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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한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대

우랑우탕
0 2015-01-03 13: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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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를 너무 부정적인 시대로 보면 안된다.

 

한국발전의 토대가 만들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선거로만 보니까 역동적이고 현대사회의 토대를 닦었던 발전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60,  70년대 공업발전이 있기 전에 공업 발전을 이끌 인재육성은 50년대 부터 길러지고 있었다

 

참고로 50년대 교육의 발전은 기적적인 것이었다.

 

60 70년대 녹색혁명과 공업혁명이 있기전에 50년데 교육 혁명이 먼저 있었다.

 

해방당시와 비교하면 60년대 국민학교는62% 증가했고,  중학교는 11배가 증가했고  학생수는 11배 증가  고등학교는

 

3배가 증가했고 학생수는 3.1배 증가했다. 대학수는 3.3배 학생수는 12배 증가했다.

 

또한 유학생수도 급증해서 총 1만 4천명이 50개국에 유학을 했고  미국이 1만 2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교육렬의 폭발은 국민들의 전통적인 교육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이승만 정권의 제도적 지원이 큰 역활을 했다.

 

이승만 정권의 교육에 대한 업적은 식민지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것 이었다

 

식민지 시대에도 일제의 노예로 부려먹이 위해 초보적인 교육은 있었다. 

 

물론 이 초보적인 교육도 조선시대 양반 상민 차별로 인해  아예 초보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게 한 정책보다 나았다.

 

그러나  일제는 초 중학교가 전부 였다.

 

그 이상 교육을 받는것을 일제는 원하지 않았고 제도도 시설도 없었다.

 

이승만 정권은  초등 6학년까지 의무 교육을 법에 강제했다.

 

그리고 교육이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교육자치제를 실시 했다. 

 

 이런 정책으로 국가와 지방 공공 단체는 의무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치 운영해야 했다. 

 

이런 교육정책은 엄청난 사회 경제 정치적  정신적 효과를 발생했다. 

 

 첫째로 단군이래 최초로 전국민이 교육기회를 공정하게 받아 사회적 계층 상승 변화가 가능해졌다

 

두번째 이런 교육은 경제기적을 이룬 인적 토대였다. 

 

 세번째는 민주 민족 과학 교육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세대를 대량으로 배출했는데 그들의 배운 민주주의와 이승만의 정치현실이 달라 4.19혁명이 일어나는 기폭제 역활을 하기도 했다. 

 

네번째 50년대 강조된 과학 기술 교육은 아직도 미흡하긴 하지만 국민들의 가치관을 조선시대와는 다른 합리적 실용주의적으로 바꿔놨다

 

결론

50년대는 죽은 시대가 아니라  한국을 이끌 인재들이 국가의 지원과 국민들의 열방으로 폭발한 교욱혁명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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