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DcHUd
1부
2부: 성찰 2 ~ 4
참고로 데카르트가 회의론으로 유명한데,
데카르트 자신은 회의론자가 아니다.
다만, 회의론을 사용하여 잘못된 믿음을 타파하고
오직 회의론을 정면돌파하는 것이
회의론이 범접할 수 없는 진리의 기반을 닦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성찰 2에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정당화를 설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왜 이키 중요하냐.
일단 진리여부를 따질 수 있는 기초가 존재vs무존재라 이기야.
모든 논리 체계의 기초가 되는 1차 언어 (FOL: First-Order Language) 또한 오직 개념적으로나마 '존재'하는 것부터 진리여부를 따지듯이,
존재론적 사유의 기본 전제가 사유의 대상이 존재하냐 안하냐에 달렸거든.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진리를 알수 있는가 없는가, 확신을 가질수 있는가 없는가 를 답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모든것을
사유하고 진리여부를 결정하는 자기 자신의 존재여부부터 증명해 내야 겠지?
데카르트는 일단 자기 자신을 정의하려해.
그는 일단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신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다고 '믿는'요소들을
자신의 육체와 육체적 활동, 즉 몸과
자신의 정신적 자각과 정신적 행동, 즉 혼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 조차도 '나'라는 존재의 진리여부를 가릴 수 가 없지.
다시 이블지니어스 가설로 돌아가서,
만약,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왜곡된 정보들이고 '나'라는 가장 기본적인 입장도 단지 왜곡된 거짓 믿음이라면
그 어떤것도 진리와 확신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
그런데 바로 여기서 데카르트가 부랄을 탁 친다 이기야!
만약 거짓된 정보로 모든 사유를 왜곡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거짓을 계속해서 받아드리는 사유하는 존재 또한 있다는 말이고,
아무리 그 사유하는 존재의 사유가 틀렸다해도
그 존재가 '사유'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다는 말 아니겠노 ㅅㅌㅊ.
그리고 데카르트는 서둘러 바로 이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라고 칭해 버려.
생각하는 행동 그 자체가 절대 부정할 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라는 이야기지.
나는 그러므로 그 무엇도 아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생각, 혹은 지성, 혹은 이해, 혹은 이성 ... 나는 참인 존재이고, 참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존재로? 이미 말했듯이: 하나의 사유하는 주체.
나는 또한 누구인가? ... [자신이 항상 상상하던 몸이거나 움직임이 자기 자신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함]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something)이다.
'나'를 증명해 냈으니 이제 '내' 안에 있는 지식들의 실체를 파해쳐야 하지 않겠노?
여기서 데카르트는 플라톤의 사상인 '모든 지식은 이미 내안에 있음'을 주장해.
예를 들어, 불 붙이는 초가 있다고 가정을 하자. 불 붙이지 전의 초와 불 붙여서 반만 녹은 초, 그리고 완전히 녹아서 물이 되어버린 초를 볼때 우리는 모두 같은 초라고 Bozi? 단순히 지각적으로 볼때는 서로 전혀 다른 상태이지만 말이야.
이 것을 볼때 데카르트는 '초'라는 '지식'은 초를 보고 느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고, 모든 지식은 이와같이 내 안에 이미 있어서, 단순한 사유로 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지. 쉽게 말해 바로 이것이 카테시안 이성주의의 논리체계야. 어떤 합리적인 것을 보았을 때 그 규칙을 이미 나의 생각이 알고 있다는 것. 바로 이 전제에서 시작되지.
데카르트는 성찰 3로 넘어가면서 그가 성찰을 하는 진정한 이유를 거론하는데, 바로 신(神)이야.
니체 때나 와서 무신론과 불가지론이 철학의 대세가 되었지만, 계몽주위 당시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신(神)에 대한 존재를 긍정했을 뿐만이 아니라, 철저한 종교인들도 있었지. 스피노자 같은 경우는 많은 때에 무신론자로 오해 받지만, 사실은 범신론자에 가깝다고 볼수 있고, 라이프니츠는 철저한 골수 기독교인이었으며, 칸트, 벤자민 프랑클린, 토마스 제퍼슨 또한 정통 기독교는 아니지만 이신론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버클리는 카톨릭 교주였다. 그나마 불가지론자는 데이비드 흄과 다른 몇몇 사상가들이 전부였고, 무신론은 더욱더 흔치 않았지.
데카르트 자신도 철저한 신앙인이었으며 사실 그의 철학 자체가 기독교의 신을 긍정하려하는 행위였어.
그렇게 성찰 3의 주제는 신으로 넘어가.
신을 증명하기에 앞서 데카르트가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인과 결과' (cause-and-effect)의 관계야.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으며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것 같은 '법칙.'
데카르트는 화가를 예를 들면서 화가의 그림의 색체와 그림체는 화가가 보고있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잖아.
그래서 데카르트는 기하학보다도 더 단순한 계념들을 진리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데, 바로 그런것들이 내가 현재 보고 있는 '존재'들이야.
Ex nihilo nihil fit (Nothing comes from nothing; 무無는 무에서 나온다; 즉,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가 나오기까지 거의 진리로 동의되왔던 무(無)에서 유(有)가 나올수 없고 유에서 무가 나올수 없다는 믿음과 '인과관계'를 적절히 섞어서
데카르트는 한가지 가설을 세워.
보기에 '유한한' 나 자신이 존재함으로 우주어딘가에는 모든 '유한함'의 근원인 '무한함'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나의 지각과 실체는 불완성하게나 마나 그 무한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이야.
내가 내 자신과 지각하는 모든 현실을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완전함이라는 것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은 완점함이라는 상태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지. 그리고 바로 이 완전함, 즉 무한함이 신(神)이라고 데카르트는 주장을 해.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점이 발생해.
만약 완벽하고 무한한 신이 있다면, 왜 그로부터 창조된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일까? 신의 한 부분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것은 다시
우리를 단 한번이라도 속이는 자를 믿지 않는 것은 즉 신중(愼重)이다.라는 주장으로 넘어가게 되버려.
바로 이것이 성찰 4의 주제야.
데카르트는 일단 정신을 '지성'과 '의지'로 나누어.
그리고 '지성'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기관이 잘못을 행할 수는 없지않노?
즉, 지성의 지식자체에는 잘못됨이 없다는 거야.
데카르트는 그 문제를 '의지'에서 찾지.
나의 오류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들은 나의 의지가 지성(지식)보다 더 확장 될때, 즉 의지가 지성의 경계선을 넘을때에서 비롯된다;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의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부터 말이다. 의지는 이런 것(무지한 것)들에 대해 무심하기에 진리와 선으로 부터 쉽게 등 돌린다. 이렇게 나는 속게 되고 죄를 짖는다.
한마디로 모르는 데 깝치니까 오류를 범한다는 거야.
알면 알수록 좋고 참된 합리적인 선택만 하겠지. 그런데, ㅈㄴ 좆 모르는데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다니니까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데카르트는 오류를 단지 신의 반대, 무無, 즉 궁핍(privation)이라고 정의하지.
이로써 데카르트 사싱안에서는 신이 증명이 되었고 또 왜 악, 오류, 잘못된 선택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런것 들로 부터 어떻게 신의 존재가 정당화 되는지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데카르트 형은 일베충들한태 아는 만큼만 깝치라고 충고하고 그렇게 사유 4는 끝이 난다.
- 2부 끝, 3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