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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배 거리를 보면 기본이 2000리에 2500리 3000리 이렇게 되어있음.
2500리면 약 1000km에 달하는데, 한양에서 부산까지 400km밖에 안되는 조선에서 어떻게 이 먼 거리를 유배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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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건국하고 막 국가 기틀을 잡아갈때쯤 형법체계는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률을 많이 참고함.
참고하는건 그렇다쳐도 문제는 대륙의 기상답게 이 거리가 지나치게 길었다는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걍 조선 실정에맞게 대충 1000리 500리 하면 되는거지만
명불허전 조선 씹선비들은 하늘같은 명나라의 법을 지나치게 고치면 안된다 여겼는지 지들끼리 아웅다웅하다가 결론낸게 뭐냐면
죄수를 2000리 3000리 채울때까지 뺑뺑이를 돌려서 목적지에 도착하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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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영국의 아이작 뉴턴이라는 과학자는 말년에 조폐국장 생활을 하면서 신문을 보다가 'South Sea Company' 라는 테마주 광고에 눈독을 들이게됨.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약속한다는 구라취에 홀딱 넘어간 그는 "어맛! 이건 꼭 사야해"하며 전재산을 해당주식에 몰빵했는데,
안타깝게도 거품이 꺼지면서 좆tothe망.
졸지에 알거지가 된 뉴턴은 이러한 명언을 남김.
"내가 천체의 움직임은 예측할줄 알아도, 사람의 광기는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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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지구반대편 일본에서는 곡물 관련 선물 옵션시장이 발달함.
쉽게말해 먼저 얼마에 산다 거래약속을 하고 실제 거래는 나중에 이뤄지는 방식인데, 가격이 오르면 사는쪽이 이득, 내리면 파는쪽이 이득.
이 광경을 본 한 똘똘한 일본인은 가격을 봉모양의 그래프로 그려서 흐름을 분석해 많은 이득을 챙김.
이것은 현대 주식쟁이들이 하루종일 쳐다보고있는 봉차트의 기원. (Japanese Candlest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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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슷한 시기 옆나라 조선에선 숙종이 상평통보를 발행하며 드디어 씹미개한 물물교환 경제에서 벗어나 화폐경제를 시작하려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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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엔 말도 많고 바퀴도 있었는데 마차는 없었을까?
왜 존나 씹미개하게 사람 불러다 가마를 옮기게했을까?
답은 조선이 지들 스스로 씹창내놓은 당시 도로 상황에 있음.

도대체 무슨이유로 나라의 근간이 되는 도로를 셀프로 씹창내놨나 했더니 외적이 쉽게 침입할까봐 그랬다고함.
심지어 강에 다리도 안 놓고 나룻배로 건너는 불편도 감수했음.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외적때문에 도로를 안깔고 물류를 조지는게 과연 나라에 이득인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도로가 있든말든 왜군이나 청나라군이나 한양까지 도착하는덴 1달도 채 안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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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람들은 새우를 모르고 평안도 사람들은 감과 감자의 맛을 분간하지 못한다.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 정어리를 거름으로 줄 정도로 흔하지만 한양 사람들은 구경도 할 수도 없다. 이 모든 이유가 수레가 없기 때문이다."  - 박지원 「열하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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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터지자 명나라는 대규모 조선 파병을 결정하게됨.
문제는 그 많은 병사를 먹여살리기 위한 식량 보급이었는데, 위에 말했다시피 조선은 지들끼리 도로를 씹창내놔서 도저히 육상으로 실어나를수 없었음.
고민고민하다가 명나라는 "거 일단 병사들한테 돈쥐어주고 보낸다음에 나중에 생각하자" 라며 현지 조달계획을 세움.

그러나 이 병신 조선은 단순히 도로망이 없다는 것뿐만아니라 화폐경제조차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명나라 군인이 현지상인한테 식량을 받고 은화를 내밀면 "대체 이게뭔데 자꾸 내밀어 병신들아 ㅡㅡ" 라는 반응밖에 나오지않았음.

