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현재 전세계 부의 60%는 G7(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이 갖고 있다. 사스가 갓본!

그러나 300년 전 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의 중심은 "동양" 이었다.

1. 동양의 부.JPG "18C 세계생산량의 70%를 담당"

그런데 어째서 현재는 이렇게 상황이 역전되어 똥송해진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바다" 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바다는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고, 문명과 문영이 교류하는 계기를 열어주었다.

 

 

포르투갈의 활약

서기 1497년 포루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찡의 범선3척이 유럽에서 인도를 바로 통하는 "인도항로" 를 찾아 떠남.

  2. 바다로 진출.JPG "사스가 대항해 시대가 열림"

포르투갈은 당시 독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 인구는 고작 100만 남짓인 유럽의 변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포르투갈 게이들이 대항해 시대를 여는 포석을 올리고, 국부를 쌓아 올리게 되었을까?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에 갇혀서 육로는 사실상 스페인에 의해서 밴당했고, 바다만이 유일한 통로였다.

유럽의 바다 즉, 지중해는 이미 베네치아 같은 강국들이 진출해 있었고, 게다가 돈이 되는 향신료는 구할 수 가 없었다. ㅂㄷㅂㄷ

 

베네치아의 위상

 3.베네치아의 위엄.JPG "향신료 무역을 독점한 베네치아"

그 시절 유럽은 오스만제국과의 대립으로 인해서 동방무역을 대부분 "베네치아" 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베네치아는 강력한 해군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잡고,  쌓아올린 부를 활용해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향신료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 받았다.

당시 베네치아의 국력은 인구는 약150만에 불과하였지만 국가수입은 프랑스전체의 5배, 선박3,300척-선원36,000명으로 최강의 해상국가였다.

이 모든 것이 아시아와의 중개무역을 통해서 구입한 향신료를 유럽에 독점 공급함으로써 일궈낸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에서 온 선물 후추

 4.후추.jpg "사파이어반지2개, 돼지15마리, 말3마리와 동급"

향신료는 유럽인의 식탁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였고, 그 중에서도 후추의 위상은 갑 of 갑.

5.후추의 물가.JPG  "지금은 치킨한마리 값이랑께"

당시의 후추는 유럽인의 부와 권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아이템이었다. 

 

인도 발견

포르투갈은 우여곡절 끝에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 한다.

 6.바스코의 항해.jpg  "리스본-희망봉-캘리컷 루트를 개척"

캘리컷에 도착한 포르투갈인은 인도시장에서 엄청난 양의 향신료가 비교적 헐값에 매매되는 과정에서 멘붕을 당한다.

그리고 인도와의 거래를 트기 위해서 현지의 세력가를 만나기 위해서 후빨을 시전 한다.

7.캘리컷에서의 조우.JPG "외투12벌, 모자5개, 설탕을 조공ㅍㅌㅊ?"

그러나 조공품의 수준은 캘리컷의 왕과 신하들의 비웃음을 사고, 이 일화는 리스본과 캘리컷의 경제적 수준을 비교하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

 

아시아의 무역

그러면 과연 비슷한 시기의 동양은 어떠했을까?

15C 당시 세계무역의 최강자는 단연 "아시아" 였다.

 8.컨테이너 처리량.JPG "현재도 아시아의 물동량은 세계최고 수준"

특히 중국은 명나라대에 이르러 "정화의 대원정" 을 통한 바다의 개척이 이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9.정화의 대원정.JPG "300여척의 함선과 2만8천명의 선원으로 출발"

당시의 원정대 규모는 세계1차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선단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말을 싣는 마선, 식량을 싣는 양선, 식수를 싣는 수선 등의 기능성 함선까지 동원된 그야말로 대선단이었음.

대선단의 제독인 정화의 배는 길이 150m, 폭이 60m, 8천t의 거선이었는데 이런 거선이 무려 62척이었고,

선단의 선원이 하루 소비하는 식량은 쌀100가마니였다고 한다. (짱개새끼들 통큰 건 진짜...하아;;)

이런 선단에는 상아, 비단, 도자기, 향신료 등의 진귀한 품목의 보물과 무역품이 실려있었다.

 

인도는 아라비아반도와 인도반도 그리고 중국의 무역상들이 모두 모여드는 사실상 세계무역의 중심지였고,

아라비아 상인들은 극동지역인 신라의 경주까지도 진출할 정도의 해상무역이 활발했었다.

