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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옛회사의 고참을 만나 술을 마신김에(물론 얻어먹음) 썰을 풀고자 한다.

언젠가 책으로 내고싶을만큼 직장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우중씨 같은 대재벌 이야기는 아니다.)


본인은 장사꾼(부모님은 기사식당을 하셨다)의 2남 1녀중 막내로 자랐다. 

기복은 있었으나, 이렇다할 어려움없이 양친 아래서 곱게 자랐다.

부모님의 교육지론은 자유에 있으셨기 때문에 성적표 삥땅, 학원 땡땡이등 딱히 참견하신것도 없었다. (물론 학원등록도 자율)

그러다 보니 삼남매 다 개성이 강하고 남들보기에 같은 형제 아닌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릴적 할머니를 고모와 고모부가 모시고 살았다.

이태원의 100여평이 넘는 큰 집이었는데, 일제시대까지 운수업을 하시던 조부께서 살던 집이었다.

초딩에 불과하던 내가 어느날 눈에 번뜩 뜨이던 사건이 있었으니, 사촌형님이 당시 나름 부유증 자제이신지라(모 생보사 부장 아들내미, 임원 퇴직)

PC에 모뎀을 장착하고 KETEL(한국경제신문의 시범사업중 하나였음)이라는 PC통신 사이트를 이용하시고 계셨다.

컴퓨터로 마냥 게임과 BASIC 프로그래밍이 다 인줄 알았던 나는 문화적 충격과 더불어 인생의 목표를 컴퓨터로 잡게 되는 큰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PC통신을 이용하여 PC에도 오락실 게임마냥 비주얼한 게임을 만들고자 터보파스칼, 터보씨등 안해본것 없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게 되었다.

당시엔 그정도 수준의 시도를 하던 초딩이 없던떄라 나름 유명하신 교수님과 각 대학의 전산전공자들과도 많은 필담도 나누곤했다.

(당시 알던 학생들중 벤쳐 1세대로 유명한 양반들도 몇몇있음)

당시 인생의 목표로 스티브잡스를 삼았다면 믿으시겠는가?... 당시 잡스는 30대 즈음 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임)


여기까지 마냥 좋은글같지만, 컴퓨터에 빠지니 학업은 소홀하게 되더라.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컴퓨터로 출세하고 싶다는 생고집에 공고를 진학하게 된다. 요새 특성화고 마냥 당시 나는 내 갈길로 가면 출세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것 같다. 과는 전자계산(기)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중 하나였다.


막상 공고 전산기과에 진학하니 학업은 납땜이요, 동기들은 수업시간에 퍼자기 바쁘고 당시에 없던 일진 서클이 있지를 않나...패싸움과 일탈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 난 빵셔틀노릇은 안했던것 같다. 그 대신에 청운의 꿈을 안고 어렸을적부터 선망했던 오락실 게임기를 보고 게임제작 동호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직도 모르고 개발론도 모르는 좆고딩이 무엇하나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것은 없었다.

나름 동호회원들과 방과후 교실에 남아 프로그래밍을 가르키곤 했으나 진전은 없이 의욕으로 끝나버렸다.(혼자 잘나선 죽도밥도 안된다는걸 알게됐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은 가고 고3이 되었다. 공고인지라 취업과 진학의 갈림길에 놓혔는데, 취업보다는 무언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수 있겠다 싶은

대학교 진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돌이 실력으로 명문대 입학은 꿈도 못꿀일이었다. 대학 가는것도 천운일정도로...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수능 영어에서 상위 1%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운도 따랐던것 같다.(그때 백분율 보는 방법도 몰랐음)

덕분에 지방대 정시에 붙어 4년제 대학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진학상담에서 담임한테 쥐어 터졌다. 실업계 특별전형시기를 놓혀 인서울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에 지방대 지망하게 생겼다면서...

웃긴게 집에 전화했는데 안받았다며 빠따질을 30분동안 받았다... 아무리 안받아도 그렇지 몇번 안한거 같은데.. 딱히 원망스럽진 않지만..


대학진학하고 대학 커리큘럼을 밟으며, 일게이들 말대로 수학과 영어등 기초교양에서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지방대 주제에 경쟁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하지만, 교사도 포기한 공돌이가 무얼 배우면 얼마나 배웠겠는가.. (사실 나도 수업시간에 숙면했음)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전공수업 외에는 아무런 의욕조차 없었다.


여차여차 대학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게 공군이었는데 매 6주마다 특박이라 하여 2박3일씩 휴가를 준다는말에 혹하게 되었다.

당시 매우 어여쁜 여친이 있었는지라 무려 30개월의 복무기간에도 공군을 지원하게 되더라..


군대도 운이 좋게 전산특기로 합격하여 특기교육 후 대구공항(비행단)으로 배정받게 되었다.

일반 육군 전산병과 달리 타이피스트가 아닌 서버병이었다. 공군은 비행단의 경우 각급부대가 매우 커서, 사병만 2천여명, 간부 천여명으로 이루어져있다.

그곳에서의 첫지시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달만에 유닉스(UNIX) 독파"... 지금같으면 말이 되냐 하겠지만.. 

갓 자대배치 받은 이병인지라 내무반에서 밤 열두시까지 머리를 박고 새벽1시에 나와 한시간동안 정독하고 새벽 두시넘어 취침하니 한달만에 달달 외우게

되더라...


