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9zzBO
조선의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에 따르면, '여진'과 '왜구'는 오랑캐로 취급되었다.
조선은 자신들에게 입조하는 여진 부족들에겐 조선의 관작과 상품을 내렸지만,
그렇지 않으면 초기부터 보복 공격을 통해 여진 부락들을 '짓밟는' 등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누르하치의 6대 선조, 먼터무
후일 후금(청)의 창업자가 되는 누르하치의 6대 선조 먼터무.
먼터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관이었고, 고려 말 여러 전투에 태조와 함께 참전(왜구 토벌)하였다.
조선 건국자, 태조 이성계의 고려 말 공적
조선의 건국자 자체가 '무인(武人)'이었고, 따라서 건국 초기에는 상무적 기풍이 강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북쪽 지역에 대한 원정을 감행해 만주 지역에서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전개했는데,
조선의 호전적인 공격전으로 인해, 변경 지역의 여진 부락들은 대부분 조선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 여진 부족이 조선에게 조공을 바치면,
조선은 대국(조선을 넘기는 여진 부락은, 조선을 대국이라 지칭)의 체면상 그것의 곱절로 하사하여야 했는데,
여진 부족들이 이를 역이용하여 조선에게 자주 조공을 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조선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풍흉(풍년과 흉년)에 따라 조공 횟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렇다면 조선은 여진 부족을 상대로 어떤 원정을 전개했으며, 여진 부족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을까?
.
.
.
* 조선 태종(太宗) 이방원의 올량합 토벌 *
"이 미개한 오랑캐들에게 우리 조선의 은덕을 내려,
변방 너머의 1천여 리가 다 조선의 지배로 들어왔거늘,
감히 우리 조선을 배반하고 명에게 붙었단 말이냐?
그대는 오랑캐들의 소굴을 공격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잔멸하라!"
『조선 국왕 태종』
조선 초, 조선과 명나라는 여진 부족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
.
.
"본래의 뜻을 변치 말고 조선을 우러러 섬기되, 두 마음을 갖지 말자."
.
.
.
명나라는 변경 지방으로 사신을 보내, 여진족을 회유하고자 하였지만,
올량합 인근의 여진족들은 명나라 사신 앞에서 조선을 섬길 것임을 회맹하였다.
이에 분노한 명나라 영락 대제는 만주 지방의 여진 부족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고,
명의 강력한 압박으로 인해 여진 부족의 대부분은 조선의 질서에서 이탈해 명으로 들어갔다.
이는 조선의 분노를 샀고, 태종의 올량합 토벌은 일종의 '보복전'이었다.
(1) 동원 군사 : 기병 1,150기
(2) 여진족의 피해
- 수백여 리의 땅과 인근 가옥이 전부 초토화
- 부족장 김문내의 아들이 조선군에게 난도질당함
- 무장 여진군 160명 참수
- 모련위지휘(毛憐衛指揮) 파아손(把兒遜) · 아고거(阿古車) · 착화(着和) · 천호(千戶) 하을주(下乙主) 등 간부급 참수
- 부족민 수백여 명 학살
(3) 기타 : 명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은 토벌전이라,
조선 조정에서도 몸을 사리기 위해 중간에 회군하였고,
조선의 관료들이 태종과 함께 짜고 쳐서 명 황제를 속임으로써 외교적으로 적당한 선에서 해결됨.
.
.
.
* 조선 세종(世宗) 이도의 파저강 토벌 *
"이 흉악하고 미개한 오랑캐가 우리 조선의 변방을 침략해, 신민을 살육하고 목책을 불태우니,
내가 하늘의 명을 받아 천하의 군사를 일으켜 오랑캐를 토벌하고자 북벌을 결심했도다.
오랑캐는 우리 군사들의 공격을 받아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고 모조리 도륙되니,
통쾌하고 통쾌하도다! 하늘이시여! 나의 죄가 무엇인가?
나는 우리 신민을 위해 결단코 군사를 출동한 것이다."
『조선 국왕 세종』
(1) 동원 군사 : 총 1만 5천여 명
(2) 여진족의 피해
- 파저강 인근 여진 소굴 초토화
- 수백여 명의 부족민 참수, 조선군이 가축과 무기 및 곡식 약탈
- 조선군에 의해 귀가 베인 여진족도 있었음
(3) 기타 : 압록강 변경의 여진 부락들이 조선에게 입조하고, 정기적으로 조공과 토산물을 바침
.
.
.
* 조선 세조(世祖) 이유의 건주위 토벌 *
"순식간에 위엄이 천하에 떨칠 일을 어찌 수고롭다고 하여 힘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경들은 군사를 정돈하고 기필코 건주 여진을 멸망한 다음에야 작전을 그만두라.
