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JPG



어제 강화도 총기 탈취사건에 관한 글이 일베에 올라왔던데 내용이 좀 빈약하고, 


사건 당시 부상을 입었던 이병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 


특히 사망한 박상병이 마지막까지 총기를 놓지 않았던 부분 그리고 이병장의 증언과 실제 언론보도의 상이함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사건의 전개과정은 이미 어제 어떤 게이가 간략히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사진의 근조리본은 당시에 받은거 아직도 갖고 있음. 


수첩의 내용은 2007년 12월 8일 박영철 상병 영결식에 사단본부에서 있고 벽제화장터로 간다는 내용이다. 사건발생은 12월 6일.


총기탈취_사건_시간대별_상황.jpg



1. 이 병장


이병장.jpg

이 병장은 해병대 병1015기로 입대 했었다. 얼마 전까지 해병대는 한달에 2기수를 선발 했고, 


생일 순으로 잘랐기 때문에 생년월일이 빠른 사람이 홀수기수, 느린 사람이 짝수기수로 배정되는게 일반적이야. 


이 병장은 1987년생으로 1015기 중에 가장 막내였어. 2006년 2월 입대자였기 때문에 대부분 86년생이였다. 


10.jpg


나는 신병1대대 1소대 였고, 이 병장은 2소대 였어. 번호를 키순서로 배정하는데 이병장이랑 나랑 키가 비슷해서 인지 복도에 집합하면 항상 나를 마주보고 있었어. 


소대가 달라서 교육은 따로 받았지만 순검 때나 복도에 집합 했을 때 좀 거슬리는 행동을 했었지. 


사진에서 보다시피 복도에 집합하면 저런 모양이 되고 교관이 열의 끝에서 복도 전체를 볼 수 있어. 


진짜 사나이 해병대편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렇게 발끝까지 오와열을 맞추고 있으면 고개나 손이 살짝만 움직여도 교관이 바로 볼 수 있어서 얼차려를 받아. 


하지만 저기서 교관이 다른 곳을 볼 때 한발자국만 뒤로 가면 교관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좀 편하게 있을 수 있지. 


그때 이병장은 항상 교관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뒤로 빠져서 짝다리 짚고 서있었다. 


그게 너무 짜증나서 몇번 말한 적도 있는데 별로 신경 안쓰는 친구였어. 


그러다가도 몇 주 같이 지내고, 항상 얼굴 마주하는 사이다보니까 서로 잘 지냈었다. 





2. 2007년 12월 6일 저녁 부대 상황


당시 현역이였던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사건일은 눈비가 오는 날이였다. 


나는 전역을 2달 앞둔 상황이였고, 마지막 3박4일 외박을 앞두고 있던 중 이였어. 


저녁에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5분대기를 부르더라. 그냥 연습이겠거니 생각하고 계속 TV를 보고 있었는데 창문 밖으로 5분대기조가 철수를 안하네. 


눈비 내리는 날이였는데… 보통 999K 감도 테스트를 하는데 하다가 안되면 그냥 에이 시팔 또 안된다 하고 끝내버리거든. 


근데 그날은 1014기 선임이 계속 ‘수신감도 불량 수신감도 불량’ 하면서 무전기를 놓지 않는거라. 


탄약박스도 보통 육공 뒤에 두는데 그날을 차에 싣더라고. 그리고 차가 부릉~ 하고 떠나버렸다. 


5분대기 좀 빡세게 돌리는구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원 전투복, 단독무장 하고 병사떠나 5분전을 불렀어. 


해군, 해병대는 15분, 5분, 출발로 2번의 예보를 하는데 그날은 5분전 방송만 했다. 


연병장에 모두 집합을 하고 당직사관이 강화도에서 초병이 근무중에 다쳤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는 망치로 머리를 맞았다고 했던거 같은데 인접부대에서는 정확한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어. 


난 영문도 모르고 없던 근무를 섰다. (차단조 아니였음) 그리고 몇시간이 지나서야 정확한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초병 2명이 차에 치여서 한명은 중상, 한명은 경상이고 총기랑 탄약 탈취 당했다고. 사실 그때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은 잘 느끼지 못했다. 


난 곧 외박을 나가고 2달 후면 전역이니까.



