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괴 김일성이 625 남침을 실행하기까지의 온갖 막장 상황들
때는 일제시대, 당시 조선반도의 순사(순경 그러니까 경찰)는 60%가 초졸 조선인 남자였다.
그리고 일본이 빨갱이들 박멸하려고 만든 특고경찰 즉 특별고등계 경찰 역시 60%가 초졸 조선인 남자였다.
당시 조선반도엔 빨갱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빨갱이김원봉은 중국에서 조선공산당재건동맹 , 레닌학교를 세워 조선인 청년들을 빨갱이로 교육시켜 조선반도로
밀파시킨다. 박헌영 역시 조선공산당을 운영하며 남조선에서 빨갱이들을 양성시켰다.
고려공산당 여운형 빨갱이 역시 마찬가지로 빨갱이들을 아주 많이 양성시키고있었다.
특고경찰 , 순사들은 빨갱이들을 잡아서 고문시키고 코렁탕을 코에 퍼부었지만 빨갱이들 숫자가 너무 너무 많았다.
빨갱이들의 특징은 설령 빨갱이가 여학생이더라도 여학생은 절대로 빨갱이 지하 본부를 불지않고 고문받다가 혀를 깨물고
자살한다. 임수경 , 전혜린같은 미친 년들로 가득했다.
해방 이후 남조선에 고려공산당 빨갱이이자 빨갱이 인민당 당수인 여운형이 '인민공화국'이란 빨갱이 국가를 세우고
전국 곳곳에 '인민위원회'를 설치한다.
그리고 일본이 무서워서 지하에 숨어있던 빨갱이들이 전부 나타나 '조선공산당'을 조직하고 조선공산당 두목 박헌영이 나타난다.
북조선 지역 인민위원회에선 소련군 장교 김일성이 오기전에 이미 일본인들 , 순경(경찰)들, 부자들을 전부 학살한다.
남조선에서도 그런 [일본인 전부 죽이기 경찰 전부 죽이기] 음모가 빨갱이여운형 인민위원회에 의해 계획되었지만 김두한이 일본군에게서 받은 총과 수류탄들을 가지고 남조선 인민위원회를 협박해
일본인을 죽이지못하게한다.
그리고 소련의 한국지역 책임자로 김일성이 평양에 도착한다.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가 평양 길거리에 드글드글했다.
김일성은 도착부터 이미 신격화되어 추앙받고있었다.
한편 남조선에 미군이 들어와 미군정 즉 미군정권을 세우면서 빨갱이여운형의 불법적인 남조선 인민공화국은
해체되었지만 아직 지방에 여운형이 싸지른 똥들인 인민위원회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때 민족주의 우파 장택상 씨가 수도경찰청장이 된다.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은 일제시대에 순사,특고경찰이었던 사람들을 몽땅 대한민국 경찰로 채용해 빨갱이들의 온갖 지랄에
대비했다.
그리고 민족주의 우파 조병옥 박사가 경무부장이 된다.
김일성을 암살하려고 암살단 백의사단을 북괴로 보낸 염동진은 백의사 단장으로서
대한민국 경찰 , 임시정부와 깊이 연계하여 활동했다.
김두한은 백의사 대원이 되어서 우미관 식구들과 대한민청 청년단을 거느리고
시라소니의 서북청년단이랑 연계해서 빨갱이들을 쇠파이프, 총 , 수류탄으로 때려죽이고
빨갱이 신문사들을 테러한다.
그러니 검찰과 경찰권 그러니까 치안의 권력은 모두 이승만 , 한민당이 거머쥐게 된 거다.

빨갱이들은 박헌영 조선공산당 외에 여운형 인민당 , 백남운 신민당 등등 공산당 조직도 수십 개나 있었다.
공산당 조직은 노동계, 학생, 예술가쪽으로도 힘을 뻗쳐서 전국에 많은 산하 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 조직들이 인민전선이라는 단일전선으로 나갈 때였다.
김원봉은 남조선에서 빨갱이 군대 국군준비대 , 빨갱이 조선민청전위별동부대를 만들어 남조선 적화를 노린다.
빨갱이 국군준비대는 길거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남조선의 모든 정당들은 해체하여 오로지 우리민족끼리의 통일 전선에
합류하라"면서 헛소리를 지껄여댔다. 국군준비대 숫자는 무려 8만명이었다.