대체시발 형제국을 도우러온건지 정글의법칙을 찍으러온건지
도저히 이 우가우가 원시인들한테는 답이없다고 판단한 명나라군은
"걍 털어서먹자" 라며 도와주러온 군대가 현지인을 약탈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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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관념과 달리 임진왜란 이전에도 대마도영주가 선물한 몇정의 조총이 이미 조선에 들어와있음.
문제는 장수들이 몇번 빵빵 쏴보더니 "뭔데이거 ㅋㅋㅋㅋ 장난감이가? 섬숭이들 졸긔엽긔 ㅋㅋ" 하고는 창고에 쳐박아둔것.
지들 기준에서는 활보다 사거리도 꾸진데다 연사력도 병신이라는 논리였지만
수십년 후, 그들은 대신 누구나 쏘기쉽다는 조총의 장점을 살린 일본군 대규모 부대에게 영혼까지 털리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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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총의 사용법을 알게된 조선인들은 "오시발쩌네;;" 하고는 조총부대를 마린뽑듯이 존나 뽑기시작함.
그리고 병자호란이 터지자 기세좋게 출진.
자그마치 5만명이나 모인 조총병 위주의 군사들 앞에 고작 청나라 선발대 기병은 수백에서 끽해야 수천명.
누가봐도 유리한 전투였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고 청나라 기병 몇기가 앞에서 깔짝대니깐 병신들이 놀라서 일제히 사격 ㅋㅋㅋㅋ

재장전만 몇분씩 걸리는 총을 그따구로 쏴재끼니 청나라 병사들은 지들이 보면서도 어이가 털림.
"저새끼들 뭐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돌격!" 하며 조선병사들을 신나게 도륙하고,
그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고문관새끼가 불씨라도 떨어뜨렸는지 쟁여놓은 화약통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대참사.
이것이 바로 한국 역사 교과서에는 절대로 안나오는, 5만명이 고작 수백한테 털린 전설의 쌍령전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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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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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자 일본은 아직도 조선에 도자기 말고도 배울게 있다고 여겼는지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음.
조선은 삼전도에서 대가리박아까지 시전해놓고도 아직 자존심은 남아있는지 엣헴하며 일본에 방문하지만....

도시엔 온통 기와집뿐... 넘쳐나는 황금과 사치품들...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글을 쓸줄아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짐.
심지어 이곳이 수도 도쿄도 아니고 왕이 산다는 교토도 아니라 오사카라는것에 더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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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일본인 거물 학자 아라이 하쿠세키와 면담을 하게된 그들은 연신 해외 얘기를 하는 그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음.

아래는 그들의 대화 요약

아라이 : "야 이거봐라 화란국(네덜란드)에서 가져온거임 쩔지?"
조선인들 :  "화란국이 어디임?"
아라이 : "구라파(유럽)에 있는 나라임 ㅇㅇ"
조선인들 : "구라파는 또 어딘데;;"
아라이  : ... (이 씨발 원시인새끼들은 대체 뭐지 ㅡㅡ)
조선인들 : "글고 이태리는 뭐냐?"
아라이 : "야이 잡것들아 너네나라엔 만국전도(세계지도)도 없냐?"
조선인들 : (그런게 있었던거 같기도하고...) 그래도 우리가 중화의 전통을 유일하게 이어가고있는 나라임. 청나라도 인정함.
아라이 : "아오 병신들아 천하는 이미 청나라가 꽉 잡고있는데 명나라 옷만 따라입고 옛속국이요 하는게 자랑이냐 걍 꺼져ㅗ"



