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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편집]

학자이면서 동시에 실천과 실현의 결과를 더 중요시한 행정가였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에 오르게 되고 4도 도체찰사[5]가 되어 당쟁과 전란 속에서 조선의 조정을 총지휘하게 된다. 온유하고 우직하며 균형잡힌 품성 속에 숨겨진 카리스마가 있다. 당색은 동인이지만 당리당략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다.
(하성군 → 조선 선조)
조선 14대 왕. 방계 출신의 왕으로, 왕위 계승 과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군사에 관심이 많고 당쟁을 잘 다스려 보려고 했으나, 임진왜란 이라는 위기를 맞아 왕으로서의 자질을 시험 받게 된다.

서애 류성룡 관련 인물[편집]

왜구들에게 죽을뻔한 목숨을 류성룡이 구하고 거두어준다. 그 뒤 류성룡의 심복이 된다. 글에 대해서는 천부적으로 무식하고, 무예에만 자질이 있다.
군관. 류성룡을 지척에서 호위한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민첩하다.
내외주점[7]을 홀로 운영하는 여주인.
설희의 계집종.
류성룡의 부인.

조선[편집]

왕실[편집]

선조의 후궁. 우아한 몸가짐과 빼어난 외모로 선조의 총애를 받는다. 중전 박씨를 제치고 내명부의 실직적인 안주인이 된다. 선조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게 되자 자신의 아들로써 대통을 잇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선조와 그의 후궁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몸가짐이 신중하다. 아버지의 부끄러움마저 대신 짊어진 듯, 전쟁터에서 한 명의 백성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전쟁을 겪으며 진정한 왕이 되길 결심한다.
제14대 왕 선조의 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몸이다. 선조는 그런 중전을 뒤로 하고 귀인 김씨만 싸고 돈다.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왕실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광해를 양자로 삼아 친자식처럼 여기고 애정을 준다.
선조와 그의 후궁 공빈 김씨의 맏아들이며 광해의 친형이다. 성질이 난폭하여 인심을 얻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세자로 책봉되지 못한다. 임진왜란때 동북 지방으로 피난 가서 가토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된다.
선조와 귀인 김씨 소생의 아들로 임해군과 광해군의 이복동생이다. 신립의 사위. 임진왜란 와중에 피난을 가다가 죽게 된다.

동인 세력들[편집]

동인의 영수. 유연한 말투는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같은 동인의 중요인물인 류성룡을 지원하지만, 그를 적절히 통제하며, 이용한다.
류성룡의 지기이자 이산해의 사위다. 임진왜란 당시 청원사로 명나라에 파견돼 파병을 성취시키는 등 전란 중 외교의 전반적인 일을 담당한다. 예리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이듬해 돌아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으로 압송을 하려다가 류성룡에 의해 목숨을 건져 경상도 초유사로 임명되었다.
동인의 원로. 기축옥사로 귀양을 가게 된다.
우의정 정언신의 형으로서 기축옥사로 귀양을 가게 된다.
동인 재야인사. 기축옥사 때 옥사한다.
선조의 후궁 정빈 홍씨의 친척. 후에 류성룡을 탄핵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왕을 호종하면서 갖은 일을 수행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 겸 부체찰사로서 평안도로 피란가는 선조를 호종하다가 이조판서가 되어 환도한 뒤 우의정,좌의정을 지낸다.

서인 세력들[편집]

서인의 주요 인물이다. 선조가 열여섯에 즉위할 때 부터 승정원에서 가장 가까이 보필했던 터라, 선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중압감으로 살아온 선조를 항상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대범하고 호탕한 성격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기용 되어 선조를 호종한다.
서인의 영수. 1589년 기축옥사를 계기로 선조의 마음을 사로 잡아서 서인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직설적인 성격 탓에 늘 동인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어 관직에서 종종 탄핵 되거나 사직 하곤 하였다. 뛰어난 문재(文才)로 인정 받았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지만 류성룡과도 절친한 사이이고, 권율의 사위이다. 시원스런 성격에 해학적인 유머와 번뜩이는 기지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벗인 이덕형과 함께 병조판서를 교대로 맡으면서 근왕병 모집과 명에 대한 청병을 주도하였다.
서인의 정신적 지주같은 인물. 당대의 “8문장가[14]”로 꼽힐만큼 뛰어난 인재였으나 노비출신 이라는 한계에 그쳐 과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철, 성혼과 친교를 맺으며 실질적인 책략가 역할을 한 인물이다.
1589년 기축옥사로 서인이 정권을 잡자 이조참판에 등용되었다. 이이·정철·송익필 등과 절친하였다. 서인의 중진 지도자이며 학문이 깊다.
임진왜란 전 통신사 정사로 파견되어 변화된 일본의 모습에 진작 내침을 감지하고, 귀국 후 일본 침략을 강력하게 경고하지만 묵살되고 만다.
강직하기가 대쪽 같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설령 임금이라 하더라도 잘못하면,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상소를 올려 간언한다.
윤두수의 친동생. 지조가 있으며, 조정대신 중 중국어에 가장 능통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사신으로 간다.