3. CCTV 화면과 몽타주

002.JPG

당시 받아서 복원한 CCTV화면을 인쇄해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51사단을 통해서 전달 받았고 캡쳐된 이미지를 최대한 복구해서 범인의 몽타주를 만든다고 하더라. 강화, 김포쪽 검문소에는 저 사진이 인쇄되서 들어갔었어.


아래에 보다시피 이미 범인의 몽타주가 나와있었지만 복원된 CCTV 화면의 범인과는 좀 달라보였어. 


이새끼가 운전석 주변에 각티슈랑 이상한 비닐을 온 사방에 깔아두고 있는거 보이냐? 엄청 치밀하게 준비했었던거야.


아무튼 범인의 몽타주도 위 사진에서 나왔다시피 약간 통통한 형태로 바뀌었다. 


몽타주.jpg



4. 박영철 상병

박영철.jpg


일병이였는데 1계급 추서되서 박영철 상병이다. 월급 받아서 다 집에 보내고 고구마도 사서 보낸 착한 아들이었다.


영결식은 사단장으로 열렸어. VIP는 김장수 국방장관이랑 정동영 대선후보가 왔었다. 


영결식4.jpg


정동영은 이전에도 선거운동 할 때 방문한 적이 있는데 참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어. 썰 풀고 싶지만 무서워서 이건 묻어두고… 


동기대표의 추도사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우는 해병들이 정말 많았어. 



“어제는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박정환 해병님이 그러셨어. 

‘박영철 그놈 안되겠다고, 기합이 빠져도 너무 빠져가지고 앰뷸런스 안에서 선임이 그렇게 애타게 불러도 대답도 안하더라’며 눈시울을 붉히더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너의 임무를 다하고자 실탄 한발을 장전하고 

그 저주스러웠을 악마의 발톱에 수없이 온몸이 찢기우고서도 병기를 놓지 않았던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멋지고 강한 해병이었다.”


영결식2.jpg



박상병은 코란도에 치이고서 꽤 멀리 튕겨나갔는데 바로 죽지 않았다. 


ar.jpg


범인이 박상병에게 다가가서 총과 탄약을 뺏으려고 할 때 장전을 시도한걸로 보인다. 


그런데 군필자는 알다시피 실탄을 장전할 때 노리쇠를 고정하고 멈치를 눌러서 하지 않고, 


장전을 손잡이를 당겨서 하면 탄이 약실에 걸리는 경우가 있어. 위 사진과 같은 모양으로.


특히 힘없이 당겼다 놓으면 더 그렇고. 당시 박상병의 총은 탄약이 약실에 걸린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총을 놓지 않았다고 해. 앰뷸런스 안에서도 총을 놓지 않았고 멜빵을 팔에 둘둘 감고 있었다.


범인 새끼가 사이코패스인게 총이랑 탄약을 안주니까 등에 칼을 7번이나 찌른거다. 그냥 다 줘버리고 목숨이라도 건졌어야하는건데 너무 안타까운 장면이야. 


영결식3.jpg


화장은 벽제화장터에서 했다. 


한 장정이 작은 유골함의 가루가 되어버린거지. 이때 아버지가 유골함을 안고 ‘영철아 춥지? 어서 가자…’ 라고 했던 모습이 기억나. 


이날 박영철 상병 아버지께서 해병들한테 돼지갈비를 사주셨었다. 부족할텐데 계속해서 더 먹으라고 하셨어. 당연히 더 시키는 해병은 없었지. 


자식을 그런 안타까운 사고로 잃고도 초연함을 유지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 대통령보고 살려내라 이런 건 없었어 그때는.



5. 이 병장


이 부분은 전역교육대에서 이병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병장은 박영철 상병과 근무를 철수하던 중이였고, 노래를 부르는 중이였다. (이 부분은 나중에 언론에 나와서 좀 논란이 되기도 했었음) 


뒤에서 차가 초병 2명을 차로 침. 자기보다 박영철 상병이 더 멀리 날아갔고 바닥에 엎드려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차에서 운전자가 내려서 ‘죄송합니다. 사고였습니다. 괜찮으세요’ 라고 말하면서 다가오는데 주머니에서 범인이 칼을 꺼냄. 


이때 이 병장은 정신이 없어서 칼이 아니고 권총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을 총으로 쏴야하나 말아야하나 순간적으로 고민을 했다고 해. 


