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 일본은 적군파라는 빨갱이 조직들이 활개를 치는 시기였어
처음 이들이 투쟁을 시작할땐 물론 빨갱이답게 어린애들을 선동해서 중딩들도 투쟁에 참여하는등 꽤 지지도가 높은편이었지
그러나 빨갱이 근성이 어디가겠어
과격시위로 인한 입지가 좁아지자 테러까지 자행하게 되고 말지
그중 한 테러사건이
우리나라와 깊은 연관이 있는 1970년 JAL 요도호 납치사건이야

이게 전성기의 요도호성님
성진국답게 비행기 이름도 요도야 늠름하노?
<국제수배중인 범인들 현상수배 전단지>
1970년 3월 31일 이른 아침
9명으로 구성된 일본 적군파 멤버들은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가며 후지산을 유유히 날고 있던 요도성님을 일본도와 총으로 위협
승객과 승무원 129명도 덤으로 납치가 되어버리고 말아 (납치범제외 승객 122명 기장포함 승무원 7명)
납치범들의 요구는 북조선 평양으로 비행기를 몰고 갈것
이들의 목적은 북조선으로 망명후 북한을 새로운 일본 공산화의 전초기지로 삼기위함이었다고 해
그러나 요도성님을 모시던 기장은 요도성님이 기름이 엥꼬나서 평양까지 못간다고 거짓말을 하지
그래서 일단 후쿠오카에 비상착륙을 하게 돼
후쿠오카(당시 이타즈케공항) 엔 자위대가 뜬것을 본 범인들이 초초해하자 기장은 놈들을 설득해서
우선 노약자와 여성 23명을 풀어달라고 해
후다닥 내리고 있는 사진이야
이럴때 봊이덜은 참 좋지않노?
억울한 고추덜만 잔뜩 태운 요도성님은 다시 평양을 향해 날기시작해
당시 요도성님이 평양을 가기위해서 한국영공을 날아야했기때문에 요도성님이 감자국 상공을 지나고 있을때였어
갑자기 전투기가 나타나 하강지시를 하는것이 아니겠어
기장이 주파수를 맞추자 여기는 평양이니 후딱 내려뿌러 라는 무선이 오게되고
전투기의 안내에 따라 놀란가슴 부여잡으며 요도성님은 무사히 착륙하게 돼 (사건 당일 오후)
그러나 여기는 평양이 아니였어
바로 대한민국 김포공항이었지
진즉에 납치사건을 알고 있던 대한민국 정부는 요도성님이 감자국으로 진입하자 평양이라며 뻥카를 날린거야
<요도성님을 바라보고 있는 믿음직스런 대한 군인성님 ~!>
우리의 목적은 김포를 평양으로 위장하여 안심한 범인들이 나올때를 기다려 모두 체포~하는 멋져부러 작전이었지만
너무 급하게 서두른 나머지
공항 활주로에 盧스웨스트 성님을 치우지를 못했던거야
범인들은 盧스웨스트 성님을 보게되고 평양에 미국산 盧스웨스트가 있을리가 없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비행기에서 내리질 않아
결국 바보등신 盧짱때문에 김포공항인게 들통나고 범인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해
<盧스웨스트 성님 70년대 시절>
그떄 대한민국 교통부장관이 협상을 하게되는데 바로 그분이 일벤져스의 준보스격인 "백선엽" 장군님이었어
백장군님은 범인들의 요구가 평양으로 가는것이며 인질을 풀어줄테니 대신 일본의 높은양반 한명이 타라는 조건임을 알게돼
다음날인 4월 1일 급하게 일본에서 운수성 대신 (장관) 하시모토와 차관인 야마무라가 오게 되고
차관이었던 야마무라는 일본국민을 구하는것이라면 내 한목숨 버리리라며 자신이 대신 평양에 가겠다고 말하고
이를 본 백장군님은 몹시 감동을 하셨다고 해 (백장군님 회고록중)
<김포공항에서 요도성님곁을 떠나고 있는 나머지 승객들>
협상끝에 결국 4월 3일 기장과 부기장 , 기관사를 제외하고 모두 풀려나게 되고 야마무라 차관을 태운채
납치범들은 오후 6시 평양에 도착하게 돼
<야마무라 신지로의 흉상 - 훗날이야기는 아래에서 다룸>
평양에 도착한 납치범들은 북한에 망명을 하게되고 북괴놈들은 비행기와 나머지 인질에 대한 반환을 보장할수 없다고 발표해
일본언론은 들끓었고 결국 다음날 북한은 인질과 비행기를 보내겠다고 다시 말뒤집기를 해
그래서 4월 5일 요도성님은 평양을 벗어나 도쿄 하네다 공항해 무사착륙을 하게 돼
어떻게 보면 납치범들은 원하는대로 평양입성을 했고
인질들은 한명의 사상도 없이 비행기와 함께 모두 일본으로 돌아간데다
우리와 일본은 이일을 계기로 껄끄러웠던 관계에 쌀을 만들어준다는 햇볕이 들? ...뭐라카노 개드립 ㄴㄴ
어쨌든 해피엔딩이라면 해피엔딩이었지
일본 운수성장관은 한국정부의 침착한 대응에 감사인사를 하며 (물론 형식상이었겠지) 뭐 도와줄꺼 없노? 라고 물었고
가난한 나라에서 비빌언덕을 놓치지 않았던 우리의 백선엽 장군님은
"우리가 지하철을 깔고 싶은데 돈도 없고 기술도 없어 니네가 좀 기술자랑 돈좀 꿔주겄노?" 라고 슬며시 운을 띄우고
하시모토장관은 이 그지새키덜 ~이라고 설마 했겠냐만은 어쨋든 자기네 총리한테 물어본다며 떠났어
물론 그뒤로 일본은 차관과 기술자를 보내줘 그래서 우린 대망의 지하철 1호선을 착공할수 있었지
