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인의 자아의식,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

 

당연한 것인데, 역사책의 19세기 초반의 붕당 분석과 20세기 초반의 지식인 풍경은 그리 달라 있지 않다. 이 차원이 1950년대도 사실상 동일하고 민주화 이후 되살려낸 차원도 마찬가지다.

 

일단, 엘리트들은 자기 편 대중들을 줄 세우려 한다. 90년대 출생 일게이에게 내 어렸을 적에 50년대를 요약하는 문장은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빽~~~!! 하고 죽는다.”→ 법이 요새처럼 새밑련 계보에 드는 사람들에 비정상적인 벌려주기 판결이 있듯이, 그런 정치적 배경이 있으면 50년대 사법판결도 비정상적 벌림이 있었던 것 같다.

 

‘빈곤의 악순환’ → 좀처럼 기존의 보수 논객에게서 들을 수 없는 개념이다.

각자에게 자유라고 발산을 시키지만 그것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물리는 시스템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멀리, 이 시스템의 기원은 1920년대 문화정치 때 일본의 통치술로 생각한다.

 

요즘,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여 제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으니, 과거가 이해가 가지 않노?

 

셋이 모이면 정당을 세운다. → 지금은 셋이 모이면 인터넷 방송을 세운다 정도로 거의 복원된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대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종편이 올곧게 우덜 마인드 대로 대중을 잡아야제.... 그러는데 대중은 대중끼리. 종편이 하면 우덜도 한다. 이렇게 인터넷 방송국 만들지. 온 세상이 날좀 보소. 그러면 말한다. 누가 듣냐?

 

한국 지식인들은 무리의 ‘머리’의식이 강해. 그래서, 그 머리를 놓는 것을 인격적 운지로 보지. 옛날 고대 제왕들은 ‘무당 주술’하다가 실패하면 왕위를 내려놓았다드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곡학아세를 해도 시인안하고, 표절을 해도 시인안하고, 뭘 해도 시인안해. 행여나 시인해서 제 방석 내려놓을까봐. 이런 자가 박정희 18년 집권이라고 뭐라칸다. 지는 방석 깔고 20여년 가뿐히 넘어섰는데.

 

일게이 한분이 내가 예전에 쓴 非기독교 감정을 기독교처럼 추인한 김성욱기자에 쓴 아쉬운 부분 비판글에, 덧글로 편드는 응원(?)성의 글을 보냈다. 이것도 사실은 한국적(50년대적, 그리고 지금) 정서이되, 이 정서로부터의 탈피를 꿈꾼 근대화정신 지지자에겐 좀 그런 부분이다.

 

타 종교인은 그냥 편하게 들었으면 한다. 신앙은 개인적인 영역이다. 현대 신학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천상계 뿐만 아니라 세상도 통치한다고 본다. 지체가 공동체안에서 떡을 떼고 나누는 그런 지체가 되듯이, 각자가 가진 은사에 따라서 세상에 그렇게 참여한다고 본다. 그게, ‘사회선교’이고 그런 ‘사회선교’로서 정치의 가능성이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게 민중신학 진영이 의존한 현대신학의 원래 논리다.

 

구약의 예언서에 숱하게 ‘진짜’ ‘가짜’ 이야기 나오지. 예언자는 성경의 로직을 적용하되 그 사람이 하나님 뜻을 전달만 하여야 할 것이며 자기가 전할 수 없으며(즉, 무교로 탈혼망아 접신하는 감정은 아니다), 그런 것이 신약으로 말해서 성령의 열매를 가진 사람에게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본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세상의 구석 구석 이치를 먼저 자세하게 살펴야 해. 대중들은 자세히 안 본다는 전제로 프레임질 먼저 하는 기자 직분의 접근법은 기독교인의 접근법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 소망. 모든 것을 주님께.

 

몸과 마음을 그리 두면 우리는 싸울 일이 없다.

 

문제는 붕당정쟁의 피를 가진 민족인지라(조선조 정체론은 관념론 정체론이 아니다. 시민사회로 존재하지 않고 임금 주변에서 복닥복닥하려다 보니,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문제다), 예수신앙은 성리학 도덕처럼 가뿐하게 취급한다.

 

사실, 기독교인 정체성 밝히고 예수 신앙 안 다치게 참여하는 데에는 구속이 많다. 대중정치인은 차라리 ‘종교 없음’을 선언하는 편이 실속 있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직업으로서 대중정치인이 아니라, 소시민으로서 신앙인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앙을 지키는 참여여야 한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신앙을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각종 기본권 논리를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모델이 되는 것이 될 수 있다. 모든 기본권의 근간은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한다.

 

결국, 결론은 그렇다.

 

1) 기독교인이라고 대중에 관심 가지라고 하고는 기독교신앙을 별로 신경 안 쓰는 것은, 붕당 서원 정쟁의 연속이지 기독교전통은 아니란 것이다.

 

2) 엘리트가 자신이 발언하는 담론의 근원에 무관심함은 붕당정쟁 한국적 풍경이지, 서구 공론장(사상의 시장)의 마인드는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요약

 

세상이 잘못 가도 나는 바른 길 가겠다. 그럼 족하다.  오직 천국 소망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