빨갱이 국군준비대는 국군준비대지 사실은 남한인민항쟁 유격사령부예요. 이 국군준비대의 명령계통이
빨갱이여운형이 세운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의 군사부장인 빨갱이김원봉 장군이었다.
박헌영 조선공산당 역시 밀착하여 연계하고있었다.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미군정 특수부대 수십명과 김두한의 대한민청 청년단에게 전부 깨져 토벌당한다.
당시 남조선은 혼란 그 자체였다. 빨갱이 배우 심영이 김일성 장군님 만세라며 '님'이란 연극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김두한은 심영을 총으로 쏴서 고자로 만든다. 심영은 살기위해 북조선으로 도망간다.
신불출이라는 빨갱이 만담가는 신탁통치는 찬성이라면서 북조선 탄생을 정당화했다.
김두한을 신불출을 총 쏘게해서 불구로 만들었다. 신불출 역시 북조선으로 도주한다.
당시 반민특위 검사들,판사들은 빨갱이여운형의 인민위원회에 소속되어있었다.
반민특위는 대한민국의 경찰들이 과거 일제시대에 빨갱이들을 잘 때려잡던 순사들,특고경찰들이므로 이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려야겠다라고 결심한다.
그게 성공한다면 빨갱이들이 무럭 무럭 나와도 누구 하나 잡을 사람이 없게되니 남조선 적화는 시간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군정이 이승만에게 친일파들을 살리라고 명령하자 대한민국 경찰들에게 반민특위가 역토벌당한다.
한편 평양에선 빨갱이김원봉의 친구인 김두봉의 빨갱이 신민당이 김일성의 북조선 노동당에게 흡수당했다.
김원봉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북괴는 정당하다며 남조선 로동당(여운형 인민당 박헌영 조선공산당 백남운 신민당)
과 함께 투쟁을 가열차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빨갱이 남조선 총연합 [남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戰線]의 공동이장 여운형 박헌영 허헌 김원봉 백남운 등은
빨갱이 군대 2개가 벌써 김두한과 경찰 , 미군정에게 토벌당하자 목표를 다시 정한다.
바로 전국적인 대규모 폭동이었다.
그들은 북조선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戰線의 지령을 받아
전국적인 대규모 폭력혁명을 계획하지만 이마저도 김두한의 대한민청 청년단들에 의해 쇠파이프와 총으로 가혹하게 토벌당해
실패하고만다.
그리고 그 즉시 김두한의 토벌이 이어졌다. 빨갱이대마왕 여운형은 김두한이 준 총을 받은 소년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그 소년을 파견한 자는 바로 백의사 단장 염동진 , 백의사 대원 김두한이었다.
조선공산당 두목 박헌영은 시체가 들어가는 관 속에 숨는다. 그리고 38선을 넘어 북괴로 도주에 성공한다.
빨갱이김원봉 역시 김두한에게 테러당할뻔하다가 똥통 속에 잠수해서 겨우 살아남고 똥통에서 바로 나와
북괴로 도주한다.
백남운빨갱이 , 허헌빨갱이 등도 월북해 도주한다.
이렇게해서 남조선에서 빨갱이들은 거의 토벌당해버린다.
남조선 빨갱이 두목들이 전부 북괴로 도주하자 김일성은 북조선 빨갱이와 남조선 빨갱이를 퓨전시켜
북괴를 건국해 초대 내각이 출범한다. (1948년)
수상은 김일성.
허헌 김달현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
부수상 홍명희
부수상 겸 산업상 김책
국가검열성(국방상) 총책임자 김원봉
민족보위상 최용건
주석 김두봉
장군 김무정
문화선전성 총책임자 허정숙
국가계획위원장 정준택
내무상 박일우
농업상 박문규
상업상 장시우
교통상 주영하
재정상 최창익
교육상 백남운
체신상 김정주
사법상 이승엽
노동상 허성택
보건상 이병남
도시경영상 이용
무임소상 이극로
최고재판소장 김익선
최고검찰소장 장해우
여기서 중요한게 김원봉이 김일성에게 반란하려는 역도들을 색출하고 , 국방전략을 짜는 국가검열성 국방성의 총책임자
였다는 사실이다.
