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이 공유한 글인데, 찾아보니까 유명한 목사더라.
동성애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은 십자군 전쟁을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을 내렸고, 기독교인들이 많이 공유하고 좋아요도 많음.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막아오던 기독교 방패가 흔들리겠노....
기독교의 영향력있는 목사가 동성애 법제화와 싸우지 말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이제이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듯 하다.
위의 목사가 십자군 전쟁을 '선교전쟁'이라고 규정하고, 동성애반대는 십자군 전쟁이다는 비유를 썼는데 , 직무유기인 것 같아서 팩트를 알아보자.
1. 이슬람 이전의 로마제국의 영토
- 395년 데오도시우스 황제때 로마는 서로마와 동로마로 나눠서 통치를 결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로마 기독교도 로마의 교황청과 동로마의 기독교로 분열이 된다. 그리스 정교회라고 한다.
2.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동로마제국의 실지회복운동
483년 이탈리아는 게르만족에게 점령되고 멸망한다. 로마제국의 정통성은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에게 이어지게 된다.
로마를 점령한 게르만족은 서로마를 통치하기 위해 당시의 지배종교인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고, 로마 기독교는 새로운 통치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향후 동로마제국 기독교(그리스 정교회)가 로마기독교(가톨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되었고, 이것은 교황청의 핸디캡이었다.
발해나 고려때 고구려땅 회복운동을 했던 것처럼 서로마가 멸망한 뒤 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 회복운동을 벌이게 되고, 565년 최대 판도가 위와 같았다.
3. 이슬람교의 등장과 동로마제국, 사산조 페르시아 정복전쟁의 시작
(1) 그런데 6백년대가 되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무함마드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창설하고 정복전쟁에 나선다. 622년 메디나를 점령하고, 630년에 메카를 점령했다. 636년까지 알라의 포교롤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정복을 끝냈다.

무함마드는 632년 사망전까지 아라비아반도를 대부분 정복했다.
(2)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는 알라를 모든 국가가 믿게 할 때까지 전쟁을 하라는 지하드 교리에 의해 전쟁을 쉬지 않고 정복전쟁에 나서게 되는데, 팔레스타인지역(또는 시리아)을 바로 따묵한다.
(칼리프의 부활을 선언하고 칼리프를 자처한 IS의 알 바그다디)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집트와 그리스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정복전쟁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지역이었다. 이와중에 예루살렘도 이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됨
이슬람은 641년 동로마제국이었던 이집트를 침공하고 642년에는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한다. 이 당시만 해도 아랍족은 미개한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의 50만 권의 서적을 그냥 불태워 버림. 탈레반이나 IS가 꾸란만 가르치듯 그 외의 것은 분서갱유.
시리아를 거쳐 인접국가인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벌인 이슬람은 637년 카디시야 전투에서 패하여 수도 크테시폰을 이슬람 정복자에게 넘겨주게 된다. 642년 네하벤드전투에서 승리하였고, 644년 포로에 의해 우마르 칼리프는 암살당한다.
3대 칼리프 시기동안 이슬람은 사우디반도를 벗어나서 동로마제국(이집트, 북아프리카, 시리아), 사산조페르시아 등을 점령한다.
3) 644년 무함마드의 딸과 결혼했던 우스만이 칼리프로 취임하고 꾸란을 정비하면서 651년 공식적으로 사산조 페르시아는 이슬람에 정복당하게 된다.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슬람은 동로마제국의 정복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우스만 칼리프는 동로마제국의 로도스 섬, 키프로스섬을 점령했고, 이에 동로마제국 콘스탄스 2세는 655년 우스만과 싸우러 왔다가 대패하고 도주하게 된다.
(4) 막간 : 콘스탄스 2세에 대해 알아보자.

