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아래의 그림파일로 대체하여 게시한다.

여테껏 소소한 문제에서는 우파와 우파의 가치를, 박정희대통령을 숭모하는 수단을 사용하여, 이야기 한 것 같으나
결정적인 문제에서 도대체 전체주의공산왕국 김씨조선이나...
진실을 막으며 원슝이 뒤치기 아니지 엎어치기 운운하며 거짓을 두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를 듣고자 함이 본 글을 게시하게 하였슴을 고백한다.
오씨팔무장반란에 대한 조갑제 대기자의 여태까지의 발언 행동도 도대체가 오씨팔광주에서 직접겪었다는 인물로서...
또한 이후에 여러 탈북자들 역사학자들이 증언하고 기술하는 오씨팔의 풍경과는 달리...
스스로 오씨팔광주에서 취재하였다는 자료하나 스스로 내어놓지 않으면서 괴이한 소리만 철지난 녹음기마냥 반복하고 있다.
3.
조갑제 대기자에게 질의하고자 한다.
오씨팔무장반란에 관련하여 조갑제 대기자는 오씨팔광주에 가서 직접겪었다고 주장하였으니...
아래의 사진은 오씨팔무장반란 기간에 양팔을 겨드랑이에 끼여서...
북한특수군에 의하여 도청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광주사람 김중식의 모습이 생생이 드러나며...
고 김중식은 옆구리에 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러한 고 김중식은 대한민국 국군에 의하여 참살된 것처럼 알려져...
대한민국과 그 수호에 여념이 없는 국군의 명예를 훼손시키며...
자부심을 짓밟는 근원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위 사진에 찍힌 수많은 인물중...
빨강 점선원으로 둘러친 인물을 주목하여 주기 바란다.
3.1
위 사진에서 보이는 빨강 점선원으로 둘러친 인물이...
광주에 가서 오씨팔광주무장반란을 직접 경험하였다는...
35년전 조갑제 햇병아리 기자의 모습인가?
단순히 그러한가 그렇지 아니한가로 물어보는 것 뿐이니 여기에 고까워하지 말기 바란다.
3.2
35년전 오씨팔무장반란을 직접 경험하였다는...
현재의 조갑제 대기자는...
역사적사실을 알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시민을 위하여...
광주취재에서 찍은 시각적자료를 공개하실 수 있는가?
단순한 그럴 수 있는지 없는지 요청하는 것이니 여기에 고까워하지 말기 바란다.
조갑제 기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 북괴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단언하여 왔으니...
이러한 질의에 답변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위 질문은...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을 위하여 쓴 글이며...
또한...
시클의 영상분석능력이 우월함은 현재까지 확인되어 검증되었으며...
그 예로서는...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서 북괴특수군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던 해남사람 김인태,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서 북괴특수군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던 광주사람 김중식,
김씨조선 남파간첩으로서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 직접 개입하였던 손성모(제64광수)...
김씨조선 인물로서 일본에서 조총련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김소자(제207광수)...
와 더불어...
조갑제 기자가 위 사진에 보이는 인물이 오씨팔광주무장반란의 현장에서 활동하였다는 당시의 인물인 조갑제라면...
시클의 영상분석 능력에 대한 의문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위 질문을 귀를 열고 들어주어서 고마우며...
현재의 조갑제 기자가 답변을 들려주면 더욱 고맙겠다.
뱀발:
사회주의의 이론서라는 자본론은 순환논리를 사용하기에 과학적이론서가 아니며, 사회주의는 이론이 없다.
맠스의 자본론은 노동가치론을 그 출발지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자가배분이든 타가배분이든 배분된 생산자원인 노동력이 투입된 재화 서비스가 실제 소비배분이 된다는 과학적이론이 없다.
실제 소비배분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노동가치가 성립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소비배분된다는 전제의 성립이 없슴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배분되었다는 전제아래에서 성립하는 노동가치론을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이후 자본론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정치권력을 동원하여 강제 소비배분을 요청하는 사이비인 이론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자본론은 순환논리를 사용하기에 과학적이론으로서는 성립하지 아니한다.
즉, 사회주의는, 과학적 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개체(개인)인 맠스의 머리속에서만 작동되는 관념론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을 깨우치지도 못한 맠스가 그 무슨 지적능력이 있으며,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과학적으로 하라는 헛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맠스는 위대한 지적능력을 가진 과학자, 이론가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흔히 보이는 착각, 사악한 시기심 질투심,
인간개체(개인)의 행위양식으로는 고귀할 수 있으나 인간계통(집단)의 행위양식으로는 사악함을 낳는...
복합적 감성도덕력인 희생정신의 복합체인 인간개체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의식이 장엄하고 고귀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싸구려 유명인주의인 시시껄렁한 관심받고 박수받고자하는 인간개체(개인)의 자아의식과 결합한...
3류 위장쪼가리 거대한 이른바 사상가라는 종교교의체계의 건설자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적으로 인류역사에서 맠스의 자본론에 의한 사회주의의 성립을 확신하여 실행되었던 사회주의공산주의의 현실 구현체로서...
1917년 볼세비키혁명으로 성립하였던 사회주의공화국 쏘련은 이러한 이론이 없슴을 자각하지 못하고...
약3대 75년에 걸친 자본론의 적용, 변용적용, 변용적용...
온갖 지랄염병뽕을 다해보다가 결국 사회유지성장발전에 실패하여 1991년 인류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으며,
쏘연방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체제전환함과 동시에 쏘연방은 해제되었으며,
적색쏘련 기간에 행하여진 각종 역사적사실이 인류앞에 드러남으로서 인류역사에 끼친 사회주의공산주의의 해악만 증거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이론은 좋은데 적용을 잘못하였다는 개풀뜯는 헛소리는 혼자서 좆잡고 방뒹굴면서 하도록 하라.
조갑제 기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 북괴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단언하여 왔으니...
이러한 질의 그 중 핵심인 3.1항의 질의에 답변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
다시 적는다, 3.1항의 질의를...
3.1
위 사진에서 보이는 빨강 점선원으로 둘러친 인물이...
광주에 가서 오씨팔광주무장반란을 직접 경험하였다는...
35년전 조갑제 햇병아리 기자의 모습인가?
조갑제 기자는 그동안 오씨팔광주무장반란 현장인 광주로 잠입하여 취재하였다고 하였으며...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 북괴군의 개입은 없었다고 단언하여 계속 반복적으로 주장하여 왔으니...
조갑제 기자가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서 활동한 인물인 위 사진에 촬영된 인물과 같은 인물인지의 질문은...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을 위하여 쓴 글이며...
또한...
시클의 영상분석능력이 우월함은 현재까지 확인되어 검증되었으며...
그 예로서는...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서 북괴특수군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던 해남사람 김인태,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서 북괴특수군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던 광주사람 김중식,
김씨조선 남파간첩으로서 오씨팔광주무장반란에 직접 개입하였던 손성모(제64광수)...
김씨조선 인물로서 일본에서 조총련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김소자(제207광수)...
와 더불어...
조갑제 기자가 위 사진에 보이는 인물이 오씨팔광주무장반란의 현장에서 활동하였다는 당시의 인물인 조갑제라면...
시클의 영상분석 능력에 대한 의문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4.3은 무장반란이다.
오씨팔은 무장반란이다.
오씨팔은 사변이다.
오씨팔은 여적사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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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