그리고 별것도 아닌 배치처리 프로세스에 따른 실행버튼만 띡띡 누르고 유닉스 커맨드로 백업받고... 단순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오래된 전산종사자들은 아실지 모르나, 선임자가 "눌러" 할때까진 커맨드 치고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우째우째 세월이 지나고 병장에 선임병이 되어 있을 어느날, 전산운용반장(소위)가 비행단장(당시 소장)님 지시로 우리도 카드메일(인터넷 연하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근데 당시 군대에 뭐가 있나... 프로그래밍 환경도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전산운용반장이 나름 대학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C언어나 기타 언어에 기초는 되어 있더라...

일단 sendmail 이라하여 유닉스에서 지원되는 기본적인 메일발송체계를 이용해서 C로 보내는 모듈을 만들고.. 난 Perl Script라 하여 UNIX에 기본

포함된 스크립트 언어(정확히 인터프리팅언어)를 사용하여 UI를 만들게 되었다.


물론 플래시 연하장은 다음과 네이버등 닥치는 대로 퍼와서 썼다.. (그것까지 만들라면 십년은 걸렸을듯)

.. 그래서 하루만에 시스템을 만들고.. 나는 운용반장과 쇼부를 봤는데 그게 말년 한달 열외였다.. 덕분에 작전사령부 검열때 남들 방독면쓰고 뛰어다닐때

내무실에서 요양하며 풍경구경하곤 했다.


그 이후 제대 후에 복학을 하게 되었는데 당연지사 군대에서 신세계를 경험하고 나니 코볼 포트란 배우던 학교에서 영 적응할수가 없더라...

난 당시 델파이(delphi)를 군대에서부터 공부하고 있었고 제대후엔 자연스럽게 당시 처음발표된 자바(JAVA)언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래봐야 좆대딩 할 수 있는 수준이 빤했지만...


학교를 다니던중, 지방대를 다니는지라 통학조차 짜증나던 나는 모 교수님을 꼬셔 대학 연구실을 만들게 되었다. 빈 강의실 하나를 아지트 삼아 별로 하는일은

없지만 나름 연구소 흉내만 냈던것 같다. 물론 결과는 없고 살짝 자취방을 학교에 도입한 꼴이었지만... (학부생에겐 많은걸 바라면 안된다.)


그렇게 여차저차 하다가 나와 맘이 통하는 동기 둘과 도원결의를 하게 되었다.

일명 창업(현대로 치면 스타트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나가서 천만원씩만 벌어와서 창업하자"


그렇게 친구들과 학교를 일제히 휴학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


첫 회사는 정부기관과 군을 상대하던 유지보수 업체였는데, PC 정비나 하던 회사가 서버 유지보수 계약을 덜컥 따버려 서버 엔지니어가 필요했던 듯 했다.

그래서 군전산 경력이 있는 나를 싼값에 겟! 했는데, 그 회사서 요리조리 지원도 없이 업무를 3개월쯤 봤다. 

그러다가 모 구청에서 디스크 용량이 꽉차서 디스크 증설요청이 왔는데 망할놈의 담당부장이 하는말이 용산 문닫아서 살데가 없단다.

... (개새끼).. 아마 서버쪽은 거래처도 없는듯 싶었다.


그 구청의 전산실장이 꽤나 젊었던듯 싶은데 전 거래처에 연락하니 득달같이 디스크 들고 오더라...

난 미러링이고 뭐고 하드웨어는 잼병이었던지라 일단 서버에 꽂고 설치하고.. 다행히 잘 올라와서 십년감수 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이뿐만이 아니고 거래하던 모 대형 군부대에서 첩보용으로 네트워크 장비를 쓰고 있었는데 고장났으니 교체해달라 하는것을...

이 부장(개새끼x2)이 가정용 스위치를 갖다가 넣어버렸다... 당연지사 담당장교는 폭팔했고 L3 스위치를 가정용 스위치허브로 바꾸는놈이 어딧냐고...


난 그 몇일 후 그 회사 때려치고 나왔다...

물론 회사 임원이 퇴사를 만류했지만, 난 회사사정 안좋다며 월급체불은 물론이요 비용조차 결제 안해주는데 댁이 날 책임지겠냐고 했더니 슬금 빠지더라..

하여튼 그때 퇴사했던건 그 이후에 따를 내 인생역정에 한 과정이었던것 같다.


그리고는... 난생처음 알게된 SI(System Integrity)바닥에 들어가게 됐다.

일게이들이 익히 아는 삼성SDS, LG CNS, SK C&C..가 있는 그 바닥이다.




1부 끝 ... 언제쓸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올릴 2부에 계속 쓰겠다.


참고로... 요새 화려한 하이스팩 백수들도 많다지만..

본인은 로~스팩가지고 모 금융사 인프라파트 시니어로 재직중이다.

(교정없이 내키는대로 막 쓴글 미안하다. 나중에 기회있으면 다 손보고 다시 올리고싶은 맘이 있다)


3줄 정리..

1. 어렸을적 사촌형 컴퓨터 보고 홀렸다

2. 컴퓨터만 좋아하다가 공부를 도외시 했다

3. 연봉 1800짜리 좆소기업 다니다 때려치우고 우연히 SI바닥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