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WWE (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 가 배출해낸 비운의 슈퍼스타, 에디 게레로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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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에 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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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게레로는 1967년 10월 9일, 미국 텍사스주 엘페소에서 태어났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멕시코계 미국인이야.

본명은 (Eduardo Gory Guerrero Llanes) 에두아르도 고리 게레로 엘런스.


다들 더 락, 리키시같은 사모안 족 프로레슬러들을 알고 있을거야. 그들을 가족 대대로 대를 이어온 명문 프로레슬러 가문인 아노아이 가문이라고 하는데,

에디의 가문인 게레로 가문도 아노아이 가문 못지않게 대대로 내려오는 멕시코의 명문 프로레슬링 가문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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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뉴 멕시코 대학교를 졸업하고 형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 만도 게레로와 헥터 게레로에게

훈련을 받고 1987년에 데뷔를 하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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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중소 단체에서 활약하다가, 1987년 매직 마스크라는 링네임으로 정식 데뷔를 했어.


그리고 에디는 1992년과 1994년 사이엔 멕시코 단체인 AAA에서 아트 바와 함께 태그팀 '라 파제라 아토미카' 로 활동해.

AAA는 현재 WWE와 계약 만료로 회사를 떠난 레이 미스테리오가 복귀한 단체이기도 하지.


에디 게레로가 쓰는 피니시인 프로그 스플래시는, 그의 태그팀 파트너였던 아트 바가 1994년 11월 23일에 향년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아트 바를 기리기 위한 추모의 의미로 아트 바의 피니셔를 대신 쓰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그래.

( 하지만 아트 바에게 피니시로 프로그 스플래시를 추천하고 친절히 시전 방법을 가르쳐주었던 건 다름 아닌 에디였어. 웃을 수 없는 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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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 1996년 동안에는 신일본 ( NJPW ) 에서 블랙타이거 2세라는 기믹으로

활동하기도 했었어. 이 뒤에는 ECW ( 흔히 아는 폴 헤이먼의 ECW가 아니라, 후에 이 단체가 도산되어 팔린 바람에 WWE에 먹혀버림 ) 에서 잠깐 활약했어.

그리고 그 당시 ECW 월드 텔레비젼 챔피언이라는 벨트도 가져오기도 했다네.


오른쪽의 마스크를 쓴 '페가수스 키드' 라는 선수는, 바로 우리가 아는 레슬러 故 크리스 벤와야. 

함께 신일본 단체에서 활동을 하던 크리스 벤와와 에디 게레로는, 이 이후에 거희 차후 행보를 함께 하며 각별한 관계로 남게 돼.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겠지? 약 10년 가량이나 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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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에디 게레로는 WCW ( 지금은 WWE와 합체되어 사라진 단체 ) 와 계약을 맺고

데뷔를 하게돼. 그리고 몇 년 동안은 별 다른 활약이라고 할 것 없이 몇 년을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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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8년 WCW에서 LWO ( 라티노 월드 오더 ) 의 리더로 활동해.

이 그룹은 한창 위세를 떨치던 NWO ( 뉴 월드 오더 [헐크 호건, 케빈 내쉬, 스캇 홀] ) 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테이블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리더인 에디 게레로가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함으로써 공백기를 가지게 되어 LWO는 자동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어.

그리고 부상에서 복귀한 후엔 레이 미스테리오, 빌리 키드먼과 함께 필씨 애니멀즈라는 스테이블로 활동했어.

하지만 이 때부터 에디는 그 당시 부상의 후유증이 너무나도 심각한 탓에 진통제를 달고 살 수밖에 없게 된거야.




































WWE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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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13일의 RAW에서, 에디 게레로는 故 크리스 벤와, 페리 새턴, 딘 말렌코로 구성된 

'레디컬즈' 라는 팀을 이끌고 망조를 걷고 있던 WCW를 벗어나 WWF 행을 선택해. 