반면에, 이제 갓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은 이 무대에서 주변인에 불과했었고, 국운을 건 일대의 승부를 걸기 시작 한다.

 

디우 해전

총포 외에는 인도의 상품보다 우월한 것이 없던 포르투갈상인은 결국, 총포로 인도의 무역시장을 제압하기로 결정 한다.

인도의 서북부 디우 해역에서 벌어진 "디우 해전" 은 인도지역에서 일어난 국지전에 불과했지만, 향후 해상무역의 헤게모니를 바꾸는 큰 기점이 되었다.

유럽의 화포로 무장한 포르투갈의 카락선 18척과

10.디우해전(카락선).JPG "원거리에서 포격이 가능하였음"

그에 대항하는 노를 저어서 충파 전술을 구사하는 아랍연합의 갤리선 100여척은 디우해역에서 격돌하게 된다.

10. 디우해전(갤리선).JPG"숫적우위를 앞세워서 일제히 돌격함"

결과는 수배의 적을 격파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거머쥐게 되었고, 추후 인도시장에서 큰 축을 담당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는 비록, 동양의 세력들 보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유럽이었지만,

적어도 "총과 화포" 라는 화약무기의 우월성으로 인도무역을 제패하는위업을 달성하였다는 의의를 갖는다.

 

포르투갈의 고리

디우해전을 통해서 인도양의 패권을 잠식한 포르투갈은 인도의 애미없는 도시인 "고아" 에 요새를 건설하여,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각지의

무역거점을 잇는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고, 이를 "포르투갈의 고리" 라고 명명한다.

11.포르투갈의 고리.JPG "무력으로 복속시키고, 지배함"

아프리카-아라비아-인도-동남아를 잇는 카르텔은 포르투갈에게 향신료 무역의 독점권을 가져다 주었고,

이를 다시 유럽에게 중개하는 무역으로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을 갖게 된다.

 

중국의 발견

총과 화포로 무장한 포르투갈의 상인은 아랍과 인도를 정복하고, 이제 신비의 나라 "중국" 까지 진출하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포르투갈은 1553년 마카오를 정복하고, 400년간 식민지로 삼아서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교두보로 삼았다.

12. 마카오.JPG "아시아의 유럽으로 통하는 마카오"

무력으로 아프리카-아라비아-인도-동남아를 정복해나가던 포르투갈은 드디어 세계최강의 대국 "청나라" 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전권대사인 "토메 피레스" 는 고대하던 청황제를 알현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13. 청황제에게 앙망.JPG "교역을 원하옵니다~폐하!"

그러나 청황제는 조공국이던 믈라카가 포르투갈에게 정복당해서 더이상 조공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진노하였고,

하던대로 하면 중국마저 정복가능하리라고 믿었던 피레스 사절단은 어이 없이 감옥에 수감되는 모욕을 겪게 된다.

14. 피레스 앙망문.JPG "앙망하옵니다ㅠ"

피레스 사절단의 기록은 약 2년간의 내용이 없는데, 아마 2년간 수감되었던 것으로 사료 된다. 

 

바다의 제국과 육지의 제국

 15.두개의 제국.JPG

포르투갈은 유럽의 그 어떤 국가보다 먼저 인도에 도달하여, 그 기반을 중심으로 중국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고리와 같은 카르텔을 중국까지는 신장시키지 못하였고, 그 세력은 결국 인도양과 동남아 해역으로 한정되었다.

아직까지는 대항해 시대의 초기였고, 유럽의 국가들은 해상권을 장악하는데에도 애를 먹어 각 거점의 요새화가 겨우 진행되었기 때문에

오스만트루크의 아라비아나 무굴제국의 인도 그리고 중국의 청나라 같은 내륙의 거대세력에게는 힘이 닿지 않는 수준이었다.

 

3줄 요약

1. 현재 경제의 중심은 G7 같은 서구권이나 과거에는 동양이 짱짱맨이었음

2. 포르투갈의 인도항로 발견을 시발점으로 아랍-인도-동남아를 차례로 정복함

3. 그러나 포르투갈은 동양의 큰 형인 중국에게 민주화 당함

 

출처

KBS1 다큐멘터리 바다의 제국 4부작 中 "욕망의 바다" 편을 발췌 및 요약하여 작성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