무장들[편집]

당대 최고의 무장. 항상 자신감이 넘쳐있다.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도순변사[15]에 임명되어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다.
무신. 임진왜란 때 순변사[16]로 상주, 탄금대에서 왜군과 싸워 패배하지만 도망쳐 살아남는다.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명의 원병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다.
경상도 관찰사.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부산진수군첨절제사(정3품 절충장군). 임진왜란 당시 군민들과 함께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 제1군의 첫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나 전사한다.
동래부사.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 제1군과의 두 번째 전투에서 전사한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17].
종사관. 탄금대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지만 패전하여 신립과 함께 자결한다.

그 외 사람들[편집]

내수사별좌. 귀인 김씨의 남동생.
선조의 내관.
선조의 내관.
대동계의 수장. 동인 계열.
조선의 매국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87년, 왜구들을 인도해 손죽도를 침략(정해왜변)하게 한 장본인으로 1590년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왜구 두목들과 함께 송환되어, 처형되었다.
비격진천뢰를 만든 화포장.
1590년 통신사 당시 서장관.
왕실 도승지.
조선의 백성들.
귀인 김씨의 상궁.
조선의 역관. 이덕형과 함께 고니시와 강화협정을 맺고자 한다.
관리들. 어전 앞에서 선조의 파천을 반대한다.
사헌부 군관.
성혼의 하인.
동래부사 송상현의 부장.
부산진성의 군사.
이일 휘하의 군사.

일본[편집]

도요토미 가문[편집]

일본의 태합(호칭은 전하[19]). 보잘 것 없는 용모에 비해, 사람과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날카롭고, 매우 용의주도한 성격이다. 철저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히데요시의 첫 아들로 요도 소생. 어린 나이에 일찍 죽는다.
(네네 → 기타노만도코로)
히데요시의 제1정실.
히데요시의 제2정실.
일본의 관백. 1591년 히데요시는 조카 히데츠구에게 관백직을 수여하였다. 거주지는 주라쿠다이이다.
히데요시의 양자. 친부는 우키타 나오이에. 임진왜란에 총대장으로 참전하여 제8군을 이끈다.

무장들[편집]

임진왜란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 선봉장. 상인 집안 출신으로, 침착하면서도 손익계산에 빠르다. 임진왜란 때 그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종의지)와 함께 1만 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진과 동래성을 공격하였고, 충주 탄금대 전투 때 신립을 대패시키는 전공을 세운다.
제2군을 이끈 장수. 승부에 있어선 영악하고 민첩하게 움직이지만 보통은 단순하고 포악무도하다. 마치 사냥을 즐기듯 전쟁터를 누빈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까지 진출해 임해군을 사로잡게 되며, 후일 고니시와 세키가하라 전투 때 싸우게 된다.
대마도 도주. 고니시의 사위이며 조선말을 잘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고니시의 지휘로 참전했고, 조선과의 강화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나 실패한다. 본명은 종의지(소오 요시토시)이나 조선에 올때는 일본 명문가의 성씨인 ‘평'씨[26]를 차용했다.
종의지 이전에 조선으로 온 일본 사절로 통신사 요청을 하다가 거절당했으며, 결국 히데요시에 의해 죽는다.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 고부교의 한 사람으로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행주대첩 당시 권율에 의해 대패하였다.
통칭 마타자에몬, 마타시로 등. 오다 노부나가 사후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시바타 가쓰이에 군에 소속되어 히데요시와 대립하지만 전투에서 패하여 그와 제휴한 후, 자신의 딸 마아히메(일본어)를 히데요시의 첩으로 보내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 외 사람들[편집]

일본 승려. 종의지와 함께 조선으로 와서 통신사를 요청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순해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받는다.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

명[편집]

황실[편집]

명나라 제13대 황제. 1572년부터 1620년까지 48년간 재위하였다. 그의 치세는 역대 명나라 황제들의 통치 기간 중 가장 길며, 명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쯤 지나고 왕조가 서서히 몰락해가는 시기였다.
만력제의 애첩.

신하들[편집]

명나라 병부우시랑(중국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2차 원군의 총사령관인 경략방해비왜군무로 참전하였다. 송응창은 심유경을 내세워서 조선을 배제한 일본과의 강화협상을 시도하였다.
무역상 출신의 명나라 사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일본·명 3국 사이에 강화회담을 맡아 진행하면서 농간을 부렸다. 달변가이며 일본어에 능통하다.
명나라 장수. 당시 요동의 실권자인 이성량의 아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독군무방해어왜총병관으로 명나라의 제2차 원군 4만 3천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왔다. 일본군을 상대로 평양성 전투에서 승전하였으나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다음에는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아, 류성룡과 이항복, 이덕형 등은 이여송에게 일본군과 싸울 것을 재촉하였다.
명나라 병부상서.

그 외 사람들[편집]

  • 불명 - 주균왕 역
명나라 상인.

류큐국[편집]

류큐국의 왕자.

그 외 사람들[편집]

남해안의 해적 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