그 사이에 지휘는 임의대로 시행하라, 나는 두번 다시 말하지 않는다."
『조선 국왕 세조』
(1) 동원 군사 : 1만여 명
(2) 여진족의 피해
- 건주위 동북쪽 발저강의 산채가 초토화
- 올미부의 모든 산채가 초토화
- 이만주와 이고납합, 이타비랄 등 부족장과 아들들을 비롯해, 286명의 부족민 참수
- 소 229마리 참획, 수백여 채의 가옥 초토화, 가산 몰수
- 포로로 잡은 여진족의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명나라에 승전 기념으로 바침
(3) 기타 : 건주위는 훗날 청나라의 건국 거점이 되는 건주 여진의 거주 지역.
조선의 문무 관료들이 전문을 올려 토벌의 승첩을 하례하기를,
"하늘의 위엄이 진동하니, 잠깐 사이에 삼첩의 소식이 날아들고,
삭막에 티끌이 개이자 마침내 사방의 하례가 달려옵니다.
경사가 종사에 관계되고 즐거움이 신린에 넘칩니다.
공경스레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영명이 아주 뛰어났고 지용이 탁월합니다.
성상 전하(세조)의 위업은 중국 한나라 무제보다 더하시며, 중국 당나라 태종보다도 뛰어나니,
모두가 조선의 홍복이며, 만 백성의 홍복입니다.
중국의 어떤 황제가 주상 전하의 무공에 비견되겠습니까?
부디 사방의 포악하고 미개한 오랑캐들을 쳐서 억조의 백성을 편안케 하시고,
만수 무강하여 백록을 거느리고 첨등의 붉은 충성을 갑절이나 폅니다!"
.
.
.
* 조선 성종(成宗) 이혈의 북벌 *
"북정도원수(北征都元帥) 허종(許琮)에게 4만의 대군을 안기노니, 그대는 듣거라!
경이 의정부(조선 시대 최고 행정 기관)에 있으면,
요숭과 숭경(당나라 현종 때 현명한 신하)의 업적을 이룰 수가 있고,
경이 변방으로 나아가 군사를 진두지휘하면,
위청과 곽거병(한나라 무제 때 명장)의 훈공을 이룰 수가 있으니,
경이 아니면 누가 이 북벌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경은 과인의 뜻을 만들어 변방의 여러 오랑캐를 굴복시켜, 나의 위엄을 천하에 통달하게 할지어다!"
『조선 국왕 성종』
.
.
.
(1) 동원 군사 : 4만 명
(2) 여진족의 피해
- 조선군의 진군 소식을 듣고 여진족이 대부분 도망간 탓에 조선군의 성과 없음(겨우 7명 참수한 것에 불과, 조선군 전사자 없음)
- 조선군이 회군할 때 식량 부족과 추위로 인해 아사자와 동사자 속출(수십여 명)
(3) 기타 : 북정도원수 허종은 자신의 전공을 과장해서 보고함
.
.
.
* 조선 선조(宣祖) 이연의 노토 부락 학살 *
"야인 오랑캐는 겉으로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슴과 같은 미개한 족속들이다.
감히 이 미개한 족속들이 우리의 변방을 침략해 신민을 살육하고 횡포를 부린단 말이냐!
고금 천하에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당장 저들을 공격해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모조리 죽이고, 그 씨를 말리도록 하라!
과인은 북벌을 결정했는데, 내 뜻을 거스르는 자가 있다면 용서치 않겠다."
임금(선조)이 사헌부의 북벌 중지 요청을 윤허하지 않다
(1) 동원 군사 : 기병 5천여 명 + 포수 수백여 명
(2) 여진족의 피해
- 수천여 채의 가옥이 초토화
- 300여 리에 걸친 땅이 전부 잿더미가 되고,
노토 부락 근처에 흐르는 모든 강물은 조선군이 독을 풀어 마실 수 없게 됨
- 10,000여 명의 여진족이 조선군에게 사망함
(3) 기타 : 건주 여진(누르하치)과의 경쟁 관계에서 몰락함
.
.
.
대표적으로 5개만 선택해봤음.
조선의 여진 정벌과 공격 횟수는 수백여 회가 넘고,
거의 연례 행사로 여진족 치러감.
국경 지역에서 조용히 사는 여진족 배 가르고 창자 빼는 것은 비일비재했고,
한양에서 향화 야인(조선에 투항한 여진족)이 대낮에 조선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음.
이거 조선 시대 미제 사건으로 있는데, 나중에 한번 다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