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부사의 입장곡
2016년 3월3일, 위대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오늘 슬픈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쓴다.
그 주인공은 일본 프로레슬러 에자키 에이지. 프로레슬링 팬들에게는 링네임 '하야부사'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하야부사는 일본어로 매(falcon)라는 의미이다. 링네임이 암시하듯 하늘을 훨훨 나는 것 같은 화려한 공중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뛰어난 프로레슬링 실력은 물론이고 성실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팬들과 후배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마스크를 벗으면... 미남이다(!!)
하야부사에게 비극이 찾아온 것은 한창 프로레슬링계의 에이스로서 활약하던 2001년의 일이었다. 시합 도중 착지에 실패하면서 목뼈에 큰 부상을 입고 목 아래가 마비되는 끔찍한 장애를 안게 된 것이다. 이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3세!
본래 기술이 뛰어난 하야부사가 이러한 부상을 당한 원인으로는 경영난에 시달리는 회사를 위해 한번도 휴식없이 모든 시합에 출장하느라 피로가 누적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결국 단체에서 가장 마케팅 파워가 있었던 스타 하야부사를 잃으면서 그가 일으켜 세우려던 단체 FMW는 도산했다. (그리고 FMW의 사장은 자살했다)
프로레슬러로서의 꿈을 모조리 잃은 하야부사는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그러나 목 아래가 전부 마비된 그는 자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봉의 프로레슬러로 활약하던 그가 지금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중증의 장애인들 및 식물인간들 틈에서 죽음마저도 자기 뜻대로 택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니!
악몽같은 삶 속에서도 그는 조금씩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래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던 그는 자신이 그래도 아직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보다 그래도 운이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팔다리를 쓸 수 없지만 아직 목청은 건재하지 않은가. 자기의 의지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도 자신은 아직 목소리가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깨달을 하야부사는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반격을 꾀하는 존재가 프로레슬러라는 생각을 되찾고 재활훈련에 매달렸다.
전신마비라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나서 하야부사는 한동안 '간바레(힘내라)'라는 말이 너무나 싫었다고 했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더 힘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하야부사는 '그래도 역시 간바레는 좋은 말이다'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마음 속에서 세상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생각을 노래로 만들기 시작했다.
재활훈련은 상상을 초월하도록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단지 손가락을 움직이는, 아주 간단한 동작마저도 너무나 까마득하게 불가능한 일로 느껴질 때마다 하야부사는 좌절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끈질긴 재활훈련 끝에 그의 몸은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손가락이 움직이게 되자 처음에 입에 펜을 물고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전부였던 하야부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그의 꿈도 서서히 현실화가 되었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아카펠라처럼 부르면 그와 친분이 있는 뮤지션이 그것을 악보로 만들어주는 형식으로 하야부사는 노래를 하나둘씩 만들어갔다. 그가 쓰는 가사의 메세지는 일관되게 '포기하지 말고 힘내라!'였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자조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세지였다. 그리고 그는 가수 데뷔에 성공했고 비록 규모는 작으나 라이브 투어도 다니게 되었다.
늘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하야부사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정도로까지 회복되었다. 이 경이로운 회복에 일본 열도 및 전세계의 프로레슬링 팬들이 감동했다. 그리고 하야부사는 불사조로 불리며 존경받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타인들에게 '간바레'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존재가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하야부사의 시합을 라이브로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 각국에서 하야부사를 응원하는 편지가 매년 끊이지 않고 배달되었다고 하니 하야부사가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하야부사가 현역 프로레슬러일 때, 그는 늘 자신의 코멘트를 마무리하는 말로서 "진짜 즐거움은 이제부터다!"고 외치곤 했다. 하야부사라는 사내의 삶을 그처럼 잘 설명하는 말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마주해도 "진짜 즐거움은 이제부터다!"하고 외치며 꿋꿋하게 견디는 모습, 그것이 불사조 하야부사의 모습이다.