김원봉은 일제시대에 무無정부빨갱이질하다가 소련과 동맹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하게된 의열단 ,
조선공산당재건동맹,레닌학교,민족혁명당,조선민족전선연맹+조선의용대+화북 멀티 조선의용군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월북하니 김일성이 그를 검열 책임자에 국방 장관으로 앉혀놓은 것이다.
김원봉은 1948년부터 1952년까지 검열책임자 국방장관으로 일한다. 그 사실은 그가 625 남침 수뇌부에 소속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더니 김일성은 1950년을 '조국통일의 해'라고 지랄한다.
남조선 적화에 번번이 실패하자 이제 무력으로 남조선을 적화시키기로 작정한 것이다.
남조선에서 빨갱이들이 바퀴벌레마냥 아무리 무수히 나와도 김두한과 경찰들과 이승만 정권 , 미군정이
에프킬라 뿌리며 신나게 잡아대니 어쩔수없이 남조선을 적화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국이 공산당에 의해 전부 적화되자 김일성은 일제시대 중국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원봉 김두봉 김무정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 3만명을 북괴로 전부 오게 한다.
조선의용군은 빨갱이김원봉 총사령관 빨갱이김두봉 부사령관 빨갱이김무정 장군놈 최창익 허정숙 김명시 빨갱이들이 만든
일제시대 빨갱이 군대다.
그러자 북괴의 군사력은 엄청나게 존나 세진다. 조선인팔로군,동북항일연군까지 북괴로 와서 무려 5만명이나 모인다.
거기에 북괴 본래 인민군까지 합치면 5만을 훱씬 넘는 병력이 된 것이다.
북괴 제1대 주석 김두봉 (김일성이 세워놓은 허수아비 부하)이 1949년 12월말에 모스크바의 아시아방어회의에 가서
한반도에서의 남침 전쟁에 대한 미래의 행동계획을 소련으로부터 지령받는다.
스탈린, 마오쩌둥은 신중하게 625 전쟁 계획을 짜서 소련의 한국지역 책임자이자 북괴의 수상이자 진짜 권력자인 김일성에게 하달한다.
김일성은 지하공작대와 무장공비를 남조선으로 몰래 파견시킨다.
그리고 남로당 50만명 인원들로 하여금 이승만에게 거짓전향하게 하고 내부 반란 세력으로 임명한다.
빨치산 부대도 보낸다.
1. 지하 공작대 , 무장공비는 남조선에 가서 숨어있다가 폭동을 조장해라
2. 빨치산 부대는 남조선 국방경비대의 연락통신망을 다 파괴해라
3. 남조선의 남로당 빨갱이 50만명은 거짓전향했다가 내부 폭동을 일으켜라
김원봉이 공동의장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前線'이란 대남對南 선동 라디오는
우리민족끼리 어서 통일하자고 선동하는 방송들을 자꾸 내보냈다.
아주 구체적인 내용으로 방송을 보냈는데. 방송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반일 감정 조장 (한국과 일본의 사이 이간질)
2. 이승만 정부를 반동이라 하며 비난
3. 미국이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하니까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해야한다.
4. 우리 북조선 인민들은 전부 평화통일을 위한 서명에 전부 동참했다.
5. 남조선 민주주의자들은 독재 이승만 파쇼에 저항하여 제2대 국회의원선거國會議員選擧(5·30선거)를 방해해라.
인민위원회 부활시켜라
6. 남조선의 파쇼 경찰은 남조선의 민주주의자들(빨갱이들)에 대한 검거를 즉시 중단하고 석방하라
7. 외세를 배격하고 북조선 남조선의 통일국회를 열자
8. 유엔 , 미군정은 즉시 남조선에서 철수하라
9. 조국통일祖國統一을 방해한 자者(한국대통령韓國大統領을 포함한 지도자급指導者級 인사人士 거의 전원全員)는
민족반역자이므로 통일 회의참석대상會議參席對象에서 제외하라!
10. 남한南韓의 국회國會와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를 합병하자! 이것은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 통합안統合案이다!
