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자본의 논리가 있다.
또한 수요를 공급해주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 공급이 가능한 것이고.
수요가 존재하고 그 수요에 대해서 공급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교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따라가서 김치녀와 김치녀에 대한 수요를 알아봐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나 신라시대 이들은 오히려 김치녀 교역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즉 사실 후대 고려나 조선에 공녀를 요청하는 상황은 사실상 고구려나 신라의 적극적인 김치녀 교역에서 시작되었고 사실 이 김치녀 교역이 성공했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봐야한다.
다만 고구려는 최고 전성기인 장수왕때 북위에 공녀를 보냈다는 기록등이 존재하는 수준이라면.
신라는 북위에 대해서 같은시기에 공녀를 보냄은 물론 나중 중국 당나라 성립 후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공녀를 보내며 김치녀 교역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고구려시대부터 있었던 김치녀 교역과 후대의 상황을 보자면 당나라에서도 김치녀는 수요가 분명히 있었을텐데 끊임없이 거절했었다.
하지만 드디어 당나라가 견디지 못하고 받아준 김치녀가 있으니 대표적으로
평민의 딸이라고 추정되는 신라의 미인인 김정란이다.
(김정란은 유명하지 않기에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미실역으로 대체)
김정란은 당나라가 수도 없이 거부했었던 신라의 미녀진상을 오랜만에 받아들이고 황제의 첩으로 삼은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라와 고구려때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김치녀 수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약소국이라서 공녀등으로 미녀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국력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던 고구려나 혹은 당나라와 전쟁해서 자기 자신을 지켜냈던 신라가 아주 적극적으로 공녀를 판매하려고 했거나 판매했던반면 반대로 상대적으로 국력이 더 약했던 고려나 조선은 공녀에 거부적이었다.
세계역사를 따져봐도 미녀를 판매하는 일은 비일비제 했었고 이건 엄청나가 이득이 많이 남는 꿀교역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많은 나라들은 미녀를 판매하고 싶어도 판매하지 못하는 나라가 엄청나게 많았었다고 봐야하고 말이다.
공녀로 넘어가는 여성들은 당대 최고수준의 미녀들이라고해야겠고.
당연히 이런 미녀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된다.
또한 이런 미녀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존재한다면 당연히 그 나라와는 지속적으로 좋은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게 자지의 본능인 것이다.
프랑스만해도.
퐁파두르 후작부인 같은 애첩들이 프랑스왕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혈연으로 맺어진 군주제 사회일 수록 가장 믿는 것은 혈연적 공동체로서 결혼동맹이야 말로 혈연이 중심인 군주제 사회에서는 가장 믿을만한 동맹인 것이다.
당연히 공녀라 함은 자국의 귀족층 혹은 평민층이라도 상대편 국가에 보내서 상대편 국가의 귀족이나 왕과 혈연적 결혼동맹을 달성하는 것으로 당연히 군주제 사회에서 이득이되면 되었지 손해가 된다고 볼 수 없다.
이 애첩과 자지의 본능 결혼동맹의 강력함 때문에 바로.
루이 16세가 미모와 섹기를 모두 겸비해서 루이 16세가 특별히 프랑스인 애첩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등장이 프랑스라는 국가에게 위기로 인식된 이유기도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비들 중에서 상당히 상급에 속하는 남편의 정치를 방해하지 않으며, 가정에도 충실하고 왕실경비도 적게 쓴 왕비들 중 하나이며, 왕비로서 해야될 일도 잘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외모 리즈시절)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향을 아주 잘받았는지 아내로서, 여왕으로서 해야될 일을 잘하는 상당히 우수한 여왕이었다고 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였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만큼 미녀가 주는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치녀 교역의 최고 성공 사례 1세대는 기황후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기황후보다도 더 전에 김치녀 수출 세대들도 기황후처럼 아에 황후에 달하지는 못했으니 일단 김치녀의 위세가 동아시아에서 떨치기 시작한 시작은 기황후가 열었다고 봐야한다.
나이든 상태에서 완전 똥송으로 느껴지는 기황후지만 여하튼 당대에 최고의 미녀였다고 봐야하고 그렇기에 원나라의 황후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기황후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원나라에 고려풍까지 생겼을 정도니 김치녀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기황후 이전에도 황제에게 총애 받은 김치녀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이런 김치녀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이었다.
원나라가 기울고 명나라가 떠올랐으며 주원장이 주요한 군벌이던시절에 고려에서 온 이씨라는 여인이(혹은 공주라고한다.) 주원장의 첩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석비로 지칭된다. 그래서 석비 이씨.