"100만채는 있다고 생각되는 집 모두는 기와집이다. 굉장하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 '조선 최대의 대저택'의 10배 이상의 넓이로 구리 기둥에 내부는 황금으로 장식 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 도시의 크기는 약 40 km 정도로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도시가 있을수 있을까? 한양 번화가의 10000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접해본 통역 통신사가 있지만 그도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진다'라고 말했다.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2천년동안 이렇게 평화롭게 번영하고 있었다니 원망스럽다." -김인겸 「일동장유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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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본가서 치욕을 당하고도 조선은 딱히 외국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의지가 없었음.
그들의 세계에선 청나라 미만잡이었으니깐.
정조때 부산에 표류해온 배가 자신을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했지만 이새끼들은 아직도 네덜란드가 뭔지 몰랐음.
정조가 "대체 아란타국(네덜란드)이 뭔데? 니넨 아냐?" 라고 묻자 대뜸 비변사 당상관이라는새끼가 아는척을 함
"그거 얼마전에 청나라에 복속된 대만말하는거임 ㅋㅋㅋㅋㅋ 책에서 봄요" (참고로 대만이 청나라에 복속된건 당시기준으로도 100년은 넘었음)
이러니깐 우의정의란 새끼가 맞장구친답시고
"와 시발 역시 재상은 책많이읽는놈 써야함 ㅋㅋ 아는거 졸많네"
그리고 정조는 한술더떠서
"야 요즘 곡창에 쌀이 별로없는데 이거좀 어케해봐라 그만큼 아는거많으면 이것도 잘하겠네 ㅋ"

그렇게 조선에게 네덜란드의 위치는 또다시 미스터리로 남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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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왠지 콜럼버스 위인전땜에 유럽새끼들이 지구가 둥근줄도 몰랐고 혼자만 알고있었던 콜럼버스가 존나 선구자인걸로 알고있지만
유럽에서 지구가 둥글다는걸 알게된건 자그마치 기원전 약 400년임.
콜럼버스가 병신취급당한건 사람들이 지구가 둥근줄 몰라서가 아니라 신대륙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인데,
당시 생각으로는 반대쪽으로 가다보면 인도가 나오긴 나오는데 지구둘레 길이에 비해 유라시아 대륙의 길이는 너무 짧아서 가다 굶어 뒤질게 명백했다고 여겼기 때문.
지구 둘레길이 역시 기원전에 에라토스테네스라는 학자가 그림자를 통한 평행선 동위각 성질을 이용하여 실제길이에 거의 근접하게 쟀음.

그리고 2000년후 조선은 지구가 둥글다는걸 청나라에서 서양식 천문학을 배워온 실학자들에 의해 그제서야 겨우 알게됨.



10 (부록 : 어느 김치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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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당나라에서는 축하의 의미로 그림을 한폭 보냈음.
모란꽃 한송이가 그려져있는 평범한 그림이었지만 누가 명불허전 씹김치년 조상님 아니랠까봐 갑자기 "흥 이 그림 좆같거든여!" 개소리 시전 ㄷㄷ
신하들이 이유를 물어보니 이년이 뜬금없이 그림에 모란꽃만 있고 나비가 없다며
이 꽃은 분명히 향기 안날거라면서 고로 자기 썩창얼굴을 당나라에서 까는거라고 드립침.
"뭔개소리야 이시발년은 또..." 하면서 신하들이 모란꽃 향기 맡으러 가보니 향기 잘만 남.
그렇다고 도저히 왕한테 "님 향기 잘나는데여;;;" 할수도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와 어떻게 향기 안나는줄 아셨음? 님 짱짱" 해주곤 말았음.

나중에 알고보니 모란꽃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었고 나비는 80세 노인을 상징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그 둘을 같이 그리면 언젠가는 끝이날 부귀를 상징하게 되어버려 천수를 누려야할 왕에게 바칠 그림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던것.




참고자료
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nb_12207001_002 (평의지 등이 공작 1쌍과 조총 수삼정을 바치다)
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va_12110004_001 (차대를 하여 아란타에서 표류한 배, 영호남의 감소하는 곡부를 논의하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529 (우리 조상들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048 (모란꽃에는 왜 향기가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