11. 공동농장 만들어라 공동공장 만들어라
12. 소련蘇聯과 민주주의 중국中國과 인민민주주의 여러 나라들人民民主主義諸國들 및 기타
자유애호국가自由愛護國家들과의 친선親善관계를 발전, 강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13. 미제국주의자 타도하라 친일파 모조리 다 죽여버려라 !
14. 남조선 군대와 경찰은 전부 해체하라!

조국통일전선 공동의장 김원봉의 대남對南 선전 방송은 사실 625 남침을 가리고 마치 평화통일을 북한이 원하는듯양
연기하는 연막전술이었다.
연막전술이 아주 잘 무럭무럭 피워지는 동안 북조선은 남침을 위한 모든 준비를 착실히 해놓고있었다.
결론 : 김원봉은 625 남침에 적극 협력한 북괴의 국방 장관이며 국가검열성 총책임자이며 남조선에 우리민족끼리 선동하는 방송
내보내는 조국통일전선이란 라디오의 MC였다.
이놈이 내보내는 방송 때문에 대한민국은 북괴가 전쟁 준비하는거모르고 평화통일 막 외쳐대니 전쟁준비안하는건가? 하다가
그냥 털려서 낙동강 이남 빼곤 북괴한테 다 먹혀버렸다.
김원봉은 신나게 조국통일전선 라디오 MC를 맡아서 방송했다. 북괴가 625 남침 준비하는거 못알아차리게 연막전술을
무럭무럭 편거다. 김원봉은 MC무현같은 빨갱이개새끼였다.
김원봉이 중국에서 운영하던 빨갱이 조선의용군 3만명이 625 남침 선봉에 서서 한국의 경찰 , 군인 , 부자를 낙동강 이남 빼곤
전부 죽였다.
======================================================================================
참고 자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이트 http://db.history.go.kr/
백의사 대원 김두한의 증언 http://dbs.donga.com/comm/view.php?r_id=00167&r_serial=02
이처럼 김일성은 1950년을 조국통일祖國統一의 해로 정하고 각오를 다짐하면서 남한에 대해서는 유격대투쟁을,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력건설을 가속시켰던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의 군사력을 훨씬 능가하는 가공할 만한 전투태세戰鬪態勢로 급속하게 증강된 것은 1949년과 1950년 사이의 가을과 겨울에 걸쳐 진행된 두번째 軍事力增强時期에 이룩되었다(첫번째 시기는 1949년 3월 朝蘇軍事援助條約 직후의 시기). 북한군은 중국의 공산당 승리 후 3만여 명의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의 귀향으로 더욱 증강되었다.註 215 더욱이 김두봉金枓奉을단장 단장團長으로 하는 북한사절단北韓使節團이 1949년 12월 말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아시아방어회의防禦會議에 참가하면서 한반도에서의 미래의 행동계획이 결정된 것으로 보이며,
1950년 초에 모택동毛澤東이 소련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거론되었다.註 216 그리고 김일성이 1950년 2월에 모스크바를 재차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6월에 남한을 공격하겠다고 설명했고 귀국길에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모택동에게 같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스탈린은 처음에 때가 좋지 않으며 매우 위험하다고 하였으나
모택동毛澤東이 공격을 서둘러도 좋다는 견해를 피력하였음을 알고 스탈린도 남침을 승인하였다고 한다.