특이한게 한자가 클 석자라고 한다.
碩: 클 석
당연하지만 고작 비빈이 받는 칭호로는 너무 비범하다. 클 석자를 쓰다니.
이 석비 이씨가.
영락제의 어머니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여인이라는거다.
최소한 석비 이씨가 영락제에게 엄청난 영향력이 있던 존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말이다.
영락제는 어머니가 불분명한 편인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이가 석비 이씨며, 그외에 몽골인쪽이 어머니다, 아니다 송나라 공주가 어머니이다등의 설이있어며.
주원장의 황후 즉 정실부인이 영락제의 친어머니라는 것은 사실상 주원장만 주장하고 대부분 아니라고 본다.
어찌되었던 석비 이씨는 영락제의 어머니뻘 나이로 영락제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영락제는 아끼던 조선인 첩들이 여럿있었으며, 조선의 음식도 나름 즐겨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락제 사후 영락제의 손자인 선덕제 집권시기(중간이 2년정도한 선덕제의 아버지가 있다.)
4차 세종 09년(1427) 07월 33명 - 처녀 7명, 여종 16명, 집찬녀 10명
5차 세종 10년(1428) 10월 01명 - 처녀 1명
6차 세종 11년(1429) 07월 20명 - 집찬녀 12명, 가무녀 8명
7차 세종 15년(1433) 11월 20명 - 집찬녀 20명
여기서 집찬녀라함은 음식을 만드는 공녀를 뜻한다. 즉 음식만드는 공녀만 총 42명을 요청했다.
특이하게도 조선의 음식을 손자가 열심히 먹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보면 누군가가 명나라 황궁에서 고려와 조선풍 음식을 먹고 싶어했으며, 그것이 공녀를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권력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으며 사실 영락제 사후 영락제가 아낀 조선인 후궁은 순장된만큼...(시대가 어느때인데 순장을.....) 영락제의 후궁이 조선음식을 원한 것은 아니라고 알 수 있다.
특히 영락제는 조선에서 온 권씨라는 여성이 오자마자 총애했는데, 권씨가 온지 얼마안되어 죽자 슬퍼하는 와중 같은 조선출신 첩인 여미인(여기서 미인은 서비의 작위 중 하나라함)이 죽였다는 내용을 듣고 여미인과 관련자들을 때로 죽였는데, 또 알고보니 여미인을 사랑한 중국인 궁녀가 동성애를 구애했지만 여미인이 거절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무고한 것이 들어나 분노한 영락제가 또 대량으로 사람을 죽여서 총3500명가량이 죽었다고도 전해지는 어여의 난등이 있었다.
즉 김치녀는 중국에서 남자에게도 인기가 있었지만 여자에게도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내용들을 죽살펴보면 알겠지만.
원나라 황실, 명나라 황실 모두 김치녀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었던 적이 있으며, 고려와 조선은 솔직 담백하게 자기들의 가장 핵심적인 수출품이 김치녀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려와 조선은 이들 김치녀를 수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독점하기를 원했다.
상식적으로 대제국에 넘겨주는 공녀들은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황제의 첩이되거나 혹은 황제가 자신에게 중요한 권력자들에게 하사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들로서 공녀를 많이 제공하면 할 수록 그 나라에게는 여러가지 이득이 있으면 있었지 없는 것보다는 덜하다고 봐야한다.
기황후처럼 아에 황후가되어 버려서 컨트롤이 불가능한 수준이면 분명 나라가 감당못하지만 그게 아니라 후궁이나 비빈정도라면 어느정도 서로 윈윈하며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봐야하며, 실질적으로 영락제때 조선과 명나라사이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진 것.
그것도 명나라 최고의 능력을 가진 황제지만 성격이 불같아서 좀만 잘못되도 단체 학살을 일삼는 영락제와 사이가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김치녀 수출에 힘임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그렇고 그들은 김치녀를 수출하기 보다는 독점하기를 원했다.
다른나라의 역사를 죽살펴보면 공녀가 그것도 조선이나 고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거나 거대한 나라에 가는 여자가 비참하다고 말하는 나라는 고려와 조선외에 많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여왕으로서 사실상 카이사르에게 붙어버리고 안토니우스에 붙어버리며 강력한 권력과 이집트를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을 우린 불쌍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팜므파탈이나 잘먹고 잘살았지만 안토니우스를 선택한 실수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는 수준이지 엄청나게 불쌍하다는 식의 표현은 별로 없다.
