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제 정서가 깔린 자유민주 대한민국 사회에서 ‘歷史’는 非전공자 위임대상 아냐

-영화 ‘사도’를 어떻게 조갑제기자처럼, 그것밖에 못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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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기자의 영화평은, 조갑제기자가 얼마나 ‘歷史’를 모르는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영화 ‘사도’는 씨족제 사회에서 歷史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손이 왕이 되면 세자를 죽게 한 우리를 가만히 놔둘텐가? 다 죽는다.

 

사실, 한국 사회에 이데올로기 문제는 마을주의와 연결됐다.

 

결국, 한국 사회에 이데올로기 문제는 ‘임정공산파’가 우덜 조상이 짱이랑께롱. 우덜 조상 헐뜯는 대한민국 법체제여. 홀라당 망하거라. 하는 좌파 종족주의 관념이 베어 있다.

 

사실, 從北이란 말에는 해방공간에서 6.25 전쟁 사이에 반공 교회의 반공설교에서 기인한 우상종교 프레임 영향이 있다. 그러나, 좌파는 늘 거부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소수파요 체제를 엎는 데 일반 국민의 실익이 전혀 없는데도 없어야 한다는 데에는, 아시아 사회 특유의 종족적 감정이 겹쳐 있다. (종북이 종북이 아니라, 이 땅에 조상이 택한 좌경 상태를 조상숭배로 계승하는 케이스를 실제로 인정하면서, 그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

 

영화에서 ‘유아인’이 폐중전 당한 어머니에 법도를 무시하며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좌파들이 말하는 영웅주의는 자신들이 받드는 ‘인물’로 새로운 조상숭배 전통을 하려는 종교행위가 깔려 있다.

 

法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해야 한다.

 

국정교과서로서 역사도 그러해야 한다.

 

나는 조갑제기자 인맥이 이해할 수 없되, 헌법학자는 이해하는 국정교과서 서술에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프레임이 있어서, 황교안 총리가 국정교과서 추진의 적임자라고 본다.

 

언제까지 한국 국민은 ‘임정 공산파 후손’에 권력이 가면 다 망해!! 그럴 건가? 무엇보다, 그것을 영원히 벗어나는 대한민국 정당화 기제가 있다. 사회계약론이다. 이는 조갑제씨의 영웅주의와 180도 다르게 가야 한다.

 

또, 조갑제씨처럼 바라보기도 힘들다.

 

당장, 70년대에 ‘국제시장’윤덕수 입장이 아니라 학생이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영화 ‘사도’는 분명히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치러야 하는 공동체질서로서 문제에서, 기독교로는 십자가희생인식, 유교로는 극기복례, 불교로는 열반원칙에 해당되는 것을 느끼는 감정을 안고 있다. 영화에서 ‘사도’가 미치는 과정에서, 반대편으로 ‘영조’의 질서를 옹호한다.

 

“공부 잘해야 한다. 공부 잘하지 못하면 왕이 칼날을 쥔다.”

 

박정희 때 영정조 프레임이면 상상을 못하는 변화다. 민주팔이는 臣權주의란 이름하에 엘리트 밥그릇주의로 역사를 천하통일했다. 그래서 바뀌어진 임금 현상이 그러하다. 결국, 겨우 겨우 댁댁거리는 선비들을 겨우 질서 잡는 수준에 만족하는 게 임금이란 것이다.

 

이는 민주팔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엘리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망국만 겨우 면하게 해주는 군주의 통치술과 연결된다.

 

너무 강한 신하들 등쌀에도 불구하고, 겨우겨우 봉합하는 과정이 탕평이라 불리는 과정은 영조가 봉합한 것을 사도가 뒤집는 장면에서 보여준다.

 

한국사 서술에는 권력의 메이저 위주로 총체적 해석이 휘어버리는 게 있다. 지금 민주팔이 우세 입장으로 휘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

 

엘리트 밥그릇을 최대한 보장하는 臣權주의는 국민주권주의에 어긋난다.