그러는 사이에 범인이 다가와서 칼로 얼굴을 찌름. 이때 이병장은 볼이 찢어졌어. 그리고 뒷걸음질 치며 총을 휘둘렀는데 그게 범인의 머리에 맞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병장과 범인이 격투를 했다고 하는데 본인의 말로는 격투라기 보다는 뒤로 피하면서 총을 휘둘렀는데 그게 범인의 머리에 맞은거라고 해. 


그때 범인이 흘린 피가 수사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때 이 병장은 5미터 아래 강둑 아래로 굴러 떨어짐.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언론에도 잠시 나왔었던 부분인데 다시 찾으려니까 없네. 


그 장면을 보고 남녀가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해. 범인은 이미 떠난 상태. 


이 병장이 사람들한테 전화기를 달라고 했는데 볼이 칼에 찔려 열린 상태여서 발음이 안된다고 하더라. ‘던하기 돈 두데요'(전화기 좀 주세요) 이런 식이였던 듯. 


이 부분이 신기하더라고. 볼이 열리면 말 제대로 못한다고 하더라. 궁금한 게이는 직접 해봐라. 


20120514191205659.jpg

(박지빈이랑 닮음. 입이 사진에 표시된 것처럼 찢어짐)


이병장은 바로 소초 상황실로 전화를 해서 ‘나 이XX인데 토디대도 마가! 토디대도 마가!’ 이 소리만 엄청 했다고 한다. 


당연히 상황실에서는 누군지도 파악 못하고 뭔 소린지도 몰라서 계속 잘못들었습니다? 만 연발했다고 해. 


그때 손으로 열린 볼의 상처를 막으니까 그제서야 발음이 제대로 됐다고 하더라. 


‘초지대교 막아!’ 


전역교육대에서 만난 이병장은 엄청 밝은 모습이였어.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얼굴의 상처를 서울대학교 병원의 어떤 교수님이 무료로 해주셨다고 한다. 전역하고 2차수술을 받으러 간다고 했어. 


당시 김기남 사단장님하고 식사도 따로 하기로 했다는데 자기 정장이 없어서 어떡하냐며 웃으며 물어보던 기억이 난다. 



6. 의문


검거된 범인은 1명이였지만 이병장은 2명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범인이 2명 ‘같다’라고 했다는데 그쪽에서 범인이 1명이라고 했나봐. 


본인도 차에 치이고 워낙 경황이 없어서 강하게 주장을 못한 듯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들은 이야기가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 


한명이 이 병장 그리고 나머지 한명이 박영철 상병을 맡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잘 안보이지만 예전에는 코란도에 철제(캥거루) 범퍼가 많이 달려있었어. 


아래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사건차량에는 범퍼가 없다. 범인이 범퍼는 뜯어서 버렸다고 했는데 결국 찾지 못했어. 


사건차량.jpg


사실 이게 엄청 중요한 부분이야. 왜냐하면 진술할 때 이병장이 차 범퍼에 뾰족한 칼 같은게 달려있었을 것이다라고 했거든. 


언론에서는 이병장이 얼굴, 허벅지를 칼로 찔렸다고 했는데 이병장의 말로는 범인이 직접 찌른건 얼굴이고 허벅지(정확히는 항문쪽)의 상처는 차 범퍼에 있던 흉기에 찔린거라고 해. 


차에 치이자마자 다리로 피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당시 경찰에 보낸 편지를 왼손으로 써서 보내고 차량의 번호판까지 바꿔 달 정도로 치밀했던 범인은 사전에 확실히 초병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봐. 


그런데 이게 15년형?!?!  범퍼 특히 범퍼에 달린 흉기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을텐데 찾지 못해서 아쉽다. 



가~끔 술자리에서, 특히 여자들한테, 2007년 겨울 있었던 강화도 총기 탈취사건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알더라. 


그럼 난 그게 너무 고맙더라. 아 아직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구나. 


난 물론 당사자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그때 거기에 있던 한 군인이였을 뿐이지만… 


그런데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심정이라고 하면 좀 소름 돋긴 함.



3줄 요약


2007년에 강화도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박영철 상병은 마지막 순간까지 참군인이였다. 

본 의원은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이 엄청나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