( 원래 WWE는 World Wrestling Federation, WWF 라는 이름이였지만 세계 야생 생물 기금 [World Wildlife Fund] 이란 단체에게 소송을 받고 

 패배했기에 월드 레슬링 엔터테이먼트, WWE로 이름을 바꿔야 했어. )


( 그리고 이 당시 에디는 이적 초기, WCW에 비해 너무나 넓은 WWF의 링에 적응을 못해 프로그 스플래시를 잘 못 사용해 팔을 부상당하기도 했어. )




WWE 데뷔 영상










에디 게레로의 피니시는 여러 가지가 있어. 대부분의 게이들이 기억할 만한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프로그 스플래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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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로프에 올라간 다음 공중에서 몸을 한번 웅크리고 피며 상대방을 덮치는 방식의 기술이야.


다들 랍 밴 댐의 파이브 스타 프로그 스플래시가 더 화려하다고 하지만 나는 에디 게레로의 프로그 스플래시가 


훨씬 더 깔끔해서 보기 좋다는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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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플짤은 라쏘 프롬 엘 파소 (Lasso From El Paso) 라는 이름의 서브미션 피니시야.


상대의 다리를 4자로 교차시키고 돌리면서 무릎으로 상대의 허리를 찍어 누르며 당기는 기술이야.


텍사스 클로버리프와 동일 기술. 크리스 제리코의 월스 오브 제리코 ( 새우꺾기 ) 도 허리가 끊어지게 


아픈데 저건 어느 정도의 고통일까? 상상 그 이상일 것 같아.




그리고 에디의 트레이드 마크인 쓰리 아미고스도 있어.


기술 시전 후에 특유의 춤을 추는 모습이 그리워지는 영상이야.

































파란 만장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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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게레로는 데뷔한 지 2개월이 지나 바로 유로피언 챔피언에 등극해.



지금 이 벨트는 하드코어 챔피언 벨트, 위민스 태그팀 챔피언 타이틀,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벨트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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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에디는 DX (D-Generation X) 1기의 여성 멤버인 차이나와 잠깐 연인 스토리를 진행하기도 했어.


에디 게레로는 유로피언 챔피언을 따는 과정에서 차이나의 도움을 받았었어. 이 이후에 에디는 자기 자신에게 "라티노 히트" 라는 별명을 붙이고 


차이나를 "마마시타" 라고 부르며 연인 관계로 나오는 듯 했지. 하지만 여성이면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던 차이나에게


은근슬쩍 핀 폴을 하며 타이틀을 챙겨가고 타이틀전이 열리면 DQ패 ( 반칙 패 )로 타이틀을 방어해내는 등


차이나를 이용하는 야비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기 자신의 캐릭터의 기믹을 팬들에게 알려가고 있었어.


차이나와의 관계는 에디가 먼저 배신을 하며 깨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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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0년 9월에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벨트도 손에 넣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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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에디가 인터콘티넨탈 벨트를 소유하고 있던 시절에


인디계의 슈퍼스타인 로우 키와 함께 찍은 사진이라고 해.


( 참고로 위의 있는 로우 키도 WWE에 "카발" 이라는 링 네임으로 데뷔해 팬들의 기대를 모았었지만,


 WWE 수뇌부들은 로우 키를 넣을 스토리 라인이 없다며 계속 그에게 지는 역할을 시켰고


 결국엔 로우 키 자신이 차라리 방출을 해달라고 되려 부탁을 했다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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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19일, 에디 게레로는 리타와 얽히는 각본을 진행하고 있던 도중 진통제 중독과 비롯된 음주 운전으로 인해 WWF에서 방출을 당해.


그렇지만 이후에도 에디는 재활의 기간을 거치며 WWA, ROH 등 여러 인디 단체에서 레슬링을 하며 생활을 보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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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에디 게레로는 진통제 중독에서 벗어나 2002년 4월 1일에 WWE의 부름을 받고 복귀를 했어, 


이후 에디는 여러 디비젼에서 다방면의 활약을 보여주며 자신을 기다려주던 WWE 팬들에게 기다려준 보답을 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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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랍 밴 댐이 가지고 있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빼앗으며 RVD과의 대립을 통해 악역으로서의 자리를 잡아.


RVD과의 대립이 끝난 후엔 오랜 부상을 끝낸 절친 크리스 벤와와 태그팀으로 활동했어. 태그팀 최강자 더들리 보이즈 등과 대립을 하던 중,


크리스 벤와가 RVD을 꺾고 인터콘티넨탈 챔프가 되자, 두 명은 같이 RAW에서 스맥다운으로 거처를 옮겨.


에디 게레로는 벌써 통산 1회 유로피언 챔피언, 그리고 2회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라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남기게 되었어.





