1945년 8월 이후 북한의 소비에트정권 수립 이후 계획된 길이었기에 그 임무를 김일성에게 위임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드디어 북한의 남침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질 단계에 도달했다. 인민군民軍은 이미 1949년 가을 이래 전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전술지원공군력戰術支援空軍力을 강화하기 위해 전방지역에 수 많은 활주로를 건설하였으며, 2월과 3월에 걸쳐 38도선 5km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소개시키고,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실은 화물차들이 속속 도착하였으며, 평양平壞-사리원-38도선 간의 철도를 군전용으로 전환하였다.註 218
그리고 10대 소년·소녀들을 서둘러 징집하여 통신요원通信要員, 간호요원看護要員 등으로 충당하였으며,
지하공작대地下工作隊와 무장공비를 남파시키고 거짓된 평화공세로 남침준비를 위장했던 것이다.註 219
미군정보계통美軍情報系統에서는 이러한 변화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북한이 빠르면 1950년 봄에 전쟁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고 보고했던 것이다.註 220
북한北韓은 전쟁준비戰爭準備를 완료한 다음 사상학습思想學習에 주력하는 한편, 1950년 5월 17일 평양의 모란봉극장에서
정치·군사수뇌首腦와 각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들이 모여 작전회의作戰會議를 개최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헌영은 처음에는 남침공격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으나 김일성의 전면남침계획全面南侵計劃에 찬동하고 인민군人民軍의 진격進擊이 개시되면 한국내의 50만萬 남로당원南勞黨員 들이 들고 일어나 폭동을 야기시킬 것이므로 전쟁은 2주일내에 끝장이 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다.註 221
南侵計劃이 확정되자 북한은 그들의 侵略企圖를 위장하고 전쟁도발구실을 조작하여 남한에 뒤집어 씌우고 세계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평화공세를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대남 심리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라디오방송을 통한 대남선동이 격화되었는데, 반일감정의 助長, 李承晚政府 非難, 미국이 한국의 내전을 조장하고 미국내의 침체된 경제회복을 위해 새로운 전쟁을 陰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註 222 또한 4월에는 이른바 朝鮮平和擁護委員會를 동원하여 북한주민들에게 평화통일을 위한 署名運動을 전개하여 약 2개월 간 570만명(당시 북한 인구는 900만)의 주민들이 서명했다고 조작했던 것이다.註 223
이와 아울러 남한에 대해서는 제2대 國會議員選擧(5·30선거)방해를 위한 유격활동을 전개하도록 지령하고 평양방송을 통해 선동하였으나 미미한 정도에 불과했다.註 224 38선지역에서의 충돌도 총 24건이나 되었으나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註 225 이렇듯 남한지역에서 共產黨活動이 저조했던 이유는 남한정부의 남로당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활동이 3월 초 부터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250명의 간첩단 적발 : 金三龍과 李舟河도 3월 27일 체포됨).註 226 이로 인해 南勞黨組織은 거의 와해되고 말았던 것이다.
5월 30일의 남한총선 직후 어수선한 틈을 악용하여 6월 7일 祖國統一民主主義前線(1949년 6월 25일 창설)으로 하여금 남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統一方案을 방송을 통해 제의했다(6월 1일 신문에 게재). 그 내용은 ① 1950년 8월 5일~8일 사이에 統一立法機關 설치를 위한 총선거를 실시하고 8월 15일 서울에서 신설된 立法會議(統一國會) 開催, ② 1950년 6월 15일~17일에 海州 또는 開城에서 남북대표가 모여 총선거 시행에 관해 討議, ③ 祖國統一을 방해한 者(韓國大統領을 포함한 指導者級 人士 거의 全員)는 민족반역자이므로 會議參席對象에서 제외하고 유엔韓國委員團의 개입금지 등이다.註 227 이 제의에 대해 한국측은 2년 전의 전례를 감안하여 유엔감시 아래 북한내에서의 보충선거가 정당하다고 응수하고 북한의 제의를 거부했다.