그건 강대한 권력자와 아주 강력한 인맥과 관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은 특이하게 김치녀를 수출해서 이득을 보기보다는 김치녀를 독점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김치녀를 수출하는 것은 한참 후 청나라에 의해서 강제로 수출되었을때고 그 이전에는 오히려 명나라 사신들이 오면 여자를 이용해서 포섭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며. 또한 사실상 실제로는 어떠하던 조선자체는 사실상 명나라의 영락제가 김치녀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조선쪽에서 남긴 기록에는 영락제가 석비 이씨의 소생이라고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으니까는.
이는 조선이 명나라에게 보인 비정상적일 정도로 엄청난 집착의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
조선은 명나라 황제의 혈통에 자신들과 같은 민족이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는.
명나라 황제들이 얼마나 영락제의 어머니가 석비 이씨라고 믿었을 지는 모르지만 이런건은 어차피 영락제 묘에서 영락제 표본때다가 유전자 검사하면 훼손이 심한 것이 아니면 쉽게 밝혀지겠고.
최소한 조선천자로 유명한
명나라와 관련된 업무는 30년동안 파업하며 처리하지 않았어도 조선관련 문제는 아낌없이 퍼주고 지원하며 조선의 선조와 삼국지 놀이하며 자신은 유비의 환생 선조는 장비의 환생, 내 꿈에서 관우가 찾아와 장비를 도우라했다는 수준으로 쳐논 것을 보면 만력제 같은이는 사실상 영락제의 어머니가 석비 이씨라고 생각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이기는 하다.
즉 조선이나 고려도 사실상 공녀를 통해서 많은 이득을 봤다고 해야한다.
하지만 그들은 김치녀의 수출에 엄청나게 경기를 일으키고 그전의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김치녀 수출을 안하려고 한다.
이건 결론적으로 우리가 반대로 알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나라가 약해서 김치녀를 수출한게 아니다.
나라가 약해지니 김치녀 수출에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황후나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 가진 막강한 권력을 고려나 조선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력이 상대적으로 강성한 고구려는 공녀 교역을 통해서 북위에 강력한 혈통적 영향력과 결혼동맹을 만들어내려고 했었다고 봐야하며, 이건 신라또한 마찬가지라고 봐야한다.
공녀중에 가장 최하위로 떨어졌다고 말할만한 이는.
고려시대 제국대장공주가 선발한 공녀들 중 공녀가 안되려고 머리깍고 중이되어버린 홍규의 딸로서.
이에 분노한 칭기스칸의 증손녀이자 쿠빌라이칸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분노해서 홍규의 딸을 채찍으로 패버리고 무신정권을 전복시키고 고려왕실을 다시 복귀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홍규를 파직시키고 유배보내 버린다.
그리고 그런 홍규의 딸을 고려에 온 원나라 사신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공녀중에 가장 최하로 떨어져서 주었다가 원.나.라 사신 즉 외교관에게 주었다는거다.
자 여기서 잠깐 활활타이라는 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활활타이는 원나라 쿠빌라이 칸에게 신임 받던 재상으로 원나라 황족 출신이며, 몽고 여인을 정실로하고 고려의 여성을 첩으로 받았는데, 활활타이의 아들들은 첩인 고려인 여성을 그것도 평민으로 예상되는 그 여성을 작은어머니 고려씨라고 부르며 잘나가다 못해서 활활타이는 고려에서 자기 첩의 어머니까지 황제의 허락을 받아다가 대려오고.
활활타이가 죽자 그의 큰아들은 작은어머니로 모시던 고려씨를 자기 첩으로 삼으려고 황제의 허가까지 받을 정도였다.
이게 기록에 남은 수준이고 기록에 남지 않은 이들이라고해도 고려의 주요한 여성들이 솔직히 상당히 직위가 높은 즉 가장 직위가 낮은 천한 집에 보내지는 수준이 외교관일 수준으로 높은 고관에게 보내졌다고 봐야한다.
즉 김치녀판매가 너무 심하게 잘되서 고려의 국력으로서 컨트롤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자 이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황후인거다.
일국의 황후는 고려의 국력으로서 컨트롤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기황후가 고려를 컨트롤할 지경이었지.
