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끝났다..."
오늘도 몸이 녹초가 됐다.
새부는 마감한 시안을 회사에 전송했다. 디자인은 제법 예쁘게 나왔는지, 검수하는 새부의 얼굴엔 미소가 맺혔다.
한바탕 작업의 뒷정리를 끝내고 전원을 끈 새부는 침대에 뛰어 들었다.
"야~ 이 맛에 내가 살지..."
침대에 푹 녹아버리는 느낌!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새부는 요즘 부쩍 이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스팸을 굽다가 뒤집었는데 반대쪽이 완벽하게 갈색빛으로 구워져 있다던지, 일 끝나고 한잔 할때 뱃속이 뜨뜻해지는 기분이라던지.
그런 소소한 행복이 새부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 이게 좋은 거지...'
근례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허나 반대로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만큼 마음이 풀어져버린 것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뻥 뚫려버린 듯한 공허함이 다가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에 미쳐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 사소한 기분이기도 했다.
-꼬르륵
"아 배고프다. 몇시지?"
하루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다. 여기저기를 뒤적이던 새부는 끝내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찾아냈다.
시계를 보려고 화면을 키는데, 새부의 눈이 잠금화면에 박혀버렸다.
'...'
다시금 새부의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겼다. 마치 시린 겨울 바람이 흩어 들어가며 새부의 뚫린 구멍을 아리게 흔들었다.
'이게 뭐라고...'
새부는 홈 화면을 꾹 눌렀다.
[잠금, 배경화면 바꾸기]
한참동안 떠오른 선택지를 보던 새부는 취소를 하고 크롬에 접속했다.
굳이 도메인을 칠 필요조차 없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일베의 마크였으니까.
마침 드러난 일베 메인 페이지에는 많은 일베충들이 운영자의 욕을 신랄하게 하고 있었다.
[운마 개새끼 운영 좆같이 하네]
옛날 새부 시대때는 그래도 같은 장애인처럼 웃고 떠들고 즐겼는데
이 애미뒤진 운1마랑 건1지 보지새끼는 다 벤 떼리고 지랄들이야!
아 씨발 새부새끼 그립다.
ㄴ4 전탕크탕탕 : 지랄 ㅁㅈㅎ 우리 싫다고 팔아먹은 새끼가 무슨
ㄴ0 이기삼기육갑떨기 : 게이얔ㅋㅋㅋ~~이거 인정하는각? 어 ㅇㅈ! ..
ㄴ11 노무나도자궁적출 : 예전에 병신 새부새끼 ㅋㅋ 편의점간다고 야짤 허용한거 기억하는 게이들 있냐? 개감동이었는데
ㄴ7 고딩조비 : 형냐22222 감동이긔 ㅠㅠ
ㄴ2 미움받는새끼 : 캬 사스가 고렙성님ㅋㅋㅋ 요즘 유입은 모르는 거랑께요ㅋㅋㅋㅋ 시발 운마새끼! 밴이나 존나 갈겨대고 ㅅㅂ
ㄴ3 애미칭챙총년 : 2 미움받는새끼 가입일 2015 11 17 14:42:23
ㄴ2 미움받는새끼 : 미친 유입새끼가? 난 삼천일 벤 처먹고 닉 다시판거거든?
"병신새끼..."
삼천일 벤을 때린 게 새부라는 건 잊은 모양이었다.
새부는 수많은 글과 댓글들을 하나씩 읽으며 낄낄 웃었다. 원색적으로 운영자를 비판하는 글들. 하지만 꽤나 재미있었다.
새부 역시 보고만 있자니 좀이 쑤셨다.
ㄴm 새부 : 야 병신들아. 과거 미화는 ㅁㅈㅎ야!
-타닥타다닥..
서서히 댓글을 써가던 새부는 등록을 누르기 전 쓴 댓글들을 지워버렸다.
아쉬움이 머무는지, 프레임이 하나씩 지워갈 때마다 새부는 답답함을 느꼈다.
'...'
[새부 좀 그만 찾아 병신들아.]
니들 새부가 왜 일베 버리고 갔는지 모르겠냐?
한마디로 여기가 좆같으니까 진흙탕에서 발 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생각이 씨발 1만큼이라도 있으면 이쯤 보내주고
그새끼도 열심히 살게 냅둬라
1줄요약 : 새부애미창년 곱등이랑 후장섹스
"허, 시발놈 봐라."
새부는 민주화를 눌렀다.
문득 새부는 민주화 버튼이라는 게 참 편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어떻건, 감정이 어떻건 버튼을 눌러버리면 이미 그 순간 끝난 것이다.
실수였건 불쾌했건, 그저 클릭을 한번만 하면 복잡한 감정은 단순하게 싫다는 표현이 되어 숫자 한 두개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허나 사람의 마음은 민주화 버튼처럼 단순하지 못했다.
새부는 그것을 문득 느끼고 있었다.
두시간동안 쌓인 일베글, 인기 글 등을 전부 탐독한 새부는 폰을 내려놨다.
새부가 휴대전화 잠금 버튼을 눌렀다. 문득 생각이 현실로 돌아오자 다시금 고독감과 공허함이 몰아쳤다.
잠금 버튼과 함께, 새부 마음 속의 민주화버튼도 눌린듯.
감정의 전이는 한순간에 몰아쳐 가슴에 깊은 구멍을 냈다.
"하아, 쉬펄..."
새부는 누워서 버릇적으로 꺼진 액정을 다시 켰다.
그리곤 떠오르는 이미지에 입술을 깨물었다. 잘근 잘근 씹는데 기분이 이만큼 복잡할 수가 없었다.