그 밖에도 開戰 직전에 또 하나의 마지막 연막전술로서 억류중인 要人 相互交換을 제의했다. 북한은 감금 중인 民族指導者 曺晚植을 볼모로 하여 한국에서 3월에 체포당한 남로당 工作責 金三龍, 李舟河 兩人을 38도선 부근에서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남한측이 이 제의를 받아들이고 曺晚植의 건강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면서 구체적 절차를 제의하게 되자 북한측은 이를 묵살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註 228 북한은 이어서 6월 19일 또 다른 위장된 통일방안을 제의하였는데 이번에는 새로이 구성된 南韓의 國會와 最高人民會議를 합병하자는 最高人民會議 統合案을 제시했다. 이 안은 祖國統一 民主主義前線 中央委員會(金日成派와 朴憲永派가 숫적으로는 거의 동수)에서 며칠간의 토의를 거쳐 내 놓은 것이라서 祖統과 北韓政府 간에 밀접히 협조한 案이었다고 평양라디오방송을 통해 선전·선동을 계속했던 것이다.註 229 사실상 이 안은 두 가지 목적을 띤 음모였던 것이다. 통일에 대한 선전·선동을 통해 南韓을 統一案에 열중하게 함으로써 북한의 남침준비를 은폐시키면서 향후에 서울을 점령했을 때 議會의 支持를 얻고자 한 술책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9月공세의 실패, 遊擊隊活動의 실패, 5·30選擧沮止失敗, 최근의 統一案의 합의실패 등을 감안할 때 현실성이 없는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정권이 통일을 거부한다고 비난하여 평화공세를 강화함으로써 開戰에 대한 책임을 남한에 전가시키기 위한 연막전술이었던 것이다.註 230
南韓當局이 6월 8일 북한의 祖統의 僞裝統一方案을 거부한 이틀 후인 6월 10일에 이미 북한의 民族保衛省에서는 前方師園長과 旅團長 등 주요 지휘관들을 소집하여 秘密軍事指揮官會議를 열고 大機動作戰訓練을 가상한 무력남침의 비상사태를 갖추게 했다. 이 野外 機動訓練은 극비로 실시할 것을 강조했다. 12일 새벽에 행동을 개시하여 6월 18일에는 계획된 지점에 진출하게 되자 각 사단에 偵察命令 제1호가 하달되었으며, 20일에는 마지막 빨치산部隊(악 100여 명을 3~5명으로 분산)를 남파시켰다. 이들 유격대가 받은 임무는 5일 후에 있을 주력부대의 공격을 지원하는 작전으로서 南韓 國防警備隊의 연락통신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註 231 開戰 3일 전인 6월 22일(14: 00시)에는 각 師團長 앞으로 戰鬪命令 제1호가 하달되었던 것이다.註 232 이 두 가지 명령이 먼저 러시아어로 작성되고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점과 최전방 野戰部隊級까지 소련고문단이 상주하고 있었던 점은 소련이 南侵 計劃에 얼마나 깊숙히 관여했는가 하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註 233
이리하여 韓國戰爭은 1948년 미·소 점령후 5년 동안 분단의 씨앗이 공산당에 의한 전쟁의 불씨로 계속 키워져 갔던 것이다. 공산당은 1차적으로 合法·非合法的 정치투쟁을 전개했으나 이것이 실패하자 제2단계의 비합법적 폭력투쟁을 선택하였고, 이것마저 실패하자 김일성은 소련과의 합작으로 全面 武力赤化統一路線을 선택했던 것이다. 1949년 초 이전의 활동은 주로 남로당에 의해 진행되었고 다수의 사건들은 남로당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주요 방향은 북한 지도층에 의해 결정되었고, 1949년 3월 김일성의 소련방문 이후부터의 주도권은 김일성에게 있었던 것이다.
<<<6.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
앞의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北民戰은 1949년 6월 25일 평양平壤에서 정견政見과 신앙信仰이
상이相異한 71개 정당政黨·사회단체社會團體 704명이 참가參加해
남북한南北韓 좌익정당左翼政黨 사회단체社會團體 운석회의連席會議를 개최하고
허헌許憲의 ‘국내외정세國內外情勢와 우리의 당면임무當面任務’의 보고를 청취한 후
남북한민주주의전선南北韓民主主義戰線을 통합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으로 개편 강화했다.
이 조국통일전선祖國統一戰線은 의장단議長團인 김원봉金元鳳 .............
이 조통선祖統戰은 다음과 같은 강령綱領을 제시했다.
〈강령綱領〉
1. 남조선南朝鮮으로부터 미군米軍을 즉시 철거撤去케 하며 소위所謂 「유엔위원회委員團」을 물러가게 하고
조국祖國의 완전完全 독립獨立을 위하여 투쟁한다.
2. 통일統一을 방해하는 조국祖國의 반역자反逆者들을 반대하며, 조국祖國의 통일統一을 급속히 달성하기 위한 투쟁에
인민人民들의 총역량總力量을 동원動員한다.
3. 우리 조국祖國의 북반부北半部에서 이미 실시된 민주개혁民主改革들을 일층 공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투쟁한다.
4. 1948년 8월 25일 총선거總選擧의 결과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政府를
지지支持하며 조선인민朝鮮人民의 권리權利를 향상시키기 위한 공화국정부共和國政府의 활동을 협조한다.