 

이 역시도 법학자가 나서는 게 훨씬 유리해 보이는 상황이다.

 

사학자가 빨갱이라고 사학자 미달인 일반인이 나서야 한다는 조갑제 주장은 황당하다.

 

물론, 법학자는 이론으로는 지침을 세울 수 있으나 세부 서술은 할 능력이 없다. 역사학계에 큰 틀의 지침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은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총리는 가능하다.

 

역사서술에서 자유민주 법치 사회 헌법학이론으로 대입을 하는 필요성은, 딱 하나다. 씨족 사회 관련으로 피비린내나는 것을 안하려는 차원이다.

 

영화에서 사도세자(유아인)이 미쳐버리는 데는, 씨족 사회 특유의 남아에 과잉 기대와 연결된다. 이런 과잉 기대는 어린 시절에 남자라고 더 교육 받는 상황으로 흔하게 드러났다. 딸들은 이유 없이 능력이 되도 교육을 못 받았던, 나의 윗세대가 실제로 존재했다.

 

황교안 총리는 조갑제기자의 국정교과서에 일반인 참여주장을 깡그리 100%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무시하시라. 안봐도 훤하다. 그렇게 참여했으면 참여한 사람들의 여부가 대외적으로 홍보되고, 그것으로 또다른 가치가 형성된다. 물론, 이런 국정교과서 작업은 권력을 넘지 못하는 문제까지 발산한다.

 

헌법학이론에 맞게 국가정당화를 취하는 황총리의 고유의 힘이 발휘되는 게 우선이다.

 

영화가 시나리오가 끝내주고, 그 위에 송강호와 유아인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압도한다. 영화 시나리오가 만만찮다. 이것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밖에 평 못하나?

 

특히, 아시아 사회에서 보는 역사관념까지 절절히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도 못 다루면서도 그저 북한을 저널리스틱하게만 몇 번 때리며, 90년 이전에 교육 받은 분 취향에 맞게 감정만 북돋으면, 모자란 지성 부분이 다 채워지는 줄 착각하는데, 정말 갑갑하다.

 

조갑제기자는 공부를 비하한다. 공부가 양명학에서 나온 심신운동의 부분을 말했다. 제왕학으로서 공부. 즉 신분과 계급 계층이 달리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관료로서 괜찮은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미지 메이킹’으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좌익 문화사학자 유홍준의 말처럼 역사에 잘 알지 못해서 몰라서 안 보이는 거 아니냐는 지적을 듣기에 충분하다.

 

분명히 자유민주 헌법 이론에는 씨족제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현재처럼 학연 지연이 풍만한 사회는 그것이 암암리에 훼손되고 있다. 좌측으로 훼손되는 좌익 마피아가 아니라면, 반대편의 마피아는 정당한가? (더 나아가서 반대편으로 우익이긴 맞는가 여부도 있다.)

 

어떻게 그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밖에 평을 못하는가?

 

과연, 조갑제기자는 ‘기자’다.

 

한국학을 전공한 보수적 정서의 자유민주청년은 조갑제기자의 비합리적 규제 때문에, 보수정권 내내 허공 잡는 것은 바람직한가? 물론, 나는 한국학 전공이라도 한국사 전공은 아니다. 제대로 된 보수 어른이면, 소외된 한국학전공자에 기회주라고 해야 정상 아닌가? 자기네 파벌이 다하려고 전공규제를 뺴자... 아놔. 미친다. 미쳐.

 

조갑제기자는 기자고, 절대로 그 이상이 아니다. 조갑제기자가 기자이며 기자 이하가 아니라고 한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그의 ‘인격권’ (조갑제는 기자로서 스스로 광고)은 넉넉히 존중하는 상황의 평가다.

 

사실, 누구나 재능 받은 만큼 행하고 산다.

 

조갑제기자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