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6
회삿돈 200억원을 빼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힌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30여년 전 가짜 서울대 법대생으로 활동해 심지어 서울대 법대 교수를 주례로 모시고 결혼식까지 한 사기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는 김찬경 회장의 미래저축은행을 부실 경영 등을 이유로 6일 영업정지했다.
김 회장은 1982년 가짜 서울대 법대생으로 행세하면서 결혼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학장이 주례를 섰고, 법대생 상당수가 하객으로 참석했다. 당시 김 회장은 미팅, 학회 활동 등 각종 학내 행사에 얼굴을 내밀면서 과대표까지 지냈다. 아무도 김 회장이 가짜 서울대생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서울대 법대 졸업 앨범에 쓰일 사진까지 제출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조금만 발각이 늦었다면 서울대 법대 졸업 앨범에도 김 회장이 등장할 뻔했던 것이다.
김 회장의 사기 행각은 1983년 졸업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각됐다. 그해 처음으로 졸업앨범에 본적과 출신 고교 등을 기재하는 제도가 생겼고, 그의 본적 등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이 가짜 서울대생이라는 사실이 파악됐다.
일부 법대생들은 극성을 피워 당시 김찬경 씨의 사법고시 1차 평균 성적이 26점이었던 것을 알아낸 뒤 ‘추악한 결혼이었다’며 김씨 집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아들을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김씨의 아내를 보고는 그냥 뒤돌아 섰다는 일화도 있다.
김 회장의 이러한 30년 전 사기 행각은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찬경 회장, 가짜 서울대생 들통났는데도 사기 행각 멈추지 않아
중졸 출신(나중에 검정고시 거쳐 전문대 졸)인 그가 어떻게 '서울대 법대생' 행세를 했을까. 그는 지난 1978년 군 복무 중 만난 서울대 법대생에게 '나도 검정고시로 서울법대에 합격한 뒤 곧바로 입대했다"고 속이면서 그의 '가짜 인생' 막을 열었다. 제대 직후인 1980년부터 복학생인 양 학교에 다녔다.
김 회장은 가짜 서울대생 외에도 다양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 김 회장은 가정교사 했던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기도 했다. 가짜 서울대생이라는 신분이 들통난 1984년에도 김 회장은 서울대 법대에 다니는 것으로 속이고 가정교사를 했다.
그는 당시 학부모에게 '서울대 법대생이며 사시 1차에 합격했다'고 말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그는 과외비는 물론 대학입학시험 '학과 눈치 경비'를 40만원 씩 따로 받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은 과외비용과 대학 입시 지도 등을 명목으로 총 16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러나 김 회장은 가짜 서울대 법대생으로 발각된 이후에도, 여전히 서울대 법대 동문들에게 연락을 끊지 않았다.
1983년 2월 17일자 조선일보◆영업정지 직전, 회삿돈 200억 챙겨 밀항 시도하다 적발
사업을 하던 김 회장은 서울 강남에 빌딩을 사기도 했다. 1990년대 말 김 회장은 금융업으로 사업을 틀었다. 1999년 김 회장은 지금 미래저축은행의 전신(前身)인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 이후 김 회장은 미래저축은행은 13년 만에 자산 2조원 업계 10위 규모의 대형 저축은행으로 키웠다.
김 회장의 부실 경영으로 영업정지 된 미래저축은행의 예금자는 8만8000명이나 되며 원리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예금자도 2000명 가까이 된다.
그는 3일 밀항하려다가 해경에게 붙잡혔을 당시, 김 회장은 밀항 알선책 오모씨(49)와 함께 어선 선실에 숨어 있었다. 현금 1200만원(5만권)과 여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찰에 체포되고 나서도 “밀항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배에 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그는 130억원의 현금과 70억원의 수표를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6/2012050600977.html
6년째 신용불량자, 어떻게 저축은행 회장님 됐나
서민 예금 2조 주무른 김찬경(미래저축은행)…알고 보니 6년째 신용불량자…금감원은 알고도 제재 안 해
“막장 은행장 만든 건 부실감독”
“외환위기 땐 돈만 싸들고 오면 아무나 저축은행 인수”
'회장님'은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누구도 그의 고향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충남 예산군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충남 아산시라 했다(흔한 전라도의 고향세탁지가 충청도 ㅋ). 그의 학력을 정확히 아는 이도 없었다. 스스로 "검정고시 출신"이라 했다. 회사 직원 중 하나는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 여쭤보겠느냐"고 했다.
영업정지 뒤 조금씩 드러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실체'는 상식을 초월한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김 회장은 164억원의 빚을 6년째 연체 중인 채무불이행자다. 30년 전 가짜 서울대 법대생임이 탄로나고도 태연히 동문회에 나왔던 '강심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일 고객 돈 203억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혔다. 이런 그가 2조원에 가까운 서민 예금을 주물러온 것이다.
하지만 어떤 흠결도 그가 '저축은행 회장님'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 허술한 감독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전 300여 개에 달했던 저축은행(당시 상호신용금고)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부실화됐다. 1998년 한 해에만 100여 개가 퇴출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당시 금융시장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돈만 싸 들고 오면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인수자가 나타나면 자격을 묻지 않고 부실 금고를 넘겨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김찬경 회장은 99년 미래저축은행의 전신인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회사 오너'가 됐다. 함께 영업정지 된 솔로몬저축은행의 임석 회장은 2002년,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은 2000년에 각각 신용금고를 사들이며 업계에 데뷔했다.
다음 단계는 '덩치 불리기'였다. 자격 검증은 여전히 생략됐다. 업계의 샛별로 떠오른 이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키워나갔다. 당국의 상호신용금고 확대 정책 덕분이었다. 2001년 예금자 보호 한도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었다. 2002년엔 이름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꿔줬고, 2006년엔 아예 '저축은행'으로 부르게 했다. 2008년엔 '부실 저축은행 자율 인수합병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합병을 부추겼다. 이 무렵 부산저축은행은 대전·고려 등의 부실 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해 지방은행을 넘어서는 덩치를 갖게 됐다.
규모는 커졌지만 규제는 이를 뒤따르지 못했다. 당국은 2010년에 들어서야 상호저축은행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도입한다. "금융관계 법령 등 위반으로 1000만원 벌금형 이상 형사 처벌을 받은 이는 금융회사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형식적인 규제였다. 금융감독원은 올 3월 대주주 유지 요건 심사에서 김 회장이 2006년 이후 164억원의 빚을 갚지 않은 채무 불이행 상태라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감원 안종식 저축은행감독국장은 "문제의 위법 사실이 대주주 유지 요건이 신설되기 전에 발생해 소급 적용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은행은 엄격한 전문성과 도덕성 검증을 거쳐 맡겨야 하는데, 사기 전력을 가진 이들까지 저축은행을 맡고 있으니 비리가 생기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외국에선 금융회사 대주주의 요건으로 '도덕성' '신의성실성' 등 주관적 기준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적격성을 판단하게 한다"며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심사 기준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5/08/7740405.html?cloc=olink|article|default
솔로몬, 현대스위스, 한국저축은행은 모두 전라도.. 현대스위스는 빠져나감 http://gall.dcinside.com/list.php?id=news_new&no=2050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