5. 전조선적全朝鮮的으로 광범한 민주개혁民主改革을 실시하며 전체 조선인민朝鮮人民에게
공민公民의 동등권同等權과 언론言論 출판 집회 시위 결사結社의 자유自由와 신앙의 자유 등 민주주의적
권리權利와 자유自由를 보장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6. 남조선南朝鮮에서 미제국주의자美帝國主義者들과 조선반동분자朝鮮反動分子들에게 의하여
강압强壓당한 인민人民들의 자치기관인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를 부활復活시키며 그 합법화合法化를 위하여 투쟁한다.
7. 일본국가日本國家 일본인日本人개인個人 법인法人 및 조선인민朝鮮人民의 반역자叛逆者에게 소유所有되었던
토지土地를 무상몰수無償沒收하여 농민農民에게 무상분배無償分配하는 원칙原則에 의하여
남조선南朝鮮에서 토지개혁土地改革을 실시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8. 일본국가日本國家 일본인 個人, 법인法人 또는 조선인반역자朝鮮人叛逆者들에게 소유所有되었든 산업產業 기타
기업소企業所들의 국유화國有化를 남조선南朝鮮에서 실시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9. 남조선南朝鮮에서 민주운동民主運動에 대한 탄력彈歷과 테로를 반대하여 남조선南朝鮮 감옥監獄 등에 투옥된
애국자들의 석방을 위하여 투쟁한다.
10. 소련蘇聯과 민주주의 중국中國과 인민민주주의 여러 나라들人民民主主義諸國들 및 기타
자유애호국가自由愛護國家들과의 친선親善관계를 발전, 강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11. 일본日本을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 일본日本으로 부활시키려는 정책政策을 반대하여 투쟁한다.
12. 침략적侵略的 동맹同盟을 조직하며 새 전쟁戰爭 도발목적을 가진 제국주의국가帝國主義國家들의
정책政策을 반대反對하며 평화平和와 국재적國際的 협동協同의 강화를 위하여 투쟁한다.
13. 민족경제民族經濟와 민족문화民族文化를 발전시키며 조선인민朝鮮人民들 속에서 문맹文盲을 퇴치退治하며
지식知識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며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사상思想잔재와
기타 반민주주의적反民主主義的 사상을 반대하여 투쟁한다.
〈조통祖統의 선언서宜言書〉
전항생략前項省略
친애親愛하는 동포형제자매同胞兄弟姉妹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은 조국祖國의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실천할 것을
남북조선南北朝鮮의 전체 민주정당民主政黨 및 사회단체社會團體들과 전체 조선인민朝鮮人民에게
호소呼訴하여 하기下記의 평화적平和的 통일방안統一方案을 제의提議한다.
1. 조국祖國의 평화적平和的 통일사업統一事業을 조선인민朝鮮人民이 자기自己의 수중手中에 틀어쥐고
우리 인민자체人民自體로 반드시 실천하자.
2. 우리는 조국祖國의 평화적 통일平和的 統一에 방해를 주는 미군米軍이 우리 조선朝鮮에서 즉시卽時 철퇴撤退할 것을 요구한다.
3. 우리는 비법적非法的 기관機關인 소위所謂「유엔朝鮮위원단委員團」이 우리 강토强土로부터 즉시 물러갈 것을 요구한다.
4. 우리는 남북조선南北朝鮮을 통하여 통일적統一的 입법기관立法機關 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제의한다.
5. 조국祖國의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원하는 민주주의民主主義 제정당諸政黨 사회단체社會團體 대표代表들로 구성된
위원회委員會의 지도하에서 선거選擧를 실시하자.
6. 조국祖國의 평화통일계획平和統一計劃을 토의討議하기 위하여 남북조선南北朝鮮 제정당諸政黨·사회단체社會團體 대표代表들의 협의회協議會를 소집하고 협의회에서 선거지도위원회選擧指導委員會를 구성하자.
7. 입법기관立法機關 선거는 1949년 9월에 실시하며 선거選擧는 일반적 평등적平等的 비밀투표의 원칙에서 실시하자.
일본日本통치시대에 일제日帝와 열성적으로 협력協力한 자들은 선거권選擧權을 박탈당한다.
8. 선거選擧의 자유自由를 보장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대책對策들을 반드시 실시하자.