655년 이슬람에 대패하고 전전긍긍하던 콘스탄스 2세는 우스만 칼리프가 암살되면서 이슬람내에서 권력투쟁전쟁이 벌어지면서 이슬람이 휴전을 맺어주므로 시간을 벌게 된다.
2년전 653년 콘스탄스 2세는 자신의 지시를 어긴 교황 마르티노 1세를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했고, 교황을 처형당할 운명이었으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가 강력히 구원활동을 해서 유배지에서 655년에 죽게 된다.
이사건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했지만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서로마제국의 영토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서로마제국이후 게르만족과 협력하기 시작한 로마 가톨릭이 게르만족의 영향을 받지 않은 로마 기독교와는 다른 노선을 겆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668년 시종에게 암살당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D%98%EC%8A%A4%ED%83%84%EC%8A%A4_2%EC%84%B8
(5) 이슬람의 내전 : 알리 vs. 무아위야
우스만 칼리프는 656년 암살당하였다. 우스만 칼리프의 친척인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는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의 칼리프 인정을 거부하고 복수를 주장한다. 이에 알리는 시리아에 군대를 보내나 패하게 된다. 무아위야는 승리를 앞두고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이를 수용한 알리는 4대 칼리프에 취임하나, 무아위야에게 소극적인 알리에게 불만을 품은 지지자에게 암살당한다.
(6) 우마이야 왕조의 등장
우마이야 왕조도 지하드 교리에 따라 정복전쟁을 전개하게 된다. 이집트 옆의 북아프리카지역을 정복한 이후에 스페인지역을 점령하였고, 프랑스를 향해 진군하던 이슬람은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의 메로빙거왕조의 재상이었던 마르텔에 의해 패하게 되므로 이슬람의 서유럽진출은 막히게 되었다.
이후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의 반란과 내분으로 서유럽 침공은 중단되므로 서유럽은 안정을 누리게 되었다.
반면에 동로마제국 - 비잔티움제국은 이슬람의 공격에 계속 시달리게 된다. 앞에서 지중해를 호수로 두었던 동로마제국의 영토는 100년뒤인 650년에는 이슬람에게 북아프리카, 이집트, 시리아를 뺏기고, 소아시아 지역도 위협을 당하는 제국의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다.
650년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영토 : 서아시아, 그리스 일부, 이탈리아 일부로 축소
717년의 비잔틴 제국의 영토. 그리스 지역도 이슬람에 따먹히고 소아시아지역도 이슬람에 따먹히는 중이다. 비잔틴제국에게 멸망은 예고된 사건이고, 이슬람에게 비잔틴제국의 침공은 레저였던 시절이다.
751년 중앙아시아로 진출한 이슬람은 탈라스에서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교도들에게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것을 중단하므로 폭동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초기 정복전쟁에서 아랍인은 소수이므로 다수 정복민들이 내는 세금만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슬람으로 개종자가 증가하고 면세자가 증가하게 되고, 왕국은 계속되는 정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재원이 필요하고, 사치를 부리게 되면서 개종자에게 주던 면세혜택을 없애게 된 것이다.
(일부다처제의 이슬람 가정 방송)
아랍족이 기독교 영토를 점령하면서 장기간 외국에서 주둔하거나 이주하게 된 아랍 무슬림들은 전투에서 패한 기독교 지역의 여성을
다수를 아내나 종으로 취할 수 있도록 1인당 아내 4명을 둘 수 있다는 규정에 '기독교인 여성'도 포함되게 되었다.
그당시 비잔티움제국의 민중들은 기독교인이나 신학적 훈련을 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슬람의 "알라 = 하나님"이라는 접근법을 비잔티움제국의 신민들이 별 거부감없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 이유이다. 유럽이나 한국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이슬람에서 전도하고 있다.
아이러니한게 이러한 문명의 뿌리가 요즘 말도 많은 그리스라는 거다.
그리스의 과학/철학 - 로마제국 - (서로마가 게르만화된 후 암흑기) - 동로마(비잔티제국)에서 도서관을 각지에 세우며 그리스 과학/철학 계승 발전 - (이슬람이 비잔틴제국 접수후) 이슬람에서 그리스 과학/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하면서 과학이 발전 - (십자군전쟁) 암흑기로 들어섰던 서유럽에서 중동을 오가면 수집한 그리스 과학/철학 서적 줍 - 서유럽은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과학/철학서적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그리스 문명의 재발견, 르네상스의 개막 - 서유럽 과학과 철학, 신학의 모든 분야의 발전 - 서유럽 세계 정복 시작 - (현재) 서유럽과 미국의 세계 지배권 유지
정작 그리스는 좌파와 포풀리즘을 받아들인 덕분에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중. EU에서 그리스 구제를 위한 회의를 중단했음.
(7) 아바스 왕조의 등장
754년 무함마드의 일족인 아바스 가문이 시아파, 이란인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하고 아바스 왕조를 열었다. 알 아바스는 754년에 사망했다.

