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단 DMZ 내부에 있는 은하계곡 사진>
선 요약
1.북괴gp에서 11명에 내려오다가 8명 복귀하고
2.아군 소위군복입은 1명 병사2명이 MDL넘어 내려오다가
3 .2명 사살당하고 1명 잠복하고있던중
4.퇴로막은 3사단 수색대대원에 의해 사살당함.
6. 아재 군번들 전투능력짱
5.92년에 일어난 대침투 우수사례작전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 뒤따라가던 소대원들은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리고 주저앉은 채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인기척 소리가 들렸음. TOD로 확인 요청바람." 무전기로 확인을 요청한 후 소대원의 일부는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조준 사격을
나머지는 각각 약정된 방향으로 지향 사격 자세를 취했다.
이어지는 답신 "관측 결과 이상 없음"
불과 10분 이내의 일이지만 소대원들에게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시간이다. 수색 도중 이러한 일은 대여섯 차례 발생한다.
"갑자기 들리는 소리는 노루 고라니 같은 동물들의 움직임이나 바람에 갈대가 스치며 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자주 접한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기 떄문입니다"라는 것이 박병장의 말.
모든 적은 먼저 탐지하고 먼저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 따라서 수상한 소리나 발자국 등 유기물을 발견하면 누구나 주먹을 들어 그 사실을 소대원들에게
알려 대비토록 해야 한다. 주먹을 이용하는 것은 최대한 소리를 줄이기 위한방안.
DMZ작전에서는 모든 행동과 지시는 무전을 제외하고는 수신호로 이뤄진다.
이날 수색 활동이 진행된 곳은 부대의 자랑522 완전 작전이 전개된 장소이다.
522작전이란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DMZ 군사분계선을 월경 침투한 적 세 명의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수색부대를 투입해 전원 사살한 작전
특히 적의 움직임을 사전에 정확히 포착 완벽히 추적하는 능력을 과시해 군 경계 작전의 표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떄문에 이곳을 지날때마다 부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갖게 된다고 한다.
다시 수색을 진행하던 소대원들에게 나타난 지형은 주변이 훤히 드러난 벌판, 이른바 개활지다 DMZ 내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개활지는
특히 주의가 필요한 지역 적 gp로부터 수색대의 행동거지가 일일이 읽히기 때문이다.
주의가 필요한 것은 늪지도 마찬가지. 요즈음 같은 장마 기간중에는 유실된 지뢰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DMZ에 수색 정찰하러 나온지 이번이 일곱번째라는 무전병 윤형선(20)이병은"북한군과 서로 망원경으로 관찰하면서 여기가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라는
사실에 아직도 긴장감을 감출 수 없다"라고 고백했다.
어느덧 예정된 수색 정찰을 마치고 통문이 보이면서 1열이던 행렬도 다시 2열로 늘어났다. 긴장으로 굳었던 소대장 임혁(25) 소위의 얼굴이 펴지고
어렴풋이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수색 정찰간에는 서로의 목숨을 믿고 맡겨야 하기 때문에 팀워크와 신뢰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 골육지정 백골 백골 파이팅 이라는 백골구호에는
이와같은 우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백골부대원이라는 것이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2. 1992년, 은하계곡 침투 적 전원 사살 <5.22 완전작전>
「522 완전작전」은 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월경하여 침투한 적 3명에 대해,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수색,정찰부대를 투입하여 전원 사살한 작전이다. '자랑스런 백골부대는 대통령 부대 표창과 함께, 당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전초 00중대, 김모 대위는 비전투작전 유공으론 유일하게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6.25와 월남전 파병을 제외한 작전에서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최초의 군인을 배출했다. 그리고 지휘관, 전투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훈, 포장이 내려졌었다.
1992. 5. 22. 새벽 한시경에 부대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간부숙소에서 곤하게 자고 있던 저는 상황병의 비상소식에 또 고라니나 멧돼지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어설픈 잠에 빠져들었는데(당시 군단에서 운영하던 라지트(야간감시용 열상장비)에선 종종 동물을 사람으로 착각하여 비상이 걸리곤 했음) 얼마를 잤을까 다시 상황병이 다급하게 깨우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실로 가보니 대대장(중령 박명규:충무무공훈장)님은 벌써 비무장지대로 투입이 된 상황이었고, 지피근무자들은 도주로 차단 작전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상황은 매우 않좋게 작전장교의 설명으론 아군 매복지점의 후방으로 적 3명이 침투하여 뒷통수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군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사격을 가할 수도 없거니와 만일 사격시 아군끼리의 사격이 될수 밖에 없어 날이 밝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날이 밝았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한치앞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저 대대장님의 투항하라는 방송만 할 뿐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전 10시경인지 11경인지 안개가 대충 거치고 포위망을 좁혀가던 전초13중대장(대위 김승겸:을지무공훈장)은 비트를 파고 은신하고 있던 적에게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고 적은 엠16소총을 연발지향사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인해 적의 위치가 노출되자 김대위와 통신병이었던 병장(특진계급) 안강찬(충무무공훈장)은 곧바로 응사함과 중대원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집중사격 그자리에서 적2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교전중에 안강찬병장은 왼쪽 심장부위에 적 총탄을 맞았지만 방탄조끼 어깨끈을 고정하는 똑딱단추에 정확히 맞아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상황이 종료된 후 대대장님이 간부 식사장소에서 일그러진 탄두를 내보이이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
또한 교전중에 아군 병사(오래전 기억이라 병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 충무무공훈장)가 적탄에 턱이 관통되는 중상을 입음)의 중상으로 헬기를 이용 수통으로 긴급후송.
적침투 인원은 3명이었으나 2명만 사살하고 1명은 소재가 불분명이 비트속에 은신하고 있어 섣불리 포위망을 좁히지도 못하고 대치상태에 들어감.
그러나, 5월 말 날씨는 제법 따가운 가운데 전날 매복에 들어갔던 병사들과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은 물한모금 입에 대지 못하고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황이라 결국 군사령관은 철수를 논하게 됨.
그러나, 당시 16중대장(이름 기억 안나 죄송 : 충무무공훈장)과 인사계였던 원사(특진계급) 하경호(충무무공훈장)는 반드시 잡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적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16시경 적이 은하계곡을 따라 다시 월북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사격 사살함.
이때 아군 병사(역시 이름 기억 안남:화랑무공훈장) 1명 손바닥 관통상으로 일동병원으로 긴급 후송
이렇게 해서 창군이래 가장 완벽한 대침투작전으로 기록에 남게 되고 "은하계곡대침투작전"으로 명명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