자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전하는 불사조
하야부사가 전신마비를 당한지 약 13년 후, 멕시코의 전설적인 레슬러 미르 마스카라스가 일본을 방문하여 시합을 가졌다. 커리어 내내 한번도 복면을 벗은 적이 없는 '복면왕' 미르 마스카라스는 1942년생으로 70년대~80년대 세계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았던 수퍼스타였으며 고국 멕시코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레전드. 하야부사 또한 젊었을 때에는 멕시코에서 수행 생활을 하며 미르 마스카라스를 숭배했었다.
미르 마스카라스
미르 마스카라스는 70대인 지금도 현역이다. 아무래도 전성기 때에 비하면 노쇠함을 감출 수는 없으나 지금도 코너 포스트 위에 올라가 몸을 날리는 액션을 감행하여 노익장의 화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미르 마스카라스는 실력도 있으며 성격도 좋은 하야부사를 매우 귀여워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하야부사를 발견하자 "Oh, young man!"이라 부르며 몹시 반가워하였다. 하야부사는 미르 마스카라스가 자신을 알아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Young man이라 불러준 일에 감격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아직 두발로 오래 서있기 어려운 하야부사를 부축하고 있는 미르 마스카라스. 목뼈를 다친 사고 이후 하야부사가 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때 하야부사가 "진짜 즐거움은 이제부터다!"하고 외칠 때 관객들의 열광은 참으로 엄청났다.
30대 시절 그는 하루라도 빨리 몸을 회복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재활훈련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40대에 접어들면서 재활훈련에 대한 의지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야부사는 미르 마스카라스를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미르 마스카라스는 70세의 나이에 아직도 링에 올라 구슬땀을 흘린다. 그런 미르 마스카라스의 눈으로 보면 자신은 그저 아직도 '젊은이'일 뿐이다. 나도 70세에 코너 포스트 위에 올라가자. 그러자면 아직 25년 이상 남았다. 25년간 재활훈련을 쌓아 다른사람의 도움없이 나만의 힘으로 링에 올라갈 수 있는 몸을 만들자. 그리고 하야부사는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레전드와 레전드. 복면왕과 불사조.
그러나... 미르 마스카라스의 따뜻한 환대를 받은지 약 1년반 남짓 후... 2016년 3월3일. 불멸의 불사조 하야부사는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47세의 나이였다. 사인은 급성 뇌출혈이었다. 하야부사는 사고 이후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 탓에 하야부사가 쓰러졌을 때 병원에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하야부사에게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 것을 불안하게 여긴 친구들이 그의 집을 찾아가보니 그는 이미 사망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하야부사를 통해 용기를 얻던 모든 사람들은 이 뜻밖의 불행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70세의 컴백을 약속했었던 불사조였으나... 뜻밖의 뇌출혈로 인해 영면하고 말았다.
그가 겪은 역경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은 하야부사가 끔찍한 좌절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쏟아부었던 노력일 것이다. 그는 진정한 불사조였다.
왜 하야부사의 일생은 늘 '포기하면 편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냥 포기하지 않기로 하기'의 반복이었다. 20대 시절에는 다른 단체의 오퍼도 거절하고 자신이 몸담은 FMW를 위해 몸을 바쳐 일했다. 30대와 40대에는 악몽과도 같은 전신마비의 좌절과 고통에 맞서 싸웠다. 그는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희망을 약간 버리는 대신 좀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노력하나 안하나 어차피 정상적인 몸은 아니었을텐데. 하지만 단 하루를 살더라도 불사조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고개가 숙여진다.
비록 70세의 프로레슬러 컴백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지금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싸웠던 불사조는 이제서야 겨우 그 날개를 내려놓고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생전 늘 하야부사가 즐겨 말하던 그 명언은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진짜 즐거움은 이제부터다!"
일게이들 툭하면 서로 장애인이라 그러는데 아무리 그래도 목 아래가 전부 마비된 게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냥 무조건 포기하지 마라, 희망을 버리지 마라 같은 소리를 늘어놓지는 않겠다. 그러나 목 아래가 마비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내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여러 일게이들이 각자 역경의 순간을 맞았을 때 뜻밖의 힘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