새부는 멍청히 이미지를 보다가 자신의 뒤통수를 한대 때려보았다.
한대론 모자란가 싶어 한대를 더 때려보아도 달라지는 기분은 없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
"여보세요."
"응, 진철아. 나 새부야."
"어, 야 박새부! 오랜만이다 임마. 잘 지냈어?"
"응. 많이 바빠? 환자 보나 지금 시간엔?"
"얌마 시간이 몇신데 아직도 일하겠냐. 의사도 사람↗이야 사람↗."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하는 진철의 성대모사에 새부는 낄낄 웃었다.
"거 혹시 시간 괜찮으면 술 한 잔 안할래?"
"새끼. 안그래도 나도 불르려고 했었다."
. . .
진철은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근데 왠 일이냐. 너 술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냥. 나도 땡기는 날이 있으니까."
술이 달았다. 오늘따라 쓴 술이 향기롭게 목을 타고 내려갔다.
한 잔, 두 잔이 오가며 주제는 자연스럽게 일베가 되었다. 둘은 시대를 함께한 동료였고, 또 함께 끝 맺은 동반자였다.
새부로써는 마음 편하게 그 시절을 안주로 추억할 수 있는 진철이 너무나도 편했다.
"그러고 보면 너도 참 대단해. 그때 그거 65G였나?"
"뭐? 그 젖탱이?"
"아니, 왜 그 뭐냐, 외부 디도스 침입들어온거 말이야."
"아 세군데에서 합쳐서 40G였지. 그땐 진짜 밤낮으로 잠도 안자고 일베 살리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맞아 맞아. 야, 지금 와서 새삼 내가 말하는 거지만 일베는 네가 키운 거야. 댓글에 알람 뜰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진철도 한잔이 들어가자 자세가 무너진듯, 새부의 말에 깔깔대며 웃었다.
"맞아. 우리가 다 이뤄낸 거였는데..."
진철의 목소리가 새벽 가로수 불빛처럼 은은하게 퍼졌다.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그 시절이었다.
"힘들었지 우리."
하루하루 지치고, 또 난관의 연속.
수많은 악성 여론. 고소. 대형 집단으로부터의 비난. 폐쇄 권고. 디도스 공격 등... 매일 매일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 졸이면서 운영을 하던 그때였다.
"그치만... 난 그때로 돌아가도 굉장히 즐겁게 다시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냐..."
새부의 목소리가 쥐죽듯이 작아졌다.
"니는 어때?"
진철은 조심스래 새부의 눈치를 보며 운을 뗐다.
사실은 진철도 알고 있었다.
새부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새부가 술을 털어 넘기고 입을 다물었다.
"뭐, 확실히 힘들었지 그때 우리. 난 기술지원이라서 그냥 기술에만 전념하면 되지만, 너는 사람을 대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잖아."
"응."
"역시 잘 끝낸거겠지?"
"..."
새부는 다시 술을 털어 넣었다.
뱃속에 뜨뜻한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솟았다.
아니었다.
새부는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힘들어서 잘 팔아버린 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씨벌..."
새부는 마음 속의 구멍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수 많은 베충이들의 웃는 모습.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주작 베충이. 멀리서 스코프를 보고 있는 저격수 베충이.
입으로도 똥을 싸는 0렙게이들. 항상 최고급 품질의 글을 들고 오는 고렙들.
좀비 베충이들. 분탕치는 베충이들. 박제 전문가들. 유머글을 쓰는 베충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놀이터를 멀찌감치서 바라 보고 있는 관리자 베충이가 보였다.
그것은 새부 자신이었다.
가고 싶지만 이젠 갈 수 없는 놀이터.
그저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관리자 베충이는 눈물을 흘렸다.
"야, 우냐?"
"씨발... 아니..."
"야..."
진철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묻어났다.
새부는 울고 있었다.
소리를 죽여 울고 있었다.
"왜 처 울어. 병신아..."
"씨발... 돌아가고싶어 진철아... 기술지원..."
잔뜩 취해버린 새부가 엎어져 눈물을 흘렸다.
참으려고 해도 끅끅-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막을 순 없었다.
"기지야... 다음에는 누르면 시간이 뒤로 가는 버튼도 만들어보자... 만약 내가 다시 돌아가면... 다시는... 내가 다시는..."
-쿵
중얼거리던 새부가 그대로 술상에 엎어졌다.
-툭!
"병신 새끼 적당히 좀 마시지..."
진철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냅킨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지금 순간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술자리 위에 얹혀져 있었다.
문득 새부가 엎어질 때 무언가 떨어진 소리가 들렸던게 기억났다.
책상 밑, 새부의 발치를 내려다 보니 새부의 핸드폰이 눈에 보였다.
"넌 정말 병신이야. 나 없으면 어떡하려고."
진철은 콧물을 훌쩍거리며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일베를 매각하고 큰 돈을 벌었을터인데도 불구하고 예전에 보던 핸드폰이었다.
진철은 남은 빈 잔을 빙글 빙글 돌리다 문득 잠금버튼을 눌렀다.
"하... 미친새끼가... 진짜..."
진철 역시 알고 있는 사진이었다.
진철은 억지로 참아온 눈물을 터뜨렸다. 둑이 터지듯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소용돌이 치며 눈으로 몰려 나오는 듯 했다. 진철은 그렇게 묵음으로 오열했다.
깊어가는 밤은 잘 갈린 먹처럼 어두웠다.
두 남자의 마음도 낮이 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은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