여기서 다시한번 원조가카를 비롯 여러 애국어르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가난에 찌들어 도저히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보이는 옆집 아저씨가 아들 등록금때문에 굽신굽신 돈 좀 빌려달라고 손내미는것과
당시 이런 행동이 무엇이 달랐겠냐
나라를 위해 자존심 모두 버려가며 구걸아닌 구걸을 했을 우리 원조가카를 생각하면 ㅠ.ㅠ 일단 감성팔이 ㄴㄴ 하고 다음 이야기
자 이제 뒷이야기를 시작할께
1. 나중에 범인들이 두고간 일본도와 총기들을 조사한 결과 이것들은 모두 가짜 위조품이었어
2. 승객중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미국인 신부는 도쿄로 돌아가는 특별기에 타지 않고 행방이 묘연해졌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일본정부도 한국정부도 모른다능
어쨌든 행불된 미국인신부를 제외하곤 나머지 승객은 일본정부에서 주는 위로금을 받게돼\
3. 요도성님을 모셨던 이시다 기장은 침착하고 차분한 대응으로 모두를 구한 영웅이 되었지만 도가 지나친 매스컴의 관심에 그만 예전에 있었던 문제까지 발각되고 결국 JAL 을 퇴사하게 된다는 인생사 새옹지마의 교훈을 남기며 2006년 하라보지 따라 노짱곁으로 가게돼
4. 요도성님을 모셨던 부기장과 기관장은 무사히 정년퇴직까지 했다고해
5. 9명의 범인중 타미야 다카마로( 오사카시립대) 는 95년 평양에서 병사
오카모토 다카시(당시 교토대) 는 1988년 부인과 함께 산사태로 사망이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80년대 사상재개조의 이유로 북한수용소로 부인과 함께 가게 되고 그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는게 사실로 밝혀졌고 그래서 일본측은 행불이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해
사건당시 20세였던 요시타 긴타로는 1985년 사망한것으로 발표되었으나 역시 강제수용소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해
또 만 17세로 가장 어린 납치범이었던 시바타 야스히로는 1985년 자금조달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잠입 위조여권때문에 1988년 체포되고
5년형을 받고 1994년 출소해 오사카에서 살다 2011년 오사카의 한 아파트에서 고독사로 운지한채 경비원과 경찰에 의해 발견돼
외상은 없는걸로 봐선 병사로 추정
메이지대생이었던 다나카 요시미는 1996년 캄보디아에서 위조달러 문제로 체포되어 타이로 이송된후 2000년 일본경찰에 구속되어 2007년 옥중에서 노짱곁으로 감
나머지 4명 고니시 다카히로 , 우오모토 키미히로 , 와카바야시 모리아키 , 아카기 시로는 아직 북조선에서 살고있으며 현재 국제지명수배중이야
이들에 대한 죄목은 당시 일본은 공중납치에 대한 법률이 없었기땜문에 공중납치로 인한 죄를 물을수는 없다고 해
대신 강도죄와 승객에 대한 협박죄는 인정되므로 지명수배중이고 공소시효는 이들이 일본에 있지 않기때문에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해
6. 인질들과 자신을 맞교환 했던 용감한 야마시로 신지로 차관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뒤로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중의원에 운수성장관 농림수산장관까지 역임하게 되지만 1992년 4월 어느날
정신병을 앓고 있던 둘째딸이 칼을 휘둘러 자택에서 노짱곁으로 가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돼
둘째딸은 심신상실로 인한 책임능력상실을 이유로 무죄로 풀려나게 되고 4년후 둘째딸 역시 스스로 운지를 맞게 된다는 막장드라마급이 되고 말아
7.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린 요도성님은 우째됐을까?
요도성님은 JAL 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다 미국 , 독일등으로 팔려 이리저리 방랑인생을 사시게 되고 말년엔
모든 비행기의 쓸쓸한 마지막처럼 아프리카 콩고의 코자항공회사에 2004년 팔려가시지
그러나 2006년 코자항공회사가 도산하게 되고 요도성님은 쓸쓸히 현재도 콩고 국내공항에 방치되어 반운지 상태로 계신다고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