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때 '화해 협력'타령의 90%는 신앙사기극
명치계몽주의는 일본 천황을 보호하기 위한 뚜렷한 "도구적 목적"으로 서구문물을 받았다. 가장 밑둥의 믿음은 천황제 관련 일본 민속종교인데도, 갖가지 휘황찬란한 서구 문물의 옷을 입는다.
노무현 때 유럽 좌파 타령으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도 노무현에 그런 극찬을 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노무현과 80년대 초반 학번운동권 마피아 조직에 덧씌워진 서구 문물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유독 강조된 '화해 협력'타령 때 바르트의 책은 번역 초기 단계다. 내가 뭘 잘났나? 다 따라 읽으면서 상처 받은 기억만큼 잊지 않고 번역된 책을 찾아 읽고 검증해 준다.
신학대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바르트 본회퍼 몰트만을 관통하는 것은 화해자 예수이며 구약의 계약의 완성이란 측면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에서는 민중들의 손상감정에서 빚어진 영웅 소망의 투사로서 민주화영웅(아기장수설화의 스토리 구조)이 화해자라 본다는 것이다.
구약의 계약주의(나는 니 하나님이다)에서 신약의 계약주의(주는 그리스도시요, 나는 그의 종)으로 이어지는 측면과, 민중영웅의 손상 받았다는 자신에 소망을 투사한 민중찾아가서, "아따 배설감이 쫙쫙 내려가니 시원하노?"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유대 그리스도교는 밖의 절대자를 찾는 것이고, 샤머니즘은 '나'가 절대적이고 나가 행하면 세상이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다. 180도 다르다.
결국, 간단히 말해서 북한의 대남 전략에 한국교회가 앞잡이를 하되, 신학적 용어 두께가 하도 두꺼워 검증을 못한 것이다.
그리고, 좌좀이 뻑하면 국보법 해체 운운하는 것도, 유럽 기독교인 같은 경우는 속아넘어가기 쉬울 것으로 본다.
한국에 당연히 시민사회가 있는 줄 알고, 그들의 신앙에서 공동체로 존재하는 기독교로 볼 줄 안다.
그러나, 붕당 서원 구조. 엘리트 짱과 복면복창 수동층.
한국은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
알튀세의 이론적 실천 등
먼 과거로 보면 사르트르의 참여적 지식인까지
이런 구조를 닮아서 한국은 담임 목사의 파워가 기형적으로 커진 교회 모습이 어디에나 드러난다.
정치신학? 좋다 이기야.
정말로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면 그러하다. 그런데, 대부분은 민담을 이용한 대중심리를 조작한 참여를 말한다.
바르트 고백교회가 깠던 성경적 신앙이 아니라는 교회의 거지같은 짓을 거의 대부분 추종안하면서,
우덜이 누가 성서적 신앙이 아니라 그래. 우덜은 무조건 성서적이여. 마을 사람은 편들고, 마을 밖은 딴 마을이래서 모르는 관계
여하간, 바르트 신학이 교파 교단 따라서 수용여부의 논쟁점 여부는 별개로 서구 사회에서는 준수한 신학이라고 생각하여, 그만하면 어떠냐는 입장으로 적용해볼 때 참담한 실망감이다.
노무현 때가 다 그랬듯이 민족해방계열 엘리트 칭송하러 엠한 유럽좌파 정치이념 들어왔듯이
북괴 대남통일전선 앞잡이 하는 것에, 엠한 바르트 신학이 남용되고 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교회와 신학대가 말씀 수호가 치열하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다 번역된 서적과 논문 기준으로, 한 개 정부가 기독교 공동체에 잘못된 신앙으로 뒤범벅했으면 고쳐야 하는데.......
지금은 그 흐름이 한기총계열 교회까지 장악하니,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