비잔틴 제국의 측면을 공격해서 이탈리아에 근접한 샤르데나와 902년에 시칠리아섬을 접수하면서 지중해 해상권도 위협하게 되었다. 이때문에 이탈리아의 무역도시들은 자력으로 해군을 육성해 아랍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잔틴제국은 로마에서도 거의 영토를 상실한 것을 볼 수 있다. 비잔틴제국 입장에서는 숨이 천천히 조여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당나라를 격파하고 패권을 장악하였다.
압바스왕조는 아랍인도 동일하게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고,이란인을 우대했으며, 투르크 용병(맘루크)을 고용하였다. 그러나 11세기 초가 되면은 압바스 왕들은 이들 맘루크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된다.
(8) 페르시아적 문화를 갖고 있던 압바스왕조는 봉건제적인 요소로 인해 점차 중앙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909년 이집트 지역에서 무함마드의 딸의 일족이라고 주장하는 파티마 왕조가 등장하여 북아프리카, 이집트, 팔레스틴, 사우디 일부를 지배한다.
이제보니, 아랍은 무함마드 일족이 수백년을 두고두고 다해먹는 그런 구조인 듯... 실력자 살라딘은 1171년 파티마의 후계자를 세우지 않으므로 파티마왕조는 단절되게 된다.
(9) 셀주쿠 투르크의 등장
현재 터키, 아르젠바이잔등의 선조로 간주되는 셀주크인들은 1037년 가즈니에 자기들의 왕국을 세우고 1055년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1068년 비잔틴제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재개하여 아나톨리아 지역에 침공했으며 1071년 만지 케르케 전투에서 비잔틴제국의 황제 로마누스 4세를 포로로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고, 셀주크의 영토는 콘스탄티노플 코 앞까지 진출하였다.
압바스 왕조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과 패권을 겨루고 내부분열로 인해 장기간 안정을 누려왔던 비잔틴제국은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불과 90KM 앞까지 진출한 셀주크 투르크를 보면서 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개성에서 서울의 남단까지 거리가 직선으로 73KM정도이다. 셀주크 군대가 행군하면 2~3일이면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까지 왔으나 스스로 물리칠 힘이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고대 왕국의 힘은 인구에서 나오고 인구는 영토에서 나오는데 소아시아지역(현재 터키)지역의 대부분을 상실한 비잔틴제국은 병사의 징집과 유지에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오랜 숙적이었던 서유럽의 교황에게 SOS를 요청하게 된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Byzantine_Empire
알렉시오스는 잃어버린 땅을 회복할 군대를 모을 수도 없고, 셀주크에 직접 공격을 할 힘도 없어, 1095년 로마의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셀주크의 공격으로 인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초와 이슬람 통치에서 기독교인들이 겪는 고통을 전하며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것을 우르반 2세가 받아들이므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게 되었다.
당시 서유럽에서 예루살렘을 찾던 기독교 순례자들은 셀주크의 통치하에 있던 예루살렘에서 학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서유럽에도 셀주크에 대한 반감이 어느정도 공유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불과 5백년 전에는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로마의 교황을 소환하여 사형을 처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정통성이 게르만과 협력한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동로마제국의 기독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로마 교황의 종교적 지도력을 인정할테니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정통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1092년 비잔틴과의 전쟁을 이끌었던 말리크샤 1세가 사망하자, 자식과 친천들의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셀주크의 후계자들이 시리아, 소아시아로 나눠져 골육상잔을 벌이는 동안 1096년 십자군이 결성되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1157년 마지막 셀주크 술탄이 전사한 후 셀주쿠는 분열을 거듭하다가 아나톨리지역 몇곳을 제외하고는 지배지역을 모두 상실하였다. 아나톨리의 몇 군데의 에미레트들중의 하나인 오스만이 후에 오스만제국을 다시 건국하게 된다.

1258년 몽골군에 의해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왕은 몽골군의 말에 짓밟혀 사망하였다. 이로서 파티마왕조, 셀주크 술탄등을 인정하면서 명맥을 이어오던 압바스 왕조도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10) 이후 압바스 왕조의 영토는 티무르 왕조(1370~1506년)와 맘루크 왕조(1250~1517년)는 나눠어져서 통치하게 된다.
드라큘라 백작을 능가하는 명성을 지닌 티무르에 대한 자료는 별도로 알아보기 바람.
아나톨리 지역에서 힘을 기르고 있는 오스만제국. 1453년 이슬람의 숙원이었던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다. 이후 맘루크 왕조와 티무르 제국을 흡수하여 오스만 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요약
1. 이슬람은 기독교 국가였던 비잔틴제국과 조로아스터교였던 사산조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발전함
2. 971년 비잔틴 황제가 방어전쟁에서 패해 포로로 잡혀 이슬람 군대는 90KM밖에까지 와있는 상황. 요즘 중동의 IS가 딱 과거 이슬람 정복전쟁의 문화임.

3. 혼란을 수습한 알렉시오스 1세는 영토 상실로 병력 징발도 어렵자 995년에 우르반 2세 교황에서 도움을 요청함
4. 십자군 전쟁은 선교 전쟁이 아닌 비잔티제국이 생존을 위해 천조국의 도움을 요청한 방어전쟁이었고, 이때문에 약체 비잔틴 제국은 1453년까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음
5. 세계사 시간에 뭐하셨는지.... 목사로서 직무유기 아닌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