Cheat 2 W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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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팀 타이틀이 RAW 쪽에 있었던 관계로 스맥다운 쪽에서는 WWE 태그팀 타이틀을 신설하게 되는데, 


이에 에디는 자신의 조카인 차보 게레로와 로스 게레로스라는 태그팀을 결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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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17일 !


게레로 가문의 두 레슬러들은 WWE의 태그팀 챔피언 타이틀을 따 내.


에디 게레로는 자신의 커리어에 태그팀 챔피언 1회 등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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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당시부터 Lie, Steal, Cheat ! 라는 구호 아래 얍삽한 기믹과


날렵한 테크닉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어.


차보 게레로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겼을 땐 타지리와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어.


그리고 이 당시는 각 브랜드에 배분된 선수들과, 타이틀들이 정해져 있었어. ( 지금은 브랜드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이 경기를 치룰 수 있음 )


그래서 스맥다운은 RAW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타이틀에 대응하기 위해 WCW의 US 타이틀을 부활시켜 토너먼트를 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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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게레로는 이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해서, WWE의 초대 US 챔피언에 등극했어.


그리고 그 뒤 존 시나, 빅 쇼 등과 타이틀을 놓고 대립을 벌였어.


이후에 빅 쇼를 조롱하고 골탕먹이는 등 유쾌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


하지만 결국 노 머시에서 빅 쇼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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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가지고 있던 태그팀 타이틀마저 바샴 브라더즈에게 빼앗기면서, 점차 갈등이 커져만 가던 


차보 게레로와 그의 아버지 차보 게레로 시니어와 대립을 하게되고


2004년 로얄럼블에서 차보와 싱글 매치를 가져 승리를 거두었어.



( 실제 사촌과 치고 받고 싸우는 에디의 느낌은 어땠을까?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WWE에 있는 선수들은 그 점이 약간 망설여질 것 같아.


 설령 하디 형제 등 실제 혈연 관계를 대립시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였더라도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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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럼블 우승자인 크리스 벤와마저 RAW로 다시 이적하며 그 직후에 열린 스맥다운 15인 로얄럼블에서 우승한


에디 게레로는 당시 WWE에 데뷔와 동시에 붐을 일으킨 '차세대 거물' 브록 레스너가 가지고 있던 WWE 타이틀에


도전할 권리를 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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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WWE 노 웨이 아웃에서 에디는 브록 레스너의 피니셔인 F-5를 토네이도 DDT로 반격한 뒤 프로그 스플래시로


핀 폴을 해내며 WWE 챔피언에 등극했어. 에디는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월드 타이틀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뤄.


에디 게레로는 이로서 WWE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하지.



그랜드 슬램이란


메인 타이틀 (WWE 챔피언쉽,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2선 타이틀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


3선 타이틀 (하드코어 챔피언쉽, 유러피언 챔피언쉽)


태그팀 타이틀


이 4개의 업적을 모두 달성한 선수들을 일컫는 말이야. 



최근에는 3선 타이틀이 모두 폐지되었기 때문에 WCW에서 가져왔던 탓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US 타이틀을 추가시켜


새로운 그랜드 슬램 규정을 발표했어. 그리고 이 덕분에 다니엘 브라이언이 제일 최근인 15번째 그랜드 슬래머가 되었어.


몇 백명이 넘는 레슬러들 중 15명만이 들어간 그랜드 슬래머가 된 것만 보더라도 에디는 WWE 내에서 많은 업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지.






+ 각본? 실제상황?




2004년 5월 20일에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 & 랍 밴 댐 Vs JBL & 더들리 보이즈의 6인 태그팀 경기 도중


에디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경기 중 실신을 했어. 각본인지 실제 상황인지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에디가 그 후 인터뷰에서 그 당시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에디에게는 이 때에도 이미 몸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챔피언으로서의 중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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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커트 앵글과 대립을 가지던 중 타이틀 전을 벌였어. 바로 레슬매니아 20에서 말이야. 


에디는 이 경기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커트 앵글에게서 타이틀을 방어해.


그리고 크리스 벤와와 에디 게레로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역사상 최고의 감동적인 피날레를 만들어내기도 했어.