(1) 전체全體 민주주의民主主義 제정당諸政黨 사회단체社會團體들과 그의 활동가活動家들에 대한 탄압彈壓을 금지할 것.
(2) 전체 민주주의 제정당諸政黨 사회단체社會團體들을 합법화合法化하며 그들에게 자유적自由的 활동권活動權을 보장할 것.
(3) 민주주의 제 정당 사회단체 出版機關들의 폐간廢刊에 대한 지령指令을 취소하고 민주주의 제정당·사회단체들에게
자기自己의 출판기관出版機關을 가질 권리權利를 보장保障할 것.
(4) 언론言論·출판·집회·군중대회群衆大會·시위示威의 자유自由를 보장할 것.
(5) 전체정치범全體政治犯들을 즉시 석방할 것.
9. 선거지도위원회選擧指導委員會는 다음과 같은 권한權限을 가진다.
(1) 남조선南朝鮮에 존재하여 있는 정부政府와 그의 기관機關들에 선거選擧준비와 실시에 관계되는 필요한 지시指示들을 줄 것.
(2) 자기自己의 결정決定과 지시指示실행을 검열檢閱할 것.
(3) 선거지도위원회選擧指導委員會가 구성하는 위원회委員會를 통하여 조선朝鮮에서 외국군대外國軍隊의 철거撤去를 감시할 것.
10. 선거지도위원회選擧指導委員會의 구성과 함께 남북조선南北朝鮮에 현존現存하여 있는 경찰보안警察保安기관들은 선거지도위원회의 직접 관할하管轄下에로 넘어온다. 선거지도위원회는 경찰대警察隊로부터 친일파親日派 일본경찰日本警察과 헌병대憲兵隊에 복무하던 자들을 제외시키며 제주도인민항쟁濟州道人民抗爭과 남조선유격운동탄압南朝鮮遊擊運動彈壓에 참가한 경찰대警察隊들을 해산解散시킨다.
11. 총선거總選擧 결과에 수립된 최고위법기관最高立法機關은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의 헌법憲法을 채택採擇하며 그 헌법에 기초하여 정부政府를 구성하며 정부는 남북조선南北朝鮮에 지금 현존現存하고 있는 정부政府로부터 정권政權을 접수하며 그 정부政府들은 해산解散된다.
12. 남북조선南北朝鮮에 현존現存하여 있는 군대軍隊들은 민주주의民主主義 기초 위에서 조선공화국정부朝鮮共和國政府가 연합聯合시킨다. 제주도濟州道와 기타 지대地帶들에서 인민항쟁人民抗爭과 빨치산運動 탄압에 참가하였던
남조선南朝鮮「국방군國防軍」부대部隊들은 해산解散시킨다.
인민항쟁人民抗爭과 빨지산運動 진압에 참가하였던 자들에게는 군대軍隊에 복무服務하는 것을 금지하며 이 탄압을 추진한 자들과 조직한 자들은 처벌處罰을 당한다.
(이하以下 생략省略함)
통일적統一的 민주주의독립조선만세!民主主義獨立朝鮮萬歲!
영원永遠히 통일統一된 조선인민만세!朝鮮人民萬歲!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結成大會
- 위 조국통일전선에 대한 정보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서 가져온 정확한 자료입니다.
결론 : 김원봉은 625 남침에 적극 협력한 북괴의 국방 장관이며 국가검열성 총책임자이며 남조선에 우리민족끼리 선동하는 방송
내보내는 조국통일전선이란 라디오의 MC였다.
이놈이 내보내는 방송 때문에 대한민국은 북괴가 전쟁 준비하는거모르고 평화통일 막 외쳐대니 전쟁준비안하는건가? 하다가
그냥 털려서 낙동강 이남 빼곤 북괴한테 다 먹혀버렸다.
김원봉은 신나게 조국통일전선 라디오 MC를 맡아서 방송했다. 북괴가 625 남침 준비하는거 못알아차리게 연막전술을
무럭무럭 편거다. 김원봉은 MC무현같은 빨갱이개새끼였다.
김원봉이 중국에서 운영하던 빨갱이 조선의용군 3만명이 625 남침 선봉에 서서 한국의 경찰 , 군인 , 부자를 낙동강 이남 빼곤
전부 죽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