즉 김치녀 교역이 너무 심하게 성공해서 고려와 조선의 국력으로는 답이 없는 수준에 이르자 온갖 이야기를 하며 특히 문화적으로 공녀로 가는 것은 가장 비참한 것이라는 문화를 만들어서 공녀수출과 공녀교역을 금지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한 진짜 이유인거다.
국력이 상대적으로 상했을때는 오히려 결혼동맹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김치녀 교역을 걸었지만.
이제 김치녀는 상급품 교역품으로 분류되는 반면, 고려와 조선의 국력은 그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맨 앞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왜 19호인가.
왜 19호는 등장하게 되었는가
왜 김치녀는 다른나라로 나가는가.
그건 위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김치녀는 좋은 교역수단인거다.
물론 해외에는 오랜 여자교역을 통해서 세상에는 갓스러운 인종들이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치즈녀.
공산주의자 우고 차베스가 말아먹고 있는 나라를 떠받치는 베네수엘라 혼혈미녀.
우크라이나 슬라브 미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가 말아먹은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불곰국 러시아 미녀들도 있다.
하지만 김치녀도 만만치 않다. 미야코 하루미 같은 1948년생 일본의 주요 엔카 가수는 물론 사실 여기에 목록적으면 일빠 및 일본인들이 개극딜로 흥분할 유명한 수 많은 일본 유명 연예인들 중에 김치녀가 상당 수 포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라 봐야할 것이다.
위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외국의 여자가 외모만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예는 내가 아는 중국역사내에서 김치녀밖에 없다.
이런 김치녀의 특이성은 한민족의 자유로웠던 성풍속과 음란함 그리고 식생활에 콩과 잡곡밥 위주라서 영양학적으로 상당히 건강한 음식들을 즐겼다는 것등 다각적 검토를 추가적으로 해서 왜 김치녀들이 수출이 잘되었는지를 따져봐야 겠지만 그것까지 했다가는 내가 과연 고소를 안당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될 수준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것까지 못가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고소가 안당할 수준에서 말하자면.
김치녀 문화적으로 원래 음란하고 성적으로 문란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를 뽑는다면 신사임당, 허난설헌 그리고 황진이가 뽑히는데.
자기나라 대표예술가로 기생과 같은 창녀 뽑는 나라는 한민족정도 밖에 없다.
위의 프랑스 왕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창녀출신도 아니고 물론 프랑스 왕의 애첩중에는 창녀출신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창녀출신도 아니고 창녀출신이라도 예술인으로 역사에 남는 일도 없다. 권력아지아 예술의 후원자로 예술을 지원해주었다로 나오지 자기 스스로가 예술가인적이 없다.
이는 애초에 한국이 상당히 문란하고 성적으로 개방적인 나라였고.
창녀도 예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던 사회라고 봐야한다.
심지어 게이샤를 예술인이로 치는 일본조차도 자기나라에서 역사적 수준의 대표 예술인을 게이샤로 뽑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성풍속이 원래 개방적이고 음란했으면 조선시대부터 자기들 대표 역사 예술인으로 황진이가 거론될 수준이었다.
그건 황진이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타고남은 물론 음란한 우리 문화상 창녀가 대표예술가가 되는 것에 다른 문화권보다 훨씬 너그롭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 조차도 춤과 예술에 능하다고 표현되지 자기들의 대표 예술가라는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황진이나 신사임당이 무려 1500년대 여성들로서 당시 전세계에 여성 예술인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황진이, 김부용, 매창, 자동선 등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시인 혹은 시인 중 기생들이 엄청나게 많다.
단순히 당대에 기생이 시와 서화를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해도 아에 그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수준이되었다는 것은 질적 수준도 수준이지만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음란하기에 창녀에 대해서 예술가로서 대접하는 즉 당시 시대적으로 봐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상당히 창녀의 사회적 인식이 높았다고 봐야한다.
어떤 나라도 고급 창녀라 할 수 있는 기생같은 집단을 자기들 나라의 대표예술가로 이렇게 집단적으로 뽑아내지 않는다.
있어도 한국과 같이 매우 소수의 국가라고 말해야될 것이다.
솔직히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중국, 일본, 미국등의 나라는 물론, 이집트, 이란, 이라크 같은 나라들을 따져봐도 창녀를 대표 예술가로 뽑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은 원래 음란하고 성적으로 개방된 민족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김치녀 수출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봐야할 것 이다.
3줄요약.
1. 김치녀는.
2. 원래 지금하고 똑같았어.
3. 음란한 창녀 쩔게 만들어서 원래 해외에 잘팔았어.
ps. 너무 진지하게 믿지는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