[03 : 35 ~ 부터 끝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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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둘은 각각 다른 이유로 세상을 등지고 떠났기에 더 슬픈 눈으로 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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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이후 에디가 WWE 챔피언으로 군림하는 시기엔 시청률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


왜냐하면 이 때 언더테이커와 대립이 예정되어있던 브록 레스너가 NFL ( 풋볼, 결국엔 못해서 종합격투기로 넘어감 ) 을 한다면서 WWE를 탈단하고


그 때문에 언더테이커까지 덩달아 대립 상대를 잃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에 있던 부커 T를 갑자기 이적시켜


언더테이커와 급조한 대립을 시키는 등, WWE가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였던 거야.


이 이후 에디 게레로는 예전에 보여주었던,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익살스러운 모습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하고 


챔피언으로서의 중압감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별로 팬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 없었어.



에디의 조카인 차보 게레로가 토크 이즈 제리코에 나와서 이 당시 에디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



에디는 WWE 챔피언이 된 의무를 너무나도 진지하게 생각해서 만약에 자신이 메인 이벤트를 담당한 하우스 쇼의 흥행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심정적으로 

너무나 괴로워했다. 그럴 때 난 에디에게 '지금은 호건 vs 앙드레가 메인 이벤트를 장식하던 80년대가 아니다. 

WWE 자체가 브랜드가 됐고, 사람들은 특정한 스타를 보러 오기 보다는 WWE 자체를 보러 온다' 고 말했지만 에디는 듣지 않았다.




이 때 에디는 심정적으로 엄청 큰 고통을 받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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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하락에 부담감을 느낀 에디는 결국 자기 스스로의 결정으로 새롭게 기믹을 바꾼 JBL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에게 


텍사스 불로프 매치를 통해 타이틀을 내주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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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동안 WWE 챔피언과는 거리가 멀어져 커트 앵글 사단과 대립해 오던 에디 게레로는 


한동안 부커 T와 해오던 태그팀을 마무리 짓고 친구인 레이 미스테리오와 새롭게 태그팀을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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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2005년 2월에 WWE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했어.


하지만 이 이후 레슬매니아 21을 시작으로, 에디가 레이와 경기를 할 때마다 패배를 거듭했기 때문에


점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처럼 보이더니 급기야 레이 미스테리오를 공격하고 나서 감정적인 대립을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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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립 과정에서 에디는 레이의 아들인 도미닉이 자신의 친자라며 도미닉의 양육권을 요구하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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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부터 에디가 팬들과 레이의 아들인 도미닉에게 자기가 도미닉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I'm your papi ! [ 내가 네 아빠야 ! ] 라는 글이 새겨진 티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어 )


결국 이 대립이 끝나게 된 건 스맥다운에서 열린 철장 경기에서, 철장에서 빠져나감으로써 승리를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기어코 프로그 스플래시를 날려 에디가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핀 폴 승을 거둠으로써였어.



이 두 사람의 대립은 후에 WWE 사상 최악의 스토리 중 하나로 손꼽혔어.


어쩔 수 없는게 무엇이냐면, 에디 게레로는 원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오던 선수였어.


그런 선수를 이러한 막장 각본에 투입했으니 결국 팬들의 흥미를 끄는 정도는 0인데다가 


애꿏은 에디의 팬들까지 사라졌으니 말이야.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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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에디는 바티스타가 가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의 도전자로 지명되었어.


이 당시의 에디는 바티스타가 존경스럽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바티스타의 빈틈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때의 모습이 야비하기보다는 익살스러웠고, 그리고 그와 함께 에디 게레로의 팬층이 다시 되살아났어.



그리고 갈 수록 팬들이 바티스타 보다 에디를 더 선호하자, WWE 내부에서는 각본을 변경하였는지 에디 게레로가 태그팀 경기 도중


자신의 파트너인 바티스타가 체어 샷을 맞을 위기에 처하자 대신 맞아주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어.


레이 미스테리오에겐 괴롭혔던 옛 일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실 상 선역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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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티스타가 케인과 빅쇼에게 더블 초크 슬램을 맞고 나서 어깨에 부상을 입게 된거야. 


챔피언 쉽의 대진표는 바티스타 (c) Vs 에디 게레로 Vs 랜디 오턴이였어.


근데 바티스타가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에디 게레로가 새로운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되는 게 기정 사실화 된 것이지.


왜냐면 랜디 오턴은 언더테이커와 대립 중이었기 때문에 챔피언 쉽에까지 얽힐 수는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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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러 나


바티스타가 부상 당하기 전, WWE 스맥다운에서는 에디 게레로 Vs Mr. 케네디의 경기가 열렸었어.


경기를 승리한 후 Mr. 케네디에게 체어샷을 맞은 탓에 진료실에서 진찰을 받고 있는 에디와 그 앞에 서 있는 바티스타의 모습이 타이탄트론에 비쳤어.


바티스타가 상태를 물어보자, 에디는 괜찮다고 하며, 조금 쉬고 싶다고 말했었어.


하지만 이 모습이 에디의 마지막 모습이였어. 에디 게레로의 마지막 한마디인 "조금 쉬고 싶다."


이 말이 그가 WWE에서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Thank you, Ed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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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맥다운 녹화 전인 2005년 11월 13일. 에디는 호텔에서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어.


원인은 위의 본문에서 언급한 "진통제 과다복용". 한 때 교통사고로 인해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 진통제를 먹었고,


진통제 중독을 끊기는 했지만, 진통제를 계속 먹으면 심장에 문제가 올 수밖에 없었어.




에디는 당일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갔고, 쿠당탕 소리를 듣고 같은 호텔에 묵던 조카 차보 게레로가 이를 발견했다고 해.


그 뒤로 끝내 에디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고 만 것이였어.


더군다나 에디는 이 날에 바티스타와 랜디 오턴을 누르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이였었기 때문에


팬들은 그 사실을 안 뒤 더욱 더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어.



이 주의 RAW와 스맥다운에서는 에디 게레로를 추모하는 헌정 쇼로 진행이 되었으며 ( 녹화 일이 에디가 사망한 당일 )


이 날 만큼은 WWE의 선역, 악역 가릴 것 없이 모든 선수, 스태프가 눈물을 감추지 못했어.



크리스 제리코가 그의 두번째 자서전에서 에디 게레로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있어. 


어느날 같이 식사를 하고 제리코가 지불 가격의 10% 정도의 팁만 남기자 


에디는 "적어도 20%는 줘야지. 너야 2달러나 4달러나 큰 차이는 없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 돈이 한 달 전기세를 낼 수 있느냐 마느냐의 차이야" 라고 얘기했어. 


리고 그 날 이후 제리코는 에디를 떠올리며 항상 팁을 최소 20% 이상으로 낸다고 해. 레슬러로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좋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일화야.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 에디가 이루어낸 업적과 그동안 흘린 땀을 지켜본 팬들과 동료들은, 모두 에디에게 감사를 표했어.









바티스타





존 시나





커트 앵글






차보 게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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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가 별세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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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 게레로, 에디의 부인인 비키는 에디가 사망한 이후에도 끝까지 WWE에 남아 악역을 자처하며


스토리 라인을 이어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어. 그리고 비키는 2014년 6월 22일, WWE 회장 빈스 맥맨의 딸인 스테파니 맥맨과


오물통 매치를 벌였는데, 비키가 지면 해고 라는 규칙을 건 매치였어. 하지만 말만 해고였을 뿐, 결국엔 비키의 은퇴식이나 다름없었어.


비키는 자신과 남편이 함께 지냈던 WWE와 아름다운 이별을 고한거야.







에디는 많은 팬들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지만


그가 남긴 많은 명경기와 즐거움들은 여전히 모든 레슬링 팬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어.



그는 항상 정통 백인이 최고 자리에 올랐던 인종적 차별이 있는 WWE에서도 팬들에게 뛰어난 인기를 얻었어.


하지만 교통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얻게 된 고통을 견디기 위해 과용하게 된 진통제가 그의 삶을 갉아먹은 것이지.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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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레슬매니아 전날, 그는 크리스 벤와, 레이 미스테리오, 차보 게레로에 의해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에지와 비슷하게 젊은 나이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되었어. 


하지만 에디가 다른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과 다른 점은... 그들보다 더 빠르게 져버린 꽃이 되었단 것이야.


더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힘든 WWE 스케줄로 지친 에디가 하늘에서 편히 쉬게 된 지 어느새 10년이 지났네.




천천히 다른 레슬러들도 써보려고 해.


봐준 게이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