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83.10.9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중이던 전두환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 사건.
1983년 10월 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는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차관, 강인희 농수산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의원, 민병석 주치의, 이재관 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등 모두 17명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발생 후 나머지 일정을 중단하고 이튿날 새벽 급거 귀국하였고 우리 정부는 한국정부조사단을 현지에 파견, 버마측과 합동 조사를 벌였다.
이후 버마 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 독재자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 소좌, 강민철대위, 신기철대위 등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수사결과를 밝혔다. 이들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담당 참사관 전창휘의 집에 은거한 후,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에 아웅산 묘소로 잡입하여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버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버마 주재 북한 대사관 요원들에 대해서 출국 명령을 내렸다. 당시 버마는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과도 수교국이었다. 그리고 12월 9일 양곤지구 인민법원 제 8특별 재판부에서는 테러범에 대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한편,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코모로·서사모아 등 3개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하였으며, 미국·일본 등 세계 69개국이 대북한 규탄성명을 발표하였다.
김재익
1938년생. 80년대 한국의 경제 성공을 이끈 전두환의 경제 참모.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를 보고 1년 일찍 서울대 외교학과 입학. 졸업후 한국은행에 재직 중 하와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4년 경제기획원의 요직을 두루 차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들이 전두환 정권에 협력한다고 극렬 항의. 이에 김재익은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타이름.
전두환은 김재익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이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경제 정책에 전권을 위임.
대기업을 위한 차별 금융제도, 세제혜택 철폐를 주장.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공정거래제도 채택까지 주장. 그리곤 중소기업 진흥 재단 집중 지원했으며, 벤처 기업 육성 강조.
1980년에 이미 20년 뒤에나 가능할 지하철과 버스를 연계하는 대중 교통 시스템과, 전자 통신 기술로 발생할 정보 산업 혁명을 주장함.
전화기의 자급제를 실시를 주도. 기계식 전화기에서 전자식 전화기로 전환토록 한 것도 김재익의 노력, 세계 최고 수준의 전화 네트웍을 전국에 구축케 한 것도 김재익. 이후 컬러TV 송수신을 자유화한 것도 김재익이 주도한 일.
이중 곡가제와 같은 농촌 보조 정책 강력 비판. 이를 철폐해 농촌의 자생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
기업과 정부의 극렬 반대에 맞서 부가가치세를 채택-유지함. 부가가치세는 오늘날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목 중 하나.
금융 실명제를 추진. 그러나 당시 대기업과 정치인 등 '비자금'을 다뤄야 하는 이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고, 결국 전두환에 의해 최종 좌절.
80년대 초반 자동차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아 자동차 산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했음에도, 그는 역으로 자동차 산업에 집중 투자할 것을 주장했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테러사건으로 사망
김재익 혁명적인 경제정책 단행 ① 한국경제의 고질병이었던 인플레(연간 10~20%)를 근절하는 수술부터 시작 ① ‘정부주도 경제’를 ‘민간주도 경제’로 전환 김재익 지방정책 주도 ① 울산, 창원 등 국가산업단지에 입지한 대기업 공장 대대적인 구조조정 시행 (재벌들의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 제동) ① 산업화가 가져온 최대의 부작용인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강력한 수단 [출처] 제5공화국의 경제대통령 김재익|작성자 선비
② ‘연간 물가상승 3%’라는 획기적인 목표 계획
③ 재정지출 동결, 공무원 봉급 동결 및 추곡 수매가 동결 및 기업의 임금인상 자제
④ 이익배당 억제 및 물가안정을 위한 대국민 경제교육실시
⑤ 지나치게 과보호된 재벌기업 독과점 품목의 과감한 수입 개방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
⑥ 쌀을 제외한 농산물(밀, 콩, 옥수수 등)의 수입 확대 (국내 식품가격의 안정 도모)
김재익 공직사회 개혁 단행
②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던 재무부를 무장해제
③ 실질적인 기업회장 노릇을 하던 상공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
② 부산의 사상공단과 대구의 성서공단을 재정비 (대기업과 지방 중소기업의 연계를 강화)
③ 중소도시와 농어촌 곳곳에 농공단지를 조성 및 중소기업진흥공단을 만들어 중소기업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
김재익 ‘수도권정비계획법’ 제정
② 생활권 중심의 지방도시 육성에 역점을 둔 ‘제2차 국토개발종합계획’을 수립
※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대책을 강구
김재익 갑이